잉카 문명을 세운 사람들은 안데스 산맥, 특히 지금의 페루의 꾸스꼬(Cusco) 계곡 주변에 거주하던 께쭈아(Quechua)어라는 언어를 쓰던 매우 나약한 농경 민족들이었어요.
이들은 싸움꾼 집단이 아니었으며, 단지 하루하루 굶지 않고자 옥수수나 기타 곡식들을 심어야 했던 "생계형 농부"들이었지요. 초기 잉카인들은 주변 알몸 원주민들에게 도망다니던 약소 원주민에 불과했어요.
이 농부들을 묶어준 유일한 끈은 바로 "아이유(Ayllu)"라고 불리는 농경 공동체였어요. 이 아이유는 공통의 조상을 모시는 대가족 집단으로, 토지를 사유화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경작하며 배부르고 등따숩게 살았지요.
"오늘 제가 언니를 도우면, 내일 언니가 저를 도와주세요. 알았지요?"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던 잉카의 평화로운 상호 돕기(Ayni)를 기본으로 하는 노동 교환의 삶이 존재했지요. 이는 도덕적인 미덕도 있지만 서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던 밥벌이 때문이기도 했지요.
단순한 농부들이 왕국을 세우게 된 핵심은 "물" 때문이었어요. 열대 지방이었으며 습하던 잉카 문명은 필리핀 같은 열대 지방에서 흔하게 탄생하던 계단식 논(Andenes)을 했지요. 하지만 산 비탈을 깎아 평평한 논밭을 만들고 돌을 쌓는 작업은 개인이 할 수 없었기에.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야 했지요.
이 과정에서 수로를 연결하고 막대한 노동력을 배치할 "감독관"이 필요해졌고 처음에는 단순히 농사 경험이 많은 연장자였던 촌장이 이런 일을 했는데, 점차 노동력을 징발하고 수확물을 분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자(왕)"로 변질되었던 것이지요. 즉, 잉카 문명의 왕인 "잉카"는 "농부"인 셈이에요.
농부들은 자연재해(가뭄, 냉해)에 매우 취약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왕이나 여왕, 왕비는 자기가 "태양신(Inti)의 자녀"라고 얘기하며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장이자 왕(Sapa Inca)이 되었던 것이지요. 즉, 잉카 문명은 농업꾼이 종교적 느낌을 입고 왕이 된 케이스에요.
처음에 꾸스꼬 계곡에는 잉카 원주민 외에도 여러 알몸 원주민들이 옹기 종기 살았어요. 이들은 한정된 물과 비옥한 논밭을 먹고자 슬슬 서로를 싫어하기 시작했지요.
문제는 잉카를 비롯해서 라틴 아메리카 자체가 "구석기" 사회였기에 별도의 무기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고 청동기조차도 발명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잉카 원주민들은 농사를 짓던 돌도끼, 흙을 파던 막대기, 돌을 던지던 투석구(Sling)들을 그대로 무기로 사용했던 것이지요.
당연하게도 잉카 원주민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병사가 아니었기에, 규율이나 전술은 매우 형편없었어요.
그러다가 잉카 원주민들이 단순한 원주민 사회에서 "왕국"의 모양을 만들게 된 사건은 짱까족(Chanca)의 침입 때문이었어요. 당시 짱까족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일 쌨는데 그렇기에 당시 잉카의 촌장인 "비라꼬짜"는 짱까족이 오자마자 바로 도망갔으나 그의 자녀인 "빠짜꾸띠(Pachacuti)"가 남아서 농부들을 모아 필사적으로 방어에 성공했지요.
하지만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에는 구석기를 벗어나지 못했던 게 있었는데 이는 글자가 없었다는 점이에요. 글자가 없으니 문명인이 되지 못했고, 선대 여왕들이나 왕비, 공주들의 얘기가 자녀들에게 내려가지 못해 국가 시스템이 정교해질 수가 없었지요.
결국 스페인인들이 오기 전에 이미 유럽에서 들어온 천연두 같은 질병까지 겹치며 인구의 90%가 병들어 죽고 말았고 여기에다가 약 16세기쯤인 1532년쯤에 스뻬인 왕국의 삐사로가 고작 168명의 오합지졸들만을 이끌고 왔을 때도 수만 명의 잉카인들은 허무하게 눕고 말았지요. 총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오줌싸기 바빴고 돌도끼였던 "마꽈후이뜰"로는 스페인인들의 살에 상처를 내기 힘들었거든요. 아따왈빠가 스페인인들을 초대했다가 그 자리에서 납치되기도 했지요.
지금은 마추픽추 같은 유적을 보며 재밌는 문명이라 포장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잉카 문명은 고립된 농업 조합에 가까웠어요. 바퀴와 글자가 없어 발전이 구석기 수준으로 멈춰 있었기에, 외부의 충격에 맥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매우 취약한 왕국이었던 거지요. 잉카 문명은 사라졌지만 그 후손인 케쭈아 원주민은 여전히 조상들처럼 감자를 키우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