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스페인 테르시오 보병 방진을 좋게 보는데 치명적인 단점들도 존재했는데 이에 관해서 알아보지요.
스페인 군대(테르시오와 함대)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스페인의 군대가 그렇게 강했더라면 영국, 네덜란드들은 이미 오래전에 카운터를 맞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이들 스페인 군대는 기동성의 부재와 전술적 유연성의 결여로 적을 완벽하게 제압하기는 어려웠지요.
필리핀 남부의 술루 술탄국(Sulu Sultanate)이 7번이나 스페인의 침입을 막아내고 끝내 조공국(속국) 되지 않았던 것도 저러한 이유였지요(필리핀 본토 얘기하는거 아니에요). 스페인군은 초엽에 화승총으로 무장한 테르시오 방진을 앞세웠으나, 험난한 정글과 늪지대, 그리고 원주민들에 대응하지 못하고 번번이 패퇴했지요.
스페인군은 방진 전투를 고집하다가, 영국 해군처럼 사거리를 이용한 아웃복싱 전술을 구사하는 상대방에게 얻어맞고 결국은 패배를 하게 됩니다. 이는 중무장하고 느린 병종 위주의 전략에 카운터를 칠 수 있는 방법이 명확하다는 것을 의미해요.
스페인을 상대하는 나라들은 전장을 넓게 쓰거나(해전), 험지(정글)로 유인하여 스페인 군대가 자랑하는 밀집 대형인 테르시오가 활동하기 어렵도록 만들었지요. 활동 공간이 넓어져서 밀집 대형이 흩어지거나, 반대로 지형지물 때문에 대형을 짤 수 없게 된 스페인 보병은 측면 방호의 부재로 생존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피해를 크게 볼 수밖에 없었어요.
이들의 생존성은 "견고한 대형 유지"에 달려 있는데 그 대형을 유지할 수 없는 전장 환경이 조성되거나 사거리 밖에서 두들겨 맞는다면 스페인 군대는 그대로 끝장이에요. 물론 스페인군은 전문적인 경보병이나 고속 함선 위주의 부대도 아니고 억지로 기동전을 펼쳤을 때 입을 피해는 전문적인 유격 부대보다 더 크게 나왔을 것이에요.
보통 테르시오의 방어력은 빽빽한 장창 숲에서 나오는데, 이게 화포 기술이 발달한 17세기 중반 이후로 가면 글쎄요. 뭉쳐 있는 표적은 대포 밥이 되기 딱 좋지요. 게다가 네덜란드 독립 전쟁 당시처럼, 늪지대나 수로를 이용해 요새화하고 저항하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지는 것이 이들 스페인 군대이지요.
약 17세기쯤 들어 이러한 스페인 테르시오의 약점을 파고든 사람들이 탄생했는데 네덜란드 왕국의 마우리쯔 빤 나사우와 스웨덴의 구스따브 2세 아돌쁘는 조총병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린 대오(네덜란드 왕국, 스웨덴식 대대)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1631년 브라이뗀뻴뜨 전투에서 스페인의 거대한 보병 방진은 신식 열 방형 대오에 완전히 패배했고, 이후에도 계속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1643년 로크루아 전투에서는 프랑스 연대포병에 밀려 스페인 테르시오가 결정적 패배를 당했지요.
즉 테르시오는 그 구조상 정면방어에선 나름 좋은 "방어적 방법"이었지만, 대규모 포열사격이나 교전 연속성, 기동성 면에선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났어요. 4~5열의 촘촘한 대형은 깊은 충격력은 주기 어려웠고, 화력 집중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했지요.
그렇기에 밀집된 테르시오도 포화와 기동전 앞에선 균열이 생겼지요. 그렇기에 이런 스페인 테르시오 보병 방진의 천적은 바로 "빠른 기동성을 가진 궁기병대"였어요. 빠른 기동성을 가진 궁기병대가 스페인 테르시오 보병 방진을 공격할 경우 스페인군을 완전히 대패합니다.
30년 전쟁의 로크루아 전투(Battle of Rocroi, 1643)에서 프랑스군에게 스페인 테르시오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도, 화력을 앞세운 프랑스군의 유연한 전술 때문이었으며, 대항해시대 초기 필리핀 막탄 전투에서 마젤란이 라뿌라뿌 원주민 추장에게 죽임을 당한 것 역시 갯벌이라는 지형 때문에 스페인군의 함포 지원과 중무장 보병의 기동이 제한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돼요.
좋은 화력 투사(포격)를 상대로 스페인의 기동력이 매우 안좋은 거대 함선이나 보병 방진이 머리를 들이밀면 당연히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혹여나 상대가 지형을 낀 열대 원주민 사람들이거나 성능 좋은 함포를 가진 영국 해군이라면 더더욱 위험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스페인 이후의 유럽 왕국들도 거대한 방진(테르시오)만을 고집하지 않고, 선형 전술(Line Infantry)로 대형을 얇게 펴서 화력을 극대화하거나, 기동성을 중시하는 방향(특히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러시아의 후신이라서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러시아 제국 기병대의 경우)으로 군대를 편제하여 전투를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스페인식 구형 방진 단독으로 전장에 밀어넣는 것은 화력전 시대에는 그냥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려다가 길어졌는데.. 결론 내리자면 스페인 테르시오 보병방진 같은 방어형 단독으로는 정면승부에서 상대방에게 위압감은 줄 수 있어도, 변화하는 환경(화포의 발달, 게릴라전 등)에 적응하지 못해 생존성에 문제가 있었으며 전투 지속 능력이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는 점은 염두에 두셔야 해요.
출처
제프리 파커(Geoffrey Parker), The Grand Strategy of Philip II (필리프 2세의 대전략), 1998.
제프리 파커(Geoffrey Parker),
The Military Revolution: Military Innovation and the Rise of the West, 1500-1800 (군사 혁명), 1996.
개릿 매팅리(Garrett Mattingly), The Armada (아르마다), 1959.윌리엄 H. 맥닐
(William H. McNeill), The Pursuit of Power (전쟁의 세계사), 1982.
논문 및 자료:Cesar Campana, La Vida del Senor Don Felipe Segundo (동시대 기록 인용). Nono, J.C., The Moro War: 1565–1898, University of t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