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유일한 모계 사회, 모권 사회인 지역, 왕국들

지구상의 유일한 모계 사회, 모권 사회인 지역, 왕국들

by 바다의 역사




모계 사회란 혈통과 상속 그리고 집안의 성씨가 어머니의 계보를 따라 이어지는 사회 구조를 의미해요. 이는 단순히 여자가 권력을 잡는 모권제와는 구별되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심했던 모계 사회들은 여자 원로들이 정치적 결정권이나 경제적 소유권을 독점하는 형태를 띠었지요. 즉.. 단순히 여자가 권력을 잡았다고 모계 사회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스페인 왕국이나 영국처럼 여자가 왕이 된 사례가 있거나 서구는 여자가 왕이 되는 경우들이 많은 데도 모계 사회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요.


특히 남반구(라틴 아메리카)&열대 지방의 여러 왕국은 대표적인 모계 중심 사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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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수마뜨라 서부의 미낭까빠우 원주민은 기원전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문화를 물려받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어요. 열대 지방의 자바 섬의 마자빠힛 왕국이 세력을 확장하며 수마뜨라를 압박하자 미낭까바우인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사회 관습인 "아닷 관습법"을 지키며 대응했지요. 이것이 바로 "모계 중심"의 사회 구조가 탄생한 결정적 배경이에요.


미낭까바우는 글로벌 No.1 스케일의 모계 사회로 알려져 있어요. 이들은 빠가루양 왕국을 만들며 모든 토지와 가옥의 소유권은 여자에게만 귀속되었어요. 남자는 결혼 후 아내의 집으로 집을 옮기는 모처 거주제를 했지요.


14세기에 아디 띠아 와르만 국왕에 의해 빠가루양 왕국이 탄생하자 국왕 자기는 남자였었으나 그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기에 자문을 묻는 곳은 오로지 여자 원로들로만 만들었어요. 이는 외부의 부계 중심적 위협(마자빠핏 왕국)으로부터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지요.


빠가루양 왕국은 16세기 이슬람교가 전파되었으나 미낭까바우는 종교는 이슬람을 따르고 관습은 모계를 따른다는 이원 원칙을 지켰지요. 약 1803년부터 1837년쯤까지 이어진 빠드리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모계 전통을 없애려 했던 사건이었으나 미낭까바우 여자들은 네덜란드 왕국과 결탁하며 끝내 이슬람으로부터 자기들의 여자 인권을 지켜냈지요.


현재도 인도네시아 섬내의 미낭까바우 원주민들은 무려 약 600만명이나 되며 모계 성씨를 유지하고 있어요. 결혼 시 신부 측이 신랑을 데려오며 신랑 측에 지참금을 요구하는 문화가 남아있다고 해요. 남자들은 고향에 자산이 없기에 외지로 나가 성공해야 한다는 메란타우 문화가 발달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의 경제와 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요~












♥Sector 2♥ 남아프리카 발로베두 비의 여왕 왕국




약 1600년대 초엽쯤 현재의 짐바브웨 지방에 존재하던 모노모 따빠 왕국 내부에서 왕좌를 둘러싸고 아웅다웅이 발생했어요. 이때 공주인 "드주구디"가 신성한 비를 내리는 종교 의식 도구와 비밀을 훔쳐 남쪽으로 도망쳐 현재의 남아프리카 림뽀뽀 주에 정착하여 낳은 왕국이 바로 "모노모 따빠 왕국"의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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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베두 왕국은 모자지(남자의 성기가 아니에요..)라고 불리는 여왕이 다스리는 여왕국이에요. 이들은 권력뿐만 아니라 영적 권위까지 있는 심한 모계 사회였지요.


약 1800년대 초엽쯤에 남자 왕족들 사이의 끊임없는 다툼을 싫어하던 국왕은 자기의 딸에게 왕좌를 물려주며 오직 여자만이 왕이 될 수 있게 했다네요. 이를 통해 왕국은 마치 이집트 왕국처럼 여왕의 신비로운 힘을 두려워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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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지 여왕은 결혼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주변의 여러 원주민들이 바친 아내들을 거느렸다고 해요.(...이거 레즈비언..?) 여왕은 이 여자들을 자기의 자산으로 활용하며 연합 체제를 굳건히 했지요. 19세기에 대영제국을 패배시킨 걸로도 유명한 줄루 왕국의 샤카 왕조차도 발로베두 왕국의 비의 여왕이 가뭄을 내릴까 두려워하여 오지 못하고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지요. 게다가 서방이 들어온 이후에도 이들은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며 자치권을 행사했어요.


아빠르트 헤이뜨 시절을 지나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 속에서도 발로베두 왕국은 지위를 인정받고 있어요. 약 2005년쯤에 제6대 여왕이 죽은 후 문제가 있었으나 약 2018년쯤에 놀레 모자지 7세가 정식적으로 여왕이 되었어요.














image (2).jpg 본래 이 원주민 여자들은 알몸이나 다름 없었나 그걸 고증에 맞게 그리면 정지될 수가 있어서 어쩔수없이 여자들은 옷을 입은걸로 그렸어여;;


오세아니아의 미크로네시아 열대 섬은 좁은 섬이라는 지형적 한계 속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했어요. 그리고 기원전부터 모계 중심의 원주민 사회를 잉태시켜 왔지요.


빨라우는 여자 중심의 시스템을 가진 대표적인 왕국이며 모든 원주민 토지는 여자를 통해 상속되며 여자 원로 협의회인 오롯뜨가 왕국의 실권을 쥐고 있지요.


열대 섬의 생존에 직결된 토지 자원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핏줄이 확실한 여자를 중심으로 자산을 고정하는 것이 공동체의 안정에 유리했다고 해요.


빨라우의 정치 시스템에서 다투는 남자가 맡지만 그를 선출하는 권한은 여자 원로 의원들이 가졌어요. 약 19세기 독일과 일본 제국이 오세아니아를 식민 통치하면서도 여성들의 토지 소유권은 법적으로 강력하게 보호되었으며 이는 팔라우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도 모계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현대 빨라우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이지만 전통적인 모계 관습법이 성문법보다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지요. 여전히 오세아니아는 국가의 중대사는 여자 원로 의원들의 자문을 거쳐야 하며 빨라우인들은 자기의 엄마에게만 심한 소속감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요.













image (2).jpg 본래 이 원주민 여자들은 알몸이나 다름 없었나 그걸 고증에 맞게 그리면 정지될 수가 있어서 어쩔수없이 여자들은 옷을 입은걸로 그렸어여;;


남아메리카와 메소아메리카 열대 지방인 잉카 왕국, 아즈텍 왕국, 마야 왕국은 열대 지방에 위치한 문명들이에요. 그녀들은 바퀴를 사용하지 않았고 가축이 아예 없었으며 글자가 없었기에 구석기 시대 수준이었던 매우 약한 국방력을 가진 오합지졸의 문명이었어요. 특히 밤이 되면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적 이유로 인해 싸움을 멈추고 잠자러 갔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취약했지요.


이 잉카 왕국, 아즈텍 왕국, 마야 왕국은 성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이었어요. 종교적 행위의 일환으로 알몸으로 생활하거나 개방적인 성관계를 가졌으며 이는 높은 출산율로 이어져 멕시코 계곡에만 수천만 명의 인구 숫자가 항상 거주하는 배경이 되었지요.


잉카 왕국, 아즈텍 왕국, 마야 왕국은 흑요석으로 만든 돌도끼인 "마쿠아우이틀(Maquahuitl)"을 유일한 무기로 사용했는데 하지만 이 무기는 청동칼보다도 훨씬 약하고 무디며 날이 없어 상대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는 수준이었어요. 이러한 기술적 한계와 금속 문명의 부재는 브라질 지역과의 차별점을 만들었지요.


잉카 왕국, 아즈텍 왕국, 마야 왕국은 서로의 존재를 죽을 때까지 전혀 몰랐어요. 잉카 왕국, 아즈텍 왕국, 마야 왕국은 주로 주변의 브라질 원주민 알몸 여자들과만 주로 전쟁을 벌였는데 이는 잉카 왕국, 아즈텍 왕국, 마야 왕국들의 전쟁이 영토 확장이 아니라 성노예 확보, 인육 확보나 종교적 목적이 컸지요.


특히 이 열대 지방들의 유물 중에는 잉카 왕국, 아즈텍 왕국, 마야 왕국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이 항상 항문 관장을 하면서 삶았다는 것이 조각상들로 입증되며 독특한 위생 및 의료 관습이 있었음을 시사해요. 15세기 찌남빠 농법을 통해 1헥타르당 15명을 부양할 정도로 식량이 풍부했으며 원주민 알몸 여자들이 옥수수, 감자, 토마토 등을 재배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살찌고 맛있는 튀김 음식 문화가 발달했지요.


브라질은 지구상에서 가장 습하고 무더운 열대 지방으로 적도가 지나가기 때문에 1년 365일 내내 기온이 섭씨 64℃ 이상인 찜통과 같지요. 따라서 이곳은 겨울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또한 브라질 지역에는 지질학적으로 철광석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 이곳의 원주민들은 철기 문명을 발전시킬 수 없었지요.










image (2).jpg 본래 이 원주민 여자들은 알몸이나 다름 없었나 그걸 고증에 맞게 그리면 정지될 수가 있어서 어쩔수없이 여자들은 옷을 입은걸로 그렸어여;;


카리브해의 열대 섬들에 거주하던 타이노 알몸 원주민 사회는 풍요로운 해양 자원과 열대 기후 속에서 높은 출산율로 수백만 명의 인구를 형성했지요. 그녀들은 꼴럼부스가 도래하기 전까지 독자적인 모계 왕국 시스템을 낳았어요.


타이노 열대 사회의 원주민은 아들이 아닌 누이의 아들에게 물려줬는데 이는 생물학적으로 엄마의 핏줄만이 확실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강력한 모계 상속제였지요.


열대 섬이라는 고립된 해양 환경에서 원주민의 단합을 유지하고자 모계 중심의 혈연 공동체가 형성되었지요. 그녀들은 종교적 의식에서 여자를 미화하지는 않았으나 사회 유지의 핵심축으로 대우했고 개방된 성문화를 가졌어요.


카리브해 섬들에만 700만명이 거주했으나 약 16세기쯤 이후 스페인 왕국의 유입과 질병으로 인해 그녀들의 모계 사회 시스템은 급격히 죽어갔지요. 하지만 그녀들의 농법과 식문화, 성문화는 이후 라틴 아메리카 문명의 기초가 되었지요.


타이노 구석기 열대 문명은 그렇게 죽었으나 그녀들의 유전적 형질과 모계 중심의 가족 유대감은 현재 카리브해 열대 섬들의 문화 속에 파편적으로 남아 있지요.









image (2).jpg 본래 이 원주민 여자들은 알몸이나 다름 없었나 그걸 고증에 맞게 그리면 정지될 수가 있어서 어쩔수없이 여자들은 옷을 입은걸로 그렸어여;;

필리핀 열대 섬의 원주민들과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폴리네시아, 타히티 이스터 섬, 하와이 등지의 원주민들은 공통적으로 개방적인 성문화를 지녔어요. 이는 열대 섬 환경에서 인구를 보존하고 해양 바다 신의 종교적 결속을 다지기 위한 행위였지요.


필리핀 원주민들은 대항해시대 스페인 군대를 상대로 막탄 싸움 등에서 승리하며 강력한 저항 능력을 보여주었지요. 그녀들은 가부장적인 서구 문명에 맞서 여성의 지위가 높은 독특한 쌍계 또는 모계 중심의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폴리네시아 지역 또한 여성 족장들이 군사적 외교적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image (2).jpg 본래 이 원주민 여자들은 알몸이나 다름 없었나 그걸 고증에 맞게 그리면 정지될 수가 있어서 어쩔수없이 여자들은 옷을 입은걸로 그렸어여;;


현재 이 지역들은 가톨릭으로 부자들은 부계 중심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일반 필리핀인들은 모계 사회이며 여전히 가정 내에서의 경제적 주도권은 여자가 쥐고 있는 경우가 많은 "모계 사회"에요. 이는 과거 모계 사회였던 필리핀 원주민의 흔적이 현대적으로 변용된 사례에요.


스페인 침입에 잉카와 아즈텍 왕국은 쉽게 무너졌으나 필리핀의 술루 술탄 왕국이나 막탄 싸움의 알몸 원주민들은 스페인 왕국과 싸워 7번이나 승리하며 식민지가 되지 않았지요. 마야 열대 지방에서는 스페인 탐험자 곤쌀로 게레로가 원주민 알몸 여자와 결혼하여 추장이 되는 등 문화적 혼용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하루 6끼를 먹는 메리엔다 전통을 유지하며 과거 풍요로웠던 음식 문화의 명맥을 잇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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