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바지는 약 3000년에서 33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양하이 묘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바지는 울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가랑이 부분이 넓게 디자인되어 활동성을 극대화한 형태였습니다.
바지가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말 타기 즉 기마 문화의 발달입니다. 울리케 베크(Ulrike Beck)와 바그너(Mayke Wagner) 등 독일 고고학 연구팀이 2014년 콰터너리 인터내셔널(Quaternary International) 저널에 발표한 논문인 "몽골 밑의 중국 양하이 묘지에서 발견된 서기 전 1000년기 초의 의복"에 따르면 바지는 말을 탈 때 다리 피부를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며 보행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말을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며 전쟁을 치러야 했던 몽골족을 포함한 북방 유목민들에게 치마는 매우 비효율적인 의상이었습니다. 말을 탈 때 마찰로부터 허벅지를 보호하고 말의 등 위에 안정적으로 앉기 위해 다리 각각을 감싸는 바지는 생존을 위한 발명품이었습니다.
이러한 바지 문화는 기원전 몽골족 유목민에 의해 발명되어 이후, 고대 흉노 제국과 돌궐 제국을 거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중앙아시아 몽골족 유목민의 기동력만큼이나 효율적인 의복 체계인 바지는 정복지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남녀노소가 입는 바지의 원형은 사실상 이들 북방 유목민의 기마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사를 보면 인류사에서 최초로 바지를 발명한 중앙아시아 몽골족에 의해 추운 북반구들은 빠르게 바지를 도입했는데(고대 중국의 호복기사, 로마는 북유럽을 통해서), 무더운 남반구는 남자들이 끝까지 치마를 입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왜 추운 북반구는 남성들이 바지를 고수했는데, 왜 무더운 남반구는 치마를 입었는지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대 지중해 문명권인 본래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남자들이 바지를 입지 않았습니다. 대신 "튜니카(Tunica)"라고 불리는 통자로 된 치마 형태를 입고 그 위에 토가(Toga)를 걸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마리아 주세피나 무차렐리(Maria Giuseppina Muzzarelli)의 저서 "패션의 역사(A Brief History of Fashion, 2014)"에 따르면 지중해 연안의 온화한 기후는 굳이 다리를 꽉 죄는 바지를 입을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통풍이 잘 되는 튜니카는 더운 날씨에 체온 조절에 유리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적 선입견이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바지는 스키타이인들이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바지를 입는 것은 호전적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로마 군대조차 초기에는 바지를 기피하다가 추운 북유럽을 만나면서 결국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북유럽의 경우도 역시 몽골과 튀르크족의 영향으로 바지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이러한 의복 전통은 서구 유럽의 예복 문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비록 나중에는 바지가 주류가 되었지만 학위복이나 사제복 등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의복이 여전히 원피스 형태를 띠는 것은 이러한 고대 전통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중국의 경우는 로마나 그리스보다 훨씬 빠르게 바지를 도입했습니다. 기원전 중국의 경우 조나라의 무령왕이 "호복기사"라는 정책을 통해 중앙아시아 북방(몽골과 튀르크) 민족의 군인 복식인 바지를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받아들인 사례가 유명합니다. 당시 기원전 중국의 전통적인 예법으로는 바지가 호전적인 몽골과 튀르크의 의복으로 취급받았으나 실전에서의 효율성을 확인한 이후 군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었습니다.
이렇듯 고대 세계의 추운 북반구 국가들은 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의 영향을 받아 빠르게 바지를 도입하여 고대 시대부터 일찍이 남성들은 바지를 입는 것이 주류로 정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무더운 남반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의 남자들은 마슈틀라틀(Maxtlatl)이라 불리는 허리 가리개를 주로 착용했습니다. 이는 긴 천을 허리에 두르고 가랑이 사이로 빼서 앞뒤로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현대의 T팬티와 똑같아요.
마이클 코(Michael D. Coe)의 "마야(The Maya, 2011)"에 보면 메소 아메리카 지역은 열대 지대였기에 최소한의 의복으로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고 해요. 열대 과일로 만든 이 사타구니 가리개는 화려한 자수와 깃털 장식이 달린 마슈틀라틀을 입기도 했으며 평민들은 단순한 형태를 입었다고 해요. 원주민 남녀가 신발이나 상의나 하의 없이 이 허리 가리개만 입거나 T팬티만 입거나 알몸으로 생활하는 것은 잉카인, 아즈텍인들에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스페인 진출 이후 가톨릭 도덕이 오면서 이러한 잉카, 아즈텍 옷(?)은 탄압받거나 서구식 옷으로 바뀌었지요.
물론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무더운 기후이긴 하지만 국가에 따라 다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중국 문화권인 베트남은 비록 무더운 기후이긴 하지만 일찍이 고대 중국의 식민지로 1000년간을 살았기에 고대 시대부터 남성들이 바지를 입는 것이 문화로 정착됐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인도의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태국이나 라오스 등도 남성이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남성들이 바지는 커녕 치마나 알몸, 혹은 팬티 차림으로 다닌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필리핀"입니다. 필리핀은 인도나 중국의 영향을 받지 못했기에 동남아시아에서도 가장 원주민의 문화가 길게 내려져 오면서도 스페인+미국의 문화가 짬뽕된 곳입니다.
필리핀의 원주민들은 바지보다는 "바하그(Bahag)"라고 불리는 팬티 형태의 옷을 입거나 상체를 드러내는 생활을 했습니다.
윌리엄 헨리 스코트(William Henry Scott)의 1994년 책인 "바랑 가이 16세기 필리핀 문화와 사회(Barangay: Sixteenth-Century Philippine Culture and Society)"를 보면 고온 다습한 열대 기후가 의복의 형태를 결정했음을 알 수 있지요. 습하고 무더운 높은 열대 지역에서 가죽이나 두꺼운 천으로 된 바지를 입는 것은 피부병을 유발하기 쉽고 땀 배출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통기성이 좋은 얇은 것으로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처럼 필리핀 원주민들도 사타구니만 가리거나 물속에 들어가기 편한 가리개 형태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필리핀의 바하그는 정글을에서 생활하거나 물 저항을 최소화하고자 만들어진 것이에요.
스페인, 미국만의 영향을 받은 필리핀 원주민들은 남녀가 대부분 알몸이었어요.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열대 섬주민들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캐리브해 열대 섬주민 남녀들은 나무껍질을 두드려 만든 타파(Tapa) 천으로 사타구니만 가리거나 거의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생활했어요.
패트릭 키르히(Patrick V. Kirch)의 "태평양 연안의 역사(On the Road of the Winds: An Archaeological History of the Pacific Islands, 2000)"에서는 폴리네시아의 열대 섬의 원주민 남녀들은 대항해시대의 스페인인,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들처럼 바다 중심의 생활 양식을 보이고 있어요.
바다에서 생활하고 수영하는 것이 일상인 이들에게 젖으면 무거워지고 마르기 힘든 "옷"이라는 개념은 거추장스런 짐에 불과했습니다. 또 열대 섬 특유의 고립된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섬유 자원이 없었기에 실을 뽑아 천을 짜는 기술 자체가 없었기에, 나무껍질을 펴서 만드는 방식만이 있었지요. 이는 신체 노출(알몸)에 대한 수치심이라는 개념이 잉카 문명처럼 전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북쪽이 바지를 입고 남쪽이 치마나 가리개를 입은 것은 단순히 우연이나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철저한 환경 적응의 결과입니다.
북반구의 추운 기후와 유목 기마 문화는 보온과 활동성이 결합된 바지를 탄생시켰습니다. 반대로 남쪽의 덥고 습한 기후와 농경 혹은 해양 문화는 통풍과 배수가 원활한 치마나 최소한의 가리개 형태를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