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망상 토르데시야스 조약

당시 세계 패권국은 명나라였음에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왜 뇌내망상을 했나

by 바다의 지정학


세계사를 공부하다보면 각 시대별로 세계 패권국들의 존재를 알 수 있는데,

고대시대때는 실크로드로 세계 무역로를 건설했던 고대 중국 한나라, 몽골-튀르크계와 이란계의 연합형 세계제국 흉노제국, 유연제국, 돌궐제국(튀르크제국), 서양의 원조인 로마가 세계패권제국이었고, 중세시대때는 세계 1위의 군사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대몽골제국이 세계패권제국이었으며, 15세기때부터는 군사력으로는 명나라와 티무르제국(몽골제국의 계승제국)이 세계최강국이었고, 경제력으로는 최전성기 시절 무굴제국(티무르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부르가 건국한 대제국. 무굴은 페르시아어로 "몽골"이란 뜻)이 세계 1위였고 오스만 튀르크가 2위였다.





그럼 대항해시대 이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몇 위였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학계들마다 논쟁거리이지만, 대체적으로 세계 사학계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최전성기때에도 아무리 높아도 3~4위, 혹은 4~5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제력으로서도 당시 인구가 가장 많았던 무굴제국이 세계 1위였으며(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인구가 고대때부터 가장 많았을 것으로 착각하지만 의외로 고대시대때부터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세계 1위의 인구대국은 인도였으며 중국의 인구가 인도를 추월한 것은 불과 19세기때부터였다.)






인도의 인구는 18세기인 1710년 기준으로 약 168,897,225명으로 세계 1위였고, 중국의 인구는 105,058,289명으로 세계 2위였기에 18세기때까지만 하더라도 1위와 2위간의 격차는 엄청나게 컸다.





군사력으로서도 1521년 ~ 1522년에 명나라 해군 함대들과 포르투갈을 포함한 유럽 연합의 해군함대들이 격돌한 시사오완 해전과 툰멘 해전에서 명나라 해군 함대들이 포르투갈 및 유럽 연합 해군함대들을 모두 격침시켜서 대승리를 거둘정도로 중국 명나라의 군사력은 당시 세계 1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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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중국은 고대시대때부터 세계 최초로 화약을 발명한 제국인데다가, 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화약을 전쟁무기화 시켜서 대포를 개발한 제국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명나라의 대포는 어마무시하게 막강한 위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명나라를 정복한 대청제국이 명나라의 마지막 군벌세력인 남명까지 정복하면서 남명의 패잔병 군인들을 이끌던 정성공 장군이 대만에 임시망명정부를 수립할 목적으로 대만을 침략하면서 대만에 먼저 와있던 네덜란드군들을 가볍게 학살하기도 했었던 것을 보면 명나라의 군사력은 유럽의 군사력보다 훨씬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최전성기때에도 고대때부터 전통적인 최강대국이었던 중국 명나라나 몽골제국의 후예인 티무르제국, 무굴제국, 흉노제국의 후예라고 볼 수 있는 돌궐계열의 오스만 튀르크가 훨씬 더 군사력과 경제력이 막강했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인 최강대국들이 본격적으로 몰락하는 시기는 19세기때부터로 이 시기는 근대 산업혁명과 그 대영제국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기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토르데시야스 조약""현실성이 없는 엉터리 망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그렇담 과연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란 무엇인가?





15세기때까지는 전 세계에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조그만 변방국이자 약소국에 지나지 않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막강한 오스만 투르크가 육지를 막으면서 인도와의 직접 교역을 하기 힘들어졌고, 여기서 스페인은 이렇게 고립되서 굶어 죽을 바엔 바닷길을 통해서 인도와 교역을 하자는 취지에서 배를 물에 띄워서 인도로 갔는데 그 당시 엉성한 스페인의 항해술로는 인도까지 갈만한 기술력이 없었고, 그렇게 실수로 간 곳이 무려 구석기 ~ 신석기 시대에 멈춰있던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이 자리 잡고 있던 "신대륙"이었라는 것은 대항해시대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 신대륙이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같은 땅이었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황금이 굴러다니는 땅이었는데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은 황금이 너무 많아서 보물로 취급도 하지 않았고, 마야인들은 황금 대신에"카카오 콩"을 더욱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콜럼버스에 의해서 신대륙이 발견된 이후부터 여러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갔는데 그 중 에르난 꼬르떼스는 아즈텍을 먹게 되고, 돼지를 키우는 가난한 농민 출신의 프란시스꼬 피사로는 잉카를 먹게 된다. 신기한 점은 에르난 꼬르데스와 프란시스꼬 피사로는 7촌 친척 사이였다. 꼬르떼스의 외할머니가 피사로 집안이었고, 피사로의 증조부인 페르난도(혹은 에르난도) 알론소 데이노호사가 꼬르떼스의 외고조부였는데 이는 당시 유럽이 워낙 근친상간, 근친결혼이 많았다보니 엄마가 아들하고 결혼하거나 딸이 아빠하고 결혼하거나 남매끼리 결혼하는 일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사로보다 먼저 아즈텍을 먹었던 에르난 꼬르떼스의 조언을 받아서 프란시스꼬 피사로는 잉카를 먹게 되는데 에르난 꼬르떼스의 조언은 바로 잉카의 왕을 납치하라는 것이다.





당시 잉카인들의 종교에서 신의 모습은 매우 거대한 거인이며 수염이 길고 머리털이 짧은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딱 키와 덩치가 매우 거대한 거인이며 수염도 덮수룩하고 머리털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완전히 스페인 사람들이 신이라고 착각한 잉카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을 신으로 모셨다.





게다가 잉카, 아즈텍, 마야는 구 ~ 신석기 시대에 멈춰있던 문명이다보니 "배"라는 것도 없었기에 배를 타고 오는 스페인 사람들을 보면서 잉카인들 입장에서는"산이 떠다닌다"고 생각했으며,"그 산에 신들(스페인 사람들)이 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더 스페인 사람들에게 절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페인 사람들은 곧 잉카의 왕 "아따왈빠(Atahualpa, 아타우알파)"를 납치하고는 아따왈빠를 살리고 싶으면 거대한 방에 가득 찰 만큼의 많은 금들을 바치라고 했고 잉카인들은 할 수 없이 엄청나게 많은 금들을 바쳐야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금들이 거대한 방에 순식간에 찼다고 한다.





이 모습에 경악한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의 왕 아따왈빠를 금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금을 요구했고 가난한 농민들이었던 피사로 일당들은 순식간에 떼부자가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곧 스페인 병사들은 겁을 내기 시작하는데 만약 아따왈빠가 마음을 바꿔서 잉카 사람들에게 스페인 병사들을 공격하라고 얘기하면 자기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에 아따왈빠에게 우상숭배의 죄목을 씌워서 없애버린다.





아따왈빠가 사라지면서 스페인은 잉카를 완전히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식민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다가 "만코 잉카 유판키(Manco Inca Yupanqui)"라는 새로운 잉카 왕이 즉위했다. 아따왈빠 이후부터 잉카 왕들은 사실상 허수아비 왕인 셈이다.





이 만코 잉카 유판키도 처음에는 피사로의 얘기에 순순히 따랐지만 스페인 병사들은 물욕을 채우니 이제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쿠스코에서 이쁜 여자라면 공주, 귀족 여성(귀부인), 심지어 여사제인 아클라(Aclla) 등등 가릴 것 없이 납치하고 강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클라(Aclla)는 고대 이집트의 여신관과는 달리 성전을 방문하는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왜냐면 당시 잉카, 아즈텍, 마야는 오스만제국, 남아프리카, 이집트, 필리핀과 함께 세계에서도 성 산업이 가장 발달된 곳이었기에 매춘부(창녀)들이 가장 많았고, 창녀촌 같은 성매매, 유흥업소가 가장 많고 발달된 지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때 방문했던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 아즈텍, 마야에서 행해지는 성 산업에 대해 기록을 남겼는데 당시 "잉카, 마야, 아즈텍에서는 성매매를 즐기기 위해서는 카카오 콩 8알이 필요했으며, 여자 성노예 1명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콩 100알이 필요하다." 라는 기록까지 할 정도였으니 얘기가 끝난 셈이다.





그렇기에 굳이 성욕을 해소할 공간이 많은데 "아클라(Aclla)"라는 여신관이 성욕을 해소할 일은 하지 않앗던 것이다. 게다가 총 10명 정도의 아클라는 선택받은 여자, 태양의 처녀, 잉카의 아내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이쁜 외모를 하고 있으며 잉카의 왕비보다도 훨씬 고귀하고 성스로운 존재로 여겨졌기에 가끔 오스만제국과 함께 일부다처제가 기본 시스템이던 잉카에서 이런 아클라(Aclla)는 잉카 왕이나 귀족들이 서로 자기의 부인이나 첩으로 들이기 위해서 노력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21세기로 치면 여자 배우, 아이돌 걸그룹같은 셈인 것이다.





하지만 무식하고 야만인인 스페인 병사들은 아클라건 뭐건 간에 이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잉카 여자들이라면 모두 납치해서 강간하고 임신하고를 반복하면서 당시 잉카에서는 잉카 여자들과 스페인 병사들의 헐떡이는 신음소리들이 끊길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성욕이 폭발한 스페인 병사들은 이제는 잉카 왕실의 여자들을 강간하기까지 하는데 특히 잉카 여자들을 강간하는데 가장 앞장섰던 프란시스꼬 피사로의 동생인 곤살로 피사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이쁜 외모에 몸매가 매혹적이던 잉카의 왕비인"큐라 오클로(Cura Ocllo)"를 최종 먹잇감으로 삼았다.



만코 잉카의 아들인 "티투 쿠시"의 얘기에 따르면, 잉카는 스페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곤살로 피사로는 대놓고 잉카 왕인 "만코 잉카 유판키(Manco Inca Yupanqui)"에게 너의 "아내(왕비 큐라 오클로 Cura Ocllo)"하고 성행위를 하고 싶으니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잉카의 왕은 이 요구에 거절할 수가 없었고 오스만제국의 술탄처럼 하렘에서 많은 후궁들과 첩들을 거느리고 있던 만코 잉카는 자기가 거느린 첩들 가운데 가장 이쁘고 큐라 오클로하고 닮은 첩에게 여왕의 옷을 입힌 뒤 곤살로 피사로에게 바쳤는데,





결국 발각되면서 만코 잉카의 여동생이자 그의 부인인 큐라 오클로(잉카 왕실도 중세 유럽처럼 근친결혼을 했던 것으로 추정)는 곤살로 피사로에게 끌려가서 무려 며칠이 넘도록 밤낮 강간을 당했으며, 이 스페인인들의 잉카 왕비 강간 사건은 그동안 순순히 스페인을 따랐던 만코 잉카가 마침내 스페인에 등을 돌리기로 결심하는 데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결국 아내들과 딸들이 스페인인들에게 강간당해서 임신하게된 수많은 잉카의 귀족들은 잉카 왕에게 빨리 아내들과 딸들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조언했고 잉카 왕은 아내들과 딸들을 데리고 스페인인들에게서 탈출했다.





아내들과 딸들이 스페인인들의 성노예로 전락하면서 열이 오른 잉카인들은 만코 잉카를 따라서 스페인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결과는 만코 잉카측이 우세할때도 있었지만 스페인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렇다면 어째서 잉카인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스페인에게 패배했는가?





가장 결정적 이유는 역시 잉카, 아즈텍, 마야는 구석기 ~ 신석기 문명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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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vMon1-XA5no











이 사진은 당시 잉카 병사들이 사용한 무기들 가운데서도 그나마 가장 신분이 높은 장군들이나 쓰던 무기였고, 일반 잉카 병사들은 "돌멩이"를 들고 싸웠다.





이 무기가 잉카에서 그나마 가장 좋은 무기인데, 이 무기를 무려 16세기때까지도 쓴 것이 잉카, 아즈텍, 마야였다.





이런 무기는 유라시아 대륙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신석기 시대때나 쓰던 무기였다. 한민족의 경우도 신석기 시대때나 일반 군인들이 저런 무기를 사용했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기원전의 고조선조차도 건국 초기때부터 청동검을 전쟁무기로 사용했으며 고대 중국 한나라의 정복자 위만이 고조선을 정복한 이후 성립된 "위만조선"때부터는 고조선은 순식간에 철제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한다(일부 사학계에서는 위만조선 이전부터 고대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고조선이 철제무기를 생산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즉, 16세기의 잉카, 아즈텍, 마야에서 왕이나 장군들이 쓰던 가장 좋은 무기(돌검)가 그보다 훨씬 더 앞선 몇 천년 전에 건국된 기원전의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전쟁무기(청동검)보다도 훨씬 발전이 안된 것이다. 그러니 기원전의 고조선이 16세기의 잉카, 아즈텍, 마야를 침략했어도 잉카, 아즈텍, 마야를 고조선의 식민지로 만드는게 가능할 정도였다. 이러니 같은 동시대 16세기의 국가인 스페인이 잉카, 아즈텍, 마야를 침범했으니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게임이 안되는 것이다.





스페인인들은 총과 활로 공격해오는데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이 가지고 있는 건 고작"돌멩이"였다. 게다가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병사들처럼 싸웠는데 활이 없고 돌멩이나 나무방망이로 싸운 것이다. 즉, 활이 없고 돌멩이나 흑요석이라는 돌멩이를 박아넣은 나무방망이인"마쿠아후이틀"이라는 구석기 ~ 신석기시대적인 무기로만 싸우니 원거리무기가 없었고 그렇기에 원거리무기로 무장한 스페인인들에게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둘째 이유로는 인신공양이다. 지금이야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가축들이 많지만, 당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인 신대륙은 구대륙과 단절되있었기에 소, 말, 닭, 돼지, 양, 염소 등 같은 가축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있는 가축이래봤자 알파카와 라마인데 이 알파카와 라마는 타고 다니는 것도 불가능한데다가 맛도 심히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은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잡아온 노예들을 인신공양을 하고 인육을 먹은 경우가 많았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단백질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16세기때까지 오래토록 식인을 하다보니 잉카나 아즈텍, 마야인들은 신체적으로 몸이 약해질대로 약해졌고, 게다가 세계에서도 가장 더운 남반구의 열대 지방에 속해있던 잉카, 아즈텍, 마야는 이런 먹고 남은 인간의 시체를 옥수수밭에 그냥 버려두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뜩이나 더욱 열대 지방에 인간의 시체들이 나뒹굴면서 이것이 돌림병이 생기기 쉬운 환경을 조성했고, 나중에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에 들어오면서 천연두가 생기니 이 천연두가 돌림병이 생기기 쉬운 남아메리카 지역과 맞물려서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은 속절없이 떼죽음 당하게 된 것이다.






셋째 이유로는 농업 발달의 부재다. 잉카, 아즈텍, 마야를 비롯해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이 사실 세계에서도 가장 농사를 짓기 좋은 토양을 가진 축복받은 땅이다. 대부분 4모작은 기본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힘들게 농사지을 필요가 없어서 씨만 뿌리면 곡식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잉카, 아즈텍, 마야를 비롯해서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런 축복받은 땅이 오히려 저주가 된 케이스다.



사실 농업 발달은 인류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였고,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그리고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발전하게 해준 가장 대표적인 혁신이 바로"농업 발전"이다. 인류의 발전은 농업 발전이라고 봐도 된다.





농사를 짓고 농업을 발전하면서 발생한 잉여농작물들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여러 "직업군"들이 등장하면서 사회가 세분화되고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잉여농작물들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라는 직업이 등장했으며, 이런 "군인"을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형성되었고, 이 "국가"는 다른 "국가"의 잉여생산물들을 빼앗기 위해 "전쟁"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이다.





즉, 인류사에서 재산, 직업, 군인, 신분, 계급, 국가, 전쟁 등 모든 개념은'농업'이 발전했기에 비로소 등장하게 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이 "농업 발전"은 어떻게 해야 이뤄지는가?





쉽게 설명드리자면, 척박한 땅에서 보다 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여러 혁신적인 방법들을 강구해내고, 그렇게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 여러 기술을 발전시켜나가면서 기술력과 농업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국가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시대때부터 중동 지역과 동북아시아 지역, 유럽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이 된 것이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같은 온대~한대~냉대 기후의 국가이기 때문에 농사를 짓기 결코 좋은 땅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반도만 보더라도 토양이 척박하기 때문에 1모작도 안되는 0.5모작이나 다름없는 지형이기 때문에 항상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기술력들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 세종대왕때 엄청나게 과학기술력이 발전한 것도 사실은 이런 농업 기술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혼천의나 측우기, 앙부일구, 자격루같은 해시계 같은 당시 세계에서도 앞서갔던 최첨단적인 혁신적 과학기술들을 발명한 것이다. 조선시대때가 되면 한반도의 토양은 수명을 다해서 사실 붉은색의 토양을 띄게 되기 때문에 그런 죽은 토양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발전된 과학 기술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류사는 농업의 발전과 일치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잉카, 아즈텍, 마야는 너무나도 축복받은 토양을 가지고 있는 땅이기 때문에"농업 발전"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씨만 뿌리면 옥수수는 실컷 먹을 수가 있었기에 굳이 발전을 할 필요가 없던 것. 이는 오늘날 21세기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가지고 있는 베네수엘라나 품질좋은 고기가 많기로 유명한 아르헨티나나 농사가 잘되고 자원이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그렇게 많은 자원과 석유와 식품들이 있고 농사가 잘되는 데도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잇음에도 가난해진 이유가 너무 자원이 많다보니 거기에 의존해서 발전에 게을렀기에 결국 시대에 뒤쳐져서 지금까지도 후진국, 약소국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게다가 또 다른 이유로 더욱 남반구에 위치한 열대 지방이라는 점인데 특히나 브라질 지역은 대놓고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적도"가 지나갈 정도로 더운 지역들이 많다. 이렇게 덥운 남반구의 열대 지방이다보니까 장기간 오래 밖에서 일하기 힘들었고, 그때문에 남반구의 열대 지방인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은 거의 알몸으로 다녔던 것이다. 이는 같은 열대 지방인 필리핀도 마찬가지였고 열대 지방은 아니었지만 매우 더운 지방인 남아프리카도 마찬가지로 이런 더운 열대 지방이기 때문에 알몸으로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1년 365일 세계에서 가장 추운 냉대, 한대 기후인 몽골,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북부나 몽골, 시베리아보다는 훨씬 덜 춥지만, 그래도 세계적으로 추운 중국 중, 남부, 유럽, 동북아시아, 일본 등은 워낙 날씨가 추운 국가이다보니"의복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의복의 용도는 사실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유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산악 지형들이 많다. 세계에서 산악 지형이 있는 국가들은 많다. 유럽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슬로베니아까지 유럽 8개국 1,200km에 걸친 거대한 산맥인데 "알프스 산맥"이 있으며, 한국의 한반도도 "태백산맥"이 존재하며,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이어주는 "히말라야 산맥"과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을 중심으로 중국~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를 이어주는 "파미르 고원"과 인도의 "힌두쿠시 산맥"이 존재한다.





그런데 왜 라틴 아메리카의 거대한 산악 지형들만 국가 발전을 저해시켰다는 것인가?





앞서 설명한 알프스 산맥, 태백산맥,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 등등은 아무리 높아봤자 세모 형태의 산으로 인간이 물리적으로 등산하고 내려오는 건 가능한 산맥이다.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거대한 산맥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걸 "산"으로 불러야할지부터가 의문이다.





밑에 사진들이 바로 잉카, 아즈텍, 마야의 발전을 저해한 거대한 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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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에는 이런 식으로 구름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높고 경사가 아예 직각으로 되있는 이런 형태의 산들이 매우 많다. 게다가 남아메리카의 산들은 아예 산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매우 크다.





즉, 알프스 산맥, 태백산맥,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 등등에 위치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산들이래봤자 그래도 물리적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게 가능했지만, 신대륙에 존재하던 이런 산들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오고 가는게 불가능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의 개념이 아니라, 아예 "다른 세계"라고 봐도 될 정도의 이런 산들이 남아메리카에만 많다는 것. 이런 산은 21세기인 현재로서도 헬기를 타고 가지 않으면 내려가고 올라가는게 불가능에 가까워보인다. 그런데 과연"과거에 이런 산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산 밑에 있는 사람과 교류가 가능했을까?"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남아메리카는 이런 산 위에 있는 사람과 산 밑에 있는 사람간의 교류가 불가능하니 마치 그리스처럼 도시국가 형태로만 발전했고 진정한 의미의 "국가"로서 발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국가 발전를 저해하는 요소로서 작동한 것이다.






다섯째 이유로는 남아메리카 지역은 "세로"로 된 지형이라는 점이다.





이는 넷째 이유와 맞물리는데, "총, 균, 쇠"에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총, 균, 쇠에서는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을 비롯한 아시아(동양)과 유럽(서양)만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했고", "그 외 지역들인 잉카, 아즈텍, 마야가 속해있는 신대륙과 아프리카 지역은 발전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가로 지형""세로 지형"의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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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바로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설명한대로 세계 지도를 그려본 것이다.





세계지도에서 보듯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을 비롯한 아시아(동양), 유럽의 지형의 형태는 "가로"의 영토의 형태를 띄우고 있는 반면, 발전하지 못한 잉카, 아즈텍, 마야가 속해있는 신대륙과 아프리카 지역은 "세로"의 영토 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가로만 발전했고? 세로는 발전하지 못했는가?





그 해답이 바로 "실크로드"라는 점이다. 우리는 실크로드라는 것을 단순히 세계사 시간때 "고대 중국 한나라가 로마까지 진출하기 위해 설치한 세계 대무역로"라고만 배웠지만, 실크로드는 사실 세계적인 대무역로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





바로 당시 고대시대때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을 자랑한 고대 중국 한나라""로마"서로간의 "교역"을 했다는 점이다. 즉, 세계 최강국인 고대 중국 한나라와 로마가 교역을 하면서 서로 엄청나게 발전했음은 물론, 이 실크로드에 있던 수많은 국가들도 모두 고대 중국 한나라와 로마의 최첨단 문물들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해나간 것이다. 이른바 "실크로드의 혜택"인 셈이다.





하지만 일단 남아프리카는 실크로드에서 벗어나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실크로드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들도 당연히 세계에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아예 아무도 몰랐던 곳이기 때문에 실크로드의 혜택을 받는건 아예 불가능했다.





그리고 또한, 총, 균, 쇠에서는 어떻게 "고대시대때 중국과 로마는 동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동시에 이룩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그것은"가로" 형태였기에 가능했다. 라고 설명한다.





즉, 같은 고대 중국의 영토와 고대 로마의 영토는 가로로 길게 뻗어있는 형태로 같은 "위도"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온이 일정하게 추운 냉대~한대~온대 기후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중국이나 로마는 제국이 발전하면 할수록 제국 전역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인 잉카, 아즈텍, 마야를 보면 영토가 "세로"로 나있다. 이는 맨 윗쪽의 지역과 맨 아랫쪽의 지역의 기후가 완전히 다른 데다가 게다가 넷째 이유인 구름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높고 거대하며 경사가 직각인 산맥들이 많다는 점까지 겹치는 바람에 같은 국가안에 사는 사람들인데도 서로 간의 교류가 잘 안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잉카, 아즈텍, 마야나 아프리카는 골고루 국가 전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불균형하게 발전하면서 이것이 결국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 작용하면서, 게다가 농업 발전까지 이뤄지지 못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잉카, 아즈텍, 마야는 "구석기 ~ 신석기 시대"에 멈춰버린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는 아프리카, 잉카, 아즈텍, 마야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설명했지만 사실 이 당시의 아프리카라던가 동남아 국가들은 그래도 잉카, 아즈텍, 마야보다는 훨씬 군사력과 경제력, 문명이 발전해있었다. 잉카, 아즈텍, 마야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약소국인 것은 당연하고, 그 정도를 아예 초월해서 21세기로 치면 마치 아마존에 숨어 사는 석기인들마냥 석기시대인들이 살던 곳이었던 셈이다.






여섯째 이유로는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의 전쟁 방식인 꽃 전쟁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 것은 첫번째 이유랑 맞물려 있는데 잉카, 아즈텍, 마야의 무기는 무기라고 하기 얘기하면 안될 정도로 그냥 구석기인들이 쓰던 돌멩이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어처구니 없는 것이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의 전쟁 방식은 이른바 "꽃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을 행하는데 적군이라도 절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이 그만큼 착해서 그랬나? 그게 아니고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은 인육을 먹거나 인신공양을 하기 위해서 주로 인근 아마존 인디언들을 사냥했는데 그때 사람을 죽일 경우 인신공양으로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찌됐건 산 채로 생포해야했다. 잉카, 아즈텍, 마야의 인신공양은"산 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스페인과 싸울때도 발휘되었다. 가뜩이나 약해빠진 돌멩이를 들고 마치 고대 로마 병사들처럼 무식하게 싸우는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이 스페인 병사들을 죽이지 않고 생포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돌에 맞았어도 죽는 사람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곱째 이유로는 종교적 이유로 해가 지면 싸우지 않았다.





특히 잉카인들이 믿던 태양신들은 태양이 뜨는 낮에만 가호를 내려줬기 때문에 태양신의 가호가 사라진 밤에는 싸우면 안된다는 룰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싸웠어도 잉카인들은 해가 지면 바로 자러 갔다고 한다. 당연히 스페인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방금까지 자기들과 싸운 잉카 사람들이 갑자기 등을 돌려 자러가는데 그냥 곱게 보내줄까? 그렇기에 잉카인들은 밤에 잠잘때 스페인 사람들에게 죽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종교상의 이유로 제대로 반항을 안했다고 한다.





이유를 대라고 하면 더 댈 수야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잉카, 아즈텍, 마야가 패배한 것이다. 이쯤되면 스페인인들은 로또 복권을 맞은 셈이다. 무기도 돌멩이를 들고 싸우던 구석기시대인들인 잉카, 아즈텍, 마양니들이 살던 곳을 운좋게 만났는데 그 사람들이 금까지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 스페인으로서는 빈 땅에 그냥 무혈입성한 셈이다.





이렇듯 스페인이 구석기 ~ 신석기시대인들이 사는 잉카, 아즈텍, 마야를 먹자 옆동네 포르투갈은 자기도 따라서 신대륙으로 갔는데 이미 신대륙은 거의 다 스페인이 다 먹은 후였다.





포르투갈은 열불이 나서 브라질을 먹었지만 그로서도 성이 차지 않은 것이다.(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브라질만이 오늘날까지 포르투갈어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맺은 조약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주제로 얘기할"토르데시야스 조약"이다.





이 조약은 선을 그어서 서쪽인 잉카, 아즈텍, 마야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들은 너희 스페인인들이 다 먹게 해주겠으니, 동쪽인 내가 다 먹겠다고 조약을 맺은 것.





그런데 이 조약을 맺은 게 얼마나 현실성 없는 일인지 알 수 있는 것이 당시 서유럽인들은 세계에 어떤 국가들이 존재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처음에 신대륙에 있는 원주민들을"인도인(인디언)"이라고 생각한 것은 물론, 유럽을 직접적으로 괴롭힌 돌궐계열의 오스만 투르크 말고는 이민족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오스만 투르크나 중동이 오랫동안 서유럽을 고립시킨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고대, 중세시대때의 세계 역사를 배우면 거의 몽골, 중국, 튀르크(돌궐), 중동, 로마가 세계 무대에서 뛰어다닌 것만 배웠지 막상 유럽인들은 이슬람교와 십자군 전쟁으로 치고 박고 싸운 것 외에는 세계 무대에 서지 못했던 것도 그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쪽에 어떤 국가들이 있는지 몰랐던 폐쇄적인 서유럽이나 유럽 국가들은 스페인이 이 조약으로 자기가 신대륙을 독점했다고 좋아했고, 포르투갈로서는 전 세계에 이런 잉카, 아즈텍, 마야 같은 미개했던 구석기 ~ 신석기 수준의 문명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탐험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운좋게도 포르투갈이 먼저 만난 곳은 아프리카 같은 곳이었고 잉카, 아즈텍, 마야보다는 훨씬 발전했지만 낙후된 지역이긴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만난 지역이 바로 동남아시아 지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잉카, 아즈텍, 마야의 경우 워낙 원시적인 구석기 ~ 신석기 수준의 미개인들이 살던 곳이었던 반면 아프리카는 그래도 잉카, 아즈텍, 마야보다 훨씬 강했고, 동남아시아는 그런 아프리카보다도 훨씬 더 강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미 동남아시아는 이슬람교 세력들이 많이 진출해서 이슬람 국가로서 발전해있었고 당시 이슬람의 맹주인 오스만제국 같은 다른 이슬람 국가들하고도 긴밀히 연계가 되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이 여기를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탐험하다가 죽은 포르투갈인들도 엄청나게 많았고, 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포르투갈이 패배한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이 크게 흥하지 못했던 결정적 계기가 된다.





스페인은 거의 피 흘리지 않고 무혈입성 하듯이 잉카, 아즈텍, 마야를 먹어서 빨대를 꽂아서 쪽쪽 빨아마시면서 경제를 성장시킬 동안, 포르투갈이 걸린 동쪽은 하필 잉카, 아즈텍, 마야보다는 훨씬 강한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포르투갈로서도 출혈이 꽤 심하면서 쉽사리 먹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바보였던 것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보면 동쪽의 영토들은 모두 포르투갈이 먹겠다고 했는데 이 동쪽에 있는 국가들이 무려 영국, 프랑스, 오스만제국까지도 포함돼있다는 점이다. 즉,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르면 스페인은 신대륙을 완전히 독점하고 포르투갈은 영국, 프랑스, 오스만제국을 먹어야했는데 오스만제국은 아시다시피 신생국가인 스페인, 포르투갈보다도 강했던 전통적인 강호였다.





그래서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어차피 포르투갈이 동쪽으로 진출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던 스페인은 서쪽인 신대륙을 자기 혼자 독점하기 위해서 이런 꼼수를 쓴 게 아닐까 하는게 정설로 거의 확실시 된 상황이다.





그렇기에 결국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먹고, 동남아시아 일부를 먹는데 그쳐야했고 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망상인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스페인만 신대륙을 독점하면서 이득 보고, 결국 오스만제국, 동남아 등이 있는 동쪽 세력에게 밀린 포르투갈은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지배하면서 포르투갈은 긴 암흑기에 빠지게 되고, 스페인 역시도 7번 넘게 파산하면서 경제가 완전히 망하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잠깐 흥했다가 순식간에 망한 나라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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