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영토 50% 이상은 싸우지 않고 얻은 땅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긴다를 유일하게 실천한 "대영제국"

by 바다의 지정학



g.jpg 근대시대 19세기 영국인들이 남반구의 뉴질랜드 원주민들에게 사기를 쳐서 와이탕기 조약에 서명하게 하고 뉴질랜드를 먹는 장면을 그린 그림


이 손자병법의 손무가 썼던 명언인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을 과연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잘 행했을까요?


아닙니다. 중국사의 수많은 황제들.. 대표적으로 한무제, 당태종, 당현종, 송무제, 송태조, 명태조 주원장 같은 역대 한족 황제들은 모두 다 전쟁을 통해 이기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는 승리한 황제들도 많았고, 패배한 황제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는 방식을 가장 현실적으로 잘 지켰던 나라가 있으니 바로 근대시대의 "대영제국(영국)"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전체 영토들 가운데 50% 이상이 싸우지 않고 먹었던 영토였습니다. 영국이 영토를 먹는 방식은 대부분이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무인도를 몰래 먹거나 대부분은 비겁한 술수나 사기, 조약을 통해 먹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이 뉴질랜드 원주민들에게 사기를 쳐서 뉴질랜드 섬을 차지했던 "1840년 2월 6일의 와이탕이 조약"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조공국, 속국이 된 지역은 꼭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깔끔하게 전쟁을 통해 먹은게 아니라 비겁한 술수와 사기를 쳐서 먹었기 때문에 영국이 물러나도 그 지역에서 계속해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유행어 가운데 "근현대시대에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면 영국을 찍으면 맞다"는 게 괜히 나온게 아니지요.



정확한 수치를 백분율로 계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대영제국의 전체 영토의 상당 부분, 대략 50% 이상이 직접적인 싸움(전쟁)보다는 사기, 비겁한 술수, 조약, 협박, 기만 등 "싸우지 않고 이기는 비겁한 술수"에 가까운 방식으로 획득되었습니다.


특히 대영제국이 잘 하던 짓이 어떤 특정 국가 둘이 싸우면 몰래 그 국가 둘에게 접촉해서 자기들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속인 후 거짓 조약을 맺게해서 그 땅을 싸우지 않고 뺏는 짓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대영제국은 비전투적으로 영토 획득하는 게 많았습니다.





a) 근대시대 19세기 영국인들과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와이탕이 조약 체결의 뿌리


근대시대인 19세기인 약 1840년쯤에 뉴질랜드에는 이미 많은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출산율이 높아서 인구수가 많았고 영국인 매춘부(창녀), 노숙자, 음식점 사장님, 선교사, 장사치 등의 영국인들이 근처의 호주 원주민이나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인들과 몸을 비비며 살았지만 이들을 다스릴 정식 법이나 정부가 없어서 영국인들이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고 성적 착취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리하여 윌리엄 홉쓴(Lt-Gov William Hobson)이 와이탕이에 와서 종이를 펼쳐 마오리인 원주민들에게 이런 영국인들이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끊임없이 강간, 성적 착취, 무질서, 무단 정착 등의 성범죄 사건들을 싸인만 하면 해결해준다고 했고 뉴질랜드 섬의 여러 지방에서 서명이 진행되었어요. 서명은 약 500명쯤에 가까운 마오리 원주민(대부분은 마오리어 버전)에 의해 이루어졌어요. 하지만 결국 그건 거짓말, 사기였고


실제로는 영국의 속마음은 자기 나라의 경제적 이익과 영국인의 정착 촉진, 그리고 원래 살던 영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어요. 서명이 완전히 끝나기 전이던 약 1840년 5월 21일쯤에 홉슨(Lt-Gov William Hobson)은 조약을 근거로 와이탕이 섬에 대해 남섬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그 결과 종이 1장으로 "영국은 뉴질랜드 섬을 먹었"습니다. 결국 뉴질랜드 원주민들은 속았던 것이에요.


영국 정부는 러시아, 프랑스와 같은 다른 제국주의 열강이 뉴질랜드를 먹을 것을 우려했었고. 또, 자기 나라 사람인 영국인을을 보호하고자, 그리고 남반구인 뉴질랜드 열대 섬의 맛있는 자원을 먹고자 했던 것이에요.






b) 어째서 뉴질랜드 원주민들은 영국인들에게 속았을까요? iQ가 낮아서? 바보라서?



쉽게 얘기해서 "와이탕이 조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오리어 버전과 영어 버전의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당시 19세기까지 남녀들이 죄다 알몸으로 생활하던 구석기 시대인이었던 뉴질랜드 섬의 원주민들인 마오리인들은 종이나 글자라는 개념을 아예 몰랐고 이는 마치 16세기까지 남녀들이 알몸으로 생활하던 구석기인들이었던 라틴 아메리카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과 똑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마오리인들은 "글"이란 걸 알거나 읽지 못했고 영국인들이 입으로 얘기해주는 "마오리어 버전"의 스토리에 의존해 서명했어요.


즉, 쉽게 얘기해서 영국인들이 만약에 와이탕이 조약에 "모든 영국인들은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고 써놓고 입으로는 "모든 영국인들은 앞으로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줄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던 셈이었어요.


조약은 총 3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1조와 2조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했어요.


제1조 "주권의 양도"


마오리어 버전에서는 "마오리인들이 여왕에게 그 사람들의 땅에 대해서 "까와나땅까(Kāwanatanga)를 부여합니다."고 써있었어요.


여기서 "까와나땅까"는 본래 마오리어에 없던 단어로, 영어 "governor(총독)"를 마오리어로 바꿔서 발음해버린 "까와나(kawana)"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에요. 그런데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인들은 '카와나탕가'는 영어 'governor'(총독, 통치자)에서 파생된 신조어였습니다. 국가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고 구석기인으로만 살았기에 국왕이 국가를 다스린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오히려 영국인들이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을 많이 했으니 이렇게 관리를 해주니 좋아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영어 버전에서는 "뉴질랜드 원주민들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주권(Sovereignty)의 모든 권리와 권한을 죄다 줍니다."고 써있었어요.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은 영국의 여왕이 외부적인 질서를 관리해주는 것으로만 받아들인 것이에요. 마오리인들은 자기들의 "마나, Mana(권력)"을 넘긴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걸 넘긴다는 건 섬을 통째로 바치는 것과 같아요.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사기"의 핵심이에요. 마치 오늘날의 부동산 사기, 월세 사기 같은 셈이지요.





제2조인 "토지, 삼림, 어장 및 기타 재산의 소유권 보장"



마오리어 버전에서는 마오리인들에게 그(혹은 그녀)들이 사는 곳, 그리고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 보물(taonga, 따옹까)에 대해서 "띠노 랑가띠라땅까(tino rangatiratanga)"를 보장합니다. 라고 써있어요.


여기서 "띠노 랑가띠라땅까"는 "자치권 즉 독립적인 주권"에 가까운 개념이었어요. 뉴질랜드 원주민들은 이 조항을 듣고 "우리의 권리는 오히려 영국 여왕이 보장해 주는구나."라면서 고마워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영어 버전에서는 여왕은 마오리인에게 "그들의 토지, 삼림, 어장 및 기타 재산에 대해서 방해받지 않는 소유(full exclusive and undisturbed possession)"를 보장합니다. 라고 써있었어요. 즉 단순히 재산권을 인정해 준다는 뜻이었어요.


여기서 서로 상반된 의견이 생긴 거였어요.


뉴질랜드 원주민 남녀들은 제2조를 통해 자기들의 독립적인 권한, 권리가 오히려 확고하게 보장된다고 믿었어요.


결과적으로 마오리인들은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우리의 권리나 권한(띠노 랑가띠라땅까)은 그대로 보장받는 대신에 우리들이 영국의 여왕에게 제한적인 행정권(까와나땅까)을 줘서 영국인들이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지 못하도록 질서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


이와는 반대로 영국의 입장은 달랐어요.


"뉴질랜드 원주민은 제1조를 통해 우리에게 주권을 완전히 넘겼고, 제2조는 단지 그들의 재산 소유권을 인정해 준 것일 뿐이에요."


게다가 이 영국 조약이 엉성하고 엉터리였던 이유는 초안은 몇 일 만에 급하게 만들어졌고 선교사인 헨리 윌리엄스와 그의 아들 에드워드가 근대 시대 19세기인 약 1840년 2월 초엽쯤에 급히 영어 초안을 마오리어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약을 "단시간"에 옮긴 점만 봐도 얼마나 엉성하게 만든 조약인지 알 수 있습니다.








c) 그 후



뉴질랜드는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이라는 종이 1장으로 영국에게 따먹혔어요. 이 조약은 마오리어 버전과 영국 버전의 핵심 내용이 달라 안좋음을 남겼어요. 마치 부동산 사기처럼요.


이는 전형적으로 영국이 법적으로 "주인 없는 땅"이라고 얘기하고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따먹는 방식이에요. 그곳 남반구의 뉴질랜드 원주민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뉴질랜드 열대 섬과 호주 땅을 "떼라 눌리웃쓰"로 간주하고 영유권을 주장했어요. 이는 약 770만 km²에 달하는 큰 땅으로 이 자체만 봐도 영국의 전체 면적의 약 20%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였어요. 영국은 이런 큰 땅을 싸움 1번 하지 않고 낼름 따먹었던 거였어요.




그 후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나 허드슨 베이 회사 같은 특허 회사가 먼저 들어가서 상업적, 정치적 기반을 닦고 나서 영국의 여왕이 이 권리를 인수하여 직접 다스리는 방식이었어요.


시간 순서별로 따지면 1835(독립 선언) → 1840(조약 초안, 싸인) → 1840~1860년(쁘리엠쎤, 토지 구매와 갈등) 등이었어요.










d) 왜 영국은 싸우지 않고 조약으로 땅을 차지했을까요? 군사력이 약해서? 겁쟁이라서?



1830년대 뉴질랜드는 사실상 주인이 없는 섬이었어요. 뉴질랜드 원주민 남녀들은 마치 타란튤라 거미처럼 서식지에서만 살고 있었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 온 포경선원, 장사치, 선교사들이 뒤섞여 살고 있었으며 간간히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뉴질랜드 원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서 알몸으로 생활하던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여 성적 착취하거나 성노예로 팔거나 번식 성노예로 끊임없이 성적 착취하는 게 흔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쪽팔려 하거나 하지 않았고 영국이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보호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고 영국의 관심은 오직 러시아나 프랑스 같은 서구에서 영국 다음으로 강한 열강 세력들이 뉴질랜드를 식민지로 삼을까 봐 견제해야 했고, 점점 늘어나는 출산율로 인해 자국민(영국인)들을 보호하며 경제적 이득과 질서를 만들 필요가 있었어요. 하지만 뉴질랜드 전체를 무력으로 먹으려면 엄청난 경제적 비용과인명손실, 시간이 들 것이 뻔했습니다. 게다가 영국은 무력을 통해 점령하다가 패배한 적도 많았고 영국 병사들이 죽은 적이 많았기에 웬만하면 이제는 무력이 아닌 거짓말이나 사기, 비열한 술수를 쓰는 방식을 많이 택했지요.


게다가 일부 마오리 원주민들은 외세인 영국과 손을 잡으면 질서가 잡히고 치안이 좋아져서 더이상 영국인들이나 프랑스인들이 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성노예로 사용하는 일에서 해방될 것이라 기대했어요.










e) 겁쟁이 영국이 비열하고 비겁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차지한 다른 국가, 지역들(리스트)



이렇듯 19세기의 영국은 직접적인 싸움보다는 불평등 조약, 내분 조장, 일방적인 보호령 선포 등의 방식으로 영토를 늘렸요.


1) 피지(Fiji)도 영국이 내분과 부채를 이용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어요. 당시 피지의 유력한 원주민 촌장이었던 "따꼼 빠우"는 다른 촌장들과의 아웅다웅으로 위기에 몰려 있었고 미국인들에게 막대한 빚까지 지고 있었어요.


영국은 이 상황을 이용하여 따꼼 빠우에게 다가왔어요. 영국의 여왕에게 피지를 넘기면 그의 빚을 죄다 대신 갚아주고 "피지의 국왕(Tui Viti)"으로 영국의 여왕이 섬기겠다고 유혹적인 제안까지 했습니다. 따꼼 빠우는 이 유혹에 걸려서 19세기 후엽쯤인 근대시대의 1874년에 이 유혹을 받아들여 영국에 피지를 줬습니다. 이는 피지 원주민 남녀들이 아니라 촌장 혼자 결정해버린 거고 그의 약점을 파고들어 피지를 따먹은 영국의 치사 빤쓰의 방식이었습니다.


2) 남아프리카 분할(Scramble for Africa) 역시 마찬가지로 19세기 후엽쯤의 영국은 아프리카 추장들에게 그들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종이 조약에 서명하게 하여 영국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토(예: 나이지리아, 케냐, 우간다 등)를 보호령으로 먹었어요. 이 역시도 전쟁이 아니라 거짓말과 사기로 영토를 늘리는 영국의 방식이었어요.


3) 뉴질랜드 열대 섬은 아까도 예시로 들었듯이 뉴질랜드 원주민과 하던 와이탕이 조약으로 따먹었어요.




4) 솔로몬 열대 섬 및 길버트 앨리스 열대 섬(현재 키리바시, 투발루)들 역시 영국이 일방적으로 "보호령(Protectorate)"으로 얘기해서 속이고 거짓말해버린 사례에요.


이처럼 영국은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차지할 때, 전면전을 벌이기보다는 내부의 갈등을 이용하거나, 법적 해석의 차이를 악용하고, 일방적으로 보호를 선언하는 등 평화적이지만 교묘하고 거짓말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5) 캐나다 서부 및 북부도 마찬가지인데 영국의 허드슨 베이 회사는 "루뻐쯔랜드"로 알려진 큰 지방(약 390만 km²)을 따먹고 있었어요. 이 영토 역시 영국답게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양도와 거짓말 조약을 통해 캐나다 자치령의 일부가 되었어요.





6) 인도의 번왕국들(Princely States)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영국은 인도 아대륙 전체를 전쟁을 통해 승리해서 인도를 진출한게 아니었어요. 수백 개의 인도 마라타 연맹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던 번왕국들과 개별적인 조약을 맺어 외부(인도의 마라타 제국 연맹 제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번왕국들을 보호해준다는 명목을 내세워 외교권과 군사권을 박탈하고 사실상 잠식해 들어갔어요. 이 번왕국들의 총면적은 인도 아대륙의 약 40%에 달했습니다.








f) 이렇게 대영제국이 먹은 영토는 대영제국의 전체 영토 가운데 50% 이상


뉴질랜드, 말레이 반도의 열대 섬들

호주: ~770만 km²

캐나다 (허드슨 베이 등): ~400만 km²

인도 번왕국: ~130만 km²

아프리카 보호령 (수단, 나이지리아 등): ~500만 km² 이상


이렇게 영국이 거짓말로 먹은 영토만 합쳐도 1,800만 km²를 훌쩍 넘어, 대영제국의 전체 면적의 50% 이상에 해당되요.


그래서 만약 영국이 거짓말로 영토를 먹지 않았으면 영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 4위로 밀려났을 것입니다.








f)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과의 유사성과 영국의 강제 조약의 공통점



이렇듯 대영제국이 비열한 술수로 영토를 빼앗는 과정은 손자병법의 전략과 여러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손자병법에서 상대를 속여 원하는 것을 얻는다(欺)가 가장 결정적인 부분입니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다 역시도 손자병법의 전략과 일치합니다.


이렇듯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서인 "손자병법"의 저술자 고대 중국의 "손무"의 명언들 중 하나였던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가장 지혜롭다"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근대시대의 대영제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모든 섬들은 통일된 국가가 아닌 현재의 미국이 연맹체로 운영되고 있듯이 여러 원주민 연합체였고 서구식 중앙집권화 및 관료제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영국은 이 점을 활용했습니다.







g) 그 결과


영국은 이 엉터리, 오류 투성이의 조약을 얘기하면서 영국의 여왕님만이 뉴질랜드 열대 섬을 구입하고 파는 "토지 우선매수권"을 만들어 헐값에 큰 농토를 사들였지요. 이에 뉴질랜드 원주민 남녀들은 자기들이 생각했던 조약의 스토리와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따졌으나 이미 법적으로 뉴질랜드의 주권은 영국에 넘어간 한창 뒤였어요.


부동산 사기를 경험해본 사람은 이미 부동산 사기꾼이 튀었음을 알게 되고 망연자실해하지요.. 뉴질랜드도 마찬가지였어요. 뉴질랜드 원주민 남녀들은 영국에게 속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그건 한창 뒤의 일이었고 자기들을 속인 영국인은 이미 도망간 후였어요..


오늘날 와이탕이 조약은 뉴질랜드의 건국 문서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에요. 1975년 만들어진 "와이탕이 재판소(Waitangi Tribunal)"는 예전 영국의 여왕(그리고 그 후의 뉴질랜드 정부)가 조약을 위반하여 뉴질랜드 원주민 남녀들에게 끼친 성적 착취, 강간, 성폭행, 그리고 여러 물적 피해들을 조사하고 배상을 권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뉴질랜드는 180년이 넘은 "언어적 사기"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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