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궁녀, 후궁, 첩, 처들

일부다처제를 지향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궁녀, 후궁, 첩, 처들

by 바다의 지정학


오늘은 오스만 제국과 동시기의 조선의 궁녀, 후궁, 처, 첩 제도를 통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궁녀, 후궁, 첩, 처 제도와 하렘 제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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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후궁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오스만 제국이나 조선 정부의 법도는 명문화된 조항으로 "반드시 후궁을 두어야 한다"고 강제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와 중세와 근세 시대의 중국, 일본처럼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는 동시기의 오스만 제국처럼 왕가의 특수성왕위 계승 및 대통을 잇는 것의 중요성 때문에 왕비 외에 후궁을 두는 것을 국가, 사회적으로 묵인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나 조선 정부에서 후궁의 존재는 왕가의 대통을 이을 후계자가 필요하고, 혹시라도 왕에게 장남이 없을 경우를 대비하는 보험의 역할의 시스템을 했습니다. 또, 후궁을 두어 왕가의 발전을 상징하는 정치적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는 오스만 제국과 조선의 결정적인 공통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후궁의 품계와 서열이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후궁 시스템이 단순히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과 법 체계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시스템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오스만 제국에서도 국왕인 술탄이 "법적으로" 반드시 후궁, 처, 첩을 두어야 한다는 명시적인 법률은 없었지만, 정치적 관습과 제국 유지의 필요성 때문에 하렘 제도가 사실상의 강력한 관례이자 제국 통치의 중심 요소로 작동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초기에는 술탄들이 자국내의 지체높은 신분가의 딸들이나 주변국이나 귀족의 딸과 "정략혼인(공식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근세 시기인 15세기 후반부터는 공식적인 술탄의 혼인이 사실상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혼인을 통해 외척 가문의 발호나 탐관오리 세력이 왕실에 개입하고 정치적 영향력(조선의 외척과 동일)을 행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술탄이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공식적인 "혼인"이 아니라, 술탄의 개인적인 소유물인 노비 출신 처, 첩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하렘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들에게서 난 아들들만이 술탄의 대통을 잇는 왕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에서 하렘은 단순한 후궁들의 거처가 아니라, 술탄의 대통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정치적 안정 장치였습니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술탄의 후계자가 다수 필요했으며, 특히 왕자들이 왕위 쟁탈 과정에서 서로를 제거하는 형제 살해의 잔혹한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잠재적 후계자를 많이 확보하는 것은 제국의 연속성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술탄에게는 아들들을 낳아 옥좌에 옹립시킨 술탄의 대비 마마, 즉 "술탄의 모후(발리데 술탄)"는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여성으로 부상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이나 조선 정부에서는 "법으로 후궁을 두어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으나, 오스만 제국의 정치적 관례와 왕실의 안정을 위한 필요성 때문에 하렘이라는 제도 아래 술탄들은 수많은 후궁, 궁녀, 처, 첩들을 두는 것이 필수적이었으며, 이는 조선 왕실이 대통을 잇기 위해 후궁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의무와 같았습니다.


오스만 제국 왕 술탄들이나 조선 시대 왕들은 대부분 왕비와 후궁 양쪽 모두에게서 자식을 보았습니다. 왕비에게서 난 자식만 보거나 후궁에게서 난 자식만 본 왕도 일부 있었지만, 이는 보편적인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나 조선 왕실에서 왕의 후계자들은 적자(왕비 소생의 아들), 서자(후궁 소생의 아들)로 구분되었으며, 왕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데는 왕비와 후궁 소생 모두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도 제국의 초기 단계 이후에는 공식적인 혼인을 하는 경우가 드물어졌습니다. 이는 술탄의 정식 아내 외척 가문이 정치적 영향력을 얻고 왕실의 경쟁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드렸다시피..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주로 하렘의 여성들, 즉 노비 출신으로 개종하여 본래 가족과의 연줄이 없는 수많은 여성들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궁녀, 처, 첩, 후궁들로 두어 수많은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대부분 공식적인 아내(조선의 왕비와 동일)가 아닌 수많은 후궁, 궁녀, 처, 첩들(하세키 술탄이나 다른 첩들, 조선의 후궁과 동일)들에게서만 자식들을 보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왕위 계승이 기본적으로 적장자 우선이었지만, 오스만 제국 초기에는 자식들 간의 왕위 쟁탈전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이는 술탄이 사망하면 왕자들(모두 첩의 자식) 중에서 누가 왕위를 계승할지 명확한 규칙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메흐메트 2세와 같은 술탄들은 왕위에 오르면서 제국의 안정을 위해 선제적으로 형제 살해를 관습화하기도 했습니다. (메흐메트 2세는 1451년에 왕위에 다시 오르면서 형제 살해를 감행했습니다.) 이 풍습은 17세기까지 이어지다가, 이후에는 "왕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공부를 잘하고 문(文)을 실천하여 학문이 좋은 왕자가 술탄이 된다"는 새로운 계승 규칙(장자 상속이 아님)이 채택되면서 완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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