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은 단순히 그냥 오지 않는다. 즉, 폭풍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만들어 진다. 육지와 바다의온도 차이가 있어야 하고, 수증기가 증발하여 구름을 만들어야 하며, 이 구름들의 기압 차이가 나야 에너지가 생긴다. 산 위의 돌이 굴러 아래로 내려가듯이, 기압차이가 나야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수 있다.
폭풍이 만들어 지는 조건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간단히 짧은 시간에는 형성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이를 사람을 대상으로 생각해보면 사람이 갑자기 폭풍처럼 화가 난다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폭풍이 형성되는 조건과 같이 사람의 마음에도 폭풍이 만들어지려면 여러 가지의 조건과 흘러온 역사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벌써 하나의 조건이 성립한고, 씨앗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미워하는 정도가 차츰 깊어지게 되면 기압 차가 형성되고 온도차가 나서 사람의 마음이 데워지기 시작한다.
씨앗이 돋아나려면 움직일 에너지가 필요하듯이 ,사람의 감정도 씨앗을 틔우는 것과 같이 움직여 구름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 구름이 커지기위해서는 다른 구름 조각과 뭉쳐져야 하고, 바람이 일어 구름이 이동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마음의 구름이 차츰 커져 폭풍을 일으킬 정도가 되려면 자극이 필요하다. 이 자극은 미워하는 사람의 현재 동태와 나와의 연관 관계가 중첩이 되고, 또한 다른 환경의 도움으로 더 커질 수 있다. 그 사람에 대한 소식, 그 사람에 대한 움직임, 나를 자극하는 그 사람의 목소리 등으로 구름은 차츰 차츰 커지기 시작한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인다는 것은 성질이 다른 공기 덩어리가 만났을 때 일어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따스한 마음과, 저 사람은 도저히 같이 병존할 수 없겠다는 부정적인 관념이 평형을 이룰 때는 폭발하지 않고, 그저 그렇겠다는 생각이 되지만, 도저히 저 사람이 보기 싫고, 가까이 가기도 싫다는 부정적인 기다림이 외부 자극으로 인하여 강한 기단을 만들어,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폭풍이 일어나게 되고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여 한바탕 소란을 피워야 잠잠해진다.
사람의 마음에 구름이 생기는 것은 감정의 흐름으로 만들어 진다. 마음이라는 것은 마치 흰 조각구름 같아, 하나 둘 뭉쳐져 고운 가을 구름으로 되기도 하고, 먹구름으로 되기도 한다. 구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자연환경과 비슷하여 제어하기 어렵다. 어떤 대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을 표출할 수 있는 것과 숨기고 싶은 것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표현한다는 것에는 나의 직접적인 의사를 동반하여 변호사처럼 자신을 방어하는 기전까지도 함께 발달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어진 테마를 발표한다면 발표 후의 질문까지도 대비하게 되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은 아예 표현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누가 물어도 먼 산 쳐다보는 것으로 대체한다. 이런 경우는 고운 구름보다는 색깔이 있는 구름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원래 폭풍은 인간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자하는 목표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인들이 살아가는 형태 중의 하나 하나들이 폭풍을 만드는 조건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지, 스스로가 피해를 목적으로는 생성되지 않는다. 여러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고, 결과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란 말이 된다. 어쩌면 인간이 태풍의 생성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폭풍은 생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은 사람들의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쩌면 자연을 지켜주지 못한 대가라고도 볼 수 있다.
[폭풍의 씨앗(한라산)]
우리 맘속의 구름들도 결국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그래도 인간에게는 마음을 제어 할 수 있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연보다는 통제 할 수 있는 점이 다를 수는 있다. 이 일은 감정이 이성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몸에 편도체라는 놈이 있어 상대방과의 타협을 하지 못하게 한다. 편도체는 자신이 위험하거나 손해 보는 것에 대하여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름이 응집되어 덩치가 커지면 함수하고 있는 물들을 토해 내어야 하는데, 연꽃잎처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물이라면 잎을 기울여 밖으로 버리듯이, 구름도 많은 물을 함유하고 있으면 좌초되기 전에 쏟아버리는 것이 비가 되고 소나기가 된다. 사람의 마음에도 구름이 가득차면 비워내어야 하는데 아마도 눈물이 될 것이고, 무언가 모르게 서럽게 느껴지는 설움을 뱉어 내고나면 카타르시스 되어 마음이 평화롭게 된다. 자연이건 사람이건 무언가 무거운 것이 생기면 뱉어 내어야 시원함을 느끼는 것은 같은 배경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자연이 인간사에 폭풍으로 막대한 해를 끼치는 것은 자연의 정화 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건지는 답답하지만 뱉어내어야 원래대로 돌아가 편안해 지는 것을 보면, 인간이 자연에게 끼친 피해를 되돌려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 옛날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어떤 큰일들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때는 지구가 형성된 후 자연에 해를 끼치는 집단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생명체가 태어나고 이들의 대사물질로부터 자연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후 인간이 출현하고 초기에는 인간의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자연을 섬기며 살았을 것이다. 차츰 인간들이 영역 싸움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생명을 경시하는, 상대방이 죽거나 멸망해야 끝나는데, 이 과정에서 대량 살상무기가 출현하게 되고, 이 무리들이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전쟁을 위하여 화학 산업과 핵물질이 발달하게 되고, 심한 매연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하여 오늘의 지구, 자연의 파괴에 이르게 되었다. 자연도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무장하게 된 것이 폭풍, 가뭄, 홍수 등의 기온 변화로 무장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마도 자연의 경고가 거듭됨에도 인간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의 구름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의 사람들도 자신의 속에든 구름을 제어하지 못하여 서럽고, 정신적인 혼란으로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있다. 젊은 층에서부터 장년, 노년까지 모두 건강한 마음,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런 구름들이 계속 증가되고 쌓이게 되어, 현대인이 질병인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나아가 사회가 불안해 지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경향으로 사회적 질환으로 바뀌고 있다.
구름이 자연 속이 순환하듯이, 마음의 구름은 작은 자연의 순환이 된다. 이런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자연이나 사람 모두 병들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 재해에 대하여 원망만 할 뿐, 그것에 당사자는 아니다 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아무런 잘 못이 없는데 자연은 왜 나만 괴롭히는지’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개인이 만들지 못하는 씨앗을 거대한 공장에서 한없이 만들어 내니 자연의 품속에 씨앗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연이든 사람이든 그 마음에 구름의 씨앗을 만들지 않는 것이, 그리고 막히지 않고 순환되는 것이 건강의 비법임에 틀림없다.
번개나 천둥은 구름사이의 다른 성질에 기인되어, 이의 결과로 많은 소나기를 내리게 하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천둥, 번개가 치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힘들고 치유를 위한 약을 써야만 한다. 약이 모든 부분에 치료제는 될 수 없다.
그래서 구름의 씨앗보다는 꽃씨를 간직하는 것이 자연답게, 사람답게 사는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