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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Nov 04. 2022

중년에 읽는 톨스토이 인생론 (2)

서론 - 생명

      2003년 스물 네 살 가을, 처음으로 휴대폰을 개통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누군가가 연락을 하고 본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휴대전화라는 장치는 참으로 무색무취 씨를 불편하게 하였다. 당시의 그에겐 휴대전화라는 것이 마치 때깔 좋은 노예사슬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이력서에 전화번호를 강제로 기입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그는 돈을 벌고자 줏대 없이 휴대폰을 장만하며 손쉽게 세상에 굴복하고 말았다.  


      휴대전화 없이 살던 때 그의 삶은 꽤 괜찮았다. 두어 시간 가까이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었고,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에만 신경쓰면 되었다. 동네 식당 몇 군데만 알면 충분했고 누워서 책 보다 졸리면 기분좋게 잘 수 있었다. 


     대학 시절, 그와 그의 친구들은 종종 왜 사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역시나지만 결론 따위는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1 에서 2가 되는 것이라면 몰라도 0 에서 1 이 되는 과정은 합리적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종교, 철학, 사상, 과학,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입혀 이야기꽃을 피워내었다.   


     그 시절에도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에 기대하며 생명의 근원을 밝혀내리라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다. 물론 무색무취 씨를 포함한 몇몇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서로 꽤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각자의 견해가 대등한 입장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인생론'의 서론에 위치한 다음 단락들을 바라보며 문득 예전 그 시절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생명의 세포에 어떤 원형질이 있는가, 혹은 더 하등의 무기물이 있느냐 하는 따위에 관해서 쉴새없이 논쟁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을 벌이기 전에 우리들은 우선 다음 한 가지 일을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우리들에게는 과연 생명의 관념을 세포에 얼버무려버릴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인간의 언어는 과학적 연구에 따라서 점차 밀려 나와서 현존하는 사물이나 관념을 표현하는 수단인 언어 대신에 과학적 세계어가 도사리고 있다... 자기 전공의 과학에 대해서 이같이 그릇된 견해를 품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연구가 그저 생명의 어떤 측면만에 한정되어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생명 전체가 그 모든 현상과 더불어 외적 실험 방법에 의해서 연구되리라고 단언하고 있다'


      '어떤 사물에 모든 방면으로부터 동시에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방면으로부터 한꺼번에 인생의 여러 현상을 연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순서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 순서에 바로 모든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순서는 그저 인생에 대한 이해에 관해서만이 얻어지는 것이다.'


기술의 목적과 물레방아 - 출처: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4979


     그리고 2022 년 그와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 세상을 바라본다. 생명의 근원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와 결탁한 종교는 힘을 잃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려놓은 현대의 철학은 시대의 흐름을 조용히 뒤에서 따라갈 뿐이다. 유튜버가 아닌 옛 성인들의 사상은 책으로 쓰여 있어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전히 건재한, 아니 오히려 돈의 흐름과 함께 힘을 더욱 키워간 것은 과학과 기술 뿐이다. 


     대학 시절의 무색무취 씨와 그 친구들이 지금 다시 만나 왜 사느냐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한다면 어떨까. 고단한 삶에 찌든 대화의 층을 벗겨낸다면 아마 그들 중 몇몇은 인생 자체에 대한 의문보다는 지속적으로 교육된 실용주의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 앞으로 특이점이 오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 우리의 두뇌를 칩 안에 저장할 수 있는가 

- 과학이 더 발전하면 영생이 가능한가


     빅 데이터와 연합한 현재의 과학이 이야기하는 주제들은 주로 어떻게 인간 같은 기계를 창조하느냐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성공한다면 실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인공지능이 생명을 의미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손쉽게 대답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톨스토이의 질문 - 우리들에게는 과연 생명의 관념을 세포에 얼버무려버릴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 - 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인간의 언어를 밀어내고 과학적 세계어로 창조된 세포와 같은 이 기계에 우리는 생명의 관념을 부여할 권리가 있을까? 노동력 대체와 효율 증대를 위해, 자본에 의해 특정한 방향성을 띠고 만들어 지는 이 시스템은 과연 인생의 여러 현상을 바라보고, 인생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올바른 순서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 시대 과학과 기술의 힘이 커졌다고 해서 가치 판단의 과정에서 과학이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의 시스템이 끊임없이 주입하는 가치관에서 잠시 한 발 뒤로 물러나, 소외되었던 종교와 철학, 사상의 가치에 대해 살펴보면서 인생이란 것이 정말 무엇인지, 톨스토이에게 있어 생명이란 관념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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