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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ilit Apr 06. 2023

#2. 세상에! 식욕마저 무기력해지다니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글쓰기 2일차

오늘도 아침부터  밥도 거르고 누워있다가, 이마트 쓱 배송이 왔다는 문자를 받고 오전 11시가 다 돼서, 힘겹게 일어났다.

안방에서 현관문까지 10m도 되지 않는 거리, 그마저도 문을 열고 나가기 어려워 거실 소파에 잠시 앉는다.


좋아하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중에 하나가 

마트나 시장에 가서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인데, 이제 그마저도 너무 버겁다. 


심지어 씻는 것, 화장실 가고, 밥 먹는 것까지, 귀찮게 느껴지는 일이 되었다.  

'어쩌다 이리되었지?, 이러다가 오늘 하루도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끝나겠군.'

혹시 몰라 캘린더를 뒤적이다가 오늘 저녁에 지인들과 식사 약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요즘 내게 크나큰 기력이 들어간다.

사람을 만나면 좋은데, 만나러 가기까지 과정이 벅차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더 안 좋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아, 가야 하나. 가야겠지? 몸 상태가 정말 메롱 인데...'

무슨 핑계를 두고 가지 말까? 생각이 들다가, 오늘 그 모임마저 파투 나면 또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았다.


나와의 약속은 잘 안 지켜도 친구와의 약속은 지키는 편이니까 

목요일마다 배우는 자수 모임에 먼저 못 나간다고 이야기하고, 7시간이나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기다린다. 


'카톡 왔숑'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 알림이 울린다. 

A 친구가 몸이 안 좋아서 참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B 친구도 몸살 기운으로 다음으로 약속을 미루자고 했다. 좋으면서도 싫은 양가감정이 일었다. 


약속은 취소되었고 다시 힘내서 원래 해야 하는 요가나, 공부, 자수 모임을 가고

밥을 챙겨 먹고, 밀린 집안일을 하면 될진대, 다시 또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앉아있던 소파에 다시 그대로 누워 유튜브를 켠다.


'꼬 -로-록'

배꼽시계는 항상 정직하다.

어제 낮에 점심 한 끼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공복 상태가 24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뭐라도 차려 먹자는 생각에 문 앞에 두었던, 이마트 바구니가 다시 떠올랐다. 


'띠리릭' 현관문을 열고 이마트 종이 가방을 힘겹게 식탁으로 가져온다. 


집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다. 요즘 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런색 재생 종이 가방에서  계란, 라면, 참치, 식빵, 우유, 바나나 등을 차례로 식탁 위로 내려놓았다. 

잠깐이지만 재료들을 보니 뭔가 만들어볼까 생산적 기운이 생긴다. 


즐겨 보는 인스타툰에서 간단한 스페인 간식을 본 게 기억이 났다. 작가는 아주 쉽고 맛나니 꼭 따라 해 보라고 추천해 주었었다.


식빵 한쪽을 구워 마늘을 바르고, 토마토를 잘라 올리고, 올리브유로 마무리

생긴 건 그럴싸하다. 한입 먹어본다. 


와, 정말 맛없다.

세상에, 식욕마저 무기력해지다니... 


나는 태어나서 이런 상태를 겪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잘 먹는 게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어릴 때는 엄마가 쫓아다니며 입에 물고 있던 젖병을 뺏었고, 남편이 밥그릇을 뺏은 적도 있었다.


음식은 내게 행복이었는데!

짜증 나고 불쾌한 하루여도 치킨에 맥주 한 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면 싹 풀리는 나였다.


도통 입맛이 없다. 

왜 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입이 짧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과거의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정말 건강한 사람이었던 걸까.


레시피를 정확히 몰라서, 내가 맛없게 만든 게 아닐까? 의심을 해본다.

백종원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며, 심기일전으로 옥수수 콘 토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옥수수 통조림에 양파다져서 넣고, 

마요네즈 2 큰술, 설탕 1 큰 술, 후추 조금 넣고 

식빵에 올린 뒤 에어프라이어로 7분 돌리면 완성이다. 

치즈나 치즈 가루가 있으면 첨가하면 더 좋다. 


오늘 만든 옥수수 토스트


일요일 아침에 밥하기 싫을 때 자주 해먹던 내 치트키 메뉴다.

바사삭 통밀 식빵이 잘 구워졌다. 


노릇한 식빵에 톡톡 터지는 옥수수 콘 알갱이들, 그 사이 고소한 마요네즈와 달콤한 설탕의 조화가 맛있을 수 없는 내가 아는 바로 그 맛!


그런데 이것도 맛이 없다. 

먹던 걸 내려놓고, 뒷정리나 설거지는 당장 지금 못할 테니,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분명 오전 11시였는데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가 되었다.


작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신민아 역할이 당시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민아는 극 중 엄마인데, 오후에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것도 잊고, 밥도 제때 주지 않고 침대 속에서 잠만 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본인은 분명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줄 안다. 아침에 유치원을 보냈고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커튼을 펼쳤는데 깜깜한 밤이다.

내가 지금 신민아가 된 기분이다. 분명 오전이었는데 어느새 밤이 되어 버렸다. 



 '그 으윽-' 내 정신 상태와 상관없는 신체 소리 


점심에 먹은 식빵 2조각이 이제야 소화가 되나 보다. 트림과 함께 신물이 올라온다.

아무런 활동량이 없으니 소화가 도통되지 않는다. 



속이 꽉 막힌 기분이다. 답답하다.

토하고 싶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변기를 붙잡고 다 게워내고 싶다. 다 쏟아내고 싶다. 

그러면 속이 편해질까,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아냐, 더 악화시키지는 말자.


그럼에도 오늘 내가 잘한 일은 이렇게 뭐라도 써 내려간 것이다.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야지. 살아야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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