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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Aug 08. 2019

인간 이국종에게 필요한 것

그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히어로물을 싫어한다. 오천만이 사는 국가에서 도합 팔천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다는 마블 영화도 하나 본 게 없다. 정확히는 히어로, 영웅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영웅이 있어야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회란 곧 시스템의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세상은 영웅이라 불리는 한 개인의 능력으로 발전할 수 없으며 그래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정의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아무리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더라도 개인은 정의를 대표하거나 실현할 수 없다. 우리는 합의를 통해 정의를 선정하고 추구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영웅이 필요하다는 건 그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소리다.


  그래서 <골든아워>를 읽는 동안 나는 이국종에게 자꾸 영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스템이 없는 사회에서 시스템 대신 발버둥 치는 사람을 영웅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부를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봄이 싫다.


  어떤 사건은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다. 나에게는 2014년 4월이 그렇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모두 구조했다는 속보를 본 후, 언제나처럼 수업을 듣고 떠들다가 다른 소식을 들었다. "오보였대." 몇 달간 이어진 구조 과정 동안 그 해 봄은 우리 모두에게 상흔으로 남았다. 적어도 내 또래에겐. 나는 백일장의 시제로 노란 리본이 나왔던 날, 볼펜과 원고지를 던지고 나갔던 아이들을 기억한다. 슬픔을 글로 담아 파는 게 우리의 일이었지만 그건 팔아먹을 수 있는 슬픔이 아니었다.


  그 해 봄은 사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함부로 쓰고 싶지도 않다. 이 한 문단을 쓰는 데에 한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말이다. 그때 배가 점점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계속 궁금했던 것 같다. 우리는 선진국이라는데 왜 구할 수 없을까? 왜 살릴 수 없을까? 우리에겐 눈 앞에서 가라앉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구해낼 시스템이 없는 걸까? 구명조끼를 양보한 사망자나 구조 중 사망한 민간 잠수사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들릴 때 나는 더 괴로웠다. 이 사회는 영웅 없이 사람을 한 명도 구할 수 없다는 증거인 것 같았다.


  그래서 JTBC 인터뷰에서 이국종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사회는 "매일매일 세월호가 터지는 상황"이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골든아워>에서 마주한 외상외과의 실태가 딱 그랬다. 언제나 그렇듯 미비한 시스템 속에서 갈려나가는 건 약자의 손발이다. 안간힘을 써서 사람을 살려내도 돌아오는 것들은 명확치 않다. 블루칼라의 노동자들은 다시 험난한 환경으로 돌아가고, 다시 다치거나 죽고, 의사는 병원에서 눈엣가시가 되고, 그렇게 쌓인 적자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나기만 한다. 그럼에도 눈앞의 환자를 살려보려 행동하는 영웅들에 의해 사람들은 살아나 삶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기 전 나는 그들이 대단한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으로 일을 버텨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 의인이나 영웅에게 기대하는 것이 그렇듯 말이다. 그러나 이국종은 말한다.


나는 내 업을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을 뿐 내가 하는 일에 '소명'이나 '사명' 같은 단어를 대입해보지 않았다. (p. 142)


  그는 자신에게 봉급을 주는 것은 병원이며, 자신은 봉급쟁이 의사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사람을 살리는 일은 위대한 소명이나 사명을 갖고 하는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때까지 힘껏 할 뿐이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죽은 자를 부러워할 정도의 피로에 짓눌려가면서도.¹ 사실 소명이나 사명은 스스로 만든 종교와 같다. 그런 믿음은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고난 앞에서 마음을 마취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국종은 거기에 기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영웅이나 메시아로 생각하는 대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다른 인간을 살리는 일이다.


(1) 나는 어디까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버지는 답이 없었다. 그가 누운 자리는 평안해 보였다. 영면한 아버지의 자리가 부러웠다. 그러나 나의 끝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p. 305)






  언론의 화제는 끝없이 바뀐다. 이국종이 아덴만에서 석해균 선장을 살려냈을 때도,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군 병사를 수술했을 때도 그는 화제에 올랐지만 모두 잠깐이었다. 그렇게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후 모든 책임은 이국종 개인에게 돌아간다. 주변 의사들에게는 따돌림당하고, 상사에게 비난받고, 쌓이는 적자와 민원과 사라져 가는 목숨들 속에서 그는 점점 소진되고 있다. 왼쪽 눈이 실명되고 오른쪽 어깨와 왼쪽 무릎이 부러져가면서.


  인간 이국종에게 필요한 건 영웅이라는 칭호가 아니다. 짧은 동정과 존경도 아니다. 그가 꾸준히 요청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영웅이라는 짐을 짊어진 한 사람을 갈아 넣지 않고서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 2012년 이국종법이라고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 이전과 다르지 않다. 목동 수몰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값싼 피가 먼저 쏟아진다. 가난한 노동자가 대부분인 중증외상 환자들은 아직도 도로에서 죽어나가고 있다.


  이국종은 영웅이라서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다. 그는 인간이기에 다른 인간을 살린다. 그처럼, 찢어진 몸을 어떻게든 기워 생명을 붙잡는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은 있다. 성악설이나 성선설을 가져올 것도 없이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이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세상에서는 이국종 교수도, 나도, 봄을 싫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왔다.

                                                                                                                                   

                                                                                                             닥터 헬기 소생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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