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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Jul 27. 2019

박막례는 어떻게 유튜브의 뮤즈가 됐을까?

우리가 듣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


  

박막례 크리에이터와 김유라 PD가 촬영한 BAZAAR 화보


  모든 인간에게는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한다. 그 정도가 다를 뿐, 인간은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종족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 얘기를 말하진 못한다. 욕망은 공평하지만 기회는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 이전의 시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사회에는 소외당한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한다. 찌는 듯 더운 오늘 톨게이트 위에서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보다 파급력이 없다. 사람들은 시골 할머니의 목소리보다 유명 축구 선수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 한다. 언론과 방송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목소리를 내보내고,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흘려 넘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유튜브의 최고 경영자인 수잔 워치츠키는 이렇게 말한다.: "유튜브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갖길 바란다." 이 비전을 존재 자체로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 9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국의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Korea Grandma)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 실려 있는, 유튜버가 되기 전 박막례 크리에이터의 삶은 이렇다. 막내라서 '막례'가 되었고, 딸이라서 글자를 배우지 못했다. 70 평생을 일했지만 번번이 사기를 당해 돈을 잃었다. 바람이 나 집을 나간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우고, 허리가 굽도록 식당을 꾸려 나다가 끝내 치매 위험 진단을 받았다. 김유라 PD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다고. 불공평한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를 이대로 죽게 둘 수 없어서 떠난 호주 여행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71세 할머니의 호주 여행기는 입소문과 SNS를 통해 유명해졌고, '계모임 메이크업' 영상으로 할머니는 완전히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박막례 크리에이터의 성공에 의아해했다. 할머니가 화장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욕과 사투리가 구수하고 웃겨서? 손녀의 연출과 편집 실력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맞지만 완전한 정답은 아니다. 박막례 할머니의 채널에는 내가 보지 못 했던 나의 미래가 있다. 드라마 속 시할머니나 부잣집 할머니가 아닌 노년 여성의 목소리가 있다. '실버 크리에이터'로서 그는 대중에게 소외되었던 목소리, 그러나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모든 영상들 중에서도 패스트푸드 점의 키오스크 체험 영상은 특히 이런 면모가 두드러진다.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실제 할머니의 경험으로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¹ 를 담았다. 박막례 크리에이터가 키오스크를 이용해 햄버거를 주문하는, 평범한 내용의 이 영상은 약 75만의 조회수를 올렸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서 김유라 PD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도 저런 날이 오겠지. 내 나이가 미워지는 나이."(p.203)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노인이 된다. 대상화되지 않은 당사자의 목소리는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 불편함과 부끄러움에 미리 공감하도록 만든다.


(1)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 기준, 70대 이상 노년층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은 10% 미만이다. 이는 다양한 서비스에서의 인터넷 이용 여부 비율을 측정한 것으로, 일반 국민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의 값이다. 패스트푸드 체인을 중심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키오스크(무인 정보 단말기)는 이처럼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 크게 성장한 데에는 손녀 김유라 PD의 공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카메라는 박막례 크리에이터를 가엾은 노인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할머니로 담지 않는다. 모든 콘텐츠들은 할머니의 불행 대신 행복에, 무지 대신 경험에 집중한다. 할머니의 행복만을 위해 운영한다는 채널 소개에 어울리게 모든 영상은 '박막례'라는 인간의 성장 앨범이라는 느낌을 준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호기심과 행복에 찬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10대에, 20대에 여행을 떠나 지었던 표정과 다르지 않다. 평생 동안 보아도 못 볼 만큼 지구는 넓다. 무지를 수치 아닌 기회로 받아들일 때, 세상은 우리에게 낯선 놀이터가 된다.


유라랑 나는 아주 잘 맞는다.
유라랑 나는 전생에 소꿉친구였나 보다. (p. 287)

  유튜브에는 박막례 할머니 채널보다 구독자 수가 많은 채널도, 돈을 더 많이 버는 채널도 여럿 있다. 더 유명하고 화제성 있는 채널도 무수히 많다. 그러나 유튜브 CEO인 수잔 워치츠키가 내한해서 1:1 대화를 하고, 구글 CEO인 순다 피차이가 개인적으로 만난 채널은 한국에 오직 하나뿐이다. 구글 I/O 행사에서 박막례 크리에이터를 만난 순다 피차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제가 지금껏 본 어떤 사람들보다 더 제게 영감을 줍니다.(Her story is more inspiring than anyone I've ever seen.)"


  그들이 '박막례 할머니'에 집중하는 이유는 거기에 유튜브의 지향점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발전을 위해 달리다 보면 뒤쳐지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게 이성적인 논리라고도. 그러나 현재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플랫폼인 유튜브가 지향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박막례 크리에이터와의 대담 영상에서 수잔 워치츠키는 어느 나라에서 살고, 어떤 인종이고, 몇 살이고 어떤 성별이나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고 말한다. 홍콩의 시위를 한국에서 유튜브 라이브로 지켜보며 응원하고, 장애인들은 어떻게 비행기를 타는지 유튜브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꿈꾸는 유튜브는 모든 인간이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등하게 해소할 수 있는 창구이다. 이처럼 기술은 소수자를 소외하는 대신 소외되었던 목소리를 들려주는 방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박막례 크리에이터의 행보는 그 자체로 혁명적이다. 그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았던, 받아 적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유튜브가 대변할 수 있다는 상징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기회이며 노인이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개인에게는, 기회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희망이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마지막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친다. "인생은 길더라고요. 우리 모두 꽤 멋진 70대를 고대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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