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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Dec 05. 2020

우리가 문명특급을 사랑하는 이유

문명특급의 백만 구독자 달성을 축하하며


ize, <스브스뉴스 ‘문명특급’ 홍민지, 이은재 PD “유노윤호와 꼭 만나고 싶다!”>


    스브스뉴스에서 제작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문명특급> 채널의 구독자가 최근 1백만 명을 돌파했다. 메인 MC인 재재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나 <라디오스타>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잡지와 신문에는 문명특급 팀의 인터뷰가 실린다. 스브스뉴스 채널의 코너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자연히 이러한 성장세에 놀라 이유를 분석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이 메인 MC인 연반인 재재(이은재 PD)의 캐릭터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문명특급의 성공이 '재재'라는 특별한 캐릭터만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다. 문명특급의 성공에는 단순히 지상파 뉴스와 달리 1020의 시야에 맞춰 가벼운 뉴스를 만들었다거나, MC의 진행 능력이 훌륭하다는 것보다 중요한 장점이 있다. 만약 문명특급의 콘텐츠가 재재의 캐릭터성뿐이었다면 수많은 아이돌 팬들이 소속사에 문명특급 출연을 요구했을까? 한 번 출연했던 게스트들이 연이어 문명특급의 식구가 되어 등장할 이유가 있을까? 이 모든 일의 시작을 찾기 위해서는 문명특급의 대표적 아이템인 '숨듣명 시리즈''컴백맛집', 그리고 얼마 전 시작한 '백쪼의 호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아이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숨듣명 시리즈'는 유행이 지난 명곡, 특히 아이돌을 비롯한 K-POP 문화가 1020의 하위문화로만 평가절하 당하던 2010년대의 음악을 다룬다. 그렇게 '오글거린다', '촌스럽다'는 말속에 갇혀 있던 음악들에는 숨어서라도 계속 듣고 싶은 명곡이라는 라벨이 붙었다. 그 시대 유행이었던 후크송의 중독성은 존중하며 플레이리스트조차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며야 하는 현세태를 재치 있게 꼬집는 이름인 셈이다. '컴백맛집'이나 '백쪼의 호수'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컴백맛집에서 가수와 배우들은 애교를 부리는 대신 그간 자신이 쌓은 경력을 주제로 대화하고, 백쪼의 호수에서는 아이돌 가수들이 각자 무대에서 계산적으로 수행했던 노하우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문명특급은 문화의 일부로만 평가되었거나 혹은 완전히 평가절하 당했던 사람들의 전문성을 보여준다. 특히 아이돌 직군에 대해서 말이다.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와 같은 아이돌의 세계적 히트와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전문성이 부족하며 1020 세대만 향유하는 문화라는 사회적 인식을 벗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발전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이돌 가수들은 음악적 전문성보다는 겉모습과 태도로 평가받는다. 인터뷰 중 잠시라도 표정을 굳히면 인성 논란이 따라붙고 방송에서 애교를 보여주기를 거절하면 수많은 기사가 올라온다. 그들에게 '애교'는 여전히 노동의 일부다. 그 안에서 아이돌 개인이 갖는 능력-그리고 아이돌 음악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평가받는다.


<[문명특급 EP.133] 유명한 투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싸우진 않을 거야ㅠㅠ 여자친구 2020ver 절친노트 (설참)>


    그러나 문명특급은 아이돌 가수들이 자신의 직업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비춘다. 발매된 지 십 년이 지난 노래를 틀자마자 반사적으로 안무가 나오는, 손끝부터 시선까지 카메라에 어떻게 포착될지를 고려하며 연습했다는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준다. 손이 작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손의 각도까지 계산해서 춤을 춘다는 말을 싣는다. 그리고 비 오는 무대에서 무릎이 부서지도록 넘어지면서도 일어나야 했던 가수를 조롱하거나 귀여워하는 대신 질문한다.: "그런 질문 너무 많이 받으셨을 테니까 넘어갈까요?"


    그렇게 문명특급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아이돌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들은 텔레비전이나 화보 속의 인형이 아니다. 자신의 일을 최대한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한 직업인이며, 살기 위해 불의한 상황을 무수히 수용해야 했던 노동자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주간아이돌>이 장수 프로그램이 된 데에는 랜덤 플레이 댄스의 역할이 컸다.


   문명특급 이전 아이돌 산업에서 히트를 쳤던 방송 콘텐츠를 생각해보자. <주간아이돌>에서 시작했던 랜덤 플레이 댄스는 처음 등장하자마자 거센 호응을 받으며 인기 코너로 자리 잡았다. 2배속 댄스나 랜덤 플레이 보컬 같은 유사 콘텐츠도 무수히 양산했다. 과연 이러한 콘텐츠가 인기를 얻은 이유가 단순히 신기하거나 재미있기 때문일까? 앞서 언급한 콘텐츠에서 우리는 2배속으로 혹은 랜덤하게 음악을 틀어도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아이돌의 전문성을 볼 수 있었다. 대중은 그들의 전문성에 감탄할 수 있었고, 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능력에 자랑스러워다. 랜덤 플레이 댄스 콘텐츠가 성공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이돌 산업은 더 이상 10대 만의 문화가 아니다. 2000년대부터 아이돌을 '덕질'해온 사람들은 이제 20대부터 50대까지 넓은 연령대에 포진되어 있다. 음악계에서 아이돌 음악이 갖는 지분만큼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는 연령 또한 넓어졌다. 그리고 -같은 노동자가 된- 아이돌 문화의 오랜 향유층은 가수가 단순히 귀엽고 예쁜 이미지로 소비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얼마나 전문적인지, 어떤 노력을 거듭해왔는지를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것이 존중받는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사람 여럿을 모아놓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대범람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룹들은 '서사'와 '설정'을 갖춘 종합 콘텐츠로서 자신의 지평을 확보하며 성장했고, 문명특급은 이러한 부분을 정확히 포착한다. 문명특급 속에서 아이돌들은 그간 존중받지 못했던 자신들의 콘셉트와 세계관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자유로움의 기저에는 물론 모든 '설정'을 미리 조사해오는 프로그램의 철저함이 있다.


<[문명특급 EP.135] 자우림 나만 알고 싶지만 모르는 사람하고는 상종 안 해요 진짜 알찬 인터뷰 맹세 맹세> 편

    

    이는 아이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우림 밴드가 출연한 편에서 문명특급 팀은 인터뷰가 시작하기 전 조명 엔지니어와 사운드 엔지니어를 먼저 비춘다. 소극장 공연이 잦은 밴드 그룹의 특성은 물론 엔지니어들이 무대와 실시간으로 교감하며 완성하는 소극장 공연의 성향을 이해해야 가능한 연출이다. 배우를 대상으로도 마찬가지다. 문명특급은 배우들에게 이상형 월드컵 대신 '그간 맡았던 배역' 월드컵을 권유한다. 맡은 캐릭터라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각자의 '캐해석'을 질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인터뷰는 단순히 영화나 노래를 홍보하는 데에서 나아가 한 사람이 쌓은 계보를 해석하는 작업이 된다.


    이렇듯 문명특급은 우리에게 존중받는 감각을 전한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직업인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콘텐츠를 만드는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존재한다는 만족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문명특급에서 인터뷰를 하길 바라는 시청자가 많아진 이유도 그렇게 쌓인 믿음에 있다. 갑을관계가 없이 존중의 태도로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인터뷰 대상을 상처 입힐 리 없으니 말이다.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가장 낮은 급, 어린 연령에 속해 존중받기보단 강요받는 일이 많았던 아이돌의 팬들이 특히 문명특급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불편하지 않은 웃음, 상처 입는 사람이 없는 웃음은 단순히 MC가 잘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연출진부터 촬영팀, 편집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모두가 터뷰 대상에 대한 존중을 갖추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문명특급을 촬영한 연예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리액션이 좋다"는 말이다. 문명특급 팀을 구성하는 모두가 인터뷰 대상에게 관심과 호의를 가지고 촬영한다는 증거다.





정말로 백만 구독자를 달성하는 날이 왔다!


    혹자는 문명특급이 아이돌을 주로 다루면서 '전과 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명특급은 스브스뉴스 산하의 작은 코너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 문명특급은 늘 문화 속의 '사람들'에 주목했고, 그들을 존중하며 조명했다. 포토카드 교환, 홈카페, 핸드폰 케이스와 다이어리 꾸미기, 짤과 밈(meme). 문명특급의 시선은 항상 메이저에서 굳이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 비주류 문화의 일부라고 하찮게 평가되던 것들에 있었다. 아이돌 산업에 대한 콘텐츠는 그 계보의 연장이다.


    오늘날 아이돌 산업은 메이저 문화가 되었으나 힘을 가지진 못했다. 아이돌들이 얻어내는 성과는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나 K-POP 열풍이라는 키워드로 묶여 소개될 뿐, 그들의 고난과 성장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이돌들은 그간 메이저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라도 "얘한테 잘못하면 팬덤이 난리 난다"는 식으로 '빠순이'를 욕하는(지극히 에이지즘적이고 성차별적이다.) 수단이 되거나 예쁘게 웃다가 아무 맥락도 없이 춤과 애교를 강요받는 존재였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누구도 묻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시하던 문화 속의 '사람'을 말하는 문명특급이 아이돌 산업을 꾸준히 이야기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다. 꾸준히 그들이 보여온 궤도와 이어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물론 재재라는 캐릭터가 갖는 매력을 제외하고 문명특급의 성공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짧은 머리와 강렬한 색상의 염색, 화장하지 않은 얼굴과 바지 차림의 여성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재재의 끼(혹은 문명특급 식으로는 '쪼')와 캐릭터성, 진행 능력 등이 없었다면 문명특급은 이만큼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MC 한 명에게서 문명특급이 성장한 이유를 찾는 건 안일하다.


    문명특급의 성장은 시대의 요청과 함께였다. 문명특급을 키운 건 메이저 방송 속의 메이저 인간 대신, 우리가 그간 조명하지 않았던 것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라는 요구다. 존중받지 못했던 것들을 존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인정하라는 목소리다. 그렇게 모인 목소리가 10만이 되었고, 50만이 되었고, 이제 1백만이 되었다. 이렇듯 건강한 프로그램의 성공이 기쁘고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사랑과 존중의 언어가 필요하다. 그게 우리가 문명특급을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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