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인생, 그래도

예습

by 그저남기는자

초등학교 2학년 딸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3학년 내용을 예습 중이다. 주로 혼자 공부하는 쪽이다. 옆에 앉아 설명하지 않아도 개념을 읽고 문제를 푼다. 혼자 하는 예습은 늘 어렵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앞 장과 뒷장을 부지런히 오간다. 종이는 점점 연필 자국으로 흐려졌다. 나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되 쉽게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도와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견디는 시간을 믿고 싶어서였다.


옆에서 책을 읽으며, 아이를 곁눈질한다. 연필을 멈추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결국 아이는 울었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너무 어려워.”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았다. 어디서 다시 시작하면 좋을지 짚어 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연필을 들었다. 몇 줄을 더 써 내려간 끝에 문제는 풀렸다. 종이 위에 동그라미 하나가 생겼다. 가볍게 웃던 아이는 이내 책을 덮었다. 연습장 한 귀퉁이에 무언가를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딸의 시

인생


처음부터 끝까지

점점 무거워지는 어깨


처음에는 깃털처럼 가볍다

나중에는 돌멩이처럼 무겁다


어려운 인생


다 쓰고는 수학은 내일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음도, 문제도, 시도 그대로 둔 채 방을 나갔다. 책상 위에는 풀어낸 문제와 꾹꾹 눌러쓴 ‘인생’이 나란히 남아 있었다. 애써 고민한 마음이 기특했고, 제 마음을 글로 남긴 것도 대견했다. 그 시는 ‘어려운 인생’이라는 마지막 줄에서 조용히 멈춰 있었다.


아이의 말처럼 인생은 점점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어깨에 얹히는 돌멩이는 하나씩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그 무게가 늘 같은 빛깔로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다시 시작할 자리를 만나면 잠깐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날도 올 테니까. 혼자 풀어야 할 문제들이 이어지겠지만, 그 길의 몇 걸음은 내가 곁에 서 있고 싶다. 거실에서 멍한 얼굴로 TV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 대신 손을 한 번 더 잡아 주었다.



그날 이후로도 아이는 몇 번 더 울었고, 몇 번 더 동그라미를 그렸다. 무거워지는 어깨와 가벼워지는 순간이 번갈아 오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시간을 나누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언젠가 손을 놓는 날이 오더라도, 오늘 잡아 준 온기만은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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