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귀 기울이며

by 그저남기는자

언제부터인가 설명할 수 없는 소리를 안고 산다. 삐— 하고 스치는 울림, 물속에서 몸을 흔드는 듯한 진동.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일상을 무너뜨릴 만큼 크지도, 잠을 끊어낼 만큼 집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대개는 그냥 지나간다. 괜찮은 쪽으로, 대충 접어두는 쪽으로. 다만 몸이 지칠 때, 마음이 한 박자 어긋날 때, 귀도 흔들린다. 아무 일도 없는 방에서, 아무 소리도 없어야 할 순간에, 통증은 다시 고개를 든다. 귀가 아프다고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왜?” 내 안에는 소리가 있는데, 그들에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귀의 아픔은 늘 설명이 부족하다. 그 정도면 참고 살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속에서, 고통도 접혔으면 좋으련만. 원래 말을 하지 않으니 해명하지 못한 채 남겨지는 귀의 사정이 궁금하다. 오늘은 내가 귀에, 귀 기울여 보려고 한다.


나는 얼굴에서 가장 수동적인 기관인 것 같아. 눈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담고, 입은 하고 싶은 말만 밀어내지. 하지만 난 선택권이 없어. 듣고 싶은 말과 듣고 싶지 않은 말, 다정한 고백과 무심한 폭음, 위로와 상처는 한 곳으로 들어오지. 거르지 못한 채, 남김없이. 그래서 늘 한 번 더 버티는 쪽이 되지. 아침마다 주인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만져. 뒤를 쓸어보며 오늘의 몸을 가늠하곤 해. 왜냐하면 잠이 모자랐을 때, 음식이 맞지 않았을 때, 마음이 무너졌을 때—그 흔적들을 나에게 먼저 나타나는 것 같아. 헐고, 진물이 나거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당하지만, 몸을 빌려 도와 달라는 신호만은 가장 적극적으로 보낸다고 할까.


말없이 버티고 있어도 날 함부로 대해선 안 돼. 가렵다는 이유로 손이 먼저 오고, 시원하다는 말에 흰 막대가 가까워져. 잠깐이면 괜찮을 것 같지만, 그 잠깐이 늘 흔적을 남기지. 파고 난 뒤의 고요는 오래가지 않고, 물이 들어간 날의 불편함은 하루를 따라다녀. 돌보는 가장 나은 방법은 재빨리 고치려 들지 않는 거지.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판단을 서두르지 말고, 괜찮아질 때까지 그대로 두는 것. 무례한 손길보다 늦은 손길이 덜 다치게 해.


늘 무언가를 지탱하며 살아. 안경의 발이 기대는 자리는 날이 갈수록 모양이 변하는 것 같아. 벗어 두면 금세 사라질 것 같아도, 만져 보면 그대로 남아 있지. 마스크의 고리도, 하루의 무게도 이쪽으로 먼저 걸려. 중심은 아니야. 늘 가장자리에 있지. 다만 그 가장자리에서 또 하나의 얼굴이 만들어지고, 하루는 그 얼굴로 버텨져. 드러나지 않게, 소리 없이, 그 무게를 대신 받아내.


사람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 사람들은 생일을 ‘귀빠진 날’이라 부르지. 왜 하필 이곳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 다만 태어나는 순간 가장 먼저 세상과 맞닿아. 울음소리, 숨소리, 나의 이름을 제일 먼저 듣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세상 쪽으로 열려 있어. 생일을 귀 빠진 날이라 부른 건, 세상을 향해 말하기 전에 먼저 들을 준비가 된 존재가 되었음을 축하한 말이었는지도 몰라. 반대로 사람이 떠날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도 여기지. 그래서 사람들은 끝까지 이름을 불러. 들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부르지. 마지막까지 이승의 자리에 남아 있으니까.


이쯤 듣고 보니 말 없는 귀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선택하지 못하고 앞서지 않으며, 가장자리에 서서, 모든 소리를 받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요구한다. 뒤에 있지만 늘 먼저 닿았고, 그만큼 먼저 닳는다. 그 수동성은 약점이 아니라 오래 버티기 위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역시 이미 알고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급히 고치려 들지 않고 판단을 서두르지 않으며 불편한 말까지 조용히 받아들이는 태도 앞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숨을 고른다.


오늘 나는 내 귀에 귀 기울였지만, 앞으로는 그 연습을 사람에게로 옮겨가려 한다. 말하지 않는 쪽이 세상을 더 오래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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