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맨에게 감사하며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20분. 문 여는 소리가 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불쑥, 반가운 얼굴들이 들어왔다. 인사이동 이후 같은 부서, 다른 팀으로 흩어져 한동안 못 보던 사람들이었다. 그냥 왔다고 했다.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멈칫하게 했다. 왜 하필 오늘일까. 왜 굳이 여기까지 일까.
오늘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점심시간에 맞춰 왕복 삼십 분 거리의 길을 세 사람이 함께 걸어왔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커피를 같이 시켰다. 나를 보러 왔지만 주위는 산만했다. 자꾸 시계를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테라스로 나가고, 한 사람은 창밖을 보며 “아파트 뷰라서 별로네”라고 중얼거렸다. 뭔가 이유 있는 부산함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이 OO 작가님이십니까? 꽃을 가지고 가고 있는데, 계신 곳이 어디지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작가’라는 호칭이 귀에 걸렸다. 상대는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이 OO 작가님?”
피식 웃음이 났고, 동시에 퍼즐이 맞춰졌다. 전화를 끊고 묻자, 그들은 결국 시인했다. 꽃을 보냈다고. 이 서프라이즈를 위해 점심도 거르고 왔다는 것도.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 키보다 훨씬 큰 3단 화환이 서 있었다. 짙은 초록 잎들이 윤곽을 세우고, 분홍과 노랑, 흰색과 붉은 꽃들이 층층이 들어앉아 있었다. 말 그대로, 축하가 과분할 만큼 만개해 있었다.
‘브런치 작가 데뷔를 축하합니다. 이자까야*를 응원하는 와맨 일동.’
( * 이 작가를 부르는 별명)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화환은 결혼식이나 개업식에서나 보는 줄 알았다. 웃음은 멈출 타이밍을 놓쳤고, 얼굴은 계속 뜨거웠다. 괜히 잎 하나를 만져보았다. 꿈이면 촉감부터 사라질까 봐. 준비한 이들은 그런 나를 보고 더 요란하게 웃었고, 점심시간 동안 배꼽 몇 개가 단체로 탈출했다.
문득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춘추시대 거문고 명인 백아와 그의 벗 종자기가 있었다. 백아가 연주하면, 종자기는 그 곡의 뜻을 한 번에 알아차렸다고 한다.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이들의 우정을 지음지교라 하는데, 여기서 ‘지음(知音)’은 소리를 아는 사람을 넘어, 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뜻하게 되었다. 나는 멋진 거문고를 타지 못했고, 대단한 곡을 연주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묵묵히 써 온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시간을 성취라고 불러주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이미 박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설명이 아니라 행동으로, “너는 충분히 축하받을 만하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브런치라는 앱에는 이미 구만 명이 넘는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고, 난 그저 그 구름 같은 대열에 이제 발을 얹은 것뿐이었다. 준비하고, 바라고, 원했기에 합격 메일을 받은 날은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은 것 사실이었다. 요즘은 장점이 질투가 되고, 단점은 약점으로 확대되기 쉬운 세상이다. 겸손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기에, 이런 축하가 혹시 과한 건 아닐까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꽃을 고르고, 문구를 고민하고, 시간을 맞추어 걸어왔을 그 수고 앞에서 그런 생각들은 힘을 잃었다.
혼자 이룬 줄 알았던 순간 뒤에, 이렇게 먼저 마음을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간절함을 나보다 더 정확히 읽어준 지음(知音)이다. 오늘 점심시간은 유난히 짧았고, 하루는 유난히 길게 남았다. 분명히, 나보다 먼저 나를 믿어준 사람들, 나를 알아준 벗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