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따로, 그렇게 같이

따로국밥

by 그저남기는자

햇살은 봄처럼 부드러운데, 바람은 늦가을처럼 싸늘하다.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날씨지만, 분명 한순간 존재하고 있었다. 어깨는 묵직하고 무릎은 쑤신다. 이런 날엔 뜨끈한 국물이 그립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국밥집에 갔다. 메뉴는 단출하다. 따로국밥 하나뿐.


국밥이라 하면 서울 사람들은 설렁탕을 떠올릴 테고, 전라도 사람들은 콩나물국밥을 말하겠지만, 여긴 따로국밥이 유명한 대구다. 따로국밥은, 붉은 육개장 또는 진하게 우린 국에 밥을 말지 않고 "따로" 나온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말아먹으면 국이 식고 밥이 퍼져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말아 나오는 것이 상스럽다고 하여 양반들이 국과 밥을 따로 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각각 따로 나오지만, 결국 함께 밥상을 지킨다. 어쩐지 우리 부모님을 똑 닮았다.


한 끼 식사처럼 소박하지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언젠가 두 분이 긴 여행을 다녀오신 날이 떠오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행동은 전혀 다르셨다. 어머니는 소파에 누워 얼굴에 달걀노른자를 바르시며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셨고, 짐 정리와 남은 집안일은 아버지 몫이었다. 조금 후, 아버지는 어머니 곁에 앉아 조용히 마늘을 까고 계셨다. 뉴스 소리, 마늘 냄새, 그리고 두 분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서로 다르지만, 말 대신 익숙함으로, 배려 대신 반복으로, 두 분은 그렇게 옆에서 서로를 견뎌오셨다. 잠시 두 분 생각에 잠겼는데, 벌써 흰 밥과 붉은 육개장 항상 차림이 나왔다.


아버지는 흰 밥 같다. 간도, 향도, 색도 없지만 늘 중심을 지킨다. 말씀이 많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해내신다. 목사님이셨던 아버지는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말씀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신다. 강단에서도 조용히 진심을 전하신다. 그 말은 짧지만 깊고, 담백하지만 오래 남는다. 한 상 가득한 반찬을 받아내며 자신은 결코 앞에 나서지 않는, 그러나 없으면 안 된다.

반면 어머니는 육개장 같다. 뜨겁고, 진하고, 강하다. 교회에서는 앞장서 설득하고, 중재하고, 모든 일을 두 손으로 감당하신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전력투구다. 큰일이 생기면 밤새 걱정하고, 끝없이 기도하고, 자신을 몰아붙이시다가 결국 방전되기까지. 어쩔 땐 너무 뜨거워 숟가락을 내려놓고 싶다가도, 다시 한 입 먹으면 몸이 풀리는 사람. 가끔은 얼큰해서 속이 쓰리지만, 지나고 나면 꼭 그 맛이 생각나는 사람. 그게 어머니다. 진하고 복잡한 삶의 국물 속에서, 온몸으로 끓어오르는 분.

그 다름은 식탁에서도 이어진다. 아버지는 푹 익힌 채소와 묵은지를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갓 담근 겉절이와 새 김치를 좋아하신다. 국밥도, 아버지는 흰 밥에 붉은 기름 거의 묻지 않도록 조심스레 국을 떠 올리신다. 어머니의 그릇에는 벌써 흰쌀밥이 붉은 국물에 스며들어 선홍빛이 되고, 고사리, 대파, 토란줄기, 잘게 찢긴 소고기가 밥알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 분은 말보다 생각이 앞서고, 한 분은 감정이 생각보다 빠르다. 도저히 한 그릇에 담길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같은 밥상에 앉는다. 서로를 바꾸려 들지 않고, 각자의 맛을 지키며 살아간다.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말없이 스며들며, 결국에는 웃는다. 그 따로인 맛들이, 묘하게 잘 배어든 밥상에서 우리 삼 남매가 자랐다.


우리 삼 남매도 따로국밥이다.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늘 필요한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자연스레 팔을 걷고, 조용히 뒷정리를 맡는다. 둘째는 어머니를 닮았다. 불꽃처럼 빠르고, 진하다.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억울한 일은 넘기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와 있을 땐, 자주 스파크가 튄다. 닮아서, 더 자주 부딪힌다. 막내는 협상의 달인이다. 화가 난 어머니 옆에 조용히 앉아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어, 결국 어머니의 마음을 풀고 본인이 원하던 것을 얻는다. 말하자면, 국밥의 간을 적당히 조절하는 사람이다.

이 다른 기질은 일상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함께 여행을 간다면, 리더는 언제나 둘째다. 어디가 좋을지, 무엇을 먹을지, 계획을 조목조목 펼친다. 막내는 그런 작은 누나의 주장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장단점을 따져 최적의 루트를 제안한다. 나는 늘 그 둘의 결정을 지지하며, 빈틈을 메운다. 셋이 나란히 서면 각자의 방향을 향하고 있는 듯하지만, 어느새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서로의 국물은 여전히 따로지만, 그릇은 마주 놓여 있고 젓가락은 겹친다.

어릴 적엔 왜 이렇게 다를까 의아했지만, 지금은 안다.

다르다고 멀어지지 않고, 닮았다고 같아지지 않는 사이.

그렇게 다르게 끓어오르며, 우리는 같은 상에 앉아 있다.

오늘도,

그렇게 같이.

그렇게 따로.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누군가 한마디 한다.

"따로 나와서 더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괜히 국밥 생각이 났다.
밥을 말지 않아도, 국을 남겨도, 그 한 상이 괜찮았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각자의 온도와 간을 끝내 섞지 않아도,
같은 식탁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여전히 따로 먹는다.
그리고 여전히, 잘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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