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일하는 김에 놀러 다니기
일정 요약
8월 16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Trieste) + 슬로베니아 포르토로즈 (Portoroz) + 피란 (Piran)
교통: Itabus + Flixbus + 시내버스 + Arriva
숙소: Hostel Tabor
일정: 시내 / 운하 / 박물관 / 해변 / 바다
포르토로즈에 내리자마자 피란 (Piran)으로 가는 동네 버스를 찾으려 했는데, 눈앞에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곳은 상점과 숙박업소가 넘쳐나는 휴양지 분위기다.
버스 정류장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머리와는 달리 다리는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더위에 지쳐 아주 잠깐 둘러보고 다시 버스 정류장을 찾으러 갔다.
정류장이 어디인지 몰라 안내센터에 들어가 물어봤더니,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줬다. 덕분에 시간 낭비 없이 미아가 되지 않고 버스를 잘 탔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가까워서 그런지 안내 방송이 슬로베니아어와 이탈리아어로 번갈아 나온다. 몇몇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피란에서는 볼거리를 크게 네 곳으로 정했다. 성벽, 바다, 땅끝, 타르티니 광장.
나머지는 지나가면서 상황 봐서 추가하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시내로 걸어 들어가면 왼편에 제일 먼저 항구가 나온다.
성벽으로 가는 길에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골목과 건물들을 구경했다.
언덕을 올라 성벽 앞까지 갔는데, 입장료가 비싸지는 않았지만 굳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땅끝 도시 (두 면이 바다)라서 시야는 어딜 가도 탁 트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근처 벤치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고, 다시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가는 길에 여러 뷰 포인트가 있었고 다 볼만했다.
북쪽 바닷가에 갔더니, 해변은 없고 수영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경사진 산책로를 한참 걸어가면 바다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산책로 위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다시 반대로 돌아와 수도원으로 향했다.
쥬세페 타르티니 (Giuseppe Tartini)의 묘가 있다는 곳이다.
이 정보를 피란에 도착해서 돌아다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입구 문은 분명 잠겨 있는데, 안에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수도원을 돌아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들어가 보니 정말 타르티니의 묘가 있었다.
입에서는 악마의 트릴 (Il trillo del diavolo)이 휘파람으로 흘러나왔다.
2악장이 끝날 때까지 충분히 보고 나와 땅끝을 향해 걸어갔다 (불만족스러운 휘파람 실력으로 인해 3악장은 차마 불 수가 없었다).
가는 길의 종탑은 입장료를 받길래 무시했다.
바로 옆 교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나름 중요한 볼거리들인데 못 들어가서 아쉽고 기분이 별로였지만, 교회 마당에서 보는 바다 뷰는 정말 좋았다.
점점 내려오니 다시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 장소가 나왔다.
땅끝에 도착해 탁 트인 바다를 보고, 모서리를 돌아 인어공주 석상을 봤다 (코펜하겐처럼 여기도 당연히 사기였다).
더위와 피로에 지칠 대로 지쳤지만, 계속 바다를 보며 걸었다.
마지막은 타르티니 광장.
사실 피란에 대해 알고 있던 유일한 정보가 이곳이었다.
타르티니라는 이름 때문에 그냥 오겠다고 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가 이곳 출신이었다.
광장에는 타르티니의 동상도 있었다.
무덤에 이어 예상치 못한 두 번째 수확이다.
광장 뒤에는 그의 생가도 있었는데, 희한한 운영 시간으로 인해 (오전 9–12시, 오후 6–9시) 안타깝게도 볼 수가 없었다.
계획했던 것들을 다 보고 우연히 찾은 일몰 포인트로 올라가는 길에 시간을 보니 류블랴나행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아가 되기 싫어 바로 온라인에서 티켓을 결제했다.
그런데 메일로 온 PDF를 보니, 프린트해야지만 유효하단다.
류블랴나 버스 정류장에 있는 매표소에서 출력이 가능하다고 쓰여있다.
결제하기 전에 알려줘야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정류장에 가니 줄이 엄청 길었다.
새치기를 몇 번이나 당하고 드디어 기사에게 PDF를 보여줬더니, 역시나 프린트를 해오란다.
도대체 어디서 하냐니까 ‘저기서’라며 손짓만.
'저기'에 가서 물어보면 또 '저쪽'이라고 한다.
결국 시간만 허비하다가 눈앞에서 버스가 떠났다. 아직 5분 남았는데.
다행히 옆에 또 한 대가 있었다.
다시 한번 PDF를 들이밀었는데, 기사님이 착한 동양 아저씨였다. 그냥 타라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버스를 겨우 잡아탔다.
타르티니 생가를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물집 다 터진 발이 드디어 쉴 수 있다는 것과, 37도의 땡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 문제 없이 류블랴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실상 마지막 슬로베니아 여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음악
도시를 여행할 때, 그 도시 출신 작곡가의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건 꽤 좋은 방법이다. 음악은 특히 들으면서 동시에 풍경을 볼 수 있다.
체코 프라하에서 비셰흐라드 성에 올라가 블타바 강을 내려다보았다. 그 옆에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알퐁스 무하, 라파엘 쿠벨릭 같은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가 있다. 그곳에서 라파엘 쿠벨릭이 프라하의 봄 축제에서 42년 만에 망명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들을 때의 감정을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문학
문학작품을 여행지에서 읽는 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여행 전에 한 번이라도 훑어보고 갈 수 있다면, 여행지에서 받는 느낌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모른 채 가는 것과, 대충이라도 읽어보고 가는 것의 차이는 크다.
현지에서 우연히 책 속 장면과 겹칠 때, 감정의 깊이가 훨씬 다르다.
미술
미술관에서는 풍경화에 주목해 보자. 몇십, 몇백 년 전 그림 속 장소를 내가 지금 걷고 있을 때, 혹은 반대로, 조금 전까지 있었던, 아니면 보았던 그 장소의 과거를 보는 짜릿함을 느껴보자.
특히 작은 도시일수록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