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에서 바그너까지
음악 이론서를 보면 고대나 현대 이론은 보통 앞뒤로 몇 페이지만 다루고 끝나는 경우가 많고, 아예 언급조차 없는 책도 있다. 대부분의 책은 조성과 화성 이론으로 분량을 채운다. 시간적 길이로 보면 고대와 중세 이론이 훨씬 많은 분량을 차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론적 복잡성으로 보면 현대 이론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분량을 반대로 뒤집어 보았다.
서양 음악은 오랫동안 (비록 400년 남짓의 기간이지만) 조성(Tonality)이라는 질서 아래 발전해왔다. 조성은 단순히 음계를 배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듣는 이에게 안정(Tonic), 긴장(Dominant), 종결이라는 기능적 위계를 지각하게 하는 체계였다. 따라서 조성의 붕괴는 단순히 새로운 화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시간과 구조를 조직하는 방식 전체가 바뀌는 사건이었다.
현대 음악이론은 단순한 작곡 기법의 변화가 아니라, 음악적 사고 자체의 전환을 다룬다. 조성은 흔히 ‘자연적 위계’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인간이 조직한 구조에 불과하다. 현대 음악이론은 이 조성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인위적 구조를 탐색하며, 때로는 자연적 질서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포함한다. 또한 바흐가 12평균율을 실용적 체계로 정착시킨 작업은 이후 음악적 구조를 이해하고 확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음악의 근원이 되는 배음 체계는 조성 위계의 재료가 되었고, 이 위계가 절정에 이른 뒤 낭만주의 말기에 균열을 보이면서 20세기 음악에서 구조적 사고가 등장할 필요가 생겼음을 보여준다. 현대 음악이론은 이러한 전통적 위계를 해체하고, 음향학적(스펙트럴) 또는 수학적(음렬) 원리에 기반한 새로운 구조적 질서를 탐구한다. 이는 음악을 더 이상 ‘진행’이나 ‘이야기’로 보지 않고, 구조와 관계의 체계로 이해하는 사고의 출현을 의미한다.
조성의 물리적 기반은 배음(Overtone) 시스템이다. 하나의 음(기본음, Fundamental)이 울릴 때, 그 음의 정수 배 주파수를 가진 여러 음(배음, Harmonic)이 동시에 발생한다. 배음은 소리의 자연적 속성이며, 인간이 듣는 모든 소리의 음색(Timbre)과 화성적 관계(Harmony)를 결정한다.
배음은 기본음 주파수의 2배, 3배, 4배, 5배 순으로 진동하며, 이 정수 비율은 자연의 수학적 질서를 반영한다. 저차 배음(2, 3, 4차)은 협화적 완전 음정을 만들고, 고차 배음(7, 9, 11차 등)은 보다 복잡하고 미세한 불협화 음정을 생성한다.
이 그림은 현악기에서 기본파 외에 배음들이 정수 배로 진동하며 울리는 방식을 보여준다. 저차 배음일수록 간격이 넓고 협화적이며, 고차 배음일수록 간격이 좁고 불협화적이다.
배음에서 파생된 2:1(옥타브), 3:2(완전 5도), 4:3(완전 4도) 등의 단순 정수비율은 인간의 귀에 가장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음정으로 인식된다. 이 점이 서양 화성의 근간이 되었으며, 조성은 이러한 배음 위계를 체계화한 인위적 구조라 할 수 있다.
배음에서 출발한 음악적 위계는 고대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조성이라는 체계로 정리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음정을 수학적 비율로 정의하고, 현의 길이를 정수 비율로 나누어 음정을 계산했다. 이를 통해 그는 조화로운 음정의 기준을 마련하였고, 순정률 시스템의 기초를 제공했다. 당시 음악은 경험적 감각이 아니라 수학적 이성에 기반하여 이해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중세 초기의 음악은 대부분 단선율이었다. 단선율에서도 여러 음이 연속될 때, 인간의 귀는 이전 음과 다음 음의 비율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한다. 피타고라스의 체계는 선율 이동 시 음정 비율이 정수 비율에 가까워지도록 조정되었으며, 당시 음악은 우주의 수학적 질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세 초기 음악에서는 화성보다는 테트라코드(연속된 네 개의 음) 중심의 선율적 질서가 우세했다. 테트라코드는 온음과 반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대표적인 형태는 온음-온음-반음, 온음-반음-온음, 반음-온음-온음이 있다. 이러한 테트라코드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 두 개를 연속으로 연결하여 모드(음계, 선법)를 형성했다. 예를 들어, 도-레-미-파와 솔-라-시-도 테트라코드를 연결하면 7음 장음계(이오니안 모드)가 완성된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같은 단선율 음악에서는 피날리스(종지음)가 선율의 안정점으로 사용되었지만, 화성적 근음과 같은 엄격한 위계는 없었다. 그러나 초기 오르가눔에서는 완전 5도와 4도를 동시에 울리며, 배음 기반의 기본적인 화성 위계가 처음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3도와 6도 음정이 안정화되면서 3화음이 형성되었고, 근음을 중심으로 한 화성적 위계가 명확해졌다. 장3화음의 구조는 배음에서 파생된 4:5:6 비율을 기반으로 하며, 자연스러운 울림을 인위적으로 구조화한 결과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3화음을 바탕으로 도미넌트 7화음, 감화음, 증화음 등 긴장 화음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화성적 긴장과 해소의 질서가 확립되었다. 특히 도미넌트(V) 화음은 반드시 최종적으로 토닉(I) 화음으로 해결되어야 했다. 이러한 구조는 배음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울림을 기반으로 하여, 조성과 기능 화성이 가장 정교하게 발달한 시기로 평가된다.
음악사에서 중요한 구조적 전환점 중 하나는 바흐(J.S. Bach)가 실용적으로 정립한 12평균율(이하 평균율)이다. 평균율은 현대 음악이론이 성립할 수 있는 물리적, 수학적 전제를 제공했다.
평균율이 등장하기 전에는 순정률(Just Intonation)과 피타고라스식 조율이 사용되었다.
순정률은 배음의 단순 정수 비율을 기반으로 음정을 맞추는 체계로, 완전 5도나 장3화음 같은 일부 음정에서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만, 조성을 자유롭게 바꾸면 음정이 맞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피타고라스식 조율은 완전 5도를 기준으로 음정을 정하는 방식이지만, 완전 5도를 12번 연속으로 쌓으면 피타고라스 콤마(Pythagorean comma)가 발생한다. 실제로 12번 쌓으면 최종 음은 처음 음과 약 23.46센트 차이가 나며, 한 옥타브는 1200센트로 정의된다. 센트는 반음을 100센트로 나눈 단위로, 음정 차이를 정밀하게 나타낼 수 있다. 피타고라스 콤마는 이렇게 누적된 작은 오차가 실제 연주에서 음정 불일치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텔퇴니히(Mitteltönig, 중간형) 조율법이 등장했다. 미텔퇴니히 조율법은 피타고라스 콤마를 특정 몇 개의 반음에 분산시켜, 순정률과 피타고라스식 조율이 지니던 조성 제한을 완화하려는 실용적 시도였다.
이후에는 옥타브를 더 촘촘히 나누어 콤마를 넓게 퍼뜨리려는 19음 조율법 같은 체계로도 이어지며, 피타고라스 콤마로 인한 음정 불편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조성을 보다 자연스럽게 연주하려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율법들 역시 각기 고유한 장단점과 타협을 갖고 있었으며, 결국 음악가와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선택되는 여러 대안들 중 하나에 머물렀다.
바흐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통해 평균율의 실용성을 보여주었다. 평균율에서는 옥타브를 12개의 동일한 반음 간격으로 나누며, 옥타브 비율 2를 12개로 나누면 각 반음의 비율은 약 1.05946이다. 이 체계는 배음의 완벽한 정수 비율을 일부 희생하지만, 모든 조성을 동일한 조건에서 연주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즉, 음정의 자연스러움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조성 간 전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전에는 5도권에서 도(C)를 시작으로 5도를 연속해 4~5개 이상 이동하면 피타고라스 콤마나 순정률 누적 오차로 심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평균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모든 조성에서 안정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음정의 동등성과 구조적 전제
평균율의 핵심 의미는 음정의 동등성이다. 이전에는 같은 음이라도 조성에 따라 다르게 기능했지만, 평균율에서는 예를 들어 파샵(F♯)과 솔플랫(G♭)이 실제 주파수상 동일한 음으로 간주된다. 이는 화성적 이름은 달라도 물리적 음정은 같다는 의미로, 음악적 구조에 균등성을 부여한다.
바흐는 조성의 수직적 위계는 유지하면서, 옥타브 내 수평적 음정 공간을 12개의 균등 단위로 나누었다. 이는 조성 질서가 해체되더라도 12개의 균등한 음이 남아, 이후 12음 기법과 같은 현대 음악 구조가 가능해지는 기반이 되었다.
바흐 이후 바로크 시대에서 발전된 조성 체계는 고전시대 모차르트와 하이든에 이르러 조성적 안정과 기능 화성의 완성이라는 절정을 맞았다. 작곡가들은 토닉, 도미넌트, 서브도미넌트를 중심으로 화성적 기능을 명확히 활용하며, 선율과 화성이 긴밀히 연동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듣는 이는 음악에서 조성 중심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고, 조성 위계와 화성적 논리는 음악적 미학의 핵심이 되었다.
이러한 안정된 조성 체계는 낭만 후기 작곡가들이 그 안에서 화성적 실험과 감정적 표현을 탐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안정적인 기능 화성과 명확한 조성 위계가 존재했기 때문에, 화성적 실험이나 조성의 모호화가 이전보다 극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고, 조성 체계의 중심이 점차 모호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흐가 평균율을 통해 안정적인 옥타브 체계를 마련한 이후, 19세기 말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표현의 극대화와 감정의 심화를 추구하며 조성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조성 체계의 붕괴를 예고하는 전조로 볼 수 있다.
리스트(Franz Liszt)는 기존 조성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증3화음과 감7화음 등을 활용하여 화성적 색채와 감정을 강화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파우스트 심포니"에서는 증3화음을 네 번 사용하며 모든 12음을 한 번씩 활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화성적 접근은 조성 체계 내에서 긴장과 다양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방법이었다.
바그너(Richard Wagner)는 후기 작품에서 복잡한 반음계적 진행과 불협화음을 사용하여 조성 중심을 흐리게 만들었다. 특히 트리스탄 화음은 단일 화음으로 조성적 기능을 명확히 해석하기 어렵게 하며, 청자가 조성적 안정성을 쉽게 느끼지 못하게 했다. 바그너의 무한 선율은 화성적 해결을 지연시켜 이러한 효과를 강화했다.
낭만 후기 작곡가들은 조성적 기능과 화성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음색과 감정적 표현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조성 위계의 중심이 점차 모호해지는 효과가 나타났고, 이러한 경향은 조성 체계 붕괴의 전조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성 체계의 해체는 단순히 화성 구조가 복잡해진 결과가 아니었다. 19세기 말 서구 사회의 심리적, 철학적 변화가 음악에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과 함께 예술은 합리적, 구조적 외부 세계보다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성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이러한 내면적 불안을 표현하는 데 제약이 되었다.
또한 낭만주의에서 추구한 극단적 감정 표현은 조성의 규칙적 틀을 넘어설 필요성을 요구했다. 이후 쇤베르크의 표현주의 음악에서 나타나듯, 극단적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조성의 규칙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무조(Atonality)가 등장하게 된다. 조성 붕괴는 이러한 심리적, 미학적 요구와 긴밀히 연결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가 시작한 조성 붕괴의 흐름은 20세기 초, 바흐가 마련한 12개의 균등한 음을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대립적 접근이 나타났다.
첫 번째는 감각적 해체로,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음악에서 나타난다. 드뷔시는 옥타브를 6등분한 온음 음계와 펜타토닉, 교회선법 같은 제한적 모드를 사용하여 조성적 안정감을 점차 무너뜨렸다. 온음 음계는 전통적 도미넌트-토닉 구조와 같은 반음계적 긴장이 없기 때문에, 화성적 중심이 부유하는 듯한 울림을 만든다. 초기 작품에서는 온음 음계의 음을 3도 간격으로 쌓아 도미넌트 화성을 만들기도 해 전통적 화성 구조의 흔적을 남겼지만, 점차 청각적 흐름과 음색 중심으로 조성 질서를 점진적, 감각적으로 해체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스펙트럴 음악에서 음색을 중심으로 구조를 구성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두 번째는 체계적 해체로,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가 대표적이다. 그는 12개의 반음을 모두 동등하게 취급하여 근음 위계를 제거하고, 기존 화성적 위계를 인위적인 규칙, 즉 음렬로 대체했다. 이를 통해 음정 관계의 자유를 탐색하고, 12음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이 접근은 조성 질서를 수학적, 구조적으로 재조직하고, 새로운 인위적 구조를 창조하는 현대 음악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현대 음악이론의 근본적 전환은 우연이 아니라, 음악사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음악의 기초적 질서를 제공한 것은 배음 시스템이었다. 배음은 자연적인 음정 관계를 형성하며, 이후 서양 조성 체계의 기반이 되었다. 이어서 바흐의 평균율은 옥타브를 12개의 균등한 단위로 나누어 음악적 공간에 구조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조성 간 자유로운 전환과 다양한 화성적 탐색이 가능해졌다.
19세기 낭만 후기에는 감정과 표현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조성적 위계가 점차 약화되었다. 드뷔시는 온음계와 제한적 모드, 음색 중심의 작곡 기법을 활용하여 조성 질서를 점진적으로 흐리게 했고, 쇤베르크는 12개의 반음을 모두 동등하게 취급하여 근음 위계를 제거하고, 기존 화성적 위계를 인위적인 음렬 체계로 대체했다.
이 과정을 거쳐, 전통적 조성 위계를 기반으로 한 음악적 사고에서 벗어나, 음악을 구조적, 수학적 문제로 인식하고 조직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형성되었다.
1편: 바흐에서 바그너까지
2편: 12음 기법의 혁명
3편: 메시앙의 통합적 실험
4편: 스펙트럴 음악: 자연 질서로의 회귀
5편: 포스트-스펙트럴 시대의 현대 음악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