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쓰기도 아깝다
우연히 또 한 번, "객석"이라는 자칭 공연∙예술 전문지라는 곳에서 발간한 노먼 레브레히트의 칼럼을 접하게 되었다.
2026년 1월 호 월간객석 Vol.503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 | 위대한 작곡가의 종말
The End of a Great Composer 위대한 작곡가의 종말
그리고 몰락이 시작됐다. 1971년 스트라빈스키의 죽음은 위대한 작곡가의 종말을 고했다. 그로부터 4년 뒤 눈을 감은 쇼스타코비치를 제외하면 이제 현존하는 어떤 작곡가의 이름도 저녁상에 오르지 않는다. 수헤에 오늘날을 돌아본다면 미래의 기준에서 '위대함'을 충족할 만한 21세기 작곡가를 찾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뒤적여야만 할 것이다.
내게 깍듯이 물어본다면 한두 명 정도는 댈 수 있다.
먼저 에스토니아의 먼 숲속 깊은 곳에 사는 아르보 패르트(1935~)다.
'프라트레스' 같은 작품이나 교향곡 3번은 처음 들으면 끝없는 것처럼 느껴져 그 영속성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패르트는 볼셰비키 혁명이나 피에르 불레즈의 열성팬들, 비평 정론, 패션의 변화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싱어송라이터나 라디오헤드 같은 타 음악 아티스트들도 패르트를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다.
그는 일말의 자기 홍보 없이도 현시대, 그리고 그 너머와 소통한다.
또 다른 잠자는 사자를 언급하자면, 우선 참회부터 해야 한다.
2000년대 초, 나는 존 윌리엄스(1932~)에 대해 자신만의 독창적 아이디어 하나 없는 '좀도둑 마에스트로'라고 조롱하는 에세이 한 편을 썼다. 그 때 내 귀는 드뷔시 모티프의 '녹턴 앨리', 스메타나 모티프의 '콜린', 홀스트 모티프의 '모우닝 머틀'이 포함된 영화 '해리포터'의 음악을 향해 있었다.
사실에 기반한 분석이었고, 여전히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놓쳤던 진실이 있다면 존 윌리엄스가 심각한 도벽을 보이긴 해도, 우리 시대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목소리라는 점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작곡가 윌리엄스에 대해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은 베토벤은 교향곡 5번의 주제를 만들기 위해 4개의 음을 썼으나, 존 윌리엄스는 영화 '죠스'에서 단 두 개의 음으로 이를 해냈다고 말한다.
'두 개의 음'을 강조하며 슬래트킨은 이렇게 외친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요! 업적을 확실하게 보증할 사람이 있다고요."
이 상어 영화로 윌리엄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는 서로를 찾아낸 모차르트와 극작가 다 폰테의 공생 관계에 필적하는 가까운 사이였다.
피아니스트 앙드레 프레빈은 그의 귀에 대고는 베벌리힐스 밖으로 나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진지한 작품을 써보라고 설득했다.
윌리엄스는 12음 기법을 확립한 쇤베르크가 와서 옳다구나 할 수준의 12음으로 악보를 채웠다.
그는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교향곡 한 곡과 다양한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다수 써냈는데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현재 93세의 존 윌리엄스는 구스타프 말러처럼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기도 한다.
대략 이런 처참한 수준의 칼럼이다.
이제부터 물고 뜯어보자.
베토벤도 당시에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교향곡 3번 '영웅'은 1805년 초연 당시 일부 청중과 동료 음악가들에게 충격과 혼란을 주었다. 너무 길고, 너무 복잡하며, 너무 과격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한 비평가는 '베토벤이 정신을 잃었다'고까지 썼다. 후기 현악 사중주들은 더욱 심한 무시를 받았다. 동시대 연주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며 거부했고, 청중은 텅 빈 공연장으로 답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후기 사중주들을 베토벤의 가장 심오한 업적으로 여긴다.
바흐의 마지막 작품들, 특히 "푸가의 기법"과 "음악의 헌정"은 당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대위법이라는 조롱을 받았고, 그가 죽은 뒤 거의 한 세기 동안 잊혔다. 바흐의 아들들조차 아버지의 후기 작품을 '너무 학구적'이라며 거리를 두었다. 멘델스존이 바흐를 재발견하고 "마태 수난곡"을 1829년 재연주하기 전까지, 바흐는 음악사의 각주에 불과했다.
드뷔시는 초기에 불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1902년 초연 당시 '반음악적'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한 비평가는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의 연속'이라고 썼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1913년 초연 당시 폭동을 일으켰다. 청중은 야유했고, 비평가들은 '도덕적 질서를 파괴한다'라고 규정하며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어떤 평론가는 '이것은 음악의 종말'이라고 선언했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은 1920년대 빈에서 스캔들을 일으켰다. 연주회마다 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이 출동해야 했다. 바르톡은 헝가리에서 외면당했고, 미국 망명 시절 극심한 빈곤 속에 죽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초연 때마다 혹평을 받았고, 한스리크 같은 당대 최고 비평가는 그를 '바그너의 형편없는 모방자'라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날 이들을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작품의 힘과 지속성은 당시 비평가의 눈치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명확하게 보여준다. 동시대의 이해 부족은 작품의 가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동시대에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라는 논리는 참으로 우습다.
레브레히트는 칼럼에서 '1971년 스트라빈스키의 죽음은 위대한 작곡가의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한다. 그로부터 4년 뒤 쇼스타코비치를 제외하면 이제 현존하는 어떤 작곡가의 이름도 저녁상에 오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미래의 기준에서 위대함을 충족할 만한 21세기 작곡가를 찾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뒤적여야만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녁상에 현대 작곡가의 이름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위대한 작곡가가 사라져서인가? 아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작곡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 때문이다. 대중이 그것을 믿으면, 당연히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시장은 이런 작곡가들의 작품을 배제한다. 연주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며, 대중의 귀에는 닿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말을 처음 퍼뜨린 사람에게 권위가 붙으면, 모두가 그것을 믿는다.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는 개소리가 권위 있는 매체를 통해 반복되면, 실제로 현대 작곡가들은 무대에서 밀려난다. 연주회 프로그래머는 안전한 레퍼토리만 선택한다. 음반사는 투자를 거부한다. 음악 교육기관은 커리큘럼에서 배제한다. 그러면 '역시 위대한 작곡가가 없구나'라는 결론이 완성된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위대한 작곡가는 지금도 존재한다. 다만 그들을 발견하고 소개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먼저 눈을 감았을 뿐이다.
레브레히트가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고 부르는 곳은, 사실 그 자신이 볼 의지가 없는 곳일 뿐이다. 어둠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은 사람의 내면에 있다. 자기가 눈을 감고서 어둡다고 하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는가. 문제는 그런 사람이 권위를 가진 평론가이고, 그의 말을 권위 있는 매체가 실어 나르며,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다는 점이다.
드뷔시는 필명 'Monsieur Croche'로 활동하며 동시대 작품을 냉정하지만 성실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의 평론은 날카로웠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결코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시대 작품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겼다. 드뷔시는 비평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했다. 단순히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해석하며 소개하는 것이다.
슈만이 1834년 창간한 "Neue Zeitschrift für Musik"은 19세기 독일 음악계에서 새로운 작곡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슈만은 창간호에서 명확히 밝혔다. '옛 시대의 위대함을 상기시키고,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아름다움이 더욱 널리 퍼지도록 기여하는 것'이 잡지의 목표라고. 슈만과 동료 평론가들은 당대의 편견이나 충격에 굴하지 않고, 쇼팽과 브람스를 세상에 알렸다. 슈만은 쇼팽의 작품번호 2번을 처음 듣고 '신사 숙녀 여러분, 천재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젊은 브람스를 발견했을 때는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그를 소개했다.
이것이 평론가의 역할이다. 동시대를 살며 동시대의 천재를 알아보고, 세상에 알리는 것. 오늘날 우리가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하는 수많은 작품이 이런 검증과 소개 공간을 통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드뷔시 같은 비평가도, 슈만 같은 잡지도 없다. 대신 존재하는 건, 권위(도대체 누가 세워주었는지도 모를 권위)라는 갑옷 뒤에 숨어 '없다'고 선언하며 시장과 대중을 조종하는 자들뿐이다. 레브레히트는 스트라빈스키가 1913년 "봄의 제전"으로 받았던 조롱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베토벤이 동시대에 받았던 비이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바흐가 사후 거의 잊혔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고,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자기 귀와 취향에 맞지 않는 작곡가는 종말 했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베토벤과 브람스만 좋아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맛있다고 그것만 먹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문제는 파인 다이닝에서 나오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재료와 테크닉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을 먹어보지도 않고 아무 이유 없이 다 맞지 않고 별로라고 선언하는 사람이다.
콩고기가 있으면 최소한 먹어는 보고, 맛이 별로다, 비싸다, 비현실적이다 등등 떠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한 비평이다. 직접 경험한 후의 판단이니까. 하지만 먹어보지도 않고 '콩고기는 음식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면? 그것도 나름 권위 있는 매체의 힘을 빌려서.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무지다.
레브레히트가 한 일은 이것과 정확히 같다. 일종의 미슐랭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레스토랑은 찾아가 보지도 않고, 음식도 먹어보지 않고, '3스타를 줄 레스토랑이 없다'고 떠드는 것이다. 미슐랭 평가자가 그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새로운 레스토랑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투자자는 돈을 빼고, 언론은 관심을 끊는다. 그러면 정말로 좋은 레스토랑이 사라진다. '역시 3스타 레스토랑은 없구나'라는 결론과 함께.
평론가의 책임은 막중하다. 일반 청중은 자기 취향대로 음악을 들으면 된다. 하지만 평론가는 다르다. 평론가는 청중이 아직 모르는 것을 찾아내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하며, 아직 주목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슈만이 브람스를 발견했을 때, 대중은 브람스를 몰랐다. 하지만 슈만은 찾았다. 그것이 그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레브레히트는 정반대를 한다. 찾지 않고 '없다'고 말한다. 듣지 않고 '들을 게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에는 안타깝게도 권위가 실린다. "객석" 같은 무지한 매체가 실어주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믿는다. 권위자가 말했으니 사실일 거라고.
이것은 오만이다.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했다. 동시대의 판단은 거의 항상 틀렸다.
"객석"이라는 잡지가 나름 권위를 가진 매체일 텐데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잡지를 몇십 년째 503권이나 발행하는 일을 하는 곳은 없다), 스스로 그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을 한다. 유명인(인지도 모를 사람)의 목소리로 포장된 이런 주장을 정보가 없는 사람들에게 퍼뜨리면서, 결과적으로 음악계를 더 개판으로 만든다.
"객석"이 한 일은 단순히 글을 실은 수준이 아니다.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는 말이 정론처럼 독자에게 각인되도록 했다. 칼럼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런 주장을 실었다는 것은, 편집진이 이 내용을 검토하고 승인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개인의 의견을 넘어, 매체가 공인한 담론이 된다. 그 결과 동시대 작곡가는 무시당한다. 이들은 현실에서 존재하지만, 발견할 의지도 기록할 의지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난다.
과거 슈만의 "Neue Zeitschrift für Musik"은 동시대 작품이 기록되고 전파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다. 매 호마다 새로운 작곡가를 소개했고, 작품을 분석했으며, 논쟁을 촉발했다. 잡지는 살아있는 음악 생태계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객석" 같은 매체는 정반대의 일을 한다. 권위를 남용해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고 말하고, 이를 퍼뜨린다. 새로운 작곡가를 소개하는 대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품을 발굴하는 대신, 발굴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위대한 작품들은 여전히 세상 곳곳에 널려 있지만, 그들을 발견하고 소개할 공간이 사라진다.
매체의 책임은 막중하다. 개인 평론가의 의견은 그저 의견일 뿐이지만, 권위 있는 매체가 그것을 실어 나르면 진실처럼 받아들여진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이 심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객석" 같은 매체가 하는 말은 많은 사람에게 유일한 정보원이 된다. 그런 매체가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찾는 것을 멈춘다. 왜 찾겠는가. 권위자가 없다고 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방관하는 사람들이다.
레브레히트 같은 자칭 평론가 나부랭이가 있어 보이는 칼럼으로 위장한 허튼소리를 해도 아무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객석" 같은 환경오염 매체가 이런 글을 실어도 아무도 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 편집자들, 음악계 인사들 모두가 침묵한다.
왜 침묵하는가. 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곡가를 발굴하고 옹호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공부해야 하고, 듣고 또 들어야 하며, 때로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게 무슨 음악이냐'는 조롱을 견뎌야 한다. 반면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고 말하면 편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베토벤이나 브람스만 연주하면 되니까. 안전하고, 검증되었고, 돈이 되니까.
이것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동시대 작곡가를 모른다. 찾아볼 생각도 없다. 듣지도 않았으면서 '없다'고 말한다. 레브레히트가 말했으니까. "객석"이 실었으니까. 그러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공모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구조가 편하다.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 연주하고, 같은 이름을 반복 소비하며, 같은 담론을 반복 생산하는 구조.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이 구조가 흔들린다. 기득권이 위협받는다. 그래서 침묵한다. 방관한다. 공모한다.
그 결과 동시대 작곡가는 무대에서 밀려나고, 기록과 논의에서 배제되며, 대중의 귀에는 닿지 않는다. 모든 구조가 그들을 지우는 쪽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사람들은 아무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저 글 하나 실었을 뿐'이라고, '나는 그저 연주회 프로그램 하나 짰을 뿐'이라고, '나는 그저 침묵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드뷔시 같은 평론가와 슈만 같은 잡지가 작품을 검증하고 소개했다. 그들은 위험을 감수했다. 비난받을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천재를 옹호했다. 오늘날에는 이런 공간과 시선이 사라졌다. 그 때문에 존재하는 위대한 작품조차 제대로 발견되지 못하고 묻혀버린다.
책임은 명확하다. 글을 쓴 레브레히트, 그의 글을 실어 나른 "객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방관하고 무시한 사람들. 편집자들, 연주자들, 프로그래머들, 교육자들, 그리고 우리 모두. 이들이 오늘날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는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음악계를 더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묻자.
정답은 명확하다.
슈만은 찾았다. 듣고, 판단하고, 세상에 알렸다. 드뷔시는 동시대의 혁신을 기록했다. 자기 귀에 익숙하지 않아도,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평론가의 역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정직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은 평론가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연주회에 갔을 때, 모르는 작곡가의 이름을 보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불평하는가, 아니면 호기심을 갖는가. 음반을 살 때, 안전한 선택만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가. 매체가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고 말할 때, 그냥 믿는가, 아니면 의문을 품는가.
위대한 작곡가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존재는 늘 있었고, 지금도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 문제는 누가 그들을 찾아 기록하고 세상에 보여줄 것인가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가다. 그리고 그 방관과 무시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준다. 동시대의 판단은 틀릴 수 있다. 베토벤을 이해 못 한 사람들, 바흐를 잊은 사람들, 스트라빈스키를 조롱한 사람들. 그들은 모두 틀렸다. 그렇다면 오늘날 '위대한 작곡가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역사는 어떻게 판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