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클래식 아는 척 하기 (11편)

베리오의 음향 실험: 민요의 해체와 현대적 재건

by 돈 없는 음대생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는 20세기 현대 음악이 직면한 지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오래된 음악적 자산인 민요를 전위 음악의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민속 선율을 단순히 인용하거나 미화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민중의 목소리를 하나의 '음향적 원자재'로 다루며 클래식 음악의 경직성을 흔들었다. 이를 통해 유산으로서의 민요를 현대적 음향으로 재구성했다.


총렬주의의 엄숙함을 깨뜨린 민요


1960년대 현대 클래식 음악은 '총렬주의'(Serialism) 이후의 영향 아래 극도로 구조적이고 지적인 엄숙주의에 갇혀 있었다. 작곡가의 수학적 계산에 의해 통제되는 음악은 청중과의 접점을 잃었고, 연주 기교 또한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추상적 영역으로 치닫고 있었다. 베리오는 이러한 경직된 음악 지형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고자 했다.


그가 택한 전략은 민중의 삶에서 우러나온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민요가 지닌 불규칙한 리듬, 비음 섞인 발성, 정형화되지 않은 선법을 전위 음악의 엄격한 구조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단순한 이국적 장식이나 정취 차원을 넘어선 창조적 충돌을 일으켰다. 민요는 더 이상 보존해야 할 유물이 아니라, 현대 음악의 폐쇄적인 문법을 해체하고 확장할 수 있는 강력한 음향적 자원으로 재탄생했다.


《포크송》: 민요의 음향적 본질을 재조직하다


1964년 발표된 《포크송》(Folk Songs)은 루치아노 베리오의 미학적 의도가 응축된 작품이다. 미국, 아르메니아, 프랑스, 시칠리아, 아제르바이잔 등 7개국에서 수집한 11곡의 민요를 실내악 편성으로 재구성하며, 단순 편곡을 넘어 민요의 '음향적 본질'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조직했다. 이를 통해 민중의 목소리는 현대 음악의 구조 안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으며, 고전적 기법과 원초적 표현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 Black Is the Colour (미국, 존 제이컵 나일스 John Jacob Niles)
2. I Wonder as I Wander (미국, 존 제이컵 나일스 John Jacob Niles)
3. Loosin yelav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전통민요)
4. Rossignolet du bois (프랑스, 프랑스 전통민요)
5. A la femminisca (이탈리아, 시칠리아 전통민요)
6. La donna ideale (이탈리아, 루치아노 베리오 Luciano Berio)
7. Ballo (이탈리아, 루치아노 베리오 Luciano Berio)
8. Motettu de tristura (이탈리아, 사르데냐 전통민요)
9. Malurous qu'o uno fenno (프랑스, 오베르뉴 전통민요)
10. Lo fiolairé (프랑스, 오베르뉴 전통민요)
11. Azerbaijan Love Song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전통민요)

《포크송》의 기본 편성은 메조소프라노, 플루트(때로 피콜로 겸용), 클라리넷, 하프, 비올라, 첼로, 두 개의 타악기로 구성된다. 이 편성은 민요가 원래 연주되던 악기와 달라, 선율적·리듬적 요소를 현대적 음향 질감으로 변환한다. 예컨대 하프의 아르페지오는 전통 악기의 역할을 대신하면서도 클래식 특유의 정제된 화성을 덧입힌다.


베리오는 민요의 원래 리듬과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리듬적 강조와 화성적 변주를 통해 전위 음악의 언어 안으로 흡수한다. 단순한 편곡을 넘어, 민요가 지닌 지역적 특성은 현대 음악적 구조 속에서 재조직되며, 악기들은 선율을 감싸면서 전위적 색채와 문화적 뿌리를 동시에 드러낸다.


작품의 완성도는 루치아노 베리오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캐시 버베리안(Cathy Berberian)의 보컬에 크게 의존했다. 그녀는 정통 벨칸토 창법을 바탕으로 각 민요가 요구하는 다양한 발성적 색채를 구현했다. 아르메니아 민요의 음색, 북미 산악 민요의 소박한 울림, 프랑스와 시칠리아 노래의 지역적 발성 등이 하나의 연작 안에서 표현적·연기적으로 통합되었다.


베리오 - Folk Songs (Cathy Berberian)


베리오 - Folks Songs - 11. Azerbaijan Love Song (Luciano Berio 지휘, Cathy Berberian 성악)


이러한 접근은 클래식 성악의 권위적 발성법을 해체하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현대 음악의 표현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캐시 버베리안의 목소리는 민속적 발성과 현대적 기교를 매개하며, 민요의 원초적 에너지를 클래식 무대라는 인위적 공간 속에서도 생생하게 구현했다.


시칠리아 사랑 노래의 두 가지 변주


이 흐름은 《바이올린 이중주를 위한 34개의 듀엣》(34 Duetti per due violini, 1979–1983)의 〈Aldo〉에서도 이어진다. 작곡가는 바이올리니스트 친구가 "벨라 바르톡(Béla Bartók)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충분한 바이올린 이중주곡이 없다"라고 말한 데서 영감을 받아, 틈틈이 새로운 이중주곡을 완성했다. 바르톡의 이중주곡과 마찬가지로, 이 듀엣들에는 교육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들어보면 알 수 있듯, 두 파트 중 하나는 비교적 쉽고, 특정 테크닉이나 다양한 표현 방식, 심지어 바이올린 특유의 연주법을 익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Note d’autore: informazioni generali


모든 듀엣은 특정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으며, 〈Aldo〉는 바이올리니스트 알도 벤니치(Aldo Bennici)를 기리기 위해 쓰인 작품이다. 시칠리아 사랑 노래를 기반으로, 교육적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 비교적 쉽고 간결한 화성으로 구성되었다.


베리오 - 34 Duetti per due violini - Aldo


이어 2002년 발표된 《만약 내가 물고기라면》(E si fussi pisci)은 동일한 시칠리아 사랑 노래를 아카펠라 합창곡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를 위해 창작된 이 곡은 민요가 가진 원초적 정서를 유지하면서, 합창적 구성과 새로운 음향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Aldo〉와 《E si fussi pisci》는 민요를 단순한 장식이나 인용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현대 음악 안에서 의미 있는 표현으로 재배치하며, 전통적 선율과 현대적 맥락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베리오 - E si fussi pisci


비틀즈를 실내악으로: 대중가요를 클래식 앙상블에 배치하다


루치아노 베리오는 대중문화의 정점에 있던 비틀즈의 노래들을 1965~1967년에 걸쳐 실내악적 구성으로 편곡했다. 이 《비틀즈 노래들》(Beatles Songs) 연작은 존 레논(John Lennon)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선율을 메조소프라노와 악기 편성으로 바꾸어 구성한 것으로, 〈Michelle I〉, 〈Michelle II〉, 〈Ticket to Ride〉, 〈Yesterday〉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곡은 다양한 소편성으로 편성되어 각각 2분 안팎의 길이로 짧게 연주되며, 팝송을 클래식 음악의 소규모 앙상블 형식 안에 놓았다.


베리오 - Beatles Songs

베리오의 〈예스터데이〉(Yesterday) 편곡은 원곡의 통기타 반주나 팝적 감성과는 다른 질감을 탐색한다. 그는 첼로, 플루트, 하프시코드를 배치하여 원곡의 선율 아래 복잡한 음향 구조를 구축했다. 이렇게 변형된 선율은 베리오의 손을 거치며 고도로 정제된 실내악적 서정으로 탈바꿈하며, 대중문화의 산물을 '고전'적 맥락 안으로 끌어올렸다.


베리오 - Yesterday

이러한 편곡은 단순히 비틀즈의 노래를 '클래식 스타일로 연주'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곡의 짧은 길이와 다양한 편성은 팝 음악의 원형적 선율을 여러 음향적 상황 속에 배치함으로써, 청중이 익숙한 멜로디를 새로운 음악적 맥락에서 다시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Michelle II〉의 두 가지 편성은 악기 구성에 따라 서로 다른 음향적 색채를 드러내고, 〈Ticket to Ride〉나 〈Yesterday〉는 각각 다른 앙상블과 결합하며 소규모 실내악의 질서 속에서 팝 멜로디를 새롭게 들리도록 만든다.


베리오 스스로도 당시 대중가요와 현대 음악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표명했으며, 이러한 편곡은 그의 민요 수집과 재구성 작업(《포크송》 등)과 맞닿아 있다. 비틀즈 곡을 다양한 앙상블로 배치함으로써, 그는 대중적 선율을 클래식 음악의 관점에서 새롭게 들려주는 실험적 장치를 마련했다. 각 편곡은 원곡의 핵심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조성, 악기 배치, 선율의 포착 방식이 새롭게 재구성되도록 설계되었다.


베리오에게 비틀즈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민요'였다. 그는 현대인이 공유하는 대중적 기표를 클래식 무대라는 인위적 공간으로 가져와 재맥락화했다. 〈예스터데이〉를 듣는 청중은 익숙한 멜로디를 인지하면서도, 현대 음악적 불협화음과 비전형적 악기 배합 속에서 낯선 미학적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


민요의 탈맥락화와 보편적 재구성


베리오의 이러한 작업은 인류음악학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논쟁거리를 던진다. 그는 민요와 팝이 지닌 '지역적 특수성'과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고, 이를 오직 '보편적 현대 예술'의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민요는 본래 특정 공동체의 삶과 역사 속에서 구체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포크송》에서 노래들은 그 구체적 맥락에서 분리된다. 베리오는 민요의 가사나 역사적 배경보다는, 그 소리가 가진 '음향적 질감'에 집중했다.


그를 통해 민요는 '현대적 보편성'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민중의 목소리는 베리오의 정교한 관현악 편성 속에서 고유한 힘을 유지하면서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 세계 청중과 만나는 보편적 예술로 재구성된다.


베리오의 접근은 단순한 취향의 결합이 아니라, 현대 음악의 생존을 위한 지적인 크로스오버였다. 그는 민요의 원초적 발성과 팝의 선율적 친숙함을 현대 음악의 구조 속으로 가져옴으로써, 총렬주의가 초래한 음악적 공허를 메우고자 했다. 가공되지 않은 민중의 목소리는 현대 음악의 엄격한 구조 속에 스며들어, 클래식에 결핍되었던 '육체성'과 '생동감'을 회복시켰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논점은 오늘날 샘플링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원전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예술적 맥락 안에 배치하는 베리오의 방식은, 클래식이 더 이상 단순한 보존자가 아니라, 적극적 '재맥락화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클래식의 경직성을 깬 민중의 생명력


베리오의 작업은 클래식이 대중적 원자재를 수용하고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민요를 단순히 클래식의 틀 안에 끼워 맞추는 대신, 민요가 지닌 표현적 에너지를 활용해 클래식의 틀 자체를 확장했다.


《포크송》과 《비틀즈 노래들》은, 클래식의 엄숙함이 민중의 생명력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미학적 폭발을 증명한다. 민요를 해체하고 현대적 음향 구조로 재건함으로써, 클래식 음악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유연한 그릇으로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러한 지적 재배치는 이후 작곡가들이 대중문화의 요소를 거리낌 없이 예술적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미학적 자유의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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