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클래식 아는 척 하기 (12편)

프란츠 레하, 오페라의 형식에 대중의 감정을 채우다

by 돈 없는 음대생

프란츠 레하(Franz Lehár)는 클래식 음악이 스스로의 위상을 낮추는 대신, 감정의 즉효성을 얻는 길을 택했을 때 어떤 결과에 도달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오페라의 형식을 해체하지 않았다. 대신 그 형식 안에 대중이 즉각 반응할 수 있는 감정만을 밀어 넣었다. 이 선택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었다. 이 순간부터 예술 음악은 더 이상 폐쇄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대중적 감정의 흐름 속으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이 변화가 가장 응축된 형태로 드러나는 작품이 《미소의 나라》(Das Land des Lächelns, 1929)이며, 그 중심에 놓인 아리아가 바로 〈그대는 나의 모든 것〉(Dein ist mein ganzes Herz)이다. 이 곡은 오페레타가 현대적 감상주의의 문법을 어떻게 정식화했는지, 그리고 그 문법이 이후 팝 발라드와 영화음악으로 어떤 경로를 따라 옮겨갔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점이다. 레하의 중요성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경계를 유지한 채, 내부의 정서와 감각을 완전히 새로 구성해버렸다.


제국의 몰락과 오페레타의 변모


19세기 후반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가 정립한 빈 오페레타는 제국의 안정과 지속을 전제로 한 오락 양식이었다. 그 세계에서 갈등은 일시적이고, 정서는 가볍게 해소되며, 음악은 현재의 질서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균열이 가시화되자, 이러한 전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전쟁 전후의 빈은 몰락의 정서를 공유했고, 오페레타 역시 웃음을 제공하는 외형을 유지한 채 그 내부에 상실과 체념을 끌어안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프란츠 레하는 이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인물이다. 그는 기존 오페레타의 경쾌한 희가극적 흐름 위에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발전한 비극적 서정을 겹쳐 놓았다.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특히 《라 보엠》(La Bohème, 1896)과 《토스카》(Tosca, 1900)에 나타나는 감정의 밀도와 선율의 지속성은 레하가 주목한 중요한 기준점이었다. 푸치니가 무대 위 인물의 고통을 짧고 강렬한 정점으로 집중시켰다면, 레하는 그 강도를 완화하는 대신 정서를 길게 늘려, 관객이 서서히 잠길 수 있는 감상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순간적인 비극이 아니라,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슬픔이 그의 음악을 지배한다.


이 선택은 순수한 미학적 판단에 그치지 않았다. 전쟁 이후의 빈에서 귀족 계층과 도시 시민은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여유를 잃고 있었다. 레하는 이러한 회피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냈다. 그의 음악은 비판이나 저항을 요청하지 않는다. 대신 충분히 세련되어 보이면서도, 복잡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감정을 제시한다. 이 지점에서 오페레타는 더 이상 오페라의 주변부에 머물지 않고, 감상주의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양식으로 자리를 굳힌다.


이 과정에서 레하는 기존 오페레타가벼운 희극성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비극적 서정성결합하며 이른바 '실버 에이지'(Silver Age)라 불리는 국면을 열었다. 그의 음악적 변화는 푸치니와의 교류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두 작곡가 사이에는 서신을 통한 의견 교환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푸치니는 레하의 선율 감각이 오페라적 완성도에 근접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 레하는 《라 보엠》과 《토스카》에서 드러나는 '베리스모'(Verismo, 사실주의) 특유의 감정 분출을 분석하며, 본래 오페라 무대에 귀속되던 장대한 관현악과 과잉된 정서를 오페레타라는 보다 넓은 그릇으로 옮겨왔다. 이는 예술 음악의 문법을 대중적 감상주의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한 본격적인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푸치니 - 라 보엠 - Si mi chiamano Mimi

〈미미,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Si, mi chiamano Mimi)
가난한 여주인공 미미가 자신의 사랑과 삶의 불안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 감정이 섬세하게 밀려오면서 사실적 사랑의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푸치니 - 토스카 - E lucevan le stelle

〈아무도 들을 수 없다〉(E lucevan le stelle)
주인공 카바라도시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과 삶에 대한 절망을 노래. 사실적 상황 속에서 인간 감정의 극한이 드러난다.
실버 에이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나타난 오페라·음악의 국면으로, 기존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 감정 표현과 선율의 세련미가 한층 강조된 시기를 가리킨다. 이전 시기의 강렬하고 극적인 '황금기'와 달리, 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색채가 특징이며, 작곡가들은 현실적 상황과 인간 심리를 정교하게 그려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미학적 선택은 당시 빈의 경제적 조건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빈은 경제적 붕괴와 사회적 불안이 겹쳐진 도시였고, 몰락한 귀족 사회의 우울이 문화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오페레타의 화려한 무대와 풍부한 음향은 현실의 결핍을 잠시 잊게 하는 공간으로 쓰였다. 레하는 이 시대적 정서를 더욱 장식적인 관현악으로 감싸며, 도피적 감수성을 정교하게 조직해냈다. 에릭 사티(Erik Satie)가 절제와 단순함을 통해 예술의 허위를 드러냈다면, 레하는 반대로 클래식의 외형을 더욱 윤색함으로써 관객이 그 안에서 가상의 품격과 안정감을 체감하도록 만들었다.


이 시기 형성된 이른바 '살롱 미학'은 전통적인 엄숙함이 빠져나간 자리에 반복 가능하고 각인력 높은 선율을 채워 넣는다. 레하의 아리아들은 한 번의 청취로 기억에 남는 구조를 지니며, 관현악 역시 성악을 떠받치는 배경에 머물지 않고 정서의 흐름을 주도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을 통해 오페레타는 오페라의 부속물이라는 인식을 넘어, 근대적 의미의 대중 예술로 독립적인 위상을 확보하게 된다.


타우버의 목소리를 위해 쓰인 음악: 타우버 리트


레하의 전략이 결정적인 효과를 드러낸 지점은 리하르트 타우버(Richard Tauber)와의 결합에서다. 이 관계는 작곡가와 가수의 일반적인 협업이라기보다, 특정한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감정의 전달 방식을 설계한 결합에 가깝다. 레하는 추상적인 성악 이상을 전제로 곡을 쓰지 않았다. 그는 타우버의 음색, 호흡의 길이, 발음의 리듬을 기준으로 선율의 윤곽을 정리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은 이러한 접근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결과물이다. 이 곡에서 감정은 극적인 전개를 통해 고조되지 않는다. 대신 한 문장, 한 호흡 단위로 차곡차곡 쌓인다. 타우버는 이 노래에서 감정을 과시하지 않는다.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고백한다. 이는 오페라에서 기대되는 영웅적 발성과는 분명히 다른 방식이다. 청중은 무대 위 인물을 숭배하는 대신, 그의 정서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음악이 전달하는 감정은 집단적 서사에서 떨어져 나와 특정한 목소리에 귀속된다. 이후 대중음악 전반에서 반복되는 이 구조는, 레하와 타우버의 결합을 통해 이미 뚜렷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레하는 타우버를 통해 클래식 음악이 익명적인 감정 전달을 내려놓고, 개인화된 정서로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오페레타는 스타 중심의 소비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레하의 하향식 전용이 상업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결합이 자리한다. 전통적으로 클래식 음악에서 작곡가와 연주자의 관계가 작품의 완결성을 구현하기 위한 예술적 동반자였다면, 레하와 타우버의 관계는 현대 대중음악에서 기획자와 스타의 관계에 더 가깝다. 19세기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가 초인적인 기교를 통해 연주자를 신화화했다면, 레하는 타우버라는 개인의 친밀한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음악의 구조 자체를 다시 짰다.


이러한 방향에서 탄생한 것이 이른바 '타우버 리트'(Tauber-Lied)다. 레하는 타우버의 부드러운 중저음, 절제된 메자 보체(Mezza Voce), 그리고 감정의 정점에서 드러나는 고음을 중심에 두고 선율선을 맞춤형으로 구성했다. 특히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은 가사의 발음 하나하나가 그의 발성 습관에 맞게 배열되어 있다. 이는 클래식 음악이 보편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거두고, 특정 연주자의 대중적 매력에 호응하며 스스로를 변형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타우버는 이 곡을 부르며 악보에 적힌 엄격한 템포에서 벗어나 감상적인 루바토(Rubato)를 활용했고, 레하는 이러한 해석을 전제로 관현악의 흐름을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악보의 절대성을 중시하던 전통적 미학은 한발 물러나고, 청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중시하는 스타 중심의 질서가 전면에 등장한다. 당시 빈의 신문들은 타우버가 이 곡을 부를 때마다 반복되던 관객의 열광을 상세히 전했고, 급속히 성장하던 음반 산업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확산시켰다. 유성기 음반을 통해 복제된 타우버의 목소리는 극장을 벗어나 유럽 전역의 가정으로 퍼져 나갔다. 클래식 음악이 특정 장소에 묶이지 않고 유통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레하 - 미소의 나라 - Dein ist mein ganzes Herz (Richard Tauber)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의 선율은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원곡은 《노란 재킷》(Die gelbe Jacke, 1923)에 등장한 〈Duft strömt aus deinem Haar und deine Haut ist wie Parfüm〉에서 비롯되었지만, 당시에는 극의 균형과 정서 전달 문제로 청중에게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레하는 이 선율을 폐기하지 않고 《미소의 나라》로 옮기며, 가사와 극적 조건, 그리고 무엇보다 리하르트 타우버라는 특정 목소리에 맞춰 전면적으로 재배치했다. 동일한 멜로디가 완전히 다른 정서적 효과를 얻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가사의 교체 그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선율이 귀속되는 감정의 좌표가 이동했다는 점이다. 같은 음악 재료는 더 이상 집단적 서사나 장르의 관습에 봉사하지 않고, 한 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정서로 재배치된다. 레하는 멜로디의 친숙함을 유지한 채, 그 감정을 소유하는 주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오페레타를 다시 정의했다.


이 과정에서 콘트라팍툼은 단순한 과거 작법이 아니라, 감정 소비 구조를 재편하는 전략으로 쓰였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의 성공은, 동일한 선율이 전혀 다른 맥락과 정서, 그리고 스타의 목소리를 통해 어떻게 새 생명을 얻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레하의 작업은, 콘트라팍툼적 사고가 20세기 스타 중심의 감상주의와 결합해 대중음악 전반에서 반복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동양을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정리하다


레하의 대중 맞춤화 전략은 형식이나 청중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소재 선택에서도 대중이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는 이질성을 계산했다. 《미소의 나라》가 중국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단순한 유행 추종이 아니라, 20세기 초 유럽 사회에서 요구되던 낭만적 타자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작품은 동서 문화의 충돌을 내세우지만, 음악은 그 충돌을 끝까지 감내하지 않는다.


중국 왕자 수총이 등장하는 장면들에는 5음 음계가 암시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장식에 불과하다. 선율의 바탕에는 후기 낭만주의적 화성이 단단히 깔려 있으며, 관현악 또한 유럽 오페라 전통을 벗어나지 않는다. 공(Gong)이나 타악기의 사용은 분위기를 환기하는 장치에 그치고, 음악의 흐름을 바꾸지는 않는다. 동양은 이 작품 안에서 낯선 음악 언어로 제시되지 않고, 유럽 청중이 이미 익숙한 감상적 어법 안에 정렬된다.

Dein ist mein ganzes Herz - Tenor_Page_3.jpg 빨간색으로 표시된 5음 음계. 레b, 미b, 파, 라b, 시b

레하 - 미소의 나라


이 점에서 필립 글래스(Philip Glass)가 인도 음악의 리듬 구조를 현대 클래식에 수평적으로 결합하려 했던 방식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레하에게 동양은 탐구 대상이 아니라 정서적 자극을 강화하는 배경이다. 이질성은 불편함을 낳지 않도록 관리되고, 비극성은 낭만적 색조로 중화된다. 이러한 정서적 재배치는 문화적 층위로까지 확장된다. 타자는 음악적으로 해체되기보다,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정리된다.


레하는 동양의 음악적 자산을 유럽 관현악법 안에서 재배치함으로써, 대중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오케스트라는 지적인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중국적 분위기를 환기하는 공과 목탁 소리를 간헐적으로 배치하면서도 전체 흐름은 부드러운 현악 중심으로 유지되는 배경적 성격을 띤다. 이런 방식은 클래식의 정교한 관현악 기법을 대중의 환상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레하는 동양적 소재를 유럽 중산층 관객이 안락하게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이러한 감상주의적 동양주의는 이후 유럽과 할리우드에서 이국적 배경을 음악적으로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관행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팝 발라드의 원형: 완결된 감정 상품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은 《미소의 나라》에서 가장 독립적인 아리아로 꼽힌다. 이 곡은 극의 전개를 밀어내거나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하나의 감정만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너는 나의 전부"라는 선언적 가사는 서사를 전달하기보다 감정을 확인하는 역할을 하며, 청중은 이해하기 전에 이미 그 감정 안에 들어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후 대중 발라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 중심 형식과 유사하다.


선율은 짧고 명료하며, 가사는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한다. 중반부 조성 변화는 극적 필연보다는 감정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로 해석된다. 테너에게는 도전적인 음역, 특히 높은 라♭(A♭)를 포함하지만, 동시에 멜로디는 일반 청중도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친숙성을 유지한다. 이로써 레하는 고급 예술의 기술과 대중적 접근성을 동시에 구현했다.


Dein ist mein ganzes Herz!
Wo du nicht bist, kann ich nicht sein
So, wie die Blume welkt
Wenn sie nicht küsst der Sonnenschein!

Dein ist mein schönstes Lied
Weil es allein aus der Liebe erblüht
Sag mir noch einmal, mein einzig Lieb
Oh sag noch einmal mir
Ich hab dich lieb!

Wohin ich immer gehe
Ich fühle deine Nähe
Ich möchte deinen Atem trinken
Und betend dir zu Füssen sinken
Dir, dir allein! Wie wunderbar

Ist dein leuchtendes Haar!
Traumschön und sehnsuchtsbang
Ist dein strahlender Blick
Hör ich der Stimme Klang
Ist es so wie Musik

Dein ist mein ganzes Herz
Wo du nicht bist, kann ich nicht sein
So, wie die Blume welkt
Wenn sie nicht küsst der Sonnenschein!

Dein ist mein schönstes Lied
Weil es allein aus der Liebe erblüht
Sag mir noch einmal, mein einzig Lieb
Oh sag noch einmal mir
Ich hab dich lieb!
내 모든 마음은 그대의 것입니다!
그대가 없는 곳에서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치 꽃이 시들듯이,
햇살의 입맞춤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대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오직 사랑에서 피어난 노래이기에.
다시 한 번 말해 주세요, 나의 단 하나뿐인 사랑,
오, 다시 한 번 말해 주세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어디로 가든지
나는 그대의 가까움을 느낍니다.
그대의 숨결을 마시고 싶고,
기도하듯 그대의 발 아래 엎드리고 싶습니다.
오직 그대, 그대 한 사람!

얼마나 눈부신가요,
그대의 빛나는 머리칼은!
꿈처럼 아름답고 그리움에 떨리는
그대의 빛나는 눈길.
그 목소리의 울림을 들으면
마치 음악과도 같습니다.

내 모든 마음은 그대의 것입니다!
그대가 없는 곳에서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치 꽃이 시들듯이,
햇살의 입맞춤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대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오직 사랑에서 피어난 노래이기에.
다시 한 번 말해 주세요, 나의 단 하나뿐인 사랑,
오, 다시 한 번 말해 주세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레하 - 미소의 나라 - Dein ist mein ganzes Herz (Fritz Wunderlich - 오페레타 버전)


오케스트라 편성에서도 금관악기를 사용해 선율의 선명도를 강조했다. 이러한 설계는 멜로디가 극장 안팎에서 즉각적으로 인지되도록 돕는다.


결국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은 극적 서사보다는 감정 전달을 우선하는 '완결된 감정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레하는 이 곡을 통해 예술 음악의 기술을 감정 전달의 효율로 변환하며, 오페레타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닌 대중적 정서 소비의 중심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클래식의 일상화와 상업적 승리


이러한 변화는 미학적 선택인 동시에 시대적 조건의 반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빈의 예술 환경은 급격히 변했다. 귀족 중심의 후원은 사라졌고, 극장은 다수의 관객을 끌어들여야 유지될 수 있었다. 레하는 이 상황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는 오페라의 외형을 유지한 채, 소비 단위를 줄이고, 곡의 감정과 선율을 단순화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은 극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곡이었다. 악보는 다양한 난이도로 편집되어 유통되었고, 음반을 통해 극장 밖으로 퍼져 나갔다. 복잡한 서사 대신 하나의 감정이 남았고, 긴 구조 대신 기억하기 쉬운 선율이 자리했다. 클래식은 더 이상 접근 불가능한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일상의 감정 관리와 소비 가능한 음악으로 전환되었다.


레하는 예술의 위계를 부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계를 유지한 채, 내부 내용을 조정했다. 형식은 그대로 남았고, 그 안에 채워진 것은 청중의 즉각적 만족이었다. 이 선택은 클래식이 생존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동시에 음악적 깊이를 희석하는 대가를 동반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빈의 예술가들은 경제적 위기에 직면했다. 과거의 귀족 후원 체계가 붕괴한 자리에 들어선 것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지불하는 티켓과 음반 수익이었다. 레하는 이 지점에서 클래식의 이미지를 유지하되, 상품으로서 소비의 난이도를 낮추는 전략을 택했다. 오페라의 거대한 서사 구조는 3~5분 내외의 히트 아리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복잡한 논리 구조는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모듈화된 선율로 바뀌었다.


당시 상류층과 중산층 관객은 현실의 가혹함에서 벗어나 오페레타 극장으로 향했다. 레하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감정적 선율은 그들에게 가상의 위안을 제공하며, 대중의 욕망과 정서 소비 구조에 맞춰 조정된 음악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레하는 출판업자와 협력해 악보의 대량 유통을 도모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은 아마추어 연주자를 위해 난이도를 달리한 편곡으로 제공되며, 유럽 전역의 가정으로 퍼져 나갔다. 베토벤이나 브람스가 전문가 중심의 경외 대상으로 남았던 것과 달리, 레하의 음악은 중산층 거실에서도 연주될 수 있었다. 클래식의 고난도 화법은 가정용 피아노로 내려왔고, 이러한 예술의 일상화는 대중음악이 생활의 배경음악으로 자리 잡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 하나만으로도 레하가 거둔 상업적 성공은 실감할 수 있다. 공연과 음반, 악보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은 단일 곡치고는 엄청난 규모였다. 바트 이슐(Bad Ischl)에 있는 그의 집에 남아 있는 전화기는 당시 두 자리 숫자의 번호를 사용했는데, 관공서를 제외하고 개통 순서대로 번호가 배정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이는 초기 가입자이자 상류층과 귀족 사회에서 인정받는 위치와 경제적 여유를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였다. 게다가 바트 이슐이 단순한 소도시가 아니라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던 지역이라는 점은, 레하가 단순한 부유층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까지 누린 인물임을 드러낸다. 이처럼 그의 음악적 성공은 단순한 금전적 성취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권력까지 확보하게 해준 결정적 계기였다.


영화음악으로 이어진 감상주의의 계보


레하가 남긴 가장 큰 흔적은 특정 작품이나 선율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다. 《미소의 나라》와 〈그대는 나의 모든 것〉에서 확립된 이 방식은 이후 영화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에리히 코른골드(Erich Korngold)는 오페레타적 감상주의를 스크린으로 옮겼고, 이 전통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까지 이어진다.


이 계보 안에서 클래식은 더 이상 사유의 공간이 아니다. 감정의 흐름을 조율하는 언어로 쓰인다. 레하는 이 전환을 가장 성공적으로 완수한 인물이다. 그는 클래식을 낮추지 않았다. 대신 클래식이 스스로 내려오도록 만들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은 이 전환의 결정적 증거다. 이 아리아 안에서 예술과 소비, 고급과 통속, 무대와 일상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미 확립된 고급에서 대중으로 향하는 정서적 전환은 여기서 하나의 역사적 방향으로 자리 잡는다.


레하의 방식은 시네마틱 사운드의 출발점이 되었다. 1930년대 코른골드와 스타이너는 오페레타의 관현악법과 감상주의를 영화 배경음악으로 이식했다. 클래식의 장엄함과 오페레타의 감정 중심적 설계가 결합된 이 사운드는 관객의 무의식 속 정서를 조율하는 장치로 쓰였다.


결국 레하는 클래식이라는 성벽에 균열을 내어 대중이 그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만든 전략가였다. 그의 음악 안에서 신성한 예술과 속세적 유흥은 구분되지 않는다. 레하는 클래식이 고립된 고귀함 대신, 화려한 대중적 미학을 선택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정서를 완성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경계를 넘나드는 클래식 아는 척 하기 (1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