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과 음악 아는 척 하기 (2편)

13~14세기 미사의 완결: 기욤 드 마쇼와 순환 미사의 탄생

by 돈 없는 음대생

노트르담 악파 스타일의 확산 (13~14세기)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전한 오르가눔3~4성부 구조, 리듬 선법은 파리를 넘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익명 작곡가들은 이러한 기법을 수용하면서도, 각 지역 성당과 수도원의 음향적 특성, 전례적 요구, 후원자의 취향에 맞추어 변형재해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동일한 노트르담 스타일이라 하더라도 파리 중심부와 지방 수도원에서 연주된 다성음악에는 미묘한 차이가 나타났다.


음악가들은 성당과 수도원의 공간적 울림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높은 천장과 장대한 석조 구조는 소리의 잔향을 길게 만들어, 음악적 표현의 핵심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지방 성당에서는 규모가 작더라도 음향적 특징을 모방하거나, 장식적 화성과 반복적 성부 패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노트르담적 접근을 적용했다. 테노르 기반의 안정적 하성부상부 성부의 자유로운 선율 장식, 1도, 4도, 5도, 8도의 협화음을 중심으로 한 화성적 구성, 리듬 선법에 따른 시간적 질서 등은 후속 세대 작곡가들이 채택한 핵심 요소였다.


13세기 말과 14세기 초기 작품을 보면, 테노르 위에서 자유롭게 장식되는 상성부, 음계와 리듬 패턴의 지역적 차이, 전례적 요구에 따른 선율 변주 등에서 노트르담 스타일이 단순 모방을 넘어 ‘적응과 재창조’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단선율 중심의 전례 음악과 달리, 다성음악은 지역적 음악 문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고, 음향적 입체감과 수직적 다성 구조, 리듬과 선율의 정교한 결합이라는 핵심 미학은 유지되었다.


이처럼 13세기 말~14세기 초의 프랑스 다성음악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시작된 기법을 바탕으로 지역적 특성과 전례적 요구를 반영한 독립적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중간 세대’를 형성했다. 노트르담 스타일의 핵심 요소는 특정 공간을 넘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며, 후일 기욤 드 마쇼와 같은 14세기 작곡가들이 등장할 수 있는 음악적 토대를 마련했다.


기욤 드 마쇼와 아르스 노바


새로운 예술의 기수: 기욤 드 마쇼


14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인간의 지성은 점차 정교해졌으며, 음악은 필리프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가 제창한 '아르스 노바'(Ars Nova, 새로운 예술)라는 개념 아래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복잡성을 향해 나아갔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거장이 바로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다. 그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작곡가였으며, 귀족과 교회 후원 하에 활동하면서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마쇼는 노트르담 악파가 정립한 리듬적 기초 위에, 더욱 유연하고 수학적으로 치밀한 '동형리듬'(Isorhythm) 기법을 적용하며 중세 음악의 새로운 정점을 구현했다.


이 시기의 유럽은 사회적,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었다. 흑사병백년전쟁은 인구와 경제를 크게 흔들었고, 아비뇽 유수(Avignon Papacy)와 교황권 분열은 교회 권위를 약화시켰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음악은 단순한 전례용이 아니라, 지적 탐구와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자리했다. 마쇼는 교회와 귀족 후원자의 의례, 연회, 개인 헌정곡 등 다양한 맥락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음악적 실험과 후원 네트워크를 동시에 확립했다. 그의 음악은 당대 사회에서 지적, 정서적 중심을 확보하며, 예술가 개인의 자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마쇼는 자신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완성도 높은 총집을 남긴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더 이상 익명의 찬가가 아니라, 작곡가의 지적 소유물이자 예술적 자아의 표현이었다. 특히 《노트르담 미사》(Messe de Nostre Dame, 1360년대 초 추정)는 서양 음악사에서 독보적인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 곡은 마쇼가 랭스 대성당의 카논(canon: 중세와 르네상스 교회에서 대성당의 정규 성직자, 특히 성가대와 예배 의례를 담당하는 신부급 성직자)으로 재직하며 자신과 형제의 영혼을 위한 기도로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음악적 스타일은 노트르담 악파의 다성음악 전통과 리듬적 원리를 계승하고 있다. 다만, ‘노트르담 미사’라는 제목은 파리 노트르담 성당과 직접적 관련이라기보다, 노트르담 스타일의 전통을 반영한 의미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마쇼 - 노트르담 미사


4성부 배치의 혁신: 테노르와 콘트라테노르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에서 가장 명확한 혁신은 4성부 체계의 확립이다. 13세기 페로탱이 4성부 오르가눔을 실험했으나, 이는 상성부가 테노르 위에서 장식적 역할을 하는 구조에 가까웠다. 반면 마쇼는 하성부에 테노르(Tenor)와 대등한 위치에서 움직이는 '콘트라테노르'(Contratenor) 성부를 배치해 수직적 화성 구조를 강화했다. 이는 13세기 말 Petrus de Cruce가 시도한 다성적 확장(콘트라테노르)을 체계화하고 완성한 결과였다.

IMSLP30838-PMLP70211-Perotinus_Viderunt_omnes_PML_Page_02.jpg 페로탱의 테노르
IMSLP167815-PMLP114747-La_Messe_de_Nostre_Dame_Page_02.jpg 마쇼의 테노르

상성부(Triplum 등), 테노르, 콘트라테노르로 구성된 4성부 구성은 현대의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체계의 선행 사례로 볼 수 있다. 각 성부는 독립적인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수직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콘트라테노르의 도입은 하음부를 보강해 당시 중세 음악 특유의 공허한 5도와 8도 간격을 풍부하게 채웠다.


수학적 질서의 극치: 동형리듬 기법


마쇼 음악의 핵심은 '동형리듬'에 있다. 이는 선율 패턴(Color)과 리듬 패턴(Talea)을 분리하고 서로 다른 주기로 반복시키는 작법으로, 청중이 즉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질서를 만든다. 예를 들어, 5음으로 이루어진 선율 위에 3음의 리듬 패턴을 얹으면, 두 패턴이 일치하는 지점까지 다양한 변주가 발생한다. 《노트르담 미사》의 〈Kyrie〉, 〈Sanctus〉, 〈Agnus Dei〉 등에서 이 기법이 극대화되어, 중세인들이 믿었던 ‘우주의 보이지 않는 조화’를 음악으로 구현했다. 마쇼에게 작곡은 단순한 선율 창조가 아니라, 수학적 비례를 통한 음향적 우주 구축 행위였다.

image1-1024x304.jpg 5음으로 구성된 선율과 3음으로 구성된 리듬 패턴. 둘을 합치면 각 마디와 일치하는 리듬 패턴과 5음의 선율 패턴이 합쳐져 다양한 변주가 생긴다.

아르스 노바의 유산과 노트르담


마쇼의 음악은 아르스 안티쿠아의 경직된 리듬에서 벗어나, 2분박과 3분박을 자유롭게 교차시키며 리듬적 유연성을 실현했다. 당김음(Syncopation)과 교차 리듬은 당시 청중에게 새로운 감각적 충격을 주었다. 동형리듬과 복잡한 선율 구조는 청중이 즉시 인지하지 못하는 숨은 질서를 형성하며, 중세적 우주관과 신성한 조화를 소리로 표현했다. 음악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수학적 비례와 신학적 질서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지적·감정적 매체가 된다.《노트르담 미사》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천명했던 다성음악의 실험 정신을 계승하여, 이를 미사 통상문이라는 거대한 형식 안에서 완결 지었다.

IMSLP167815-PMLP114747-La_Messe_de_Nostre_Dame_Page_09.jpg 마쇼 - 노트르담 미사 - 글로리아에서의 2분박과 3분박의 자유로운 사용
IMSLP167815-PMLP114747-La_Messe_de_Nostre_Dame_Page_10.jpg 마쇼 - 노트르담 미사 - 글로리아에서의 당김음의 사용

마쇼의 4성부 원리리듬 독립 사고는 이후 르네상스 폴리포니뒤파이(Dufay)와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음악이 단순한 전례 수단을 넘어 독자적 구조미를 가진 예술 작품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노트르담 미사》는 중세 음악이 도달할 수 있었던 가장 정교한 지적·음악적 성취 중 하나로 평가된다.


통상문의 유기적 결합: '미사'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게 한 구조적 혁신


파편화된 전례에서 유기적 순환체로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가 서양 음악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단순한 음악적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진정한 혁신은 미사 통상문(Mass Ordinary)의 다섯 장〈Kyrie〉, 〈Gloria〉, 〈Credo〉, 〈Sanctus〉, 〈Agnus Dei〉하나의 음악적 구조로 결합했다는 점에 있다. 마쇼 이전에는 각 장이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작곡가에 의해 작성되는 경우가 많았고, 연주 역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사제와 회중은 전례의 순서에 따라 서로 관련 없는 음악을 따로 경험했다.


마쇼는 이러한 전례의 요소들을 4성부 체계와 순환적 구조통합했다. 상성부(Triplum 등)는 선율적 장식을 담당하고, 테노르와 콘트라테노르는 저음부에서 화성적 안정과 리듬적 기반을 제공한다. 특히 동형리듬을 활용하여, 선율과 리듬을 서로 다른 주기로 반복시키면서 음악적 긴장과 해소를 정교하게 조절했다. 각 성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수직적 화성 구조 속에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청중은 단일 선율이 아닌 전체 음향 구조 속에서 질서와 변화를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마쇼의 미사는 순환 미사(Cyclic Mass)라는 형태를 통해 하나의 유기적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는 건축가가 성당의 각 공간을 제각기 짓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설계도 아래 통합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로써 전례 전체가 하나의 음악적 서사로 읽히게 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미사를 단순한 의례용 곡이 아니라, 독립적 예술 작품으로 격상시켰다.


건축적 통합: 구조적 대칭


가사가 많은 〈Gloria〉와 〈Credo〉에서는 화성 중심의 음절적 작법을 적용해 가사 전달력을 높였고, 반대로 가사가 짧은 〈Kyrie〉나 〈Agnus Dei〉에서는 화려한 다성적 장식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대비는 성당 내부의 광활한 공간 속에서 청중의 주의를 환기하고, 전체 곡의 구조적 균형을 잡는 계산된 전략이었다.

IMSLP167815-PMLP114747-La_Messe_de_Nostre_Dame_Page_03.jpg Kyrie에서의 멜리스마적 장식
IMSLP167815-PMLP114747-La_Messe_de_Nostre_Dame_Page_06.jpg Gloria에서의 화성 중심 진행

작곡가의 자의식과 예술적 완결성


마쇼는 이 미사곡을 자신의 이름 아래 완결시킴으로써, 작곡가라는 개인적 자의식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는 작품이 자신 사후에도 연주되기를 바랐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중세 사회에서 인간 예술가의 명예와 불멸성을 처음으로 의식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전의 익명 작곡가들이 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지웠다면, 마쇼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총동원해 음악적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인간의 창조적 자아를 전면에 드러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음악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청중은 이제 미사의 각 부분을 따로 떼어 듣는 것이 아니라, 첫 음부터 마지막 '이테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음악을 경험하게 되었다. 《노트르담 미사》는 단순한 소리의 연속을 넘어, 음악적 기하학과도 같은 체계를 통해 인간의 이성과 신성한 전례가 결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지적, 감성적 성취를 보여준다.


《노트르담 미사》 명칭의 의미


마쇼가 활동한 랭스 대성당은 당시 거대한 고딕 성당 중 하나로, 높은 천장과 넓은 내진 공간이 음악적 울림을 강화했다. 각 성부가 성당 공간을 채우며 중첩된 잔향으로 입체감을 형성하여, 《노트르담 미사》는 단순한 연속된 곡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음향적 건축물로 청중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노트르담 미사’라는 명칭은 마쇼 시대에는 붙여지지 않았다. 당시 미사곡에는 작곡가 이름을 붙이는 관행이 거의 없었으며, 곡은 전례적 목적이나 헌정 대상에 따라 구분되었다. 이 명칭은 후대 음악학자들이 붙인 학술적 제목으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달한 다성음악(노트르담 악파)의 전통과 구조적 논리를 계승한 작품임을 나타내고, 동시에 4성부로 완결된 유일한 마쇼의 미사곡을 특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이름은 마쇼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직접적 연관을 의미하지 않으며, 실제로 마쇼는 랭스에서 활동했다.

Reims_Kathedrale.jpg 프랑스 랭스 대성당

서양 음악 형식에 미친 영향


마쇼의 순환적 미사 구조정선율(Cantus Firmus) 활용은 15세기 뒤파이(Guillaume Dufay)와 오케겜(Johannes Ockeghem)으로 이어지며 르네상스 미사곡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나의 정선율을 중심으로 전체 미사 곡을 구성하는 '정선율 미사'의 개념도 마쇼가 보여준 유기적 결합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영향은 영국과 독일 초기 다성음악에도 스며들어, 순환적 구조와 정선율을 통한 미사 전곡 구성은 이후 교향곡, 소나타, 푸가 등 근대 서양 음악의 대규모 형식 발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마쇼는 음악을 단순한 전례적 기능을 넘어 독립적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린 선구자로 평가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트르담 대성당과 음악 아는 척 하기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