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과 음악 아는 척 하기 (1편)

다성음악의 우주적 탄생: 레오냉과 페로탱

by 돈 없는 음대생

고딕 건축과 음악의 수직적 사유


신의 거처를 설계하다: 빛과 높이의 신학


1163년, 파리의 주교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의 주도로 파리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의 초석이 놓였을 때, 그것은 단순히 낡은 성당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토목 공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 유럽의 정신적 지형을 바꾸는 거대한 지적 설계였다. 기존 주교좌 성당을 대체하는 이 건설은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중반까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노트르담은 프랑스 북부에서 전개된 초기 고딕 건축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당시 유럽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무겁고 어두운 석조 건축에서 벗어나, 더 높고 더 밝은 공간을 지향하는 '고딕'(Gothic)이라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딕 건축의 핵심은 ''과 '높이'였다.


12세기 생드니 성당 재건을 이끈 쉬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을 신의 현현으로,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는 통로로 이해했다. 후대 학자들은 이를 ‘빛의 신학’이라 부르며, 빛을 매개로 신적 질서를 체험할 수 있다는 신학적 인식을 설명하는 현대적 용어로 활용한다.


이러한 신학적 열망은 구조적 혁신으로 이어졌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둥근 아치는 벽 전체로 하중을 전달했기 때문에 큰 창을 내기 어려웠다. 반면 고딕 건축에서는 리브 볼트(Rib Vault)를 통해 천장의 하중을 기둥으로 집중시켰고,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를 통해 외벽으로 전달된 하중을 밖에서 받쳐 벽체 부담을 줄였다. 그 결과 벽면은 돌의 무게에서 해방되어 대형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할 수 있었고, 내부 공간은 자연스럽게 수직으로 시선을 이끌며 이전보다 높고 밝아졌다. 천장이 높게 솟아오른 구조는 지상에 있는 인간의 존재를 상대화하고, 하늘에 있는 신의 거대함을 체감하게 하는 장치가 되었다.

Basilique_Saint-Sernin_de_Toulouse_-_exposition_ouest-1-.jpg 프랑스 툴루즈의 Basilique Saint-Sernin. 로마네스크 형식으로 건축되었다. 창문이 전부 작다.
Speyer---Cathedral---West-View---(Gentry).jpg
Speyerer_Dom_Mittelschiff_(von_Westempore).jpg
독일 슈파이어 대성당. 로마네스크 형식의 둥근 아치로 이루어져있다.
Ossature.voute.arc.ogive.png
Ceiling,_Notre_Dame,_Paris,_ZM.JPG
리브 볼트 구조 /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리브 볼트
Coupe.transversale.cathedrale.Paris.png
Notre_Dame_buttress.jpg
플라잉 버트레스 /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플라잉 버트레스
다운로드.jpg 프랑스 파리 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

수직성의 음악적 번역: 오르가눔의 층위


고딕 성당의 건축적 수직성은, 그 안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형식과 표현을 새롭게 사유하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수 세기 동안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은 단선율의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Planus)였다. 이 음악은 하나의 선율이 모든 목소리를 통일시키는 형태로, 평면적이고 수평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고딕 성당의 높이 솟은 천장과 넓게 열린 벽은, 음악이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울림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동시기 유럽 전역에서 진행되던 음악적 실험과 더불어, 다성음악(Polyphony)이 발전했고, 특히 오르가눔(Organum) 양식이 정교화되었다.

1200px-Kyrie-iv-cunctipotens-genitor-deus.png 그레고리오 성가 - Kyrie IV 'Cunctipotens genitor Deus'

그레고리오 성가 - Kyrie IV 'Cunctipotens genitor Deus'

오르가눔은 기존의 성가 선율 위에 새로운 선율 층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음악가들은 '테노르'(Tenor, 하성부)라는 견고한 기반 위에 '두플룸'(Duplum, 상성부)이라는 화려한 장식 성부를 구축했다. 하부에서 성가 선율을 길게 늘여 연주하는 테노르는 성당을 지탱하는 거대한 돌기둥과 같았고, 그 위에서 자유롭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두플룸은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세밀한 조각이나 창문을 수놓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았다. 건축의 구조가 상부의 화려함을 지탱하듯, 음악에서는 하부의 정적 기반이 상부의 역동적 다성성을 가능하게 했다.

1095SchoolOfCompostelaClose.jpg 위 성가를 바탕으로 한 멜리스마 오르가눔. 테노르에 길게 늘어진 성가 선율이 나오고, 두플룸은 화려하게 움직인다.

공간의 울림과 배음: 성당 내부 음향


노트르담 성당과 같은 대형 고딕 성당은 거대한 석조 구조 자체가 하나의 악기 역할을 했다. 20세기 이후 음향학 연구에 따르면, 내부의 잔향 시간은 조건에 따라 대략 5~7초로 측정된다. 이는 단선율 성가를 부를 때도 이전 음의 울림이 다음 음과 자연스럽게 겹쳐져, 공간 전체에 풍부한 화성을 형성하게 했다. 중세 음악가에게 이러한 울림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적 자원으로 고려되었다. 높은 볼트 천장에 부딪혀 내려오는 소리는 배음이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 내며, 다성음악이 단순한 지적 구조를 넘어 물리적이고 영적인 충만함을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고딕 건축의 리브 볼트가 교차하며 만드는 기하학적 패턴은 오르가눔의 성부 관계와 흡사한 긴장과 균형을 가진다. 당시 오르가눔에서 완전 협화음으로 간주된 1도, 4도, 5도, 8도의 음정 체계는 피타고라스적 수비례에 기반하며, 건축에서 자와 컴퍼스를 통해 구현된 비례와 유사한 질서를 보여준다. 이렇게 하부의 안정적 기반과 상부의 장식적 선율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성당을 눈으로 바라보는 관객과 귀로 듣는 청중 모두에게 다층적 경험을 제공했다. 고딕 건축과 오르가눔은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동일한 시대와 공간에서 나타난 질서와 구조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 두 표현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0970OrganumCunctipotensGenitor.jpg 위 성가를 바탕으로 한 병행 오르가눔. 1도, 4도, 5도, 8도로 구성되어 있다.

레오냉의 『오르가눔 대서』


파리 대학과 음악 석사: 레오냉의 지성


12세기 후반의 파리는 유럽 지성계의 심장부였다. '파리 대학교'(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 Parisiensis)가 태동하던 시기였으며, 피터 아벨라르(Peter Abelard)와 같은 사상가들이 보편논쟁(Quaestiones)과 같은 학문적 논쟁을 벌였다.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노트르담 성당의 음악가들은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학문적 지위를 가진 음악가(Magister)로 대우받았다. 익명 4(Anonymous IV)의 기록에 따르면, 레오냉(Léonin)은 ‘마기스테르 레오니누스(Magister Leoninus)’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오르가눔 작곡가(optimus organista) 중 하나로 평가되었다.


그는 노트르담 성당과 관련해 활동하며 연중 전례에 필요한 다성음악을 정리한 『오르가눔 대서』(Magnus Liber Organi)를 편찬했는데, 이는 특정 작곡가 이름이 명시된 서양 음악사 초기 대규모 작품집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레오냉은 파리 대학에서 다루던 '4과'(Quadrivium, 산술·기하·음악·천문)의 논리를 음악에 적용했다. 그의 작업은 수적 질서에 대한 관심과 상응하는 면을 보인다. 이는 그가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을 다성 구조로 재구성하고 시간적이고 수직적인 질서를 체계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2성부 오르가눔의 미학: 지속과 장식


레오냉이 정립한 2성부 오르가눔은 두 가지 핵심적인 작법 양식의 대조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순수 오르가눔'(Organum Purum)이다. 여기서 하성부인 테노르(Tenor)는 라틴어 단어 '테네레'(tenere, 유지하다)에서 온 이름답게 성가 선율을 아주 길게 유지한다. 상성부인 두플룸(Duplum)은 그 위에서 자유롭고 화려한 멜리스마(Melisma)를 구사한다.


레오냉 - Pascha nostrum

두 번째는 '디스칸투스'(Discantus) 양식이다. 이는 성가의 선율 자체가 원래 음절이 많거나 리듬적일 경우에 사용된다. 여기서는 테노르와 두플룸이 모두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함께 움직인다.


레오냉은 이 두 양식을 적절히 교차시켜 곡 전체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했다. 예를 들어, 성가의 중요한 구절에서는 디스칸투스를 통해 명료한 리듬감을 부여하고, 장식적인 부분에서는 순수 오르가눔을 통해 신비로운 울림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대비는 노트르담 오르가눔의 핵심적 특징으로, 공간과 시간의 질서를 음악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시간의 체계화: 6가지 리듬 선법


레오냉의 가장 혁명적인 기여는 리듬의 체계화에 있다. 다성음악에서 서로 다른 두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려면 '언제 어느 음이 함께 울려야 하는가'라는 시간의 약속이 필요했다. 레오냉은 고대 그리스 시의 운율(트로카이오스, 이암보스 등)용어를 빌려 6가지 '리듬 선법'을 설명했다.


1. 제1선법(긴-짧은): 트로카이오스 운율

2. 제2선법(짧은-긴): 이암보스 운율

3. 제3선법(긴-짧은-짧은): 닥틸로스 운율


4. 제4선법(짧은-짧은-긴)

5. 제5선법(긴-긴)

6. 제6선법(짧은-짧은-짧은)


ed410-rhythmic-modes2-lfhbj5w5q6b3mtka7kxnkzeb92lm9wzjalqc9wdew2.png 6가지 리듬 선법

이 리듬 선법은 3박자 체계를 기본으로 한다. 중세 신학에서 '3'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완벽한 숫자(Perfectum)였기 때문에, 이와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레오냉은 이 수적 완벽성을 리듬의 최소 단위로 삼아 음악 속에 신성한 질서를 부여했다. 리듬 선법의 도입으로 인해 다성음악에서 시간 구조를 명확히 설계하는 작곡 개념이 크게 강화되었다.


『오르가눔 대서』와 유럽으로의 확산


레오냉의 『오르가눔 대서』는 단순한 악보집을 넘어, 노트르담 스타일을 유럽 전역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파리와 노트르담 양식은 여러 지역의 필사본과 작곡에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고, 노트르담 양식초기 서양 다성음악의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레오냉은 전례의 핵심 구절(예: 알렐루야, 그라두알레)에 다성 장식을 부여함으로써 음악적 강조와 공간적 울림을 동시에 구현했다.


그의 음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불협화음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이는 항상 완벽한 협화음으로 해결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해결 과정은 인간 영혼이 고난을 거쳐 구원에 이르는 종교적 여정과 연관지어 해석되기도 하였다. 레오냉의 2성부 구조는 음악과 신학적 질서, 수적 비례가 결합된 체계적 접근으로 평가되며, 이후 초기 대위법적 사고를 형성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페로탱의 혁신: 4성부의 구조와 정교함


위대한 페로탱: 3, 4성부 오르가눔의 확립


레오냉(Léonin)이 2성부 오르가눔을 정립했다면, 페로탱(Pérotin)은 그 위에 3성부4성부 오르가눔을 확립한 작곡가였다. '익명 4'(Anonymous IV)는 그를 '마기스테르 페로티누스'(Magister Perotinus)로 기록하며, '위대한 페로탱'(Perotinus Magnus)이라 칭송했다. 페로탱의 업적은 단순히 성부를 늘린 것이 아니라, 다성음악의 시간 구조와 성부 간 상호작용을 체계화한 데 있었다.


레오냉의 2성부 오르가눔이 선율의 유연한 흐름에 집중했다면, 페로탱의 음악은 철저하게 계산된 리듬의 격자 구조와 성부 간의 교차적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한다.


그는 레오냉의 『오르가눔 대서』(Magnus Liber Organi)를 편집하고 요약하는 동시에, 3성부(Organum Triplum)와 4성부(Organum Quadruplum)를 포함한 새로운 곡을 작곡했다. 이러한 다성 구조는 당시로서는 전례 음악에서 보기 드문 시도였으며, 노트르담 성당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청중에게 처음으로 연주되었을 때 큰 주목을 받았다.


《지상의 모든 끝이》: 4성부의 건축적 설계


1198년 크리스마스 전례를 위해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상의 모든 끝이》(Viderunt Omnes)는 4성부 오르가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곡에서 하성부 테노르(Tenor)는 성가 선율을 길게 유지하며, 상성부 두플룸(Duplum), 트리플룸(Triplum), 콰드루플룸(Quadruplum)이 독립적 선율로 그 위를 장식한다.


페로텡 - Viderunt Omnes

이 곡에서는 성부 간 리듬과 선율 패턴의 교차적 전달이 나타난다. 이는 후대 르네상스 대위법에서 발전한 교환 기법(Voice Exchange)과 모방(Imitation)의 원시적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한 성부가 제시한 리듬과 선율 패턴이 다른 성부로 전달되며, 서로의 움직임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특정 순간에는 네 성부가 동시에 완전 1도, 5도, 8도의 협화음을 형성하여 수직적 결속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음악적 긴밀함과 질서를 동시에 구현하며, 성당 내부의 음향적 특성과도 맞물렸다.


클라우술라와 리듬의 해방


페로탱은 긴 오르가눔 구간 사이에 짧고 리듬이 명확한 디스칸투스 클라우술라(Discantus Clausula)를 삽입했다. 여기서 테노르 성부도 단순한 장음이 아니라 일정한 리듬에 따라 움직이며, 성부 간 동시 진행이 명확해진다. 클라우술라 양식은 이후 모테트(Motet) 형성의 기초가 되었으며, 페로탱은 이를 통해 음악 속 시간 구조를 세분화하고 리듬적 다양성을 극대화했다.

(위 영상에서의 6:54 부근 Dominus 부분이 클라우술라)


중세 우주관의 음향적 투영


페로탱의 다성구조는 중세 철학의 '천구의 음악'(Musica Mundana) 개념을 지상에서 구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행성들이 각기 다른 궤도를 돌며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완벽한 조화의 소리를 낸다고 믿었다. 페로탱의 수직적으로 쌓인 네 개의 성부는 각기 다른 천구의 층위를 상징했으며, 협화음의 결합은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나타냈다.


중세의 음악 3분법인 천구의 음악(musica mundana), 인간의 음악(musica humana), 기악(musica instrumentalis)은 보에티우스(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480–524)가 제시한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음악우주, 인간, 실제 소리로 구분하여 이해했다. 천구의 음악행성과 별의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수학적 조화를 뜻하며, 인간의 음악몸과 영혼의 내적 질서를 반영하고, 기악실제 목소리와 악기로 연주되는 소리로 천구와 인간의 질서를 모방하거나 표현한다.

Boethius02.jpg 보에티우스 - De institutione musica의 표지

페로탱의 음악은 장엄함을 강조하며, 공동체가 신의 질서 앞에서 청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했다. 노트르담 성당의 높은 천장과 잔향은 이러한 다성음악의 설계와 결합하여, 4성부가 공간 안에서 명확히 들리도록 했다.


기보법의 탄생: 측정 가능한 시간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하다: 기호와 시간


서양 음악사에서 '노트르담 악파'가 남긴 혁신적 유산은 단순히 악보가 아니라, 그 안에 ‘정확한 시간의 비례’를 기록했다는 점에 있다. 이전 음악은 기억과 구전에 의존하는 유동적 예술이었다. 초기 ‘네우마(Neuma)’ 기보법은 선율을 상기시키는 보조 수단에 불과했으며, 음의 높낮이는 표시되었지만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없었다. 그러나 레오냉과 페로탱이 주도한 다성음악의 복잡성은 더 이상 기억력에만 의존할 수 없게 했다.


성부가 3개, 4개로 늘어나면서 각 성부의 수직적 일치, 즉 ‘동기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측정 가능한 음악(Musica Mensurabilis)’이었다. 음악적 시간을 시각적 기호로 고정함으로써, 음악은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순간적 진동이 아니라, 종이 위에서 계산되고 설계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기보법의 탄생은 음악을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분리하여 작곡가가 설계하는 ‘건축적 산물’로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리듬 선법에서 정량 기보법으로


노트르담 음악가들이 고안한 ‘리듬 선법(Rhythmic Modes)’은 음 길이를 개별적으로 표시하기보다, 음의 결합(Ligature)으로 만들어지는 일정한 패턴을 통해 리듬을 파악했다. 그러나 13세기에 이르러 음악은 더 정밀한 시간 제어를 요구했다. 프랑코 폰 쾰른(Franco of Cologne)이 정립한 ‘정량 기보법(Mensural Notation)’은 개별 음표에 고유한 시간적 값을 부여하여, 복잡한 리듬과 성부 간 상호작용을 정확히 기록할 수 있게 했다.


롱가(Longa), 브레비스(Brevis), 세미브레비스(Semibrevis)로 이어지는 계층적 기호 체계는 음악적 시간을 수학적 분수로 나누는 사고를 정착시켰다. 이는 연속적이던 시간을 눈금으로 나누어 측정하려는 중세인의 사고가 음악 기보법에도 반영된 결과였다. 정량화는 작곡가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복잡한 리듬 대조, 당김음, 정교한 대위법 구조를 악보 위에서 설계할 자유를 제공했다.


작곡가의 탄생과 추상적 사고


기보법의 발전은 ‘작곡가’ 개념을 바꾸었다. 음악가는 연주 현장에서 선율을 즉흥적으로 덧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종이 위에서 미래의 소리를 설계하고 완결짓는 창조자가 되었다. 기록된 음악은 시공간을 넘어 전파될 수 있었고, 노트르담 양식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며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라는 국제적 양식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기보법은 음악적 영감을 논리적 분석 대상으로 만들었다. 작곡가는 성부 간 간격을 조절하고, 리듬의 비율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며, 곡 전체 구조를 시각적으로 점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계산된 음악적 사고는 훗날 서양의 과학적 사고방식과 합리주의가 형성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서양 음악 전통의 유전자


오늘날 현대적 오선보와 리듬 체계는 노트르담 필사본에서 시작된 실험적 기호의 직계 후손이다. 레오냉과 페로탱이 정립한 리듬 질서와 기보 원리는 서양 음악을 세계 다른 전통과 구분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을 ‘기록 가능한 텍스트’로 보는 전통은 바흐의 푸가, 베토벤 교향곡, 현대 전자음악 총보까지 이어진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높은 볼트 아래 울렸던 초기 다성음악의 잔향은 기보법이라는 그릇에 담겨 천년을 견뎌냈다. 측정 가능한 시간으로서의 음악은 유한한 인간이 순간을 기록해 영원에 닿으려 한 중세인의 시도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경계를 넘나드는 클래식 아는 척 하기 (1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