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성당 / 도시 공간
장소: [근교] Saint-Denis
일정: Basilique cathédrale Saint-Denis 방문 / Saint-Denis 구경
가격: 0€
방문일자: 2026년 3월 15일
생드니 대성당은 프랑스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그런데 여기는 겨울에 하는 첫째 주 일요일 무료입장이 없다.
그래서 갈까말까 엄청 고민을 했었다.
찾아보니까 성당 자체는 무료인데, 그 뒤에 있는 왕실 묘역이랑 지하가 입장료가 있는것이었다.
실제로 묻혀있지도 않으니까 굳이 볼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그냥 미사시간에 맞추어 갔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메트로를 타고 가면 편한데 공사 때문에 아예 끊겼다.
덕분에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생쑈를 하면서 갔다 왔다.
파리의 첫 주교로 알려진 성 디오니시오는 3세기에 몽마르트에서 참수당했다. 전설에 따르면 직접 잘린 머리를 손에 들고 6km를 걸어가 지금 이 생드니 대성당 자리까지 왔다고 한다.
5세기에 성 주느비에브가 이 자리에 성당을 세워서 성지가 되었고, 이후 프랑스 왕실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이 성당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바실리카이면서 동시에 대성당이라는 것이다. 바실리카의 지위는 교황이 직접 부여하는데, 성인, 성유물이 있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거나, 기타 특수한 경우에 부여한다. 이곳은 성인의 무덤이면서도 프랑스 왕실의 역사가 있어서 부여한 것 같다.
동시에 대성당이다. 한 교구 안에 여러 성당들이 있지만, 교구를 관할하는 주교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는 성당을 대성당이라고 불렀다 (cathedral). 1966년에 대성당으로 승격되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주교가 상주하는 대성당이지만, 바실리카의 지위는 없다.
둘째, 고딕 양식의 출발점이다. 12세기 중반의 수도원장이었던 쉬제(Suger)가 성당을 재건하면서 자신의 신학철학인 이른바 '빛의 신학'을 건축으로 구현하였다. 이로 인해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의 시대가 열렸다.
늑재 궁륭과 첨두아치를 사용하여 벽의 하중을 줄이고, 벽면에는 대형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여 성당 내부가 빛으로 가득 찰 수 있게 하였다.
이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쾰른 대성당 등, 수많은 유럽 전역 고딕 건축의 표준이 되었다.
셋째, 프랑스 왕실 묘지로 사용되었다. 639년 다고베르 1세(Dagobert I)를 시작으로 19세기 샤를 10세(Charles X)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군주들이 이곳에 안치되었다. 지하 예배당에는 성 디오니시오의 유해와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의 유해가 있고, 제단 뒤편에도 다양한 석조관들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다 파헤쳐져서 섞였다. 지금은 그냥 상징적으로만 봐야한다.
넷째, 아리스티드 카바이에-콜(Aristide Cavaillé-Coll)의 첫 번째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이로써 심포닉 오르간 시대가 열렸다.
성당의 첨탑은 원래 두 개였으나, 1840년대의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한쪽 첨탑에 균열이 생기자, 모지리 관리자가 해체해버렸다. 당시 전문가들은 보수공사를 하는 쪽을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능력 없는 목소리만 큰 녀석이 이겨버렸다. 이후 외젠 비올레-르-뒤크(Eugène Viollet-le-Duc)가 재건하는 대신 보강을 했다. 이 사람은 온갖 곳에서 보수공사와 재건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2025년에 첨탑의 재건이 시작되었다. 당시 모양으로 재건을 해도 두 개의 첨탑이 짝짝이인것은 그대로다.
미사 중에 들어오는 빛은 예술이었다.
여기저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들이 기둥이나 바닥에 색을 입힐 때가 좋다.
미사 끝나고 사람들이 몇몇 들어가서 돌아다니길래 꼽사리 껴봤다...
당연히 쫓겨났다.
제단 뒤편에 다양한 역대 프랑스 왕들의 석관 같은것들이 있다.
시신들은 어차피 혁명 때 다 내다 버려서 그냥 일종의 상징물이다.
이곳이 제일 밝고 환한 곳이었다.
아리스티드 카바이에-콜(Aristide Cavaillé-Coll)이 악기(instrument)를, 프랑수아 드브레(François Debret)가 케이스(buffet)를 담당했다. 1841년에 낙성되었다.
부띠끄 이름은 쉬제
상단: 1429년 9월 13일 화요일, 파리 앞에서 부상을 입은 잔 다르크가 성 디오니시오(St Denis)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자신의 무기를 봉헌했다.
하단: 1929년, 이 기념비는 몽모랑시 공작(Duc de Montmorency)이 회장을 맡고 있는 '생드니의 친구들'(Les Amis de St Denis)의 후원으로 건립되었다.
13세기에 건축된 신랑의 입면은 큰 아케이드(Larges arcades), 트리포리움(Triforium, 통로 갤러리), 높은 창문(Fenêtres hautes)의 세 층으로 구성된다. 궁륭은 29미터 높이에서 정점에 도달하며, 이는 10층 건물과 맞먹는 높이다. 높이감은 기둥 기부에서 궁륭까지 자연스럽게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는 수백 개의 가는 기둥들에 의해 강조된다.
높은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프랑스의 왕과 왕비들을 볼 수 있다. 아래에 표현된 인물들 중 트리포리움에 성 디오니시오(Saint Denis)가 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들고 있다.
12세기와 13세기에 건축된 생드니 대성당은 왕실의 묘역이 있는 가톨릭 예배당이다. 평면도는 인체를 연상시키는 십자가 모양으로, 익랑은 팔을, 제단 뒤 앱스는 머리를 상징한다. 중앙에는 성가대석과 주 제단이 있으며, 성 디오니시오의 무덤 위에 설치되어 있다. 건물은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오른쪽 문의 기둥(문설주와 그것을 둘러싼 아치 사이)에는 일 년 동안 수행한 12가지 농사일을 나타내는 12개의 메달리온이 있다.
1130년에서 1140년 사이에 세워진 정면은 3층 구조와 3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계승한 이 건물은 두 개의 탑을 갖추고 있었다. 중앙의 장미창은 이 정도 크기로는 최초의 것 중 하나다. 90미터에 달했던 북측 탑은 취약성 때문에 1847년에 해체되었다. 재건 작업은 2025년에 시작되었다. 중세 시대에 채색되었던 세 개의 문은 당시의 지적, 영성적 사상을 반영하는 성경 속 이야기들을 묘사한다. 중앙 문은 '최후의 심판'(Jugement dernier)을 나타낸다. 북측과 남측 문은 성 디오니시오의 생애 에피소드들을 보여준다.
1130년부터 1280년까지 250년경 사망한 생드니의 첫 번째 주교인 성 디오니시오의 무덤 위에 세워진 이 대성당은 고딕 예술의 발상지다. 7세기 중반부터 혁명기까지 수도원 교회였으며, 1966년에 대성당의 지위를 얻었다. 40명의 왕, 26명의 왕비, 60명의 왕자와 공주가 이 교회에 안치되어 있으며, 12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왕과 왕비의 조각된 무덤이라는 독보적인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90미터 높이에 달했던 북측 탑과 첨탑은 1846년 해체된 이후, 2025년 3월 14일에 재건이 시작되어 2030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왕실 묘역 방문에 더해 이제 '첨탑의 공장'(Fabrique de la flèche)을 관람할 수 있으며, 이는 150년 전부터 이어진 유럽 최대 규모의 유산 보존 현장 뒷모습과 예술적 기예의 매혹적인 세계를 몰입감 있고 즐겁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본의 아니게 지하철역을 찾느라 근처를 헤매게 되었다.
페이크 바게트들이 너무 많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