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쉴피스 성당 01

교회와 성당

by 돈 없는 음대생

장소: Saint Sulpice

일정: 성당 구경

가격: 0€

방문일자: 2026년 3월 2일


오랫만의 바깥 나들이었다.

에펠탑에 꽃이 폈다는 사기를 당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공사판만 보고 열받아서 돌아오는 길에 어쩌다보니 들리게 되었다.


이 성당은 이래저래 나름 유명하다.

우선 보이는 두개의 탑은 비대칭이다.

북쪽 탑을 먼저 만들고 남쪽 탑을 만드는 도중, 돈도 없고 혁명도 터지고 해서 그냥 저렇게 남았다.


성당 내부에는 들라크루아의 벽화와 천장화가 3점 있다.

게다가 소설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그 유명한 해시계도 있다.


오르간은 카바이유-콜이 만든 5단 짜리가 있다.

유명한 오르가니스트로는 샤를-마리 비도르(Charles-Marie Widor), 마르셀 뒤프레(Marcel Dupré), 장-자크 그뤼넨발트(Jean-Jacques Grünenwald), 다니엘 로트(Daniel Roth) 등이 있다.


1870년부터 비도르가 64년 동안 있었고, 그 뒤로 1934년부터 1971년까지 뒤프레가 일했다.

다니엘 로트는 이래저래 유명한데, 이 사람의 아들이 유명한 지휘자 프랑수아-자비에 로트(François-Xavier Roth)다. 지휘자로도 유명하고, 나쁜짓으로도 유명하다. 그 아들은 파리 음악원에서 현재 작곡을 전공하고 있다. 나름의 음악 마피아 집안이다.

얘 곡을 내일 초연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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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_170353.jpg 분수라는데 물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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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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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_170635.jpg 카바이유-콜 오르간

샤를 드 가이(Charles de Wailly) - 《설교단》(Chaire à prêcher, 1788)

신랑 중앙에 위치한 설교단은 설교자가 신자들에게 잘 보이고 목소리가 잘 전달되도록 했다. 이 설교단은 루이 16세(Louis XVI) 치하에서 교구의 영향력 있는 인물인 데귀용 공작(Duc d'Aiguillon)에 의해 기증되었다. 떡갈나무와 대리석으로 제작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설교단은 캐비닛 제작과 균형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설교단은 두 개의 측면 계단에만 의지해 서 있다. 설교단의 장식은 그 기능에 맞추어져 있다. 설교는 『성경』(Bible)에 근거하므로, 받침대에는 네 복음서 저자의 상징적 형상들이 장식되어 있다. 차양 아래에 형상화된 비둘기는 설교자에게 영감을 주는 '성령'(Esprit-Saint)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그리스도교의 세 가지 주요 덕목인 '믿음'(La Foi), '소망'(L'Espérance), '사랑'(La Charité)의 실천을 권장한다. 이 덕목들은 금박을 입힌 나무로 조각된 세 그룹의 여성상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 전례의 변화와 음향 시스템의 발달로 인해 이 가구는 원래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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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폴리트 맹드롱(Hippolyte Maindron) - 《성가대석》(Banc d'œuvre, 1745년경)

설교단 맞은편에는 성가대석이 있다. 이 좌석은 '교구 위원'(Marguilliers)들과 교구의 유력 인사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머지 신자들은 서서 예배를 드리거나 교구의 이익을 위해 대여되는 의자에 앉았다. 벤치 위에는 19세기 작품인 브론즈로 제작된 대형 십자가 고상이 세워져 있으며, 이는 이폴리트 맹드롱(Hippolyte Maindron)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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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수의》(Image du Saint Suaire)

'성 수의'(Saint Suaire)는 토리노(Turin)에 보관된 커다란 리넨 천이다. 여기에는 고통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한 남성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이중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이 이미지의 형성 과정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천을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수의로 공경한다.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격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가 입은 상처로 우리는 치유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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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퐁(Lafon)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유해를 고아로 운반함》(Le transport de la dépouille de Saint François-Xavier à Goa, 1859), 벽화

끊임없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çois-Xavier)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이어간다. 이어서 그는 중국에 입국하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열병이 그를 덮쳐 중국 해안에서 매우 가까운 섬에서 4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나중에 그의 유해는 인도 고아(Goa)로 옮겨지며, 장례 행렬이 지나는 길마다 기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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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퐁(Lafon) - 《죽은 자를 살리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çois-Xavier ressuscite un mort, 1859), 벽화

16세기 스페인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çois-Xavier)는 '예수회'(Jésuites)의 창립자 중 한 명이다. 가족과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인도로 선교를 떠난 그는 그곳에서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세례'(Baptême)를 제안한다. 수많은 주민이 그의 메시지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에 감동한다. 여기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기적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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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Hesse) - 《샤블레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Saint François de Sales évangélise les habitants du Chablais, 1860), 벽화

젊은 프란치스코 드 살(François de Sales)은 16세기 말 종교 전쟁의 비극적인 시대에 성장했다. 사제가 된 그는 사부아(Savoie) 북부의 개신교 지역인 샤블레(Chablais)에 가톨릭 신앙을 전하는 섬세한 과업을 수행해야 했다. 프란치스코는 선교의 핵심에 설교를 두었다. 그는 단순하게 말할 줄 알았고 마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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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마르(Vermare) - 《성 장-마리 비아네》(Saint Jean-Marie Vianney, 1905년 원작), 조각상, 석고

장-마리 비아네(Jean-Marie Vianney)는 모든 사제의 수호성인이다. 1818년, 그는 리옹(Lyon) 근처의 아르스(Ars) 마을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40년 동안 그는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설교, 그리고 단순하고 즐거운 친절의 모범으로 교구민들의 신앙을 깨웠다.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고해성사를 하러 찾아왔다. 성인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다. "우리의 잘못은 하느님의 자비라는 거대한 산 옆에 있는 모래알과 같습니다."


에세(Hesse) -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이 성녀 잔 드 샹탈에게 방문회의 규칙서를 전달함》(Saint François de Sales remet à sainte Jeanne de Chantal la règle des Visitandines, 1860), 벽화

제네바와 안시(Genève-Annecy)의 주교로 임명된 프란치스코 드 살(François de Sales)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고자 고민하던 젊은 미망인 잔 드 샹탈(Jeanne de Chantal)을 만난다. 그들은 함께 모든 여성에게 열려 있는 수도 가족인 '방문회'(Ordre de la Visitation)를 창설한다. 이 수도회는 기도와 병자 및 가난한 이들을 돕는 활동을 통해 성모 마리아를 본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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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용(Révillon) - 《성 바오로》(Saint Paul, 1850), 조각상, 대리석

조각가는 바오로(Paul)를 노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는 왼손에 자신이 갓 태어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 보낸 13통의 서간을 상징하는 책을 들고 있다. 다른 한 손으로 바오로는 칼에 의지하고 있다. 서기 67년경 로마에서 그는 자신의 신앙 때문에 참수당했다. 그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나의 길을 마쳤으며 믿음을 지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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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링(Drilling) - 《성 바오로의 회심》(La conversion de Saint Paul, 1850), 벽화

사울(Saul)은 타르소(Tarse) 출신의 바오로(Paul)의 본래 이름으로, 유대교를 믿는 로마 시민이다. 그는 태동하는 교회를 파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자 한다. 어느 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는 눈부신 빛에 눈이 멀게 된다. 그는 또한 자신을 부르는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주님께 붙잡혔고 그의 회심은 즉각적이었다. 사흘 후, 그는 시력을 회복하고 세례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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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링(Drilling) - 《아레오파고스 앞의 성 바오로》(Saint Paul devant l'Aréopage, 1850), 벽화

바오로(Paul)는 지중해 연안의 지치지 않는 복음 전파자가 된다. 그는 이곳 아테네의 중심부인 아레오파고스(Aréopage)에 형상화되어 있는데, 그곳은 도시의 지성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바오로는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지만, 그들은 참된 하느님에 대한 바오로의 선포를 회의적으로 대한다. 청중 중 데오누시오(Denys)와 다마리스(Damaris) 두 사람은 그럼에도 마음을 열어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리스에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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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모(Guillemot) - 《성 빈첸시오 아 부울이 자선회 부인들에게 강론함》(Saint Vincent de Paul parle aux Dames de la Charité, 1825), 벽화

빈첸시오 아 부울(Vincent de Paul)은 파리에 '유아원'(L'Œuvre des enfants trouvés)을 세웠다. 5년 만에 1,200명의 버려진 아이들이 사랑의 딸회(Filles de la Charité)에 의해 작은 집들로 거두어졌다. 그러나 자원은 곧 부족해졌다. 이 벽화에서 빈첸시오 아 부울은 귀족 부인들에게 그들의 도움을 계속해 줄 것을 권유하고 있다. 모금은 성공적이었고 사업은 구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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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뷔셰(Cabushet) - 《두 아이와 함께 있는 성 빈첸시오 아 부울》(Saint Vincent de Paul avec deux enfants, 1857), 조각상, 대리석

시골 출신인 빈첸시오 아 부울(Vincent de Paul)은 17세기 초에 사제가 되었다. 기도와 행동의 사람인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가장 소외된 이들을 구체적으로 돕고자 하는 귀족과 부르주아 여성들을 모아 '자선회'(Confréries de la Charité)를 창설했다. 나중에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과 함께 그는 '사랑의 딸회'(Filles de la Charité)를 설립했다. 이 여성들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


기유모(Guillemot) - 《루이 13세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성 빈첸시오 아 부울》(Saint Vincent de Paul assiste Louis XIII à ses derniers moments, 1825), 벽화

빈첸시오 아 부울(Vincent de Paul)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는 파리의 가난한 동네와 시골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저택도 자주 방문했다. 왕비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는 그의 사업에 큰 관심을 가졌다. 1643년, 그녀는 죽어가는 남편 루이 13세(Louis XIII)를 보살펴 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빈첸시오 아 부울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그리스도인답게 죽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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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토마(Émile Thomas) - 《예수 성심상》(Statue du Sacré-Cœur, 1844), 대리석상

이 경당은 1748년부터 파리에서 처음으로 예수 성심께 봉헌된 장소다. 조각가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신 예수를 보여준다. 그분의 마음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빛나고 타오른다. 그분의 팔은 환대의 자세로 넓게 열려 있다. 받침대에 적힌 라틴어 비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내 성심을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음을 깨달아라."


앙리 브륀(Henri Brun) - 《예수 성심 공경》(La vénération du Sacré-Cœur, 1841), 목조각

제단 위쪽의 십자가 처형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의 무한한 사랑을 상기시킨다. 더 아래쪽인 감실(tabernacle) 주변에는 네 명의 천사가 그리스도의 찔린 마음에서 흐르는 피를 잔에 담고 있다. 이 장면은 '성체성사'(Eucharistie)를 상징한다. 매 미사 때마다 예수는 현존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희생을 갱신하시고 각 사람과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을 양식으로 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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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판벽》(Lambris décoratif, 1748), 나무

예수 성심 경당은 유일하게 목조 장식을 갖추고 있다. 이 장식은 혁명 기간에 저질러진 파괴를 면했다. 1793년에 교회는 폐쇄되어 '이성과 지고한 존재'의 숭배에 할당되었으며, 가구의 상당 부분은 도난당하거나 판매되었다. 혁명 이후 이 경당은 가장 먼저 복구되어 예배에 다시 사용된 곳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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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_171356.jpg 베드로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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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라 스타튀 를리지외즈'(Maison « La Statue religieuse »)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Saint Anthony of Padua, 20세기 초), 석고상

1195년경 리스본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프란치스코회의 종교적 빈곤을 위해 귀족 가족을 떠났다. 지칠 줄 모르는 설교자인 그는 특히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당시 카타르(cathare) 이단이 득세했던 프랑스 남부에서도 설교했다. 그는 36세에 파도바 근처에서 "내 주님이 보인다"라는 말을 속삭이며 사망했다. 거친 베옷을 입은 그는 품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는 아기 예수와 하룻밤 동안 기적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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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숑(Pichon) - 《교황 비오 4세의 임종을 지키는 성 카를로》(Saint Charles assiste Pie IV à sa mort, 1867), 벽화

16세기 이탈리아 귀족 가문의 차남인 카를로는 사제가 될 운명이었다. 22세에 그는 자신의 삼촌인 교황 비오 4세에 의해 추기경이자 밀라노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카를로는 항상 단순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성직자의 기강을 바로잡은 가톨릭 교회의 개혁에 힘썼다. 비오 4세가 병에 걸리자 카를로는 그의 곁으로 달려가 죽음을 준비하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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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숑(Pichon) - 《밀라노의 역병 중 성 카를로》(Saint Charles pendant la peste de Milan, 1867), 벽화

비오 4세가 사망한 후, 카를로는 자신의 교구인 밀라노에 헌신했다. 그는 1576년에 역병이 발생했을 때 도시를 떠나기를 거부했다. 신중함을 유지하면서도 그는 병자들을 방문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카를로는 영혼들의 건강에 대해서도 염려했다. 이 그림에서 그는 수난의 유물이 담긴 십자가를 들고 행렬을 이끌고 있다. 그는 참회의 표시로 맨발에 목에는 밧줄을 감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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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마르키오리(Giovanni Marchiori) - 《성 요셉》(Saint Joseph, 18세기 초), 대리석상

복음서는 요셉이 '의로운 사람' 즉 정직하고 겸손하며 충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나자렛(갈릴래아)에 살며 목수 일을 했다. 요셉은 하나님에 의해 동정 마리아의 남편이자 그분의 아들 예수의 양아버지가 되도록 선택되었다. 조각가는 성 요셉과 아기 예수를 하나로 묶어주는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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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랑델(Charles Landelle) - 《성 요셉의 꿈》(Le songe de Saint Joseph, 1875), 벽화

동정 마리아와 약혼 기간 중에 요셉은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그녀를 은밀히 파혼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잠든 동안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기다리던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준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가지고 마리아와 그녀의 아이를 받아들인다. 그는 여기서 꿈속에서 천사들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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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랑델(Charles Landelle) - 《성 요셉의 죽음》(La mort de Saint Joseph, 1875), 벽화

복음서는 성 요셉의 죽음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에 따르면 그는 생애 마지막 날들에 마리아와 예수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화가는 이 거룩한 가족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애정을 강조한다. 분위기는 평화롭고 마리아와 예수는 노인의 손을 잡고 있다. 성 요셉은 죽음이 임박한 이들을 위해 기도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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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마투(Louis Matout) - 《참나무 아래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성 루이》(Saint Louis rendant la justice sous un chêne, 1870), 벽화

성 루이 혹은 루이 9세는 정의감으로 잘 알려진 13세기의 왕이다. 그는 자주 참나무 아래 서서 학대적인 상황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이들을 맞이했다. 루이는 자신의 신앙에서 영감을 얻어 사법 제도를 개혁했다. 그는 결투를 금지하고, 모든 이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주기 위해 노력했으며, 무죄 추정의 원칙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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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마투(Louis Matout) - 《다미에타의 역병 피해자들을 매장하는 성 루이》(Saint Louis enterrant les pestiférés à Dammiette, 1870), 벽화

1248년 루이는 기독교 성지로의 접근을 다시 열기 위해 제7차 십자군을 이끌었다. 그러나 십자군은 곧 약해졌고 심각한 전염병을 겪었다. 화가는 루이의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 자신도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은 사람의 시신이 묻히기 전에 자신의 겉옷으로 직접 감싸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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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티스트 피갈(Jean-Baptiste Pigalle) - 《성모자상》(La Vierge à l'Enfant, 1754), 조각

이 조각상은 1754년 장-바티스트 피갈에 의해 조각되었다. 이 상은 교회의 입구에서부터 눈에 띄며, 교묘하게 숨겨진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빛에 의해 깊은 감실(Niche) 안에 연출되어 있다. 치장 벽토(Stuc)로 만든 광선과 구름 장식, 그리고 루이 15세(Louis XV) 왕이 교회에 기증한 고대 유적지에서 가져온 6개의 기둥이 이 앙상블의 장엄한 모습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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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르무안(François Lemoyne) - 《성모 승천》(L'Assomption de la Vierge, 1731-1732), 천장 벽화

1731년, 랑게 드 제르지(Languet de Gergy) 신부는 쿠폴라 장식을 위해 화가 르무안에게 주문을 맡겼다. 이 프레스코화는 지상 생활의 끝에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주제로 한다.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373$m^2$의 면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구도의 장관을 이루는 효과를 통해 천장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80명 이상의 인물이 5개의 주요 그룹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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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반 로(Carle Van Loo) - 《성모의 생애》(La vie de la Vierge, 1745년경), 회화

채플의 회화 장식은 르무안의 프레스코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745년경, 랑게 드 제르지 신부는 옛 창문 자리를 대신할 4점의 대형 회화를 주문했다. 화가 카를 반 로가 이를 제작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성모의 생애 중 네 가지 에피소드를 묘사한다. 그의 구도는 고귀한 단순함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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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반 로(Carle Van Loo) - 《목자들의 경배》(L'Adoration des Bergers), 회화

크리스마스 밤, 목자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가장 먼저 전해 듣는다. 그들은 구유로 가서 아기 앞에 엎드린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여기 아주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계시며, 그의 빛으로 밤의 어둠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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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반 로(Carle Van Loo) - 《성전 봉헌》(La Présentation au Temple), 회화

유대 율법을 존중하고자 한 요셉(Joseph)과 마리아(Marie)는 갓 태어난 아기를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러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노인 시메온(Siméon)과 여예언자 안나(Anne)를 만나는데, 이들은 예수(Jésus)를 그토록 기다려온 구세주로 알아본다. 두 사람 모두 들을 준비가 된 이들에게 아이의 신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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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나(Sainte 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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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르네뵈(Jules Lenepveu) - 《마리아의 탄생》(La Naissance de Marie, 1862-1864), 벽화

그리스도교 전승은 마리아의 부모 이름을 안나(Anne)와 요아킴(Joachim)으로 전한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그들은 노년이 되어서야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랐다. 안나는 마리아의 탄생 직후의 감동적인 순간에 아기를 하느님께 바친다. 삼각형과 비둘기로 상징되는 하느님이 아기를 축복한다. 천사들의 무리가 미래의 예수의 어머니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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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르네뵈(Jules Lenepveu) - 《마리아의 성전 봉헌》(La Présentation de Marie au Temple, 1862-1864), 벽화

마리아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안나와 요아킴은 마리아를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간다. 성전의 계단을 오르는 마리아의 기도하는 모습은 그녀가 이미 전적으로 하느님께 바쳐졌음을 나타낸다. 구경꾼 무리가 이 사건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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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루이 빅토르 메르시에(Michel-Louis Victor Mercier) - 《성녀 제네비에브》(Sainte Geneviève, 1836), 조각상

제네비에브는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메로빙거 왕조(Mérovingiens)의 출현으로 특징지어지는 혼란스러운 시기인 5세기에 태어났다. 그녀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우 경건했던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선택했다. 그녀는 훈족(Huns)의 침략 당시 파리 시민들이 도시에 머물도록 격려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는 용기와 명석함, 그리고 신앙으로 그 시대에 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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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니콜라 티발(Louis-Nicolas Timbal) - 《빵을 나누어 주는 성녀 제네비에브》(Sainte Geneviève distribue le pain, 1864), 벽화

475년 파리, 도시는 프랑크족(Francs)에게 포위되었고 기근이 많은 주민을 덮쳤다. 제네비에브(Geneviève)는 다시 한번 끈기를 보여주며 봉쇄를 뚫고 여러 차례 파리 시민들에게 보급품을 가져다준다. 제네비에브는 또한 프랑크족의 새로운 왕 클로비스(Clovis)의 개종을 위해 기도한다. 클로비스는 496년에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에 입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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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니콜라 티발(Louis-Nicolas Timbal) - 《열병의 기적》(Le Miracle des Ardents, 1864), 벽화

훗날 12세기에 '열병'(Mal des ardents)이 파리 인구를 멸절시켰다. 오늘날 '맥각중독'(Ergotisme)으로 확인된 이 질병은 오염된 호밀 소비로 인한 것이었다. 파리 주교는 제네비에브의 유해를 수도원(현재의 팡테옹 위치)에서부터 노트르담 대성당까지 행렬하도록 했다. 유해함이 지나가는 길에 많은 환자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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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파우스티나 유해함》(Reliquaire de Sainte Faustine, 2010), 성물함

이 보석 같은 함은 성녀 파우스티나(Faustine)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20세기 폴란드의 이 겸손한 수도자는 '하느님의 자비'(Divine Miséricorde)에 관한 예수의 수많은 환시와 계시를 받았다. 유해는 성인의 '남은 것'(신체 부위나 사용했던 물건)이다. 유해는 공경의 대상이며 신자를 성인과 연결하는 애정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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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모테즈(Victor Mottez) - 《가난한 이와 옷을 나누는 성 마르티노》(Saint Martin partageant son manteau avec un pauvre, 1862-1863), 벽화

마르티노(Martin)는 로마 군대의 젊은 군단병이었다. 어느 겨울밤, 그는 아미앵(Amiens)에서 헐벗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가난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망토 절반(다른 절반은 군대의 소유였다)을 그에게 주었다. 다음 날 밤, 예수가 그가 나누어 준 망토를 입고 그에게 나타났다. 마르티노는 감동하여 몇 달 후 22세의 나이에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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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모테즈(Victor Mottez) - 《예비 신자를 부활시키는 성 마르티노》(Saint Martin ressuscitant un catéchumène, 1862-1863), 벽화

마침내 군대를 떠날 수 있게 된 마르티노는 수도자가 되었고 361년 갈리아(Gaule) 지방의 첫 번째 수도원을 리귀제(Ligugé)에 세웠다. 그는 그곳에서 기도를 통해 큰 기적을 얻었다. 세례를 받기 전 죽은 젊은 제자의 부활이었다. 이 기적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몇 년 후, 투르(Tours)의 주민들은 마르티노를 납치하다시피 데려가 주교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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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조베-뒤발(Félix Jobbé-Duval) - 《이교도 신들에게 제사 지내기를 거부하는 성 디오니시오》(Saint Denis refuse de sacrifier aux dieux païens, 1859), 벽화

아마도 3세기에 디오니시오(Denis)는 갈리아 지방을 복음화하기 위해 교황에 의해 로마를 떠나 파견되었다. 루테티아(현대의 파리)에 도착한 그는 주민들에게 예수를 선포하고 여러 교회의 건설을 시작했다. 그는 로마 당국에 의해 체포되기 전 도시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 그의 두 동료인 엘뢰테르(Eleuthère)와 뤼스티크(Rustique)와 함께 그는 자신의 신앙에 충실했으며 로마 신들에게 제사 지내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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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조베-뒤발(Félix Jobbé-Duval) -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디오니시오》(Saint Denis est conduit au supplice, 1859), 벽화

디오니시오와 그의 동료들은 신앙을 버리기를 거부하고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이 처형은 몽마르트르(Montmartre, 순교자의 산) 언덕에서 거행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주교는 처형된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어 자신의 머리를 집어 들고 북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결국 현재의 대성당 위치인 생드니(Saint-Denis)에 쓰러져 그곳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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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앞쪽의 또 다른 제단에서는 미사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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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오선의 끝은 오벨리스크로 연결되는데, 오벨리스크가 있는 쪽이 현재 공사중이여서 숨겨져있다.


피에르-샤를 르 모니에(Pierre-Charles Le Monnier) - 《천문 노몬》(Gnomon astronomique, 1743), 천문 도구

18세기의 과학적 호기심인 생 쉴피스(Saint-Sulpice)의 노몬은 태양 고도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설계된 천문 도구다. 남쪽 트랜셉트의 유리창에 고정된 작은 구멍이 뚫린 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멍의 수직 아래로, 황동 조각을 통해 바닥에 '자오선'(Méridienne) 선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 선은 트랜셉트 전체를 가로질러 오벨리스크 위로 연장된다. 태양 광선은 구멍(과거에는 렌즈가 장착됨)을 통과하여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높이 떴을 때, 즉 진태양시 정오에 자오선 위의 한 지점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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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슬로츠(Michel-Ange Slodtz) - 《장-바티스트 랑게 드 제르지의 묘비》(Mausolée de Jean-Baptiste Languet de Gergy, 1757), 조각

이 예배당에는 18세기 프랑스 장례 조각의 걸작 중 하나가 소장되어 있다. 1750년 생 쉴피스의 신부 장-바티스트 랑게 드 제르지가 사망하자 파리 시민들의 주문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의 랑게 드 제르지를 표현했다. 그는 교회의 주 제단을 향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불멸'(Immortalité)은 죽음과 망각의 베일을 걷어내며 망자의 부활을 알린다. 동시에 그녀는 왼쪽에 브론즈 해골로 표현된 '죽음'(Mort)의 형상을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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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시몽 부아조(Louis-Simon Boizot) - 《성 요한 세례자》(Saint Jean Baptiste, 1785), 왼쪽 조각상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마리아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기뻐했던 어린 요한 세례자는 예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이다. 그는 금욕적인 삶의 방식을 통해 당대 사회를 뒤흔들었다. 모든 이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며 요단강 가에서 회개의 세례를 제안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예수, 즉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에게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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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르(Vermare) - 《성녀 잔 다르크》(Sainte Jeanne d'Arc, 1909), 금을 입힌 석고상

잔 다르크(Jeanne d'Arc)는 15세기에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로렌(Lorraine)에서 태어났다. 17세에 프랑스 군대에 합류하여 영국군을 상대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매 전투에 앞서 잔 다르크는 기도했으며, 정복한 토지를 평화적으로 되찾으려 노력했다. 잔 다르크는 자신의 힘을 주님께 두었으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잔 다르크는 결국 붙잡혀 1431년 루앙(Rouen)에서 화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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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뱅숑(Auguste Vinchon) - 《생 모리스와 그의 동료들의 순교》(Le Martyre de Saint Maurice et de ses compagnons, 1822), 벽화

3세기 말, 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는 이집트 출신의 군단을 가울(Gaule) 지방으로 파견했고, 이 군단은 모리스(Maurice)라는 인물이 지휘했다. 그런데 이 군단의 군인 6,600명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었다. 이들은 로마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오른쪽),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충실하기로 선택했다. 이 군단은 스위스 아가운(Agaune)에서 학살당했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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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팔기에르(Alexandre Falguière) - 《두 아이를 가르치는 성 장-바티스트 드 라 살》(Saint Jean-Baptiste de La Salle instruisant deux enfants, 1875), 석고상

루이 14세 시대부터 성 장-바티스트 드 라 살(Saint Jean-Baptiste de La Salle)은 무상 교육을 창설하고 모든 이에게 개방했다. 그는 교사들의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는 남성들의 공동체인 '그리스도 교육 수사회'(Frères des écoles chrétiennes)를 창설했다. 오늘날 이 수사들은 80개국에서 약 100만 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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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드 퓌졸(Abel de Pujol) - 《페스트 환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성 로크》(Saint Roch priant pour la guérison des pestiférés, 1822), 벽화

성 로크(Saint Roch)는 14세기 '흑사병'(Grande Peste) 시대에 몽펠리에(Montpellier)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사망하자 그는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고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고 많은 치유를 이끌어냈다. 화가는 여기서 기도하는 성인을 보여주는데, 성인의 눈은 하늘을 향해 있다. 성 로크는 나중에 기적적으로 페스트에서 치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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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드 퓌졸(Abel de Pujol) - 《감옥에서 성 로크의 죽음》(La Mort de Saint Roch en prison, 1822), 벽화

나중에 성 로크(Saint Roch)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페스트는 그의 얼굴에 끔찍한 흔적을 남겼고 그의 가족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간첩 혐의로 고발당해 투옥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고독 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기도 생활에 의지하며 5년을 보냈다. 그가 죽기 전날, 그의 할머니는 그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 모양의 모점을 보고 마침내 그를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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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쟁제(Clésinger)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있는 피에타》(Piétà avec Sainte Marie-Madeleine, 1858), 석고상

《피에타》(Piétà)는 아들의 시신을 무릎 위에 안고 있는 마리아의 이미지다. 예수의 정죄와 십자가 처형의 소란이 지나간 후,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마리아는 절제된 고통을 표현하며 눈을 감고 기도하는 듯하다. 그녀의 곁에는 한때 큰 죄인이었으나 모든 희망에 반하여 희망하며 회개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Sainte Marie-Madeleine)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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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앙리 도팡(Alphonse Henri Paff) - 《그리스도교 신자를 격려하는 종교》(La Religion encourage un chrétien mourant, 1845), 벽화

벽화에는 임종의 고통 속에 있는 한 남자가 등장하며, 종교를 상징하는 젊은 여성이 그를 부축하고 있다. 남자는 천사들이 나타나고 커다란 빛의 십자가가 보이는 하늘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는 또한 슬퍼하는 가족과 기도하는 수도사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 신자를 고무하는 희망, 즉 사후에 하나님 곁에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희망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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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앙리 도팡(Alphonse Henri Paff) - 《연옥의 영혼들을 위한 기도의 효능》(L'efficacité de la prière pour les âmes du Purgatoire, 1845), 벽화

죽음의 순간에 드문 영혼들만이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연옥은 하나님과 완전한 만남을 갖기 전, 기도를 통해 영혼이 죄의 흔적을 정화하는 불과 같은 시간이다. 산 자들은 기도를 통해 이 고인들의 정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화가는 여기서 친지들의 기도 덕분에 연옥에서 해방된 한 영혼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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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 《천사와 야곱의 투쟁》(La Lutte de Jacob avec l'Ange, 1849-1861), 유채와 납랍화

들라크루아(Delacroix)는 여기서 『창세기』(Genèse)의 한 구절을 묘사한다. 수년간의 유배 생활 후, 족장 야곱(Jacob)은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는 밤새도록 싸워야 하는 신비로운 인물과 마주친다. 결국 승리하지만 부상을 입은 야곱은 자신의 상대가 신성한 본성을 지녔음을 깨닫는다. 그는 상대에게 축복과 '이스라엘'(Israël,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이 투쟁은 야곱과 하나님을 잇는 독특한 경험을 반영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악에 대항하고, 자신을 사랑에 반대하게 만드는 영적 전투, 내면의 전투에 대한 이미지다. 이는 또한 시련과 의심 속에서도 신앙을 키워가며 하나님과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투쟁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장면은 위엄 있는 풍경 속에서 펼쳐진다. 오른쪽에는 가축 떼의 행렬과 목자들이 평원 속에서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야곱이 천사의 모습 아래 이름 모를 존재와 맞붙는 순간에는 긴장감이 고조된다. 들라크루아는 체념한 듯한 인내를 보이는 천사의 모습과 공격적이고 결연하며 이기고자 하는 야곱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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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 《성전에서 쫓겨나는 헬리오도로스》(Héliodore chassé du temple, 1849-1861), 유채와 납랍화

천사들의 힘은 『마카베오기 하권』(Deuxième livre des Martyrs d'Israël)에서 발췌한 이 장면에서 드러난다. 기원전 180년경, 예루살렘은 성전의 보물을 탈취하려는 그리스 출신 왕의 지배를 받았다. 제사장들과 도시 주민들은 성전을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성전에 도착한 헬리오도로스(Héliodore)는 자신의 경비대와 함께 말을 탄 무시무시한 천사에 의해 땅으로 내동댕이쳐지고, 하늘에서 보내진 다른 두 전령은 그를 향해 달려들어 채찍질을 한다. 놀라고 겁에 질린 수많은 목격자가 이 광경을 지켜본다. 성경 이야기의 나머지는 이 에피소드의 영적 의미를 밝혀준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준 대제사장 덕분에 헬리오도로스는 목숨을 구한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갔으나 마음은 바뀌어 있었다.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 위대한 증언을 하셨다." 이 작품은 화려하고 세부 묘사가 풍부하다. 들라크루아는 세심하게 묘사된 건축물, 풍부한 장식, 중앙 인물들의 놀라운 움직임을 통해 마치 진짜 연극 장면처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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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 《악마를 물리치는 성 미카엘》(Saint-Michel terrassant le Demon, 1849-1861), 돔에 부착된 캔버스에 유채

들라크루아(Delacroix)는 여기서 돔에 직접 붙인 타원형 캔버스를 제작했다. 승리자로 묘사된 대천사 미카엘(Saint Michel)은 발아래에 거꾸러진 악마를 향해 창을 휘두른다. 천사장과 사탄의 최후의 전투는 『요한 계시록』(Apocalypse)에서 언급된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카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사탄과 싸우는 성 미카엘의 모습은 하나님께 충실한 천사들과 그에게 반역한 자들 사이의 영적 투쟁을 상기시킨다. 이는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상징한다. 종종 천상 군대의 군주로 묘사되는 성 미카엘은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보호자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색채가로서의 재능과 역동성에 대한 감각을 통해, 들라크루아는 매우 자주 묘사되었던 이 장면을 새롭게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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