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레즈 Poésie pour pouvoir (1958)

한글로 된 유일한 자료

by 돈 없는 음대생

작품 개요


창작 배경


1958년, 당시 33세였던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는 프랑스 음악계의 뿌리 깊은 보수주의에 강한 반감을 품고, 보다 급진적인 현대 음악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독일의 바덴바덴(Baden-Baden)으로 거처를 옮긴 상태였다.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악을 결합한 초기 '혼합 음악'(musique mixte)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되는데, 여기서 불레즈는 단순히 전자음을 합성하여 나란히 놓는 방식을 거부했다.


그는 오케스트라 악기의 실제 음향을 직접 녹음한 뒤 이를 변형, 가공하여 전자음악의 재료로 삼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통합'을 지향했다. 이러한 접근은 음향의 출처와 변형 과정 자체를 작곡의 핵심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이후 전자음악과 기악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초연


《Poésie pour pouvoir》(권력을 위한 시, 혹은 지배를 위한 시)는 1958년 10월 19일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남서독일방송(SWR)의 음악 감독이자 음악제의 예술 감독이었던 하인리히 슈트로벨(Heinrich Strobel)의 위촉으로 작곡되었으며, 불레즈는 남서독일방송 교향악단과 새롭게 설립된 전자음악 스튜디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초연에 앞서 약 6개월 동안 전용 작업 공간에 머물며 오케스트라 음향과 전자음악 테이프를 병행 제작하는 실험적 과정을 이어갔다. 그러나 악보는 출판을 위한 정식 형태가 아니라 작업용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리허설 도중에도 지속적으로 악보를 수정해야 했고, 이는 연주 과정 전반에 상당한 난점을 야기했다.


초연에서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었고, 두 명의 지휘자가 이를 이끌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불레즈 자신이었다. 무대에는 전자 장비를 통해 미셸 부케(Michel Bouquet)의 목소리가 사전에 녹음된 형태로 재생되며, 기악과 전자음향, 그리고 음성의 층위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구조가 구현되었다.


그러나 불레즈는 초연 결과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자신이 제작한 자기 테이프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악 사이에서 기대했던 유연한 상호작용이나 정밀한 동기화가 실현되지 못했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공식 작품 목록에서 제외했고, 전자음악 테이프마저 분실되면서 이 작품은 수십 년간 연주되지 못한 채 사실상 사라진 상태로 남게 된다.


초연 당시 공연장 어딘가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현장이 녹음되기는 했으나, 음질이 매우 열악한 모노 녹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 기록은 2025년에 이루어진 복원 프로젝트에서 사실상 유일한 청각적 단서이자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불레즈 - Poésie pour pouvoir (초연 녹음)

이 초연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이 세 개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Gruppen》(1955–57)을 발표한 지 불과 6개월 뒤에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아방가르드 음악계에서 활발히 전개되던 '공간화'에 대한 탐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작품 구조


전체 형식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 섹션과 전자음악 섹션이 교차하는 블록 구조를 기반으로 전개된다. 전자음악 구간(SEQ électronique 1~9)과 기악 구간이 번갈아 등장하며, 각 전자음악 구간이 끝을 향해 갈 때 오케스트라가 다시 개입하면서 두 층위의 음향이 수 초간 겹쳐지는 '투일라주'(tuilage) 기법이 핵심적으로 사용된다. 이 짧은 중첩 구간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층이 교차하며 하나의 흐름으로 재편되는 순간을 형성한다.


원본 악보에는 음표 대신 화살표와 숫자(1, 2, 3 등)만 가득했는데, 이는 특정 지점에서 되돌아가거나 앞뒤로 이동하는 구조적 지시였다. 전자음악과 오케스트라가 만나는 지점, 혹은 두 명의 지휘자가 이끄는 악단들이 의도적으로 어긋났다가 다시 합쳐지는 지점들에 대한 상세한 계획도 노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시간과 리듬 조직


리듬 조직 역시 전통적인 박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4분음표 대신 16분음표나 32분음표 단위를 기본 박으로 설정함으로써, 음악은 끊임없이 세분화된 시간 위에서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나선형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미세한 단위의 축적은 리듬을 단순한 박자 체계가 아니라, 밀도와 방향성을 지닌 연속체로 전환시킨다.


당시 불레즈는 약 4~6개월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시간 안에 이 복잡한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그는 모든 순간을 새롭게 기보하는 대신, 한 페이지 분량의 밀도 높은 악보를 먼저 구축한 뒤 이를 반복적으로 재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 반복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매번 다른 악기군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연주(Refrain)에서는 솔리스트 그룹(Orchestre solistes)만이 등장하고, 이어지는 반복에서는 중간 오케스트라(Orchestre milieu)가 추가되며, 마지막에는 상층 오케스트라(Orchestre haut)까지 모두 합류한다. 이처럼 동일한 기보가 서로 다른 음향 층위에서 중첩되며 점진적으로 확장되면서, 제한된 악보로도 긴 시간적 전개와 고밀도의 음향 구조를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형태, 리듬, 공간 배치는 서로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개념으로 기능하며, 모두가 서서히 가속하고 상승하는 나선형(spiral) 구조로 설계되었다.


오케스트라 구조와 공간


전체 악단은 수직적 높이 차이를 두고 세 개의 층위로 분할된다. 가장 아래에는 솔리스트 그룹, 그 위 약 40cm 지점에는 중간 오케스트라(Milieu), 그리고 최상단에는 상층 오케스트라(Haut)가 배치되었다. 이러한 입체적 배열은 단순한 시각적 구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음향 층위가 공간 속에서 교차하고 분리되는 과정을 청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핵심적인 설계이다.


명칭상 '오케스트라'이지만 실제 내부 구조는 전통적인 합주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체는 총 64개의 실질적 독주 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연주자는 동일 파트를 공유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악보를 연주한다. 즉 모든 연주자가 하나의 집합이 아니라 개별적인 독주자로 존재하는 구조이다. 이로 인해 모든 악기를 개별적으로 기보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악보의 보표 수는 당시 기준으로도 이례적일 만큼 방대한 규모에 이르렀다. 리듬 단위는 16분음표나 32분음표보다도 더욱 세밀하게 분할되어 있어 연주 난도는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전체 악기 구성

지휘 역시 단일한 중심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두 명의 지휘자가 필요하며, 한 명은 하단과 중간 그룹을, 다른 한 명은 상층 오케스트라를 전담한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면서도 때로는 의도적으로 박을 어긋나게 하는 '비동기화'(désynchronisation)를 수행한 뒤, 다시 정확한 '재동기화'(resynchroniser)에 도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 다른 공간에 배치된 앙상블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효과를 극대화하며, 지휘자는 각 층위의 반응과 흐름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Poésie pour pouvoir》에서 시도된 다중 지휘 및 공간 분리 방식은 슈톡하우젠의 《Gruppen》(1955–57)에서 이미 선보인 아방가르드적 실천과 궤를 같이한다. 두 작품 모두 공간적으로 분리된 오케스트라 그룹 간의 '대화'와 의도적인 비동기화를 핵심으로 삼으며, 음악을 단일한 방향의 흐름이 아닌 다중 중심적 사건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나아가 슈톡하우젠의 후속 작품 《Carré》(1959–60)에서는 네 개의 오케스트라가 청중을 둘러싸고, 네 명의 지휘자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연주를 이끄는 방식으로 이러한 공간적 개념이 더욱 확장된다.

Stockhausen - Gruppen의 무대 구성
Stockhausen - Carré의 무대 구성. https://www.karlheinzstockhausen.org/

전자음향


전자음향은 오늘날과 같은 실시간 처리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제작된 자기 테이프(Magnetic Tape)를 재생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불레즈는 신시사이저를 통한 합성음을 배제하고, 오케스트라 악기나 특정 화음을 직접 녹음하여 전자음향의 재료로 삼았다. 이로써 기악 음향과 전자음 사이의 질감적 연속성이 확보되며, 두 영역은 대립이 아니라 변형과 확장의 관계로 재구성된다. 미셸 부케가 낭독한 앙리 미쇼(Henri Michaux)의 시 구절 역시 중요한 음향 재료로 사용되어, 언어적 요소가 전자적 변형을 거치며 새로운 층위를 형성한다.


음향 가공에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에 해당하는 주파수 이동기(Frequency Shifter)가 활용되었다. 이는 SWR 스튜디오의 엔지니어가 직접 고안한 것으로, 소리의 스펙트럼을 주파수 축 상에서 이동시켜 배음 구조를 비조화적(inharmonic)으로 변형한다. 그 결과 원래의 음색은 유지되면서도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음향으로 변질된다. 낭독된 음성은 시의 어둡고 격렬한 정서를 부각하기 위해 뒤틀리고 왜곡된 형태로 가공되어, 의미 전달을 넘어 순수한 음향적 요소로 재편된다.


전자 장비 구성 또한 매우 복합적이었다. 다양한 전자음 발생기와 변형기(광전지 기반 곡선 변조기, 주파수 이동기, 테이프 속도 변환 모듈)가 사용되었으며, 여러 대의 모노 마그네토폰과 함께 8트랙 마그네토폰이 공연 재생용으로 활용되었다. 이 8트랙 장치는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기술자가 직접 작동시켰다. 주파수 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의 스피커 링이 객석을 둘러싸도록 배치되었고, 연주자 상공에는 회전하는 천장 스피커가 설치되어 음향이 공간 속에서 이동하고 순환하는 입체적 청취 환경이 구현되었다.


그러나 자기 테이프 기반의 기술은 본질적으로 경직된 시간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와 전자음향이 실시간으로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불레즈는 인간 연주와 기계적 재생 사이의 완전한 융합을 지향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이를 구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오케스트라 섹션과 전자음향 섹션이 교대로 등장하는 블록 구조를 통해 이러한 제약을 우회하며,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최대한의 통합 효과를 끌어내고자 했다.


텍스트와 의미 층위


앙리 미쇼와 시


텍스트는 벨기에 시인 앙리 미쇼(Henri Michaux)의 동명 시집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시집은 리브르-오브제(livre-objet), 즉 읽는 것보다 보는 책으로, 페이지 자체가 작품이거나 글자 배치에 의미가 있거나 시각적 리듬이 존재하는 등 책 전체가 하나의 조형물이다. 그중 〈나는 노를 젓는다〉(Je rame)를 사용했다. 불레즈는 미쇼 시의 거칠고 폭력적이며 주문(incantatory) 같은 성격, 그리고 자기 파괴적인 분노가 분출되는 표현력에 매료되었다.


한편 미쇼 본인은 자신의 시가 낭독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 시는 밖으로 발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울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이 텍스트를 “내부에서 우리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더 강하게 만드는 바이러스”와 같은 힘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작업은 배우 미셸 부케의 낭독을 녹음한 뒤 이를 전자적으로 변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텍스트의 역할


시는 신체성과 폭력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네 입은 너를 물고, 네 손톱은 너를 할퀸다”(ta bouche te mord, tes ongles te griffent), “나는 너의 삶을 저주했다... 네 꿈의 내부를 저주했다”, “외눈박이 말의 거대한 흰 눈 위에서 너의 미래가 굴러간다”(tout le grand œil blanc d'un cheval borgne roule ton avenir)와 같은 구절이 이러한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에서 '나'(Moi)와 '너'(Tu)는 분리된 인물이 아니라, 동일한 존재가 분열된 형식으로 나타난다. 자기 자신을 향한 저주와 파괴를 통해 일상의 지각 구조를 붕괴시키고, 그 너머의 극단적 감각 상태에 도달하려는 흐름이 중심을 이룬다. 분노와 격렬한 에너지는 일종의 추진력처럼 지속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 불레즈는 이 과정을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엑소시즘적 의례로 이해했고, 내면의 어둠을 외부로 밀어내는 동시에 정화의 과정으로 해석했다.


원문 / 번역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SEQ 1)
J'ai maudit ton front ton ventre ta vie / 나는 너의 이마를, 너의 배를, 너의 삶을 저주했다
J'ai maudit les rues que ta marche enfile / 나는 네 걸음이 꿰어 지나가는 거리들을 저주했다
Les objets que ta main saisit / 네 손이 붙잡는 사물들을 저주했다
J'ai maudit l'intérieur de tes rêves / 네 꿈의 내부를 저주했다

(SEQ 2)
J'ai mis une flaque dans ton œil qui ne voit plus / 나는 네 눈 속에,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웅덩이를 넣었다
Un insecte dans ton oreille qui n'entend plus / 네 귀 속에, 더 이상 듣지 못하는 벌레를 넣었다
Une éponge dans ton cerveau qui ne comprend plus / 네 뇌 속에,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스펀지를 넣었다

(SEQ 3)
Je t'ai refroidi en l'âme de ton corps / 나는 네 몸의 영혼 속에서 너를 식혀버렸다
Je t'ai glacé en ta vie profonde / 나는 네 깊은 생 속에서 너를 얼려버렸다
L'air que tu respires te suffoque / 네가 들이마시는 공기가 너를 질식시킨다
L'air que tu respires a un air de cave / 네가 들이마시는 공기는 지하실의 공기 같다
Est un air qui a déjà été expiré / 이미 한 번 내뱉어진 공기다
Qui a été rejeté par des hyènes / 하이에나들이 토해낸 공기다

Le fumier de cet air personne ne peut plus le respirer / 그 공기의 썩은 찌꺼기는 누구도 더 이상 들이마실 수 없다

(SEQ 4)
Ta peau est toute humide / 너의 피부는 온통 축축하다
Ta peau sue l'eau de la grande peur / 너의 피부는 거대한 공포의 물을 땀처럼 흘린다
Tes aisselles dégagent au loin une odeur de crypte / 너의 겨드랑이는 멀리까지 무덤 같은 냄새를 퍼뜨린다

(SEQ 7)
Les animaux s'arrêtent sur ton passage / 짐승들이 네가 지나가면 멈춰 선다
Les chiens, la nuit, hurlent, la tête levée vers ta maison / 개들은 밤마다 네 집을 향해 고개를 들고 울부짖는다
Tu ne peux pas fuir / 너는 도망칠 수 없다
Il ne te vient pas une force de fourmi au bout du pied / 발끝에는 개미 한 마리의 힘조차 생기지 않는다
Ta fatigue fait une souche de plomb en ton corps / 너의 피로는 네 몸속에 납덩이 그루터기를 만든다
Ta fatigue est une longue caravane / 너의 피로는 긴 캐러밴이다
Ta fatigue va jusqu'au pays de Nan / 너의 피로는 난(Nan)의 나라까지 이어진다
Ta fatigue est inexpressible / 너의 피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SEQ 5)
Ta bouche te mord / 너의 입이 너를 문다
Tes ongles te griffent / 너의 손톱이 너를 긁는다
N'est plus à toi ta famme / 더 이상 네 여자는 네 것이 아니다
N'est plus à toi ton frère / 더 이상 네 형제도 네 것이 아니다
La plante de son pied est mordue par un serpent furieux / 그의 발바닥은 분노한 뱀에게 물려 있다

On a bavé sur ta progéniture / 사람들은 네 자식들에게 침을 흘렸다
On a bavé sur le rire de ta fillette / 사람들은 네 딸의 웃음 위에 침을 흘렸다
On est passé en bavant devant le visage de ta demeure / 사람들은 네 집의 얼굴 앞을 지나며 침을 흘렸다

(SEQ 6)
Le monde s'éloigne de toi / 세상은 너에게서 멀어진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rame contre ta vie / 나는 너의 삶을 거슬러 노를 젓는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me multiplie en rameurs innombrables / 나는 수없이 많은 노 젓는 이들로 나를 늘린다
Pour ramer plus fortement contre toi / 더 강하게 너를 거슬러 젓기 위해

Tu tombes dans le vague / 너는 흐릿한 곳으로 떨어진다
Tu es sans souffle Tu te lasses avant même le moindre effort / 너는 숨이 없고, 아주 작은 노력조차 하기 전에 지쳐버린다

(SEQ 8)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Tu t'en vas, ivre, attaché à la queue d'un mulet / 너는 떠나간다, 술에 취해, 노새의 꼬리에 묶인 채
L'inverse comme un immense parasol qui obscurcit le ciel / 거대한 양산처럼 뒤집힌 것이 하늘을 어둡게 덮는다

Et assemble les mouches / 그리고 파리들을 불러 모은다
L'ivresse vertigineuse des canaux semicirculaires / 반고리관의 현기증 나는 취기
Commencement mal écouté de l'hémiplégie / 반신불수의 서툰 시작
L'ivresse ne te quitte plus / 그 취기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Te couche à gauche / 너를 왼쪽으로 눕히고
Te couche à droite / 너를 오른쪽으로 눕히고
Te couche sur le sol pierreux du chemin / 너를 돌길 위에 쓰러뜨린다
(SEQ 9)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rame contre tes jours / 나는 너의 날들을 거슬러 노를 젓는다

Dans la maison de la souffrance tu entres / 고통의 집 안으로 너는 들어간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Je rame / 나는 노를 젓는다
Sur un bandeau noir tes actions s'inscrivent / 검은 붕대 위에 너의 행위들이 새겨진다
Sur le grand œil blanc d'un cheval borgne roule ton avenir / 외눈박이 말의 거대한 흰 눈 위에서 너의 미래가 굴러간다

앙리 미쇼, 『지배를 위한 시』(Poésie pour pouvoir, 1948), pp.23–24


분석


전자 시퀀스 기준 형식 분석


SEQ électronique 1


악보에는 시작 지점을 안내하는 텍스트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입되어 있다. 특정 텍스트 이후에 연주를 시작하도록 되어 있는 방식이다.

L'intérieur de tes rêves... 이후 시작하라는 표기가 되어있다.

초기에는 Solistes가 먼저 등장하며, SEQ électronique 1이 끝나는 시점에서 A 부분에 이르러 Milieu가 합류한다. 전자음향 역시 “낮은 전자음 이후 시작”과 같은 방식으로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다.

Orchestre milieu의 등장
낮은음들 이후 시작하라는 표기

두 오케스트라는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서로 주고받는 형태로 진행된다.


SEQ électronique 2


F 부분에 이르면 점차 Solistes만 남게 되고, 이어서 SEQ électronique 2가 시작된다. 약 1분 44초가 지난 후 G 부분에서는 바로크의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과 유사하게 Solistes와 Milieu가 콘체르티노–리피에노(Concertino–Ripieno) 관계를 형성한다.

Milieu가 Concertino, Solistes가 Ripieno 같은 느낌으로 진행된다.

짧은 6마디의 G가 끝나면 H에서 Haut가 처음으로 등장하며, I에서 처음으로 두 지휘자가 동시에 지휘를 한다. 이후 SEQ électronique 3(2'03'')가 이어진다.

H에서의 Haut의 첫 등장
I에서 처음으로 두 지휘자가 동시에 지휘를 한다.

SEQ électronique 3


K의 짧은 4마디 구간에서 Haut가 연주하는 동안 두 지휘자는 처음으로 동일한 박자를 공유하며 L을 준비한다.


L에서는 처음으로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연주한다.

세 개의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연주한다.

M 이후에는 다시 Haut만 남고, N에서 Haut는 점차 느려지는 반면 Milieu는 기존 템포를 유지한다. 여기서 처음으로 두 지휘자 간의 명확한 비동기(desynchronization)가 발생하며, 서로 다른 박자표로 독립적으로 진행한다.

두 오케스트라 간의 비동기가 표시되어 있다.

O에서는 Milieu가 독자적으로 느려지고 Haut는 G.P.에 들어간다. N2에서는 Solistes, P에서는 다시 Haut가 등장한다.

Milieu와 Haut의 서로 다른 박자표와 ritardando

이 시점 이후에는 오케스트라들이 시간적으로 어긋난 채 순차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엄밀한 동기화의 필요성은 크게 감소한다. 한 오케스트라가 끝나면 다음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SEQ électronique 4


P에서 SEQ électronique 4가 시작되며 Haut가 연주를 이어간다. 이 구간은 Q까지 진행되며, 이후 약 1분 18초 동안 지속된다.


R에서는 박자표 없이 지휘자의 제스처만으로 Haut가 연주하는 부분이 등장하고, S부터 두 지휘자의 싱크가 다시 맞춰진다.

박자표가 없이 지휘자의 5번의 제스처(사인)에 맞춰 연주하는 구간

SEQ électronique 5


세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연주하는 가운데 SEQ électronique 5가 병행된다. 이 구간에서 오케스트라는 긴 지속음이나 짧은 장식음을 중심으로, 전자음향을 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각 악기군의 박자표는 서로 다르며, 4/16과 12/32 같은 분할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SEQ électronique 6


T 이후에는 다시 세 오케스트라가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Solistes+Milieu와 Haut가 교대로 결합하는 형태가 중심이 된다.


V에서는 Haut가 먼저 강렬하게 4마디를 연주한 뒤, 5마디부터 Solistes가 합류하며, 이어서 SEQ électronique 6이 시작된다.


W에서는 Solistes와 Milieu만 남은 상태에서 코다로 진입하며, 점차 악기 수가 줄어든다. 텍스트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가운데, 편성은 비브라폰, 클라리넷, 실로폰, 일렉트릭 기타, 비올라, 타악기 정도로 축소된다.

확연하게 줄어든 악기 수. 텍스트가 같이 진행된다.

이후 텍스트가 다시 강해지면서 Haut의 두터운 음향이 덧입혀지고, 곧바로 SEQ électronique 7로 이어진다.


SEQ électronique 7


전자음향이 중심이 되는 구간으로 약 1분 8초간 진행된다.


SEQ électronique 8


X에서는 Solistes의 카덴차 느낌의 2마디가 지나간 후, 세 오케스트라가 다시 모두 등장한다. 그러나 이때 다시 두 지휘자의 싱크가 어긋난다.

자유로운 카덴차, 즉흥연주처럼,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라고 표기되어 있다.
다시 어긋나는 싱크. 두 지휘자의 박자표가 또 서로 다르다.

이 부분이 끝나기 3마디 전에 두 지휘자가 다시 맞춰야 할 지점이 화살표로 명시되어 있다. 이어 약 37초간 SEQ électronique 8이 진행된다.

다시 두 지휘자가 대략적으로 맞아야 하는 지점을 표시하는 화살표

Y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싱크가 다시 맞춰지지만 구조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이후 Milieu 단독 진행 후 4마디 뒤 Haut가 추가되며, 다시 비동기 상태로 전환된다.

다시 잠시 맞았다 멀어지는 두 지휘자

Z에서는 5마디까지 Haut 단독, 이후에는 첫 번째 지휘자가 이어받아 진행한다.


SEQ électronique 9


AB에서는 세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등장하지만, 서로 다른 박자표를 사용하며 동시에 끝이 난다.

박자표는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끝나야 한다.

이로써 기악 연주가 종료되고, 마지막으로 약 51초간의 SEQ électronique 9이 울리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음색 및 현악기 어법


현악기 사용을 살펴보면, 불레즈의 《Le Marteau sans maître》(1955)를 전후로 고유한 어법이 사실상 확립된다. 이 시기 이후 그의 작품에서 현악기는 전통적인 선율 악기라기보다, 트릴, 트레몰로, 꾸밈음, col legno battuto, 피치카토와 같은 특정 주법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음색적 매체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Répons》(1981–84), 《…explosante-fixe…》, 《Anthèmes》, 《Dérive》 등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


V에서는 《Répons》에서도 확인되는 불레즈 특유의 현악기군 전체가 동일한 리듬으로 진행 음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Poésie pour pouvoir의 V 부분 현악기
Répons의 도입부 현악기

기보 문제 (복원판)


2025년 IRCAM에 의해 재구성된 복원판 악보에서는 몇 가지 세부적인 기보상의 문제가 확인된다.


S에서는 박자 분할이 지나치게 모호하게 제시된 부분이 발견된다. 이는 불레즈의 일반적인 작법에 비추어 볼 때 의도된 난해성이라기보다 단순한 기보상의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경우에도 수학적 분할을 통해 해석하면 연주 자체는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석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 줄을 제외한 나머지는 4/16박자인데 파란 네모 칸 부분의 박자 분할이 아주 골치 아프다. 점16분음표를 5잇단음표로 나누고 그중에 2:3이다. 아무래도 오류 같다.

T 직전에서는 12/32 박자표가 명시되지 않은 채 진행된다. 이는 12/32와 4/16이 동시에 전개되는 상황에서, 총보를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해당 악기군이 생략되며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직전 구간이 4/16이었기 때문에, 12/32로의 전환이 표기되지 않은 채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12/32 박자표가 생략되어서 생긴 문제다.

또한 V에서는 피치카토(pizz.)인지 아르코(arco)인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1958년 초연 녹음을 참고하면 실제 연주는 arco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는 기보 과정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 구간은 연주자마다 주법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연주 시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한 지점이다.


동기화 시스템 (연주)


프랑스 초연에서는 두 지휘자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아이패드 시스템이 사용되었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지휘자 사인에 맞추어 전자음향을 재생하고, 동시에 세 대의 아이패드(두 지휘자와 사운드 엔지니어)에 동일한 시간이 표시되는 구조였다.


각 지휘자는 미리 정해진 초 단위 타이밍에 맞추어 연주를 시작하며,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구간에서는 정밀하게 일치하고, 의도적으로 어긋나는 구간에서는 독립적으로 진행한다. 이후 다시 동기화가 필요한 지점에서는 사전에 약속된 지휘 신호를 통해 재결합하는 방식으로 전체 구조가 유지된다.


복원


복원 프로젝트


이 작품의 복원은 볼프강 림(Wolfgang Rihm)이 루체른 페스티벌(Luzern Festival)의 예술 고문으로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작곡가 마르코 스트로파(Marco Stroppa)가 전체 복원 작업을 총괄했고, IRCAM의 음악 정보 전문가 카를로 로렌지(Carlo Lorenzi)가 악보 재구성과 전자음악 복원을 담당했다. 여기에 IRCAM 분석-합성 부서의 악셀 로벨(Axel Roebel)이 참여하여 AI 기반 음성 변환 작업을 함께 수행했다.


악보 재구성


복원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난관은 연주 가능한 형태의 악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자필 악보는 수많은 수정 흔적과 화살표, 숫자가 뒤얽혀 있었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정식 출판본도 없었다. 결국 복원팀은 1958년 도나우에싱겐 음악제 초연 당시의 열악한 모노 녹음을 바탕으로, 음을 하나씩 채보하는 '받아쓰기' 과정을 약 8~9개월에 걸쳐 수행했다. 그 결과 64개의 독립적인 파트를 지닌 방대한 악보가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참고 자료가 된 것은 일본 음악학자 아이 히가시카와(Ai Higashikawa)의 박사 학위 논문이었다. 이 연구는 불레즈가 남긴 방대한 작업 노트(notes de travail)를 해독하여 문자로 정리함으로써, 악보에 등장하는 난해한 기호 체계와 실제 음향 사이의 대응 관계를 밝혀냈다. 이를 통해 복원팀은 불레즈가 발진기나 전통적인 합성 기법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화음을 직접 녹음하여 전자음향의 기초 재료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복원판 악보에는 두 종류의 템포 표기가 공존한다. 하나는 원본 악보에 기재된 메트로놈 수치를 그대로 옮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연 녹음을 기준으로 재산정된 값이다. 후자는 실제 연주에서 나타난 템포를 바탕으로 보정된 것이다.


전자음향 복원


분실된 전자음악 테이프를 대신하기 위해 카를로 로렌지와 마르코 스트로파는 1958년 초연의 저음질 모노 녹음만을 기반으로 전자음향을 되살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은 흔히 고전 회화 복원에 비견될 만큼 세밀하고 단계적인 접근을 요구했다.


녹음본 안에는 전자음, 오케스트라, 음성이 완전히 뒤섞여 있었다. 복원팀은 전자음향만을 분리하기 위해 이른바 '스펙트럼 수술'(chirurgie spectrale)을 수행했다. 특히 전자음과 오케스트라가 겹치는 투일라주 구간에서 오케스트라 성분을 제거하여 전자음향의 잔여 데이터를 추출했다. 이후 이 음향을 아르페지오, 지속음, 타격음 등 지각 가능한 단위로 구분하고(Gestalt 분석) 각 요소를 범주화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배음(partials)을 추적하여 의미 있는 주파수 성분과 불필요한 성분을 분리하는 Partial Tracking이 이루어졌고, 이를 토대로 현대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보다 명료한 음향으로 재합성(Resynthesis)이 진행되었다.


목소리 복원 역시 난관이었다. 초기에는 새로운 배우의 녹음을 시도했으나 원작의 음성적 특성을 충분히 재현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로렌지는 악셀 로벨과 협력하여 AI 기반 음성 변환을 도입했다. 미셸 부케의 과거 음성 자료를 수집해 학습시킨 뒤, 약 4~5개월 동안 총 11차례에 걸친 수정 과정을 통해 음색과 뉘앙스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 결과 단순한 음색 모방을 넘어 부케 특유의 운율(prosody)과 발화의 미세한 억양까지 재현되었으며, 1950년대 특유의 낭독 양식과 왜곡된 음성 효과가 설득력 있게 복원되었다.


스피커 배치


1958년 초연


초연 당시에는 무대 중앙의 오케스트라와 이를 둘러싼 객석을 넘어, 공연장 벽면을 따라 약 28개의 스피커가 설치되었다. 이 스피커들은 서로 다른 높이에 단계적으로 배치되어 위로 상승하는 구조를 이루었고 그 배열은 천장까지 이어졌다. 특히 천장에는 소리를 회전시킬 수 있는 모터 장착 스피커가 설치되어, 불레즈는 이를 통해 왜곡된 음성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퍼져나가기를 의도했다. 이러한 설계는 오케스트라에서 출발한 소리가 벽면을 따라 상승하여 천장에 이르는 나선형 음향 흐름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5년 복원판


2025년 복원판에서는 과거의 단일 채널 모노 녹음에 입체적 깊이를 부여하기 위해 12채널 기반의 3차원 입체 음향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하단에 8개 채널, 상부에 추가로 4개 채널을 배치함으로써 수직적 차원을 포함한 공간감을 구현했다. 과거보다 물리적 스피커 수는 줄어들었지만, 디지털 공간화(Spatialization) 기술을 통해 음향의 이동과 분포를 훨씬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과거에는 평면적으로 들리던 음향이 3차원적 깊이(tridimensionnalité)를 갖춘 입체적 구조로 재탄생했으며, 전자음과 음성이 청중을 완전히 둘러싸는 몰입형(immersive) 환경이 구현되었다.


복원 연주


복원판은 2025년 8월 31일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David Robertson과 Molly Turner의 지휘 아래 Lucerne Festival Contemporary Orchestra에 의해 세계 초연되었고, 같은 해 12월 12일 필하모니 드 파리(Philharmonie de Paris - Cité de la musique)에서 프랑스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 공연은 France Musique를 통해 라디오로 방송되었으며,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과 IRCAM 측에 의해 다수의 영상 기록도 남겨졌다. 프랑스 초연에서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음악 감독 피에르 블뢰즈(Pierre Bleuse)와 지휘자 장 드루아예(Jean Deroyer)가 지휘를 맡았고,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CNSMDP) 학생들이 연주에 참여했다.

프랑스 초연 연주 실황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영상 기록




후속 작품과의 연결


《Répons》으로의 발전


《Poésie pour pouvoir》(1958)는 불레즈의 후기 대표작 《Répons》(1981)의 직접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오케스트라, 솔리스트 그룹, 그리고 전자음향을 결합한 구조를 공유하며, 특히 공간적 배치와 음향 개념에서 뚜렷한 연속성을 보인다.


《Poésie pour pouvoir》에서 제시된 세 층위 구조—하단의 솔리스트 그룹, 중간 오케스트라, 상층 오케스트라—는 약 25년 뒤 《Répons》에서 변형된 형태로 재등장한다. 《Répons》에서는 중앙에 위치한 앙상블과 이를 둘러싸는 여섯 명의 솔리스트, 그리고 공간 곳곳에 배치된 스피커가 상호작용하며 보다 정교한 음향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미 《Poésie pour pouvoir》에서 시도되었던 '중앙의 연주 집단 + 주변의 음향 확산', 그리고 소리가 공간 속에서 회전하며 이동하는 개념은 《Répons》에서 한층 정밀하고 유기적인 형태로 발전한다.


모든 연주자가 독립적인 파트를 갖는 방식 역시 《Répons》에서 다른 형태로 계승된다. 64개 실질적 독주 파트 개념은 《Répons》에서는 오케스트라와 여섯 명의 솔리스트 간의 상호작용 구조로 재편되며, 개별성과 집합성 사이의 긴장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Poésie pour pouvoir》는 자기 테이프 기반 전자음향의 한계로 인해 실시간 상호작용을 구현하지 못했다. 불레즈는 이 작품을 개작하는 가능성도 고려했으나, 결국 그 아이디어를 확장하여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Répons》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1958년에 실현하지 못했던 인간 연주와 전자음향의 긴밀한 결합, 그리고 실시간 전자음악 처리(temps réel)라는 구상을 비로소 구현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Poésie pour pouvoir》는 단순한 초기 실험작이 아니라, 《Répons》에서 완전히 개화하게 될 음악적 요소들이 이미 잠재된 상태로 내재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흐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실시간 전자음향 처리에 대한 탐구는 이후 《... explosante-fixe…》(1991–1993)와 《Anthèmes 2》(1997)로 이어지며, 기술과 음향, 그리고 공간 개념이 더욱 정교하게 결합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심화된다.

불레즈 - Rép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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