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e, Bonne, Sage 아는 척 하기 1편

음악과 시각의 만남, 그 시작

by 돈 없는 음대생

이번에 아는 척할 작품은 보드 코르디에(Baude Cordier)의 롱도(Rondeau) "Belle, Bonne, Sage" (아름답고, 착하며, 현명한 여인)다.

이 작품은 음악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아름다운 악보로 꼽힌다.

음악, 문학, 시각 예술, 수학, 기호학, 역사, 철학, 신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아는 척을 해보자.




중세 음악에 대한 편견


우리는 중세를 흔히 '암흑의 시대'로 단정하며, 예술과 지식이 후퇴하고 종교적 교리가 모든 것을 지배한 시기로 생각한다. 회화에서는 그나마 있던 원근법과 입체감이 사라지고, 그림 속 인물들의 머리에는 '금색 링'만 잔뜩 존재한다. 고대 지식은 오히려 이슬람 문명권에서 더 활발하게 보존되고 발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중세 음악 교회에서 울려 퍼지던 엄숙한 그레고리오 성가기사들이 부르던 단조로운 민요 정도이다. 기껏 들어본 이름은 힐데가르드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필립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 정도일 것이고, 들어본 단어라고는 오르가눔, 네우마 기보법, 미네징거, 음유시인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코르디에와 그의 시대는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14세기말 유럽의 궁정 문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예술적 실험이 벌어지던 곳이었다. 이 시기의 지배층은 외부의 혼란을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지적인 사치와 고도의 예술적 유희에 몰두했다. 코르디에는 음악을 단순한 소리가 아닌, 고도의 지성과 시각 예술이 결합한 형태로 승화시킨, 700년 전의 아방가르드 작가였다.




아비뇽 궁정의 폐쇄적 문화 중심지


코르디에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탄생한 14세기말의 특수한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이 시기는 유럽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격변기였다. 흑사병이 대륙을 휩쓸었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격렬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백년전쟁(1337~1453)

영국프랑스 왕가 사이의 길고 처절한 전쟁은 사회를 극도의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동시에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사치와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아비뇽 유수와 교회 대분열

프랑스 왕권의 압력으로 교황청로마가 아닌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Avignon)에 강제로 머무는 아비뇽 유수 사태가 발생한다. 이는 이후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하는 서방 교회 대분열(1378~1417)로 이어진다. '신의 대리인'교황권위붕괴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신성한 것에서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급격히 이동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외부적 혼란은 아비뇽 교황청과 그 주변의 궁정들을 극도로 세련되고 폐쇄적인 문화 중심지로 만들었다. 혼란한 현실을 잊고 자신들의 지적 우월성과시하기 위해, 후원자들은 더욱 난해하고 복잡하며 우아한 예술을 찾았다. 예술은 불안한 시대 속에서 도피처이자, 체제와 무관한 유일한 ‘질서’였으며, 음악수학과 시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지적인 행위였다.




아르스 수브틸리오르(Ars Subtilior)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태어난 음악 사조가 바로 '아르스 수브틸리오르', 즉 '정교한 예술'이다. 이 용어는 라틴어로 코르디에의 음악을 정의하는 핵심 코드이다.


이 사조의 음악은 이전 시대의 아르스 노바(Ars Nova) 양식의 리듬적 복잡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이 사조의 음악은 청중을 매료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작곡가수학적, 기하학적 능력과시하고 연주자기술적 기교와 지성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극도의 리듬적 난해함

당시 음악의 박자는 주로 3분할(완전)이 표준이었다 (3분할기독교의 숫자, 삼위일체, 즉 완전함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2분할(불완전)을 도입하고, 심지어 세 개의 성부가 동시에 서로 다른 박자와 리듬 패턴을 연주하고, 복잡한 당김음(Syncopation)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악보는 극도로 읽기 어려웠고, 연주자들은 높은 수학적 이해와 계산 능력을 필요로 했다.


엘리트적 취향과 과시

이러한 음악은 일반 대중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코르디에와 같은 작곡가들은 소수의 지적인 궁정 귀족과 성직자들만을 위한 예술을 창조했다. 그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지적인 유희였다.


음악적 매너리즘

이러한 난해함은 연주자에게 극도의 계산 능력과 기교를 요구했으며, 청중에게는 "이 복잡한 예술을 연주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엘리트뿐"이라는 지적인 우월감을 만끽하는 수단이었다.


음악은 이제 단순한 종교의식의 수단이 아니라, 지적 유희와 예술적 실험의 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코르디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악을 시각예술로 확장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Belle, Bonne, Sage"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이 곡은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중세'음악적 아방가르드'가 지적인 유희와 만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 복잡함 속에는 ‘보는 이에게 생각하게 하는 예술’이라는 철학이 있다. 음악은 단순히 ‘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순간 이미 마음을 흔든다.




필사 예술과 시각적 암호


코르디에의 작품은 청각적 난이도뿐만 아니라, 시각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중세 삽화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재 프랑스 샹티이 샹티이 필사본(Chantilly Codex)에 보존된 이 악보는 연주를 위한 도구를 넘어섰다.


붉은색 잉크의 등장

악보 곳곳에는 검은색 음표 사이로 선명한 붉은색 잉크로 쓰인 음표들이 등장한다. 이 붉은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는 리듬변경하는 음악적 코드이며, 연주자에게 극도의 리듬적 난이도를 부과하는 음악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필사 기술의 경계 파괴

숙련된 필경사는 금박화려한 장식적인 대문자(Initial)를 사용하여 악보를 제작했다. 이는 마치 정교한 중세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이 악보가 왕족이나 최고위 귀족에게 바쳐진 최고급의 시각 예술품이었음을 증명한다. 음악필사 기술, 그리고 시각 예술의 경계가 완벽하게 사라진 사례이다. 단순히 연주만을 위한 악보가 아니라, 감상하기 위한 악보였던 것이다.


neuma.jpg 중세 시대의 화려한 악보 - 화려한 장식과, 대문자 G


"Belle, Bonne, Sage"(아름답고, 착하며, 현명한 여인)"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노래의 가사는 궁정풍 사랑 시(chanson courtoise)의 전통을 따른다. 고결한 여인을 향한 헌신, 그리움, 인내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상화된 사랑의 체계였다. 그 시대의 기사와 시인들은 사랑을 인간적 감정이 아니라 ‘영혼의 수련’으로 여겼다.


코르디에가 남긴 악보는 단순한 낭만적 노래가 아니다. 이는 중세의 지성, 예술, 그리고 이상화된 헌신이 한데 엮인 하나의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 14세기말 아비뇽 궁정아방가르드 정신과 고도의 메타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미리 보기


1편: 음악과 시각의 만남, 그 시작

2편: 난해한 예술의 탄생, 아르스 수브틸리오르

3편: 사랑, 코드, 신앙 - 하트의 숨은 상징들

4편: 코르디에가 남긴 유산, 시각음악

5편: 시각적 이상과 청각적 불완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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