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음악 분류의 혼란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 음악을 정의하는 기준은 학문적 논란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선택이 뒤섞이며 단일하고 명확한 경계를 갖지 못했다. 어떤 학자는 현대 음악을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로 잡았고, 다른 학자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준으로 삼았다. 심지어 일부 학계에서는 1950년대 다름슈타트 총렬주의 확산을, 또 다른 경우에는 1960~70년대 실험 음악과 미니멀리즘의 등장까지를 현대 음악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연대적 기준 자체가 불확실하며, 국가별로 용어와 분류도 상이하다. 영어권에서는 modern과 contemporary를 구분하며, 일부에서는 postmodern이라는 범주까지 덧붙인다. 프랑스어권에서는 musique contemporaine, 독일어권에서는 Neue Musik 혹은 Zeitgenössische Musik으로 불리지만, 각 용어는 시대적, 미학적 기준이 서로 달라 정확한 비교가 어렵다. 한국어권에서는 ‘근대음악’, ‘현대음악’, ‘동시대음악’ 등의 용어가 혼재하며, 이 역시 명확한 경계가 없다.
현대 음악의 연대적 경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실질적 양식과 스타일도 획일화되어 평가되었다. 총렬주의와 무조 계열만이 ‘정통 현대 음악’으로 간주되고, 그 밖의 양식은 거의 무시되었다. 조성 음악, 신고전주의, 미니멀리즘, 실험음악, 재즈적 요소 등 다양한 시도는 공식 음악사 서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부화되었다. 이러한 기준은 단순히 연대적 경계를 넘어, 양식적 다양성을 행정적 잣대로 재단하는 정치적, 학문적 결정으로 작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은 유럽 지성계에 큰 문화적 충격을 남겼다. 나치 정권은 낭만주의 후기 양식과 조성 음악을 ‘독일 민족의 순수한 예술’로 칭송하는 한편, 쇤베르크 등의 무조 음악과 12음 기법은 ‘퇴폐 예술(Entartete Kunst)’로 낙인찍어 탄압했다. 전쟁 이후, 유럽의 젊은 작곡가들은 낭만주의적 표현, 주관적 감정, 조성 등 기존 예술 전통을 도덕적, 미학적으로 단절해야 할 과거로 간주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총렬주의(Total Serialism)는 ‘진보’의 유일한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1946년에 창설된 독일의 다름슈타트 국제 여름 음악 강좌(Darmstädter Ferienkurse)는 이 새로운 미학을 확산시키는 중심지가 되었다. 총렬주의는 빈 악파의 아놀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안톤 베베른(Anton Webern)의 음색과 선율 기법, 그리고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의 음가와 강도의 모드(Mode de valeurs et d'intensités)를 출발점으로 삼아 발전했으며, 그의 제자인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루이지 노노(Luigi Nono)가 다름슈타트의 중심인물로 등장했다.
총렬주의는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리듬, 셈여림, 음색 등 음악의 모든 요소로 확장하여 인간적 주관성을 최소화하고, 음악을 수학 공식처럼 총체적으로 조직하려 했다. 이들은 총렬주의를 유일한 ‘현대 음악’으로 선언하며, 단순한 미학적 선택을 넘어선 이데올로기적 논리를 내세웠다.
조성 음악은 나치즘의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민족주의와 연결된 ‘오염된 언어’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음악은 과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낸 순수하고 비인간적인(Impersonal) 구조여야 했다. 또한 당시 유행하던 과학적, 구조주의적 사고에 따라, 음악은 감정이 아닌 수학적 논리와 합리성의 산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총렬주의는 이러한 ‘과학적 진보’의 정점으로 포장되었다.
다름슈타트 악파 중심의 이 담론은 음악사를 목적론적으로 재단하며, ‘조성 붕괴 후 필연적으로 총렬주의로 발전해야 한다’는 서사를 강요했다. 그 결과, 총렬주의를 따르지 않는 음악은 시대착오적, 보수적, 퇴행적으로 평가되었으며, 1945년이라는 연대 기준은 이 이데올로기를 합법화하는 정치적 도구로 기능했다.
1945년은 세계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의미하지만, 음악사적 전환점으로는 단일하고 통일된 양식을 나타내지 않는다. 문제는 동시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식을 배제하고, 1945년을 기준으로 단일한 ‘현대 음악’으로 재단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한다. 총렬주의가 서유럽 아방가르드 학계의 주류를 장악하면서, 1945년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던 많은 작곡가들은 이러한 기준에서 배제되거나 축소 평가되었다.
소련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영국의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과 같은 작곡가들은 1945년 이후에도 전통적인 조성과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심오한 걸작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름슈타트 중심의 서유럽 아방가르드 진영에서는 이러한 작품들을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음악’으로 평가했다. 연대상으로는 명백히 현대 음악임에도, 양식이 ‘진보’의 잣대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악사의 주류 서사에서는 배제되고, ‘보수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러한 상황은 음악사 교육에서도 시대 구분 = 양식적 정답이라는 잘못된 공식이 강요되는 결과를 낳았다. 마치 1945년 이후의 조성 음악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부끄러운 것’인 것처럼 인식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나타난 존 케이지(John Cage)의 실험 음악과, 테리 라일리(Terry Riley),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등의 미니멀리즘은 초기에는 주류 유럽 학계에서 ‘현대 음악으로서 부적합’으로 평가되었다. 총렬주의가 음악의 모든 요소를 수학적 방식으로 조직하며 통제하려 했다면, 케이지의 우연성 음악과 미니멀리즘은 반복, 단순성, 우연성을 통해 그 통제에 저항했다.
특히 1958년 다름슈타트 국제 여름 음악 강좌에서는 케이지가 자신의 음악을 발표하려 했지만, 당시 총렬주의 중심의 유럽 아방가르드 작곡가들, 특히 노노가 이를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노노는 케이지의 발표가 “즉흥적이고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며, 일부 청중과 연주자들에게 발표 참여를 막도록 선동했다. 이 사건은 다름슈타트 학교 내부의 음악적 이념 충돌과, 총렬주의 중심의 연대, 양식 기준이 얼마나 배타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기록된다.
결과적으로 두 양식 모두 1945년 이후의 연대 범주에 속하지만, 다름슈타트 기준에서는 총렬주의만 정통으로 인정되었고, 우연성 음악과 미니멀리즘은 비주류로 축소 평가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연대 중심의 현대음악 분류가 실제 음악적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20세기 후반 현대 음악의 정의와 시대 구분은 학문적 논의에서 지속적인 혼란을 야기했다. 연대 기준만 해도 다양하다. 일부 학자들은 1918년을 시작점으로, 다른 기준에서는 1945년, 1950년, 혹은 1970년을 현대 음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기준 차이로 인해, 예를 들어 1918년을 기준으로 하면 라벨, 피아졸라, 거쉬윈 등도 현대 음악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현대 작곡가로 인정되지 않는다. 같은 기준에서 베베른과 베르그는 현대 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작곡가 개인의 작품 경향 역시 매우 다양하다. 19세기말 이후 쇤베르크는 후기 낭만 화성음악, 무조, 12음 기법을 차례로 실험했으며, 스트라빈스키는 후기 총렬주의와 신고전주의 작품을 병행했다. 슈톡하우젠은 무조와 12음에서 출발해 전자음악으로 확장했다. 한 작곡가 내에서도 양식의 동시적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일한 연대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현대 음악의 범위는 상업 음악과의 경계에서도 모호하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나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미니멀리즘 작품은 상업적 성격을 가지면서도 현대 음악 범주에 포함된다. 국가별 기준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 현장에서는 대체로 1950년부터 현대 음악으로 분류하지만, 자국 출신인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그는 예외적으로 포함시키고, 같은 시기 메시앙의 작품 (1941년)은 제외된다.
조성 음악과 신고전주의 작품도 공식적으로 현대 음악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스트라빈스키와 브리튼의 일부 작품 또한 현대 음악 범주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존재한다.
연대 기준을 1950년부터 현대라고 설정하더라도, 이는 2000년 이전 관점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이미 2025년 현재 기준으로는 여전히 현대라고 부르기에는 모호하다. 더 근본적으로, 현대의 정의 자체가 불명확하다. 만약 1791년에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연주했다면, 당시에는 그것도 현대곡이었을 것이다.
현대 음악은 단순한 음악적 범주를 넘어, 미디어아트, 플럭서스(Fluxus), 네오다다, 설치미술, 영상예술, 퍼포먼스, 무용과 연극 등 다양한 예술 분야와 결합하며 새로운 예술적 영역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 음악은 연대, 양식, 국가, 교육, 공연 환경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며, 단일 기준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연대-양식 기준의 근본적 모호성을 보여준다. 즉, 시대로서의 구분은 너무 많고, 양식이나 사조로서는 동기간에 다양한 흐름이 동시에 나타난다
음대에서 현대음악을 예로 들어보면, 이러한 모호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어떤 학교는 학업 목표를 20~21세기 작품 중심으로 설정하고, 또 다른 학교는 최근 20~30년 작품, 즉 2000년대 이후 곡만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일부 학교는 일반적으로 1950년 이후 작품을 다루되, 필요에 따라 이전의 조성 음악 작품도 포함시킨다.
전자음악이 강세인 학교도 있고, 순수 기악 중심인 학교도 있으며,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1970년대 곡조차 이미 ‘고전 현대곡’으로 취급한다. 반대로, 극단적 흐름을 거부하는 학교도 존재한다.
이처럼 각 학교마다 다루는 시대와 양식이 상이하여, 현대음악 교육에서 단일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다.
콩쿠르 현대곡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참가자의 국적 출신 작곡가의 곡 중 1945년 이후 자유곡으로 지정될 경우, 러시아 참가자는 프로코피예프를, 루마니아 참가자는 에네스쿠를 선택하는 식이다. 1945–1950년 사이에 작곡된 이러한 근대적 작품들은 진정한 현대곡이라 할 수 없지만, 출제 기준상 참가자의 유리함을 위해 의도적으로 포함되기도 한다. 반면 1950년 이후 곡으로 제한되면, 참가자는 실제 현대적 스타일의 작품을 준비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불리해진다.
만약 시대 구분이 예술의 진정한 변화와 다양성을 포착하는 목적이라면, 1945년 이후는 총렬주의, 미니멀리즘, 실험 음악, 조성적 전통의 지속 등 다양한 양식이 동시에, 대등하게, 경쟁하며 존재하는 혼돈의 시대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 혼돈이야말로 20세기 후반 예술의 진정한 특징이다. 그러나 1945년이라는 연대 틀을 강제하고 총렬주의만을 ‘정통 현대 음악’으로 규정한 관행은, 예술적 현실을 제한하고 학문적 다양성을 왜곡하는 시대 구분의 결정적 한계를 드러낸다.
현대 음악을 포함한 서양 음악사에서 연대, 양식, 사조를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은 본질적으로 혼합적이고 자의적이다. 바로크를 1750년으로, 중세를 천 년 단위로, 현대 음악을 1945년이라는 정치적 경계로 한정하며 총렬주의를 ‘정통’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은 실제 음악적 현실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시대 구분은 음악의 변화와 개별적 특징을 모두 담아내기 어렵고, 특정 지역이나 학자 중심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기준일 뿐이다.
이 모순은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된다. J. S. 바흐 가문에서는 아버지가 바로크 대위법을 정점으로 발전시킬 때, 아들들은 이미 고전주의 초기 양식인 ‘갈랑 양식’과 감정과다 양식을 사용했다. 20세기 후반에도 드뷔시, 쇼스타코비치,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양식이 동시에 존재했지만, 총렬주의만을 ‘정통 현대 음악’으로 강조한 관행은 이러한 다양성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
따라서 음악사에서 시대 구분의 한계와 인위성을 인정하고, ‘양식적 맥락’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과도기’ 음악은 시대정신의 충돌과 혁신이 가장 두드러진 지점으로, 각 작품은 독립적이고 혁신적인 미학적 가치를 지닌 양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시대 명칭이 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붙였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시대 구분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특정 관점과 맥락 속에서 형성된 기준임을 알 수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총렬주의, 미니멀리즘, 신고전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양식이 1945년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하며 경쟁했다. 이 시기는 ‘다양한 양식적 흐름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로 정의할 수 있으며, 시대 구분이라는 경직된 틀을 넘어 양식과 맥락 중심의 이해가 필요하다. 결국 서양 음악사의 시대 구분은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이지만, 고정된 틀을 벗어나 이를 이해할 때, 음악이 가진 진정한 다양성과 생명력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