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이 이미 말하고 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라는 걸.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공부’는 더 이상 배움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직업이 곧 신분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하층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어기제다. 우리는 흔히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공부에 올인시키는 선택을 ‘부모의 헌신’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정말로 헌신이었는지, 아니면 돈으로 대신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의 자기 위안이었는지는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공부라는 재능, 그리고 부모의 지적 게으름
우선 불편한 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공부 역시 재능의 영역이다. 운동이나 예술처럼, 공부 또한 타고난 기질과 적성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노력하면 된다’는 주문 아래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해도 안 되는 공부에 아이를 몰아넣고, 빚을 내서까지 학원비를 대는 행위가 과연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는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아이의 고유한 재능을 관찰하고 탐색하는 수고 대신, 돈만 지불하면 되는 ‘공부’라는 시스템에 아이를 맡겨버리는 선택이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2. 효율이라는 언어로 포장된 사랑의 민낯
물론 부모를 단순히 무책임하거나 악의적인 존재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부모 역시 미완성인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 모든 영역에 통달한 현자가 아니고, 주어진 시간과 자원 안에서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을 할 뿐이다. 공부를 선택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결과가 숫자로 보이고, 남들과 비교할 수 있으며, 실패하더라도 “할 만큼은 했다”는 자기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효율이라는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도록 길들여진 사회에서, 공부는 가장 합리적인 해법처럼 보인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이 선택이 이해 가능하다고 해서, 그 선택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이유의 바닥에는 결국 하나의 바람이 있다. 자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거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멸시받지 않는 직업을 갖는 것이 정말로 행복의 충분조건인지, 아니면 그저 부모 자신의 두려움을 우회하는 경로는 아닌지 말이다.
3. 당신의 인생이 이미 행복의 증거다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어도, 당신들은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지 않은가. 완벽한 선택만으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닐 것이고, 시행착오 역시 숱하게 겪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름의 만족과 안정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사실 자체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왜 아이에게만은 단 하나의 길만 허용하는가. 왜 자신의 시행착오를 실패로 규정한 채, 그 실패를 아이에게 되풀이하지 않게 하겠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삶을 단순화시키는가.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해된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빡세도, 구조가 가혹해도, 생각하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의 책임은 결국 개인에게 남는다.
4. 질문을 멈추지 않는 부모의 정성
행복한 삶이란 반드시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완벽히 겹쳐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잘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하고 싶은 일을 부업이나 삶의 일부로 붙잡으며 자존감과 만족을 지켜내는 삶도 충분히 존엄하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떤 일을 할 때 눈빛이 달라지는지, 어떤 순간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지를 지켜보고 질문하는 정성이다. 공부가 그 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답의 종류가 아니라, 질문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다.
학원비로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은 편하다. 그러나 편한 선택은 대개 사고를 멈춘 자리에서 나온다. 부모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의 불완전함을 아이에게 전가하지 않을 책임은 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다는 말로, 아이의 삶을 한 가지 문법에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인생이 이미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생각보다 여러 갈래로 존재한다는 것을.
#사교육공포
#부모심리
#자녀교육철학
#가스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