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은 펴지 마세요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거니까…
영화배우 짐 캐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꿈꾸던 모든 걸 이루기 바란다. 그래야 그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될 테니까." 존재의 허무를 꿰뚫는 일침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져본 자만이 누리는 사치스러운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은 유명해지려고 노력했던, 춥고 배고팠던 그 무명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마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와 명성의 허망함을 누릴 기회조차 없다. 희소성이 가치를 만드는 세상에서 모두가 정점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부나방처럼 그 빛을 향해 달려든다. 인간의 본성이란 본래 소수가 가진 가치에 집착하기 마련이며, 그 집착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평범한 우리에게 짐 캐리의 철학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문장은 따로 있다. "자전거에 앉아서 우는 것보다 벤츠에 앉아서 우는 게 훨씬 낫다." 슬픔에도 안전망이 필요하며, 허망함조차 성취의 부산물임을 인정하는 솔직한 고백이다.
짐 캐리가 말한 '별거 없음'은 아마 돈과 명예의 무용함이 아니라, 욕망을 채운 뒤에 찾아오는 지독한 권태였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인간은 욕망 때문에 힘들고, 그 욕망이 채워지면 허무함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여기서 벗어나는 해법으로 성인들은 고독과 무소유, 그리고 집착을 버리는 해탈을 이야기했다. 수천 년 전 불교가 설파한 '불행은 욕심과 집착 때문'이라는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무소유나 해탈 대신, 나만의 해법인 '자족(自足)'을 선택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내 인성의 바닥과 하이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딱 그만큼에만 만족하는 삶. 그 이상의 범위는 내 능력 밖의 욕심이라 여기고 관심을 끄는 것. 나는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고독이자 무소유이며, 진정한 해탈이라고 믿는다.
이 자족의 감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겨우 하나 건진 뽑기 인형이었다. 실패와 좌절이 내 그릇과 능력의 크기를 알게 했고, 나를 거쳐 갔던 과거의 연인들에게서 내 인간성의 바닥과 하이를 보았다. 나보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시기와 질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 과정은 마치 산꼭대기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날카로운 돌이 계곡물을 따라 구르면서 둥근 조약돌이 되는 듯한 시간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대체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욕망과 열정이 사그라든다는 점에서는 자족의 삶을 사는 데 더없이 좋다. 젊음의 상징인 욕망과 열정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하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는 하지만, 그 에너지만으로 본 자족은 그냥 무능일 뿐이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불꽃이 사그라진 자리에 비로소 정제된 평온이 깃든다.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서 짜깁기된 문장들일지라도, 내 삶을 투영하는 이 말들을 참 좋아한다.
"나는 더 이상 젊음을 동경하지 않는다. 나는 불타는 저녁노을 속으로 탱고를 추며 나아간다. 내 안에서 소설 하나가 맛있게 익어간다. 내 얼굴에 주름을 펴려고 하지 마라.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거니까."
벤츠 안의 눈물도, 자전거 위의 비명도 지나온 조약돌은 이제 노을빛 아래서 춤을 춘다. 그 주름진 얼굴에 어린 미소가, 짐 캐리가 찾지 못한 진짜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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