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루의 망상과 리스펙의 비용

by 무학의통찰

1. ‘위로’라는 이름의 저렴한 알리바이

우리는 타인의 불행 앞에서 너무나 쉽게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대개 선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그 밑바닥을 정직하게 훑어보면 전혀 다른 질감의 감정이 만져진다. 나락에 떨어진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내가 서 있는 이 땅의 견고함을 재확인하는 가장 안락한 절차다. 나의 안정적인 여건과 무탈한 일상을 타인의 불행이라는 거울을 통해 투영해 보며 안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민의 민낯이다.


위로는 사실 가성비가 아주 좋은 감정이다. 내 자존감을 단 1그램도 깎아내지 않으면서도 나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도덕적 우월감까지 챙길 수 있는 저비용 고수익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로에 관대하다. 하지만 교육을 받은 인간이라면 이 정도의 시혜적 태도는 기본 베이스여야 한다. 진짜 도덕적 실력은 타인의 나락이 아닌, '타인의 정점’ 앞에서 증명된다.


2. 타인의 영웅담, 나의 나태를 조롱하다

우리는 타인의 영웅담이나 압도적인 모험담을 들을 때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다. 누군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얻어낸 통찰을 설파할 때, 따뜻한 방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 이야기를 듣는 나의 안락함은 돌연 나태로 재정의된다. 그가 뜨거운 사선을 넘나들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 질문이 비수가 되어 꽂히는 순간, 타인의 성취는 더 이상 영감이 아니라 내 실존을 위협하는 신호탄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 앞에서 인색해진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리스펙 한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보다 아래에 있음을, 혹은 내가 도달하지 못한 궤적을 그가 그려냈음을 온몸으로 인정해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질투와 결핍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지불해야 하는 이 고비용의 감정 노동을, 사람들은 좀처럼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3. 테무 산 싸구려에 금값을 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리스펙은 고도의 정신적 실력이다. 내 자아를 깎아내어 마련한 이 귀한 자원을 아무에게나 지불할 수는 없다. 내가 리스펙이라는 비싼 비용을 치르고 얻고자 하는 서사가, 겉만 번지르르한 ‘테무 산 싸구려 상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리스펙을 망설이는 이유는 단순히 시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리스펙이라는 가치가 그것을 받는 자의 정당한 궤적에 의해서만 담보되어야 한다는 상식적 거부권, 즉 검역의 과정이기도 하다. 진짜 리스펙을 보낼 대상을 가려내는 눈, 그것이 리스펙의 가치를 수호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4. 공기를 실력이라 믿는 ‘3루의 망상’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금의 이른바 ‘금수저’라 불리는 이들을 마주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3루에서 태어났지만 본인이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 이 기괴한 착각의 밑바닥에는 과도한 자기애적 서사가 깔려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압도적인 환경은 극복해야 할 역경이 아니라,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공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3루에서 태어났거나 흑은 에스코트를 받으며 3루에 도착했음에도 그 안에서 흘린 미세한 땀방울을 자수성가형 고난으로 편집한다. 누군가에게는 진공 상태와 같은 절박함이 그들에게는 평생 제공된 쾌적한 산소였음을, 그들은 메타인지의 실패 혹은 의도적 망각을 통해 지워버린다. 타석에 서본 적도 없으면서 3루 베이스의 점유권만으로 리스펙이라는 금값을 요구하는 오만함. 그들이 내놓은 테무 산 싸구려 같은 서사에 지불할 리스펙은 없다.


5. 타석의 품격, 그리고 삶의 ‘결’

결국 리스펙 할 자격이 있는지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가 아니라, 그가 살아내고 있는 ‘결’이 증명한다. 진짜 3루타를 쳤음에도 인성이 개차반인 자가 있는가 하면, 3루에서 태어났음에도 자신의 운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겸손을 유지하는 자가 있다. 우리가 리스펙해야 할 성공은 단순히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그 성취가 타인의 위기감을 넘어 영감이 되게 만드는 서사를 가졌는가에 있다.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자신이 마시는 공기가 누군가에게는 진공일 수 있음을 아는 정직한 자. 그런 이들이 쳐낸 3루타 앞에서 우리는 기꺼이 리스펙의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그때서야 우리는 대등한 파트너로서 서로의 삶의 궤적을 인정하는 리그를 시작할 수 있다.


#3루타

#자기객관화

#서사탈취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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