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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셜or패밀리 워커 Sep 04. 2024

아버지의 치매일지2

아버지의 운전면허증이 취소되다.

친정아버지의 치매는 계속 진행중이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셔서 약을 받아오시고, 매일 드시긴 하지만 인지능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약만 먹어서는 되지 않고 인지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들을 하셔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고 계시지 않고 일상생활만 그저 영위하고 계시는 상태라 안타깝다. 주3일 정도만 데이케어센터에만 가셔도 엄마가 덜 힘들어하시고, 인지기능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활동도 할텐데 강력히 거부하시니 답이 없다. 


최근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고령자 운전 교통사고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늘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운전을 업으로 삼으셨던 분이다. 무사고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프라이드가 대단하시다. 아무리 베스트 드라이버라도 할지라도 나이 먹은 치매 노인이 운전대를 잡는 건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다. 생각하기도 끔찍하지만 무고한 생명이 희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말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운전대를 놓지 못하고 계셨다. 동생과 상의하여 자동차를 팔아버리자고 해도 그 뒷감당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나마 수시 적성검사 대상이었다. 면허증상 적성검사 기간이 26년까지이지만 1년에 수시로 적성검사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수시 적성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으셨던 것이다. 몇 달 전 경찰청에서 두 장의 경고장(?)이 날라왔다며 엄마가 가져다주셨다. 수시 적성검사를 받지 않아 8월 17일자로 면허가 취소된다는 안내장이었다. 내심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아버지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였다. 아무리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해도 면허증에 적혀있는 남아있는 기간만 주장하셨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협박할 수 밖에 없었다. 8월 16일까지만 운전하시고 8월 17일에는 경찰서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하셔야 한다. 그 이후에 운전하시면 무면허운전으로 구속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어찌저찌하여 전날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오셨다고 했다. 대신 어머니가 운전하시게 하고 본인이 옆에서 같이 타고 다니신다고 했다. 어머니도 고령인데다 운전도 띄엄띄엄 하셔서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일이 터졌다.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해야할까.... 

운전면허증이 취소된 다음 날 아빠가 운전을 하시다가 경찰에 적발되었다. 교회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의 운전대를 기어이 빼앗아 운전대를 잡으신 모양이다. 그러나 이내 100미터도 못 가서 마침 경찰차에 적발되었다고 한다. 무면허운전 단속 대상 차량이어서 경찰에게 알림이 떴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아버지는 OOO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해야했다. 천만 다행이었다. 그나마 사고가 안 나고 빨리 적발되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경찰차에 탄 아빠는 치매라서 잘 기억 못해서 그랬다고 변명을 늘어놓으셨고, 담당 경찰은 치매진단서를 발급받아 오라고 했다. 그 다음 날 아빠는 반납한 운전면허증을 다시 받아오셨다. 아마 경찰서에 가서 떼를 쓰며 받아오신 것 같았다. 면허증을 다시 내어주며 가져가도 소용없다고 했다고 한다. 어떤 상황이었을 지 짐작이 간다. 아마 아빠는 면허증을 가지고 적발된 경찰서에 가면 봐줄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엄마와 함께 진단서를 발급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담당의사가 면허증을 달라고 했더니 절대로 줄 수 없다며 목숨 다루듯 했다고 한다.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아버지와 경찰서를 방문했다. 운전면허가 취소된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면허운전을 한 아버지의 상태를 진술서 한장에 빼곡히 적어내려갔다. 서류는 검찰로 넘어간다고 했다. 담당 경찰은 이런 상황을 잘 정리해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갑자기 경찰에게 굽신거리며 

"면허증 반납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운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운전이란 무엇일까? 서울에 갓 상경해서 제일 먼저 배우고 했던 일도 운전이었고, 가족을 먹여살리고, 자녀들의 등하교를 도와주고, 노년에 발이 되어 준 운전대는 아버지의 기억 속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아버지는 운전을 못한다는 사실에  부쩍 더 우울해지시고 왜소한 몸이 더 작아보인다. 


이렇게 아버지의 60여년의 긴 운전면허 기간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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