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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 Dante Feb 03. 2020

지하철의 화장하는 여인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긴 좌석의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앉은 맞은편 좌석은 전체가 비어 있었다. 한 정거장을 지나 문이 열리고 젊은 여인이 들어와 내 바로 앞 건너편 좌석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앞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가방에서 큼직한 거울을 꺼내더니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여러 표정을 지어보았다. 그리고 나선 화장품을 꺼내 얼굴 화장을 시작하였다. 무엇인가를 바르고 또 무엇인가 거즈 같은 것으로 지우기를 반복하였다.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얼굴 전면을 세밀하게 붓으로 색칠해나갔다.      


그 일은 매우 정성스럽고 정교해서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듯했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그녀는 온통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창조 과정은 숙련된 기술자가 일생동안 통달한 일을 거침없이 처리하듯 일사불란했다.


지하철이 역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 좌석을 하나둘씩 메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과업수행에 몰입하였다. 그 몰입이 하도 진지해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의 질서 정연한 메커니즘에 빠져들었다. 누군가 그녀의 성스러운 작업을 방해했다면 아마 나는 그 사람을 발로 걷어찼을 것이다.   


서늘할 정도로 큰 눈의 주위 색칠해 더욱 뚜렷한 눈으로 변화시키고 이어서 눈썹을 정성스레 그리고 속눈썹을 둥그런 기구로 들어 올리고 립스틱을 바르고 붓으로 얼굴 전체의 색조를 조정해가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새로운 인물의 탄생을 지켜보는 듯했다. 지하철에 탔을 때의 약간의 피로감이 묻어나는 새침한 표정이 깃들인 그녀의 모습은 어느덧 화사하면서도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확신에 찬 모습으로 변해갔다.      


지하철역이 7개쯤 지나갔으니 아마 20여분쯤 지났을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화장을 다 마친 듯했다. 새롭게 태어난 그녀의 얼굴은 이전과 다른 밝고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각종 구를 정리하고 가방을 움켜잡은 그녀의 모습에  전사의 불굴 의지가 엿보였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여인이 화장을 하는 모습을 이처럼 자세히 눈앞에서 지켜본 적이 없었다. 경이로운 관찰 경험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주위의 여인의 모습이 이렇게 공들인 일련의 세공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그녀의 화장하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바라봤는가 보다. 다음 정류장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지하철 문이 열리자 밖으로 한 발을 내밀기 전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맑게 빛나는 회심의 눈빛 한 칼을 내게 날리더니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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