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보시오. 지금 우리 사회는 회사가 지배하는 세상이 돼버렸소. 회사원, 공무원 아니면 자영업 또는 프리랜서 이 정도가 큰 범주에서 지금 일하는 방법이오. 이제 취직 그러면 거의 다 회사원이 되는 걸로 정해진 세상이 됐소. 그러다 보니 회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회사를 위해서 사람이 살고 회사에서 받은 월급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회사에 시간을 바치고 인생을 바치는 세상이 된 거요.
회사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인격체가 돼버렸소. 물론 회사에 인격을 법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인격 그걸 뛰어 넘어서 회사 그 자체가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인격적 주체가 되어 버린 거요.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회사를 떠나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규정해 볼 방법이 없소. 회사를 규정하면 바로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규정하는 하나의 방법이 돼버렸소.
한번 생각해보시오. 회사를 떠나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돼 버린 후 사람은 회사 안에 있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거요.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혼자 생존하는 1인 기업을 포함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최종 목적지는 큰회사로탈바꿈하는것으로귀결되오.
말이 자영업이고 1인 기업이지 프랜차이즈나 하청을 주는 기업에 묶인 경우가 많잖소? 순수한 1인 기업도 그 업종을 백업해주는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넓게 보면 이것도 큰 조직의 개인화라고도 할 수 있을 거요.
인간이 발명한 회사라는 도구가 인간을 조종하는 주체가 되어 버린 지금, 회사의 지속 가능성은 보통의 인간보다 높아서 이제 인간은 점점 자신이 만든 회사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회사라는 거대 시스템의 하위 종속 생물화되어버린 거요.
이제는 국가도 기업이라는 실체를 떠나서는 존재 기반을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소. 거대기업이 한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움켜쥔 나라일수록 기업 지향형 기업친화적 정책을 펴는 경향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오. 기업이 잘 되면 그 사회와 나라가 잘되고 풍요로운 세상이 되는 현실이다 보니 기업을 국가와 사람이 떠받치고 있게 된 그 사실 자체를 비난할 수 없는 세상이 돼 버렸소.
더 나아가 이제는 그 어떤 국가권력도 기업이라는 살아 있는 생물체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게 되었소. 국가는 기업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어떤 가이드라인은 제시할 수는 있지만 기업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의 영역에 들어가 버린 거요.
겉으로 보기엔 여러 법과 제도로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국가를 끌고 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오. 사실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는 기업 국가라고 불러도 크게 틀린 게 아닐 거요.
우리는 기업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야 하오. 이 기업을 어떤 위치에 두고 어떻게 발전시키고 기업과 국가와국민이 어떤 관계를 설정해 나아갈 것인가가 중요한 시점이 됐소.
국가와 기업은 시민의 행복추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그 존재 이유를 두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개인을 도구화하고 개인은 그 기업의 부속품으로 철저히 파편화한 소모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오.
사실 기업의 존재가치를 전면 부인하고 살 수는 없는 세상이오. 또한 이런 현상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생각해보면 마냥 긍정할 수만은 없소. 오늘도 우리 회사 인간은 부인하려고 해도 기본적인권과존엄성을보장받지못하고살아가오. 그것이 행복인지불행인지는 앞으로 수많은 회사인간들의 삶의 축적 속에서 판가름될 거요.
회사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이 오늘은 한없이 초라하오. 지금의 나는 내면의 진정한 자유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오. 사실 자유보다 더 진정한 가치가 어디 있소? 당신은 마냥 그렇게 회사 인간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대신 자유를 전당 잡히고 사는 게 행복하오?
형씨, 당신 말도 일응 일리가 있소만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볼 것 뭐 있소. 말이 회사지 예전에도 다 그런 게 있지 않았겠소. 개인 소유 개념이 희박했던 원시 공동체 사회를 제외하고는 인간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왔던 거요. 그것이 농업이든 공업이든 현대의 3차 4차 산업이든 사회와 국가는 인간의 자기 이익 실현 욕망에 기대어 발전해온 것 아니오?
우리가 농촌사회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농업 그 자체도 근본을 따져보면 어차피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활동이고 도구 아니었겠소. 단지 현대사회의 기업은 옛날 농업기반 사회보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것이 다른 것 아니오? 그리고 인간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늘 일을 해야 하는 존재이자 동물이요. 그 일을 도모하는 방식이 회사형태면 어떻고 개인 형태면 어떻소.
차라리 기업처럼 일이 일정한 틀 안에서 흘러가야 사람들이 어떤 일에 적응하기도 쉽고 무슨 일을 하든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며 불안감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아니오? 개인이 회사를 떠나 자유롭게 산 다한들 그것은 일시적 감상이고 환상이고 도피일 뿐이오.
개인이 어떤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완벽히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혼자의 힘으로 그것에 대응할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소? 인생에 있어 불확실성을 제거한 대신에 어느 정도의 부자유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면 나는 십분 이해하고 그 길을 택하겠소.
또 요새 기업은 기업주가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소? 수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시스템 속에서 자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지극히 합리적인 계산과 방식으로 받는 회사가 주먹구구식으로 흘러가기 쉬운 자영업보다 훨씬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가치를 실현 가능하게 해주는 경제시스템 아니오? 그게 뭐 잘못됐소? 당신에게는 인간 내면의 자유가 그렇게 안정적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먹고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요?
당신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과 의지에 의한 삶, 나도 그 꿈 오롯이 꾸면서 살고 싶소. 그 꿈이 체계적인 생산기구인 기업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뭐요? 회사 조직은 모두 개인의 자유를 박탈한다고만 할 수 있소? 아니 개인이 꼭 무언가를 손수 기획하고 다루고 작업해야만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법은 또 어디 있소? 나는 그건 아니라고 보오.
인생 생각하기 달린 것 아니오? 원래 참선할 사람은 저잣거리에서도 명정의 상태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사람은 적막강산 바위 굴속에 들어앉아도 속이 시끄러워서 하룻나절 침잠에도 이르지 못하는 법이오.
내 말은 기업 탓할 필요 없다는 얘기요. 어떻게 고놈을 운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요. 그러니 기업 그 존재 자체가 나쁘고 좋고는 없다는 거요. 따라서 회사 인간 그 자체가 나쁘고 좋고도 없다는 거요.
회사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당신은 회사에서도 얼마든지 자유인으로 살 수도 있고 회사를 뛰쳐나가 살아도 얼마든지 노예로 살 수도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