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i Dante Sep 29. 2018

대장장이가 서른두 살 조카에게

 너는 불 좀 보랬더니 그새를 못 참아서 자리를 비웠냐. 불 사그라졌으니 다시 오를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겠구나. 불을 지키고 불의 성질을 터득하는 것이 대장장이의 기본이거늘, 불보기에 이렇게 참을성이 없으면 앞으로 어쩌겠다는 거냐. 


 은근히 달아올라 벼림 끝까지 버틸 힘을 가진 깨어있는 불이어야 쇠붙이를 벼릴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네가, 진득하게 불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 일은 결코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 터. 하물며 이 불을 거름 삼아 날을 벼르는 일이야 더 말해 뭘 하겠냐.

 

 세상 이치가 다 똑같다. 하나를 붙잡아서 정성 들여 하지 않으면 모두 도로 아미타불이 돼버린다. 너 이 일 배워보겠다고 나서기 전에 몇 가지 일 해봤더냐. 미장이, 목수, 옹기장이, 목기 장수, 건어물 장수 등등, 열여덟 지나 지금 나이 서른둘까지 거친 그 많은 일중에 너에게 제대로 밥 먹여주는 일은 무엇이었더냐. 네가 붙잡았던 일들이 밥이 되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그건 네가 정성을 오롯이 한 곳에 쏟아붓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촌도 젊은 날엔 네가 지금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처럼 진득하게 뭘 하나를 해보지 못했다. 그저 작은 재주 하나 믿고 이것저것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이거 해보다 때려치우고 저거 해보다 때려치우곤 했지. 늘 새로운 것 찾아서 탐하는 재미에 이것저것 붙들었다 놨다 붙들었다 놨다 하면서 슬렁슬렁 살다 보니 이룬 것 하나 없고 세월만 흘러가서 집도 절도 없이 이제 빈 손만 남았다. 인생 잘못 살아도 한참 잘못 산 거지. 


 내가 젊었을 적 한때 기웃댄 적 있는 대장간 일을 한 눈 팔지 않고 수십 년 오직 이것만 해왔다면 쇠붙이를 다루는 데는 남 못지않은 장인이 되어 있었을 게다. 그런데 난 한 가지도 진득하게 그 일이 손에서 무르익고 녹아날 때까지 잡고 있질 못했구나. 이십 대는 청춘의 방황이라고 스스로 변명하고 싸돌아다니고 삼십 넘어 장가들어 자식 낳고부터는 식구 생계를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소질이나 일의 쓰임새는 생각지 않고 한 푼이라도 더 벌 것 같은 일만 쫓아다녔거든.

 

 그러니 내가 무슨 뛰어난 천재도 아닌데 한 가지 일에 도사가 될 수 있었겠냐. 결국에는 남이 기억하고 불러줄 기술은 한 가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그저 어중간히 쓸 만한 장돌뱅이 같은 기술만 잔뜩 손에 든 어리바리 일당 기술자가 돼버린 게지. 생각하면 난 멍청한 놈이었다. 제대로 정통한 게 한 가지도 없는데 누가 일부러 돈 들여가며 날 찾겠니. 그걸 알고 나니 청춘은 다 흘러가고 이제 나이 오십을 넘고 말았구나. 너는 그러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다 그래. 머리를 쓰는 일이든 몸을 쓰는 일이든 모든 일은 어느 단계에 이르기까지 절대시간이 꼭 필요하단다. 그 시간은 절대로 함부로 뛰어넘거나 생략할 수 없는 금기 같은 것이야. 옛 부터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그 절대시간을 모두 견디고 이겨낸 사람들이더라. 한데 난 한 가지도 그 절대시간을 넘긴 적이 없으니 결국에는 그냥 이처럼 한심한 인생이 되고 만 거란다.

 

 이십 대 젊은 날에는 이것저것 해보면서 마음껏 방황해도 좋지. 경험도 쌓아보고.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는 한 분야를 잡고 물고 늘어져야 한다. 네 일 한 가지를 붙들고 끝을 봐야 한다. 힘들어도 네 일에만 몰두하고 남의 일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어서 남들은 나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편하게 더 많은 돈을 벌 것 같지만 정작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남들이 하는 일도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 정 네가 남의 일이 부럽거든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도통하고 나서 그 일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 세상의 이치는 다 같아서 한 분야에서 적용되는 이치는 다른 분야에도 다 적용되거든.

 

 장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니더라. 오랜 세월을 두고 몸을 들이고 정신을 들여서 한 가지 업을 갈고닦으면 다 장인이 된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느냐 실패하는 사람이 되느냐는 주어진 시간에 몸과 마음을 자신의 업에 쏟아부었느냐 아니면 허깨비에 홀려 그냥 하릴없이 보냈느냐에 달린 거지. 


 몸과 마음을 한 곳에 쏟아부어 그 업의 날을 벼린 사람은 성공하고 여러 곳에 흩트린 나 같은 사람은 실패하는 거다. 부디 너는 한 곳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네 업의 날을 벼리고 또 벼리거라. 그 시간을 참아내고 이겨 내거라.

 

 나,  이 숯불 앞에서 쇠붙이 벼리기 시작한 지 7년, 앞으로 난 이 길로 끝장을 보련다. 경주마 눈가리개처럼 눈에 가리개를 하고 다른 모든 일에 눈감고 불에 쇠 벼리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다. 나 이제부터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사십 년, 오십 년, 신이 부르는 그날까지 이 숯불 위에 쇠를 달구며 대장장이 업의 날을 벼리리라. 


 너도 하나를 잡고 몸과 마음을 그것 하나에 쏟아붓고 그 일을 벼리어라. 꼭 이 대장장이 일이 아니어도 네 맘을 사로잡는 일 하나를 잡고 물고 늘어져 그 일을 꿰뚫어라. 그럼 어느 날 너는 그 일의 절정에 이를 것이고, 너 스스로도 감탄하는 뛰어난 한 장인으로 네 일 앞에 서있을 게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계공이 고등학생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