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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 Dante Sep 29. 2018

비계공이 고등학생에게

 왜 쳐다보냐? 하늘을 보는 거냐? 나를 보는 거냐?  하늘을 보는 거라면 상관없고 나를 보는 거라면, 위태로워서냐? 신기해서냐? 위태롭고 신기해서라고? 너 말 뽀대 나게 한다. 그래, 좀체 보기 힘든 거니까 신기할 테지. 그렇게 위태로워 보이냐? 그래 위태로운 일이지. 몸뚱이에 줄 하나 매달고 이 높은 허공에서 작업하는 내가 무척 위태롭게 보이겠지.


 하필이면 왜 이렇게 위태로운 일을 하느냐고? 세상에 위태롭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 너도 공부 끝내고 세상에 나가 살아보면 알게 된다. 사는 게 다 위태로운 일이라는 걸. 당장은 행복에 겨워 있어도 그 행복에 잇대어 있는 시간은 늘 위태로움을 안고 있는 거니까.


 공부 잘해서 돈 잘 버는 직업을 택하지 그랬냐고? 네 생각엔 공부 잘해서 돈 잘 벌면 위태롭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지?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네게는 줄 매고 비계 만드는 내가 일자무식 날라리로 보일지 몰라도 나도 학교 공부는 끝까지 가봤거든. 그냥 대충 꼴찌 했을 거라고? 아니다. 나도 공부할 만큼 했고  상위 20 프로 안에는 늘 들었거든.


 공부 잘했으면 비계공 하고 있겠냐고? 아 임마 사람 말 못 믿네. 내가 너한테 뻥쳐서 뭐 하나 얻을 거 있겠냐? 임마가 이거 순진하고 똑똑하게 생겼구만. 말로 사람을 비끌어 매려고 하네. 나도 남들처럼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직하고 돈 벌어 봤다. 하지만 그 일도 위태롭기는 지금처럼 허공에 발 딛는 일과 다르지 않더라.


 마침 쉬어야 할 참인데 잘 됐다. 내려가긴 귀찮고 그냥 서서 너랑 얘기나 해 볼까나. 너 몇 학년이냐? 2학년이라. 공부 열심히 해야 되겠네. 한참 엄마에게 들볶일 때구나. 공부는 좀 하냐. 반에서 몇 등이나 하는데? 야 그 실력으로 인 서울 가능하냐? 안되면 재수? 이거 임마 벌써부터 빠따를 길게 잡고 가려고 작정을 했구만. 네 집이 그래도 먹고살 만은 한가 보구나. 2학년이 벌써부터 재수까지 길게 잡은 거 보니.


 너는 뭐하고 싶냐? 뭐 해서 먹고살라고 하는데? 경영학과 가서 대기업 다니고 싶다고? 그건 네 꿈이냐? 부모님 꿈이냐? 음악 하고 싶은데 그 길은 갈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뭐 잘하는데? 노래. 록이라고? 그 어렵고 반항기 가득한 록을 한다고? 누구 록 가수한테 단단히 끌린 모양이구나.


 그래, 넌 하고 싶은 건 록인데 엄마 아빠가 뽀대 안 나고 돈 벌기도 힘들다고 그냥 경영학과 가라 해서 경영학과 가겠다 이거지? 그래 그것도 이해된다. 그래 경영학과 나와서 대기업 취직하고 잘 먹고 잘 산다 치자. 그럼 너는 하고 싶은 록은 접고 그냥 돈만 벌면 된다는 거냐? 해보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왕이면 회사 다니며 돈 벌면서 록은 취미로 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현실과 타협도 되겠다마는, 그게 네 맘대로 되겠냐? 회사 취직하고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록 할 생각이 들 때쯤이면 네 나이 삼십이 후딱 지나가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고 아파트 사는 데 네 청춘 삼십 년이 또 후딱 지나간다. 그러고 나면 회사를 떠날 때가 되는데 그 틈새에 그 오랜 시간을 견디고 네 음악 열정과 재능이 온전히 살아있을까?


 음악을 하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어렵고 힘들고 위태로울 것 같다고? 그래 어렵지. 힘들겠지. 위태롭겠지. 그렇다면 그 어렵다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걸 할까? 그들은 음악 하며  세상 살기가 어렵고 힘들다는 걸 몰라서 그걸 하고 있을까?


 알아도 하는 거지. 힘들어도 하는 거지. 음악이 그 어떤 일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살게 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지. 음악을 하며 사는 것이 다른 일을 하며 사는 것보다 더 위태로운 것도 아니고, 대기업에서 월급 받으며 산다는 것이  음악을 하며 사는 것보다 덜 위태로운 것도 아니란 걸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이왕에 세상을 살면서 위태롭게 살아가야 한다면, 최소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위태로운 것이,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위태로운 것보다 낫지 않겠냐?  사실 위태롭게 보이는 일도 일단 그 세계에 온몸을 바쳐 뛰어들어보면 그렇게 위태롭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여기에 서 있는 거다.


 비계 일을 하고 싶어서 하냐고? 난 이 일을 하며 책상에 앉아 있을 때보다 정신은 맑아지고 마음은 가벼워져서 자유의 순간순간을 살고 있다. 몸이야 더 피곤하고 힘들지. 세상 사람들은 몸이 힘들면 모두 3D라고 한다지만 그건 관점의 차이겠지.


 세상의 모든 의견은 그것이 불변의 진리로 확인될 때 까지는 모두 편견이라는 것은 너도 알고 있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것도 물론 편견이다. 네가 그것을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편견에서 정견으로 확인되는 거지. 세상의 편견들을 딛고 일어나 나만의 길을 가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 별로 없더라. 어려운 얘기냐?


 너도 이제 가야 하고 나는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공부 열심히 해라. 네 말대로 공부 열심히 했음에도 나처럼 비계를 하면서 위태롭게 허공에 서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젠가 먼 훗날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퍼뜩 떠오른다면, 지금 이 시간이 전혀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닐 것 같구나. 잘 가거라. 나는 허공에서 네가 가는 모습을 보겠구나.



* 비계 : 건축 공사를 할 때 높은 곳에서 작업자가 작업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임시 가설물을 말함. 비계공은 전문적으로 이 가설물을 설치하는 사람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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