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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잔치 어떻게 하세요?

당신은 아버지의 함박웃음을 본 적 있나요?

by 신백

23.8.17.

당신에게 - 훌쩍 자라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의 뒷모습에 코끝이 찡해진 적 없나요?

아버지에게 - 살면서 가장 기뻤던 적은 언제셨나요?




아버지는 44년 8월생이시다.

고로 올해가 팔순 잔치를 열어야 하는 해다.


환갑 때랑 칠순 때는 어떻게 했었지?

사실 10년 전 일도 기억나질 않는다.


(만으로

육순, 칠순(고희연), 팔순(산수연), 구순 생신은 59, 69, 79, 89세가 되는 해에 하고

환갑(회갑)은 60세, 진갑은 61세,

(아름다울) 미수는 65세, (기쁠) 희수는 76세, (쌀) 미수는 87세, (일백) 백수는 98세, (윗) 상수는 99세 때 한단다.)


누님 두 분이 계시지만

아들은 막내인 나 혼자였기에

봄부터 어머님께 어떻게 할지 여쭤보았다.

누나들과 상의해서 말씀해 달라고 하셨다.


원가족 (부모님, 누님들, 나)만 있는 채팅방에선 아버님 본인도 계시니

오랜만에 누나들과 나만 있는 채팅방에 물어보았다.

예전부터 있지만 거의 울리지 않는 방이다.

그렇다고 카톡방에서 조용히 나갈 수도 없다.

또 언젠가는 필요할 테니.


. 부산으로 여름휴가를 맞춰 호텔에서 1박을 할까?

. 동네잔치처럼 본가 근처 뷔페식당에서 부모님 친구분들과 초청가수까지 초대하나?

. 서울 호텔에서 친지분들 모시고 조촐하게 할까?

. 그리고 현수막이나 꽃다발, 떡, 케이크, 답례품 이런 걸 따로 준비할지.

누님들은 어머님께 여쭤보라 하셨다.


다시 어머님께 톡을 드렸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우리들끼리만 나가서 먹자고 하셨다.

선물이나 이런 건 알아서 하라고.


큰누님이 본가 근처에 있는 식당을 예약했다.

서울에도 체인이 있는 식당인데

정식을 시키면 요리들이 정갈하게 나오는 곳이다.


큰누님네는 휴가를 생신 주에 맞추어 토요일 이미 내려갔고,

작은누님네와 우리 가족은 일요일 아침 기차로 내려갔다.


식당에서 코스요리만 시키고

당일에 백화점에서 케이크만 사 왔다.

그게 다였다.


요리가 나오고 밥까지 마친 다음 후식만 남은 상태에서

보통의 생일파티처럼 케이크 초에 불을 켜고

생신축하 노래를 불렀다.


우리 삼 남매가 각자 준비한 선물들을 받으셨고

식당에서 마련해준

수십번은 재사용했을 팔순 현수막을 배경으로

전체가 모인 사진과

가족별로 부모님과 함께 한 모습을

핸드폰으로 모두 담았다.


여느 해와 다른 점은

누님들과 우리 가족이 따로 연습한

노래를 불렀다는 거다.

큰누님의 아이디어로

한 달 전부터 가족별로 준비했다.

누군가 블루투스 마이크를 꺼내 놓아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고

우리 가족부터 노래를 불러드렸다.

그리고 큰누님네 가족, 작은누님네 가족.


원래

예를 지키자면

자식들이 한잔씩 모두 술잔을 세 번 올려야 한단다.

낳아주셔서

길러주셔서 감사하고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장수하시라는 의미라나?


각종 의식의 예법에 정통하신

공자님이 살아계시다면 여쭙고 싶으나

공자님도 71세에 돌아가셨으니

팔순 잔치에 대해 뭐라고 하셨을까 궁금은 하였다.


나중에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분들의 팔순 잔치를 살펴보니

한복을 입고 (헤어 메이크업까지 해드린 경우도...)

현수막, 잔치상, 초대장과 답례품, 사진촬영까지...

준비할 것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삼 남매가 너무 평범하게 해 드렸나?

혹 서운하셨을까 봐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노래를 부르고 시간을 보내는데

그때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함박웃음을 보았다.

술도 한 모금 안 자셨는데

어머니와 누님들의 옛 스토리들-우리 원가족들은 수도 없이 들었던-을

자형들과 며느리, 손주들에 하시면서

꺼이꺼이 웃으셨다.

(우셨다는 게 아니라, 울음으로 치자면 그렇게 크게 웃으셨다는 말이다.

결국 너무 웃어서 눈물이 조금 비치신 것도 같고.)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이는

간단한 팔순 잔치라 죄송하지만

정말 뿌듯했다.




아버지께서 엄청 좋아하신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1. 자식들과 사위, 며느리, 손주들이 다 모여서?


삼남매 모두 서울 쪽에 있어서

웬만한 행사가 아니라면

한데 모이는 스케줄 잡기가 힘들다.

두 가족이 모이거나 스쳐서 겹치는 시간은 있었지만

삼남매 세 가족이 한 날 한 시에 식사를 한 적은

글쎄 결혼식장이 아니면 없지 않았을까?

중학생 조카들도 학원을 째고,

우리 딸도 일요일 수업을 빼서 보충을 신청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선물 공세에는 아버지도 약하신 걸까?


평소 생신이라면 금일봉과 손주들의 의례적인 축하카드 정도만 있었을 텐데

이번엔 다들 정성 들여 선물을 준비했다.

자식들이 나름 힘 좀 썼다. 는 말씀이다.

좋은 걸 해드려도 시큰둥하신 아버지셨는데

계속 좋은 거, 더 좋은 거 끝도 없이 나오니 물질에는 장사가 없는 것인가!


3. 노래의 힘?


초대가수의 공연은 없었지만

자식들 가족의 노래가 아버지 눈에는

재롱잔치처럼 보였나?

아이돌 공연처럼 보이진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집에 올라오는 기차에서

누나들이 보낸 사진을 다운받고

하트표시를 하면서 나도 답장을 보냈다.


누님들아, 앞으로 아부지 생신에는

삼남매 다 같이 모여서 해드리자~

저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은 난생처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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