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 가사·상속 전문 변호사 친족법 상담일지 #1
박상홍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가사/상속팀
친권자 변경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 뒤집을 수 없나요?
2009년, 사업가인 남편과 전업주부인 아내는 화목한 가정을 꾸려 딸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예기치 않은 파열음을 내며 점점 삐그덕거리게 되었고 2014년이 되어서는 되돌릴 수 없이 끝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협의 이혼을 진행하면서, 아내는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갖게 되었고, 남편에게 ‘향후 친권자 변경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남편으로서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무단으로 데리고 간 상황에서, 사업을 보다 안정시키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마지못해 서명하였습니다.
이혼 후 4개월이 지나자 아내는 다시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자 미국 유학길에 오르겠다고 남편에게 통보해 왔습니다. 남편이 미처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출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주말마다 틈틈이 짬을 내어 아이를 만나던 남편은, 갑작스럽게 아이와 만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남편은 추석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아이를 만나고자 큰 마음을 먹고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만났을 때, 남편은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누구보다도 쾌활하고 활달했던 아이는 1년만에 고독감과 불안감과 같은 먹구름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남편은 “아빠랑 오랜만에 만나지? 그나저나 너무 달라졌네, 어떻게 된 거니?”라고 물었지만 아이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 남편과 아이는 모처럼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적한 공원에서 산책을 하였습니다. 공원에서 한참을 걷고 나서야, 아이는 주변을 살펴 아무도 자신을 엿듣지 않는다는 것을 연거푸 확인하고서는,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는 요즘 종종 술에 취해 늦게 집에 오곤 하셨어요. 그리고 엄마는 Smith씨라는 분과 같이 연구를 한다고 하시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는데요. Smith씨의 아들과 티격태격할 때마다 힘에서 밀리다 보니, Smith씨네 사람들이 집에 올 때면 무섭고 불안해요.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요”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남편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머니가 너를 완전히 방치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과 갈등의 회오리가 불어닥쳤습니다.
귀국 후 남편은 미국에서의 양육 환경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며 진지하게 법적 조치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 해 왔던 사업이 안정화 단계에 들었기 때문에 아이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의 과거의 약속, 즉 이혼 당시 서명했던 합의서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말 한 마디가 그의 결단을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아빠와 친할머니께서 나를 정말 잘 챙겨주셨어요. 다시 함께하고 싶어요.” 이 말에 용기를 내어, 갈등의 긴 여정 속에 남편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법정에 나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이를 상대 배우자가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친권과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요?
‘향후 친권자 변경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친권자·양육권자 지정 변경 신청이 가능한가요?
가정법원에서, 기존에 아이를 데리고 키우고 있던 어머니가 더 양육에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을까요?
Q1) 아이를 상대 배우자가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친권과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요?
A1) 친권자 및 양육권자의 변경을 청구하면서, 양육권임시지정·유아인도의 사전처분을 신청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사례와 같이, 이혼 당시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를 정했더라도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친권자 및 양육자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837조 제5항, 제843조 및 제909조제6항). 친권자는 자녀의 4촌 이내의 친족이 가정법원에 지정변경을 청구해서 변경할 수 있으며, 양육자의 변경은 이혼 후 당사자간 합의로 진행될 수도 있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부(父), 모(母), 자녀 및 검사가 가정법원에 지정변경을 청구해서 변경하거나 가정법원에서 직권으로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제2호 나목 3) 및 5)].
친권자 및 양육권자 변경에 대한 심판확정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아이의 보호가 시급하여 친권자 및 양육권자 변경 청구인이 아이를 인도받을 필요가 있을 때에는 양육권임시지정 사전처분과 함께 유아인도 사전처분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자녀의 양육 환경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예비적으로 면접교섭권을 보다 폭 넓게 보장할 것을 신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Q2) ‘향후 친권자 변경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친권자·양육권자 지정 변경 신청이 가능한가요?
A2) 네, 가능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혼 당시 친권자가 정하여졌더라도, 자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가정법원은 아이의 4촌 이내 친족의 청구에 의하여 친권자를 변경할 수 있는데요. 이는 미성년자인 아이의 복리를 위한 것이므로, 친권자의 변경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하거나 제한하는 내용의 약정은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이어서 사법상 효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19. 11. 28. 선고 2015다225776 판결).
Q3) 가정법원에서, 기존에 아이를 데리고 키우고 있던 어머니가 더 양육에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A3) 과거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에 비하여 적합한 양육자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부모의 기회균등을 중시해 단순히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양육에 더 적합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일지가 중심이 됩니다. 이때, 가정법원에서는, 아이의 성별과 연령, 부모의 애정과 양육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모와 미성년인 자 사이의 친밀도는 어떠한지, 아이의 의사 등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미성년인 아이의 성장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적합한 방향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9므1458,1465 판결).
다만, 현재의 양육상태에 변경을 가하여 다른 부모를 그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기존과 같이 계속 양육하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방해가 되며, 다른 부모가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되는 것이 아이들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이른바 ‘계속성의 원칙’).
그렇기 때문에 이 사안에서는, 미국에서 어머니와 지내며 정서적인 불안을 겪고 있는 아이의 상황을 놓고 볼 때,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버지가 한국에서 애정으로 키우는 것이라는 점을 어필해야 합니다. 특히, 이혼 전에도 아이를 직접 양육한 경험이 있고, 조모 등의 애정과 조력으로 자녀에게 훨씬 더 큰 애정과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는 장점과 양육의지, 양육계획을 구체적으로 법원에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 한국에서 아버지와 지내는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면, 단지 어린 여자아이의 양육에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적합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고려만으로 양육자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