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 이혼·상속 전문 변호사 친족법 상담일지 #2
박상홍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가사/상속팀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된 이후에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수 있나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로 갓 진출한 A씨는 집안에서 매일같이 결혼을 언제할 것이냐는 압박을 받으며, 어쩔 수 없이 선 자리에 몇 번 나가게 되었습니다. A씨는 그 과정에서 만난 B씨와 지역과 근무지가 가까워서 조금 더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A씨는 B씨에 대하여 큰 호감은 들지 않았지만, 딱히 싫지도 않았기에, 두 달 정도 만난 후에는 가족에게 교제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A씨의 어머니는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결혼을 부추겼고, 이윽고 A씨와 B씨는 결혼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양가 상견례부터 식장 준비 등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A씨와 B씨는 매일같이 다투게 되었습니다. 신혼여행 이후에도 신혼집에서 아침을 먹는 일, 화장실 청소를 비롯한 사소한 일에서부터 사사건건 다툼이 생겼고 결국 결혼식 한 달 만에 성격 차이로 서로 각방을 사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결혼생활이 과연 맞는 것일까 내심 고민하던 A씨는 B씨에게, “이렇게 살 것이라면 우리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서로의 미래를 축복하며 헤어지는 것이 어떠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B씨는 “우리는 이미 결혼식을 한 상황인데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며 핀잔을 주며 말을 이어가다가, 사실 B씨가 식장 계약할 때 잠깐 가지고 있던 B씨의 도장을 가지고 며칠 전 자기가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상황이냐고 큰 화를 내고 신혼집을 나와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사정을 들은 A씨의 어머니는 그래도 결혼식을 한 것이고 하니, 어차피 혼인 신고를 할 생각이기도 했는데 B씨와 잘 지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A씨를 달래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와 대화를 하던 도중 A씨는 헛구역질이 나는 느낌이 들며 아이가 들어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A씨는, 결혼식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도 남들 눈치가 보이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결국 신혼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달간은, A씨가 임신하기까지 한 사실을 알고서 B씨가 퍽이나 잘 대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임신 5개월 차에 B씨가 다른 지방으로 인사 발령이 나면서, 갑자기 A씨와 B씨는 주말부부가 되었습니다. 이후 아이를 낳고서는, 남성이 점차 주말에 집에 오는 경우마저 줄어들어, 한 달에 한두 번만 겨우 A씨와 B씨가 얼굴을 마주하는 상황이 잦아졌습니다. 그러던 중 A씨는 우연히 B씨의 폰을 보게 되었는데, A씨가 임신 중일 때부터 B씨가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찍은 데이트 사진을 여러 장 발견하였습니다.
성격이 안 맞던 부분은 고사하고서라도, 아이를 사실상 미혼모처럼 혼자서 낳고 기르며 온갖 고생을 다 했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 A씨는 B씨와 사이에서 더 이상의 신뢰는 없다는 생각만 남았습니다. 결국 A씨와 B씨는 크게 다투고, 아이를 낳고서 1년 반 만에,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을 여자가 가지는 것으로 정리하며 협의 이혼을 하였습니다.
이혼 이후 A씨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이는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르바이트와 온갖 궂은일을 하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러던 중 A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친구가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각종 복지 혜택과 지원 정책이 있는데 신청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A씨가 알아보니, A씨와 같이 배우자와 이혼한 배우자로서 18세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모자가족의 경우, 생계비, 아동교육지원비, 아동양육비를 복지급여로 지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혼한 여성이 아닌, 미혼모가 5세 이하의 아동을 양육하는 경우에는 추가적인 아동양육비와 건강관리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며 A씨는 '내가 법적으로 이혼녀라는 딱지가 붙게 된 것도, 남편이 일방적으로 저지른 행동에 의한 것이었고, 나는 이혼녀가 아니라 아예 미혼모인 신분이나 다름없는데 이런 혜택을 못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상황에서도 미혼모에 대한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지, 남편에 의한 일방적인 혼인신고를 되돌릴 수는 없는지를 상담받게 되었습니다.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된 이후에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수 있나요
혼인신고가 무효가 되는 사유는 어떤 것이 있나요
Q1)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된 이후에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수 있나요
A1)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되는 것과, 무효를 확인받는 것은 그 효력의 범위에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되었다면 그 효과는 장래에만 미치게 됩니다. 즉, 기존의 혼인관계는 과거의 유효한 법률관계가 되어 그로부터 친권, 상속, 재산분할 등 여러 가지 부수적인 법률관계가 파생됩니다. 하지만,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게 되어서, 그러한 법률관계가 파생될 여지가 없게 됩니다.
이처럼 이혼과 혼인의 무효는 효력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혼인관계가 이미 이혼신고에 의하여 해소되었다면 그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은, 과거의 법률관계의 확인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보아, 각하 판결을 내렸습니다(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하지만, 이혼 이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인정될 소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혼 전에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경우 다른 일방은 이혼한 이후에도 그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부담할 수 있지만(민법 제832조), 혼인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기판력은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에게도 미치므로(가사소송법 제21조 제1항) 제3자는 다른 일방을 상대로 일상가사채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인척이거나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혼인금지 규정(민법 제809조 제2항)이나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하여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형법 제328조 제1항 등)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차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히, 혼인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당사자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할 수 있는데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이 이루어진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미혼모나 미혼부 가족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일단 유효한 혼인관계를 전제로 하여 형성되는 여러 법률관계에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되는 경우,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된 이후에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전원합의체 판결).
Q2) 혼인신고가 무효로 되는 사유는 어떤 것이 있나요
A2) 민법 제815조는 혼인의 무효 사유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1.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2.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의 혼인일 때
3.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가 있거나 있었던 때
4. 당자사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던 때
그 외에도, 결혼식을 올린 다음 동거까지 하였으나 성격의 불일치등으로 계속 부부싸움을 하던 끝에 사실혼관계를 해소하기로 합의하고 별거하는 상황하에서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의 승낙 없이 자기 마음대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와 같이 혼인신고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는 당사자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86. 7. 22. 선고 86므41 판결, 대법원 1989. 1. 24. 선고 88므795 판결). 즉, A씨와 같이 한쪽 당사자의 혼인신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가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는 당사자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보야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일률적·획일적으로 혼인무효사유로 규정한 것은 위헌이라고 보아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위 부분에 대해서는 2024. 12. 31.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만 계속 적용된다는 점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헌법재판소 2022. 10. 27. 선고 2018헌바115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