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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Oct 06. 2020

이렇게 너무한 널 너무 좋아해

맞춤법 기준은 어디에 둘까

"선생님, 알파벳 순서에 안 맞추면 틀리는 거예요?"

이차방정식을 알파벳 순으로, 차수가 큰 항 순으로 정리하자고 얘기했더니 한 학생이 물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 틀린 건 아니에요."

"치, ABC 순서대로 쓰자는 건 누가 정했대요?"

"수학 권위자가요(웃음). 어떤 학문이든, 그 시대에 권위를 쥔 학자가 정해둔 방식으로 배우고 정리하게 되거든요. 그 학자가 틀렸다는 게 밝혀지기 전까지는요. 그러니까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해요."

성폭행 피해자와 장애우가 다니는 대안학교에 나가 중등 검정고시 수학 과목을 봐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선생이라고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등장하는 계몽주의자처럼 얘기했을까!' 창피함에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었더니, 다른 학생이 눈동자를 이글이글 불태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이란 직업은 말 한마디로도 어떤 인생을 뒤흔들 수도 있겠구나 싶어 아찔했습니다.




너무

「부사」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


너무-하다

[Ⅰ] 「동사」비위에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도에 지나치게 하다.

[Ⅱ] 「형용사」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넘어 지나치다.


때문

「의존 명사」((명사나 대명사, 어미 ‘-기’, ‘-은’, ‘-는’, ‘-던’ 뒤에 쓰여))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


덕분

「명사」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 덕윤, 덕택.



우리가 쓰는 '너무'는 본디 부정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다 2015년부터 긍정의 의미로도 쓸 수 있게 규정이 바뀌었는데요. '너무 좋아', '너무 예뻐', '너무 멋져'라는 표현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자 어문 규정이 변화한 겁니다. 한데 '너무 커', '너무 길어', '너무 가벼워'라는 표현은 아직도 부정 표현으로만 읽힙니다. '크다', '길다', '가볍다'는 상태를 나타낼 뿐 좋고 나쁨이 없는 형용사인데도요. 이러한 설명 없이 '너무'의 긍정과 부정 표현을 모두 허용한다고 발표한 학계의 권위에 몰래 불만을 품어봅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때문'과 '덕분'이 있습니다. '너 때문이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때문'은 부정의 원인을 추적합니다. 긍정의 원인을 말하려면 '네 덕분이야'라고 표현해야 하죠. 교정 교열을 보면서 요즘 가장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에요. '그 일 때문에 돈을 벌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감지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때문'도 부정과 긍정의 의미로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맞춤법은 맞고 틀림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님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말과 글은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변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사람들의 습관과 편리를 향해 끊임없이 유동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이를 적용해 수정한 어문 규정을 분기별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맞춤법 기준은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는 '우리말샘'도 제공합니다. 지금껏 질문받은 우리말 사용법과 국립국어원의 답변이 담겨있어 사전으로만은 찾기 곤란한 여러 맞춤법 고민을 해결해줍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서도 확인할 수 없을 때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저는 여유가 있다면 질의를 남기고, 그렇지 않다면 국립국어원에 전화합니다. 이름을 밝히고, 질문하면 답변을 곧장 받을 수 있어요(국립국어원 홈페이지 링크 및 연락처는 아래에 담아두겠습니다).


맞춤법을 공부하고 싶거나 맞춤법 원리에 대해 찬찬히 훑고 싶은 분에게는 <국어 어문 규정집>을 추천합니다.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및 모음, 외래어 표기법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이 실렸습니다. 예전에는 교과서를 취급하는 대형 서점에서만 살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온라인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제가 한창 국어국문학을 공부할 때 학계의 권위는 <표준 국어 문법론>을 쓴 남기심과 고영근, 두 저자의 몫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알려줄 국어국문학도 혹시 있으신가요?




왼쪽은 <국어 어문 규정집> 표지, 오른쪽은 제 <표준 국어 문법론> 속표지입니다. 저렇게 낙서한 친구는 자라서 도서 MD가 되었는데요,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요.



국립국어원(가나다 전화: 1599-9979)

https://www.kore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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