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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방장 Aug 14. 2024

불편한 나의 진실

04 아무개와의 동행, 그 끝에서 

좋은 관계를 글로 풀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좋은 관계는 현재 진행형이고, 그것이 깨지지 않았기에 더 조심스럽다. 반면, 안 좋은 관계는 이미 끝났기에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기가 더 수월하다. 


"방장님은 불편함을 계속 쌓아두고 참다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내는군요."

2016년에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다.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다. 지금도 불편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바로바로 전달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여 카페를 폐업하면서 정리하고 싶은 관계가 생겼다. 


2년 전, 카페를 막 오픈했을 때 참가하고 싶은 글쓰기 프로젝트가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합류한 사람으로, 프로젝트 리더인 P의 면접까지 받고 참여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시작부터 이미 불평등한 구조였던 것 같다. 자아실현을 목표로 한 6명의 모임, 나는 맡은 바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 타인을 존중하면 이 프로젝트는 순리롭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목표였던 프로젝트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하 누구의 잘못도 아닌, 표현하지 못했던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불편함이다.)

불편한 일정

지정된 날짜까지 최종 원고를 제출하기로 했다. 그 날짜는 나의 신혼여행과 겹쳤다. 그래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는 결혼식 전날 밤까지 최종 원고를 체크하고 보냈다. 그러나 최종 원고는 올해 연초에야 확정되었다. 이 일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래도 서로 배려하고, 자아실현이 목표이기에 이 일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편한 알람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 5년 간 일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순간이 밤 12시, 클라이언트의 문자나 전화다. 하여 몸에 밴 습관이 문자 확인을 빨리 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도 밤늦게 연락 오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P는 책임감이 막강한 사람이다.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은 우리 모임에 올인했다. 하여 무언가 공지하거나 할 때 하는 수없이 한 밤중에 문자 올 때가 많다. 너무 수고해 준 P에게 마땅히 고마워야 하는데 한 밤중에 문자를 받으면 옛 경험이 솟아올라 숨이 막힌다. 대화앱 알람 자체를 끄고 살아가는 중이다. 


불편한 첨삭

퇴고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구성원 중 몇몇이 다른 사람의 글을 첨삭해 주는 것이 불편했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다른 구성원의 글은 첨삭을 받았지만, 나는 나의 글에 대해서는 첨삭을 거절했다. 자아실현을 위한 모임인데, 굳이 비전문가가 첨삭을 해야 하는가? 정말 필요하다면, 차라리 우리 모두의 글을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글쓰기를 잘 모르는 나의 인지적 오류일 수 있다.    


불편한 사람 

모두가 모이는 날, 미팅이 있었다. 구성원 중 한 커플이 있다. A와 B는 롱디 커플로, A가 작은 서프라이즈를 했다. 모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도 아니었다. 하지만 P는 굳이 왜 여기서 이벤트를 하느냐는 표정과 말로 대응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타인의 행복을 눈꼴사나워하고 인색한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다. 이때부터 P와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최종 원고가 나온 후에도, P는 우리의 원고를 여기저기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아와서는 계속해서 요구 사항을 추가했다. 우리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은 걸까? 점점 커지는 그의 불안함에 나의 불편함도 커져갔다. 대체 무엇을 위한 글쓰기이고, 함께 글을 쓰는 의미를 잃게 되었다. 최종 원고도 끝나고, 인디자인 작업도 거의 끝난 시점이지만,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견뎌내고 끝까지 따라갈 예정이다. 시작부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적어도 내가 먼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성과 심을 다해 바나나 한 트럭을 주려는 P, 나는 사과 한 알이 필요한 것뿐인데 말이다. P도 정말 힘들겠구나 싶지만 나의 불편함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관계에 있어서 느끼는 불편함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직각적인 감각은 지난 30년이 넘는 삶의 경험들이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편함을 어떻게든 건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 외의 관계에서는 굳이 불편함을 표현해야 할까?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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