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방황 중입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by 방장

연말모임이 잦아지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운영위원들의 송년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E의 얼굴을 본다. 상반기는 E가 석사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바빴고 하반기는 내가 카페를 정리하면서 바빴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무렵, E의 남자친구 J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함께 기다렸다.

J의 첫인상은 서글서글했다. 나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J,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나보다 8년 늦게 고등학교 졸업한 그 친구가 나를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안 믿는 눈치에 J는 멈춰 서더니,

"수업해 주셨어요. 분명히 본 적 있어요."


J의 말에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벌써 11년 전이란 사실에 놀라고, 또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해주고 있는 J가 고마웠다. 그날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의 내 모습이 생각나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한참 동안 침몰되었다.


대학교 4학년에 모교에서 1학기 동안 교생실습을 했다. 중1, 중2, 고1, 고2 학생들의 심리수업을 했었다. 그때 J가 나의 수업을 들었던 고등학생 중 한 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열정 많은 내게 하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디자인하라는 모교 심리 선생님의 허락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수업을 해서 너무 즐겁게 실습했다. 첫 수업을 꿈이라는 주제로 했던 기억이 난다. 10000 시간의 법칙이며, 꿈을 가지고 열정을 가져야 하는 이유며, 모든 것이 가능하니 꿈을 크게 가져라... 아마 나는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수업으로 전했던 게 아닐까 싶다.


20대 나는 교육에 대한 꿈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다. 그 꿈을 안고 한국으로 대학원 유학을 왔다. 지금도 교육에 대한 꿈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지만 당당하게 누군가에게 내 꿈이 교육이라는 말을 못 하겠다. 내가 뭔가를 이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금 아는 걸 가지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서 나는 부단히 삶에 타협해 왔던 것 같다.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했고, 5년간 일하면서 사라지지 않는 교육 생각에 사직했고 카페를 창업하면서도 카페 장사보다 교육할 공간을 더 크게 만들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뚜렷한 교육 목표는 없었다. 교육을 하고 싶었던 건지, 사장을 하고 싶었던 건지... 카페를 정리하면서 교육에 대한 생각도 정리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심리학과, 아동학과를 다녔던 이유, 교육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 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늘 목표가 뚜렷했기에 방황하고 있는 지금 가장 큰 고민이 목표 없음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독서하고 운동하고 운동 관련 공부만 하면서 쉬는 시간을 갖고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채워지면 다시 목표가 생기지 않을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말로 위로하는 밤이다.


열심히 방황하는 지금,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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