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말모임에서 친구들과 가장 많이 나눴던 주제가 "올해의 나"를 세 단어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나의 키워드는 마무리, 회복, 변화다. 2년간 운영했던 카페를 정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이 소모되었던 에너지를 회복하고자 운동하고 독서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올해 여러 인권 활동가와 독서모임을 하면서, 내 안의 불편함들을 용기 내어 꺼내보고 또 말해보는 변화가 찾아왔다. 불편함을 얘기하다 보니 푸념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붙잡고 얘기하는 것보다 누굴 괴롭히지 말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써보자로 시작했던 글쓰기다. 쓰고 나면 해소가 되니까 나는 글쓰기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공개 적인 브런치에 부정적인 감정을 쓰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그러다 모르는 사람 ㅇㅇ님의 댓글로 인해 내가 글 쓰는 이유에 대해 이틀간 고민하게 되었다.
ㅇㅇ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행간에 위축되고 억울한 감정선이 자주 읽힙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감정을 자화상처럼 글로 표현하다보면 실제 자기의 진실된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방관자의 관점에서 글쓴이의 사건과 상황 그리고 주변인물의 그것들도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럼 부정 슬플 원망에서 이해와 수용의 단계로 가게 되며 비로소 나의 문제를 풀 수 있죠. 몇몇 글을 보면 전부 타인에 대해 문제의식을 찾고 있는 것 같군요. 조선족 정체성에 고민이 많다면 "당신의 수식어"라는 책을 권합니다. 거기서 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관심 갖고 글 읽어주시고, 도서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한 마음과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예의 상 한마디만 답장했다. 올해의 변화를 겪으면서 이제는 내가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를 너무 정확히 집어낼 수 있었지만 참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주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정확히 11시간 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답장을 추가했다.
ㅇㅇ님의 댓글에 심란한 밤을 보낸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ㅇㅇ님의 댓글에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몇몇 글을 보며 전부 타인에 대해 문제의식을 찾고 있는 것 같군요"라는 말이 계속 떠오릅니다. 가장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이 아닐까요? 몇몇 글을 보면 저에 대해 알고 평가하고 조언하는 것이 제가 가장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교육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당사자성이 존재하여,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제 안의 감정들을 자세하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떤 말에 취약하고, 어떤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를... 그건 외부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찾는 게 아닌 내 안에 나를 알아가고 합의 보는 과정입니다. 하여 ㅇㅇ님의 댓글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선량한 차별주의> 도서 추천합니다. 여러 당사자성에 대해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내 안의 감정에 초점을 두고 화해하는 과정(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후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그건 타인에 대한 관심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마음 같습니다. 스스로와 잘 지내고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ㅇㅇ님의 마음의 힘이 부럽습니다! 저 역시 그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한 시간도 안되어 ㅇㅇ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댓글 내용을 확인했다.
마지막 댓글. 내가 그렇게 댓글을 단 건 본인이 쓴 글들과 행간에 녹아진 감정선이 그렇게 읽혀졌기 때문이에요. 가르치려고 들었던 것이 아니고 예전의 나를 보는 듯 해서. 심리학과 아동학을 하는 것이 본인의 결핍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자중자애하시고 타인과 타자(생각, 감정, 사건 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쓸떼없는 감정까지 안으며 생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생활하다보면 비로소 생각이 트이는 날이 옵니다. 사건이나 사물 또는 현상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구조와 그 속에 사람(부모 형제 친구 등)을 이해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은 없습니다. 그럼 살기 힘들어요. 어쨌든 내가 먼저 입니다.
댓글을 시간이 지나먄 삭제 합니다.
오타 난무한 그의 답장을 보면서 그를 차단해 버렸다. 싸한 건 싸한 거다. 내 감정을 믿었어야 했다. 혹시나 했던 마음이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던 순간이다.
배우자가 공개적인 플랫폼에 글을 쓰려면 앞으로도 네 마음을 긁는 댓글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루종일 배우자와 데이트하고 나서도 여러 복합적인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왜 공개적인 플랫폼에 글을 쓸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 앞으로 앉아서 글을 써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의 위로를 받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의 해소하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솔직한 나의 생각을 적는 것은 이 세상에 다양성에 한몫을 하기 위함이다. 미약한 목소리일지라도, 이렇게 고민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시그널을 세상에 보내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 ㅇㅇ님을 차단했던 이유는 도움 요청하지 않은 나에게 일방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의 열등감을 평가하고 나에게 함부로 "조언"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이다. 굳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안겨주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인간관계, 마음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 없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의 생각에 몰두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앞으로는 싸한 느낌이 있다면 브레인스토밍을 기대하지 않고 바로 차단하기로 하는 마음도 함께, 여전히 나의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이 세상의 다양성에 미약한 한 줄기로 나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