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품격

by 방장

그녀는 4호 분식점을 운영한다. 4호 분식점 임대인과도 언니 동생으로 가깝게 지낸다. 함께 알고 지낸 세월도 길다. 분식점 사업주는 임대인이지만 실 소유자는 그녀고, 아래층 한식집 사업주는 그녀지만 실 소유자는 임대인 언니다. 두 사람은 여러 경제적인 부분이 얽히고설켰고 2년 전에 비로소 정정했다.

그녀는 4호 분식점의 사업주로 정리하면서 임대료 외 추가로 매달 250만 원을 임대인에게 이체한다. 권리금도 아니고.. 무슨 개념의 비용인지 모르겠다. 뭐든 좋게 좋게 넘어가는 그녀. 그런 그녀가 만만해 보였을까?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20여 년 전 처음 한국으로 와서 일을 했던 1호 분식점을 양도받고 시작하는 기회였다. 대출을 잔뜩 받고 시작하는 것이지만 분식에는 일가견이 있는 그녀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계약하는 대로 솔직하게 임대인 언니에게 공유했다. 그리고 4호 분식점 계약 만료 되면 새로 계약서 쓸 땐 추가 비용 없이 임대료만 내도 되냐고 물었다. 그게 어려우면 계약 만기까지만 4호점 영업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계약이 만기까지는 아직 6개월이 있는 시점이었다.


임대인 언니는 고민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그녀에게 전화 와서는 추가 비용 250만 원 중 50만 원 깎아줄 테니 계속하라고.. 그녀는 4호 분식점에서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서 밤 9시까지 일을 하며 몸을 갈아 넣었기에 그녀만큼 일욕심이 있고 통제하기 쉬운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부드럽게 거절한 그녀에게 이틀이 지난 뒤 임대인 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왠지 자기한테 속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 오십만 원 깎아준다는 거 취소다. 나중에 만나서 얘기해."

"사람 진실한 거 이용하면 안 돼!"

"이번 주 중에 올 것."

"3시쯤"

임대인 언니의 문자에 그녀는 화가 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했다. 늘 좋게 좋게 풀어보려는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해하며 가족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답장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주말이 되고 임대인 언니로부터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있었다.

"월요일에 무슨 떡 먹을래? 가게는 내가 할 테니 11월 말일까지 하는 걸로 하고 몇 달 남은 동안에 가겟세 말일에 입금하도록 해라. 자기도 돈 들어올 일 있으면 얼마나 기다리니 다른 사람도 다 기다린다는 걸 기억하고 제 날짜 지키기 바란다. 무슨 떡 먹을지 전화 줘"

"선불로 하는 거 후불로 받는 대두 제 날짜를 안 지키면 우짜냐 인간관계에 신용과 신뢰를 쌓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직 말일도 아니고, 문자를 본 그녀는 너무 화가 났고 억울한 나머지 문자 답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딸을 불러와서 받아 적으라 했다. 반말로 받아 적은 문자를 확인 한 그녀는 딸에게 언니니까 존댓말로 "요"자를 붙이라고 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울 각오를 한 딸은 존중받지 못한 사람에게 싸우지 못할 망정 "요"까지 붙이라니.. 그래도 붙여서 보냈다.

"오늘 밭에 가서 전화 못 받았어요. 언니 문자 받고 나도 너무 서운했어요. 며칠 동안. 있는 그대로 언니한테 얘기했는데 이렇게 언니한테 존중 못 받는 일인가 싶어요. 가겟세는 말일에 이체할게요. 직원들 월급 늦게 주더라도 월세는 어떻게든 제날에 이체할게요. 언니가 한다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11월 말까지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월세는 여태 언니한테 양해 구했고 언니도 너그럽게 생각해 준 거는 고맙게 생각해요. 시간이 늦어서 문자로 보내요."

문자를 받아 적으면서 딸은 억장이 무너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딸은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때 임대인 언니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다.

"그래 고맙다. 가게 하는 거 잘 마무리 짓고 앞으로도 잘 지내자. 자기가 나한테 고맙게 해 준 거는 잊지 않는다. 떡은 뭘로 할까?"

"문자 쓴 거 보니 중국인이 아니라 완전 한국사람이네 ㅎㅎ 이젠 100% 한국사람이다."


그녀의 존중으로 임대인 언니의 존중까지는 얻어내지 못했지만 싸움까지 번지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왔던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스무스하게 다시 이어가는 중이다. 존중받지 못한 건 그녀의 호구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딸은 어쩌면 그녀의 성격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회적 분위기, 비우호적 매체... 등등이 임대인 언니가 자기도 모르게 편견을 갖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임대인 언니는 매달 시작할 때 4호 분식점으로 떡을 보내고, 매주 구운 계란을 가져다주고 자기가 이사했다고 집들이 초대하고...


사회적 약자로, 편견이 깔려 있는 사람들이랑 상호작용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그녀가 이제는 존경스럽다. 다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이제는 몸도 생각하면서 일욕심을 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녀의 딸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고 나쁜 사람, 편견이 있다 없다로 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 또한 또 다른 편견을 낳지 않을까? 타인과 상관없이 내가 갖고 살아갈 품격에 대해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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