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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리 Aug 10. 2024

우리의 상견례

새로운 관계의 시작

   

  친절한 직원으로부터 안내받은 방은 한옥 형식의 식당 제일 안쪽에 위치한 안채 같은 곳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시원한 통 창 뒤, 푸릇푸릇한 나무 이파리들이 장소를 한결 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비가 내린 후라 이파리에 맺힌 물방울에 내리쬐는 쨍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통창 앞으로는 10인용의 넓은 나무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한지로 만들어져 차분한 느낌을 주는 주광색 빛의 조명이 달려 있었다. 널찍한 크기의 테이블과 의자도 퍽 편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똑같은 두 개의 꽃바구니와 똑같은 두 개의 디저트 상자를 바닥에 내려 두었다.


   남자친구 J와 함께 장소 준비를 마치자 나의 가족들이 먼저 도착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섯 살 차이 나는 나의 독신 오빠는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곧이어 J의 형 내외가 도착했다. 처음 마주한 우리 가족과 J의 형 내외는 말씀 많이 들었다며 한껏 밝은 표정으로 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눴다. J는 곧 찾아온 적막을 참지 못하고 깼다.


  아침엔 비가 그렇게 오더니 그쳐서 너무 다행이에요.


  J의 한마디에 모두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맞장구를 쳐 공간을 채웠다. 곧이어 J의 어머니, 아버지가 도착했다. 두 분도 내가 여태껏 뵌 모습 중 가장 긴장을 하신 모습이었다.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 아버님은 늦었다는 죄송함으로 뒤섞인 애매한 밝은 표정으로 아빠에게 다가가 다급히 오른손을 내미셨다. 그렇게 J의 부모님까지 자리에 착석을 하셨고, 샐러드 메뉴와 함께 우리의 본격적인 상견례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마치 편을 가르듯 당연하게 안쪽 한 줄엔 J의 가족, 그 건너편에는 우리 가족이 줄을 지어 앉았다. 이야기는 오시는 길은 힘들지 않으셨냐는 아버님의 물음으로 시작되었고, 대화는 아버님과 적막을 견디지 못하는 J의 주도로 이어졌다. 서로 자식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아이들이 성향이 비슷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 생김새도 닮아서 잘 살 것이라는 이야기 등을 주고받았고, 나는 오버스럽게 웃으며 무슨 맛인지 모를 음식들을 입에 구겨 넣었다. ‘입을 가리고 호호 참하게 웃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나에게는 적막의 공허를 큰 웃음소리로 채워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어진 J의 어릴 적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구해줬다는 의로운 성격과 유학 생활에 적응을 너무 잘했다는 칭찬에, 질 수 없었던 우리 아빠는 ‘우리 딸은 어릴 때 모든 걸 혼자서 다했다며, 근데 우리 딸 얼굴도 참 예쁘죠?’라며 뻔뻔하게도 웃어 보였다. 배틀처럼 이어진 칭찬 릴레이가 끝나갈 쯤엔 코스의 마지막 음식인 맑은 붉은빛의 오미자 셔벗이 차려지고 있었다.


  어색하게 대화의 포문을 여는 질문들, 동시에 뱉어져 부딪힌 말들,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인해 처음에는 불협화음인 듯싶던 우리의 음악은, 조금은 억지스러울지라도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예쁘게 다져 내놓은 말과 미소로 곧 조화를 이뤄냈다. 다 같이 찍은 사진을 끝으로 불편한 이야기 없이 상견례 자리가 잘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문득 상견례의 뜻이 궁금해졌다.


상견례 (相見禮)

1. (명사) 공식적으로 서로 만나 보는 예.

2. (명사)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동등한 예를 갖추어 마주 보고 하는 인사.

3. (명사) 새로 임명된 사부(師傅)나 빈객(賓客)이 처음으로 동궁(東宮)을 뵙던 의례(儀禮).


  항상 넷 뿐이었던 두 집안이 ‘가족’ 그리고 ‘사돈’이라는 이름으로 9명이 한 관계로 묶인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실제로 대면을 할 일은 많지 않겠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조사를 챙길 것이고, 문득 그들의 존재를 실감할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우리 네 식구의 한 일원이면서도 J의 가족의 일원 또한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내 가족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념일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닿고, 닿아야 할 곳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 큰 변화를 가져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마주치기 전엔 몰랐던 ‘결혼은 둘만의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상견례라는 것은 두 남녀의 결혼에서는 단순 ‘공식적으로 서로 만나보는 예’를 넘어서 나의 세상이 확장되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로 와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미리 경험해 보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라는 나에게 새로 부여된 역할에 걱정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걸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 또한 우리가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에 대한 답을 내려가는 과정에서 나는 부디 지혜롭고 현명하기만 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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