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라질까?
사진작가님은 연신 들고 찍으시던 카메라를 내리시고는 손목의 시계를 가리켰다. 12시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작가님이 카메라를 들자 방긋 웃어 보이는 나에게 신부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남아있던 친구가 너무 프로페셔널한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모님은 이내 내 앞으로 다가서시더니 사뭇 다른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나만 빼고 모두 전투 준비가 완료된 사람들 같았다.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신 이모님은 식장에서 아빠 손에서 신랑 손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이렇게 오른손으로 치마를 잡고 있다가, 이걸 왼손으로 바꾸고 부케는 계속 이쪽 손이에요. 아셨죠? 이제 갑시다.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또 10센티가 넘는 벽돌에 실려 걸음을 걸었다. 홀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모님이 신발과 발을 묶어 둘러 주신 테이프 덕에 걷기가 한 결 편안했다. 그 와중에도 작가님은 내 앞에서 연신 셔터를 터트려 댔다. 나는 자꾸만 내려가려는 입 꼬리를 한 없이 올리려 노력했다. 홀 입장 문 앞에 서자 결혼식장 안의 소리가 들렸다.
양가 어머님의 화촉 점화가 있겠습니다.
신부는 어머님들의 화촉 점화와 신랑이 입장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곧이어 안에서 신부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겁기만 해 보였던 양쪽 문이 우아하게 그리고 천천히 열렸고, 컴컴한 홀의 환한 빛 한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환상처럼 울려 퍼지는 환호와 박수 소리가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분명히 내 손으로 신부 입장 곡을 골랐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식의 순서는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을 하고 나면, 성혼선언문을 함께 낭독하고 아버님의 축사, 그리고 친구의 축가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는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퇴장.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되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신랑의 친구이자 나의 회사 동기가 우리 앞에서 아이유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가 되니 훌쩍 지나 있을 것 같았던 시계는 채 한시가 안 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12시 10분에 시작해 한 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 우리의 결혼식이 모두 끝났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똑같이 일어나 똑같이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주말이 되면 청소를 하고 외식을 하거나 산책을 나갔다. 종종 함께 공원을 달리기도 했다. 서로 약속이 있을 땐 혼자 밥을 먹고 혼자의 시간을 보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마냥 ‘네 돈 내 돈’이었던 우리의 자산은 이제 서로의 것이 되었다. 함께 가계부를 쓰고, 관리비 고지서를 꼼꼼히 살폈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지는 않았는지, 뜨거운 물을 너무 막 쓰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그의 건강검진 결과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공복 혈당이 이렇게나 높아? 이제 너 혼자만의 몸이 아니라고. 하며 괜히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장보기 리스트에서 과일과 과자를 조금씩 줄였다. 그가 나의 책임의 테두리 안에 한 발 더 들어왔다는 것. 나 또한 그렇다는 것. 그의 행복과 불행이 조금 더 잘, 감정적으로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옮겨 올 것이라는 것. 이것들은 우리의 작은 습관을 바꾸고, 곧 생활을 바꿀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결혼식은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해야 하는 큰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