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지음 Jun 01. 2024

4. ADHD약이 추가 되었다

두 번째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두 번째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선생님은, 친절한 얼굴로 내 상태를 물었다.


- 어떠셨어요?

- 불안도는 확실히 좋아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복용 시작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조금 졸렸어요.

- 필요시약은 어땠어요?

- 딱 두 번 먹었는데 효과가 있었어요. 불안이나 무기력증은 확실히 좋아졌는데... 일에 집중은 여전히 어려워요. 자꾸 딴짓만 하게 되고요.

- 혹시 어릴 때부터 그랬나요?


훅 들어오는 선생님의 질문에 돌이켜봤다.

나의 어린 시절을.





나는 어떤 아이였더라.


아주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총명하다는 말은 꽤 들었더랬다.

멍 때리기를 좋아했고. 상상과 망상을 하며 놀았다.

방 정리는 그때부터 못했고, 숙제는 미루기 대장.

엄마 아빠가 깨워야 겨우 늦지 않고 학교에 갔고...

성적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었지만, 늘 벼락치기 인생.


초등학교 때 내 생활통지표에는 매 학 년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활달하고 총명하나 뒷 정리가 소홀합니다


매년 워딩은 조금씩 달랐지만, 선생님들의 평은 비슷했다.

생각해보면, 내 사물함은 늘 뒤죽박죽이었다.

사물함 뿐 아니라 책상 위, 책상 서랍, 책가방까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유독 잠이 많았고, 좋아하는 수업들만 골라들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다른 공부를 하거나, 딴 짓을 하거나 (혼자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몰래 잤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집중력은 좋았지만, 그걸 하고 있는 동안엔 다른 걸 신경쓰지 못했다.

드라마에 빠지면, 엄마가 옆에서 뭐라 하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한 편으로는 감정기복도 있었고, 꽂히면 무조건 해야하는 충동성도 있었다.

나의 이런 과몰입과 충동적 성향은 '덕질'이라는 형태로 내 사춘기를 지배했었다.


나를 낳아 기르신 전모 여사님의 총평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너를 키우면서 정말 힘들었는데, 힘들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질 않더라.


엄마는 내가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왜 저렇게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다운이 되는지. 왜 갑자기 멍을 때리는지. 종잡을 수가 없어 어려웠다고 하셨다.


표면적으로는 학교도 잘 다니고, 공부도 곧잘 하는 편이고, 교우 관계도 좋은 편인 흠 평탄한 아이처럼 보였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예측이 불가능한 아이였다.

이제와 반추해보면, 아마 엄마가 통제 성향이 강한 분이라 더욱 그렇게 느끼셨던 것 같다.

기질적으로는 엄마와 너무 다른 아이였기에, 더 힘들었던 거라고.


뭐 요즘은 '너희 정도면 착했지'라고 나와 동생의 어린 시절을 미화시키고 계시지만.

나는 안다. 그 시절 엄마는, 내가 무척 답답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면, 당시엔 나조차도 내가 누군지. 내가 왜 이러는지. 뭐 때문에 이러는지 몰랐으니까.


사실은 여전히 잘 모르겠으니까.






두 번째 진료 결과, ADHD약이 추가되었다.

먹던 항우울제의 종류와 용량은 유지 되었다.

나는 무지랭이 환자이기에 이번에도 여쭈었다.


- 선생님, 제가 ADHD인가요?


선생님의 답변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지금은 우울과 무기력 때문에 그런 증상이 더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약은 5mg으로, 아주 저용량이라고 하셨다.

각성 효과가 있으니 가급적 저녁 시간은 피해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내가 ADHD가 아닐까, 종종 의심은 해왔었다.


어른이 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을 때. 그리고 프리랜서가 됐을 때.

모든 상황에서 어른으로서 응당 해야할 나름의 '책임과 처리'들이 내겐 유독 어려웠는데,  이것이 ADHD의 증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성인 ADHD에 대해 잠시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ADHD의 증상으로 설명된 것들 중에는, 흐트러져 있는 '나'라는 퍼즐 조각을 짜맞추는 것처럼 내게 들어맞는 문장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부터 마음 한 켠에 의심은 늘 품어왔지만, 일상을 사는데 '막대한' 지장은 없었기에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조금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나는 한 성인으로서의 내 삶을 책임지고 있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프리랜서 작가라는 불안정한 위치에 오게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퇴사와 함께 나를 통제하던 최소한의 루틴과 시스템마저 사라지자, '자연인' 상태의 내가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불안도가 높고, 산만하고, 생각이 많고, 감정기복이 심하고,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이렇게 태어나버린 본연의 내가 말이다.

내가 사회화 혹은 진화라고 믿었던 것들은, 그저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내 처절한 발구르기 였을 뿐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사람은 극한에 몰려야 진짜 본모습이 나온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내게는 지금이 그때인것 같다.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극한의 상황으로, 나는 진짜 나를 아주 오랜만에 대면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사회화'와 '어른'이라는 철갑옷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겁 많고, 생각 많고, 꿈 많은 그 소녀를 밖으로 꺼내 성장시킬 시간임을 말이다.  


이제 나는 두 개의 아침약을 먹는다, 샛초록색과 새하얀색.


하나 더 늘어난 아침약이 부디 지금의 나에게도, 그때의 그 소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3.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