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쩔 수 없는, <나>라는 인간
내가 취업 제안을 받았다고 알렸을 때, 내 지인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 그 연봉에, 그 복지면 당연히 해야지! 회사 네임밸류도 있고!
- 힘들게 전업 작가 됐으면서, 그걸 또 왜 해? 시간 낭비야!
재밌는 건, 저렇게 극과 극을 주장하는 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 이들은 나와 비슷한 상황의 프리랜서들이었다. 예측불허의 미래를 혈혈단신 달리고 있는 그들은, 왜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마다하냐며 나를 설득했다.
이에 반기를 드는 이들은 전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들이었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 마음속에 늘 사직서를 품고 살고 있는 그들은, 회사가 싫다고 뛰쳐나와 놓고 왜 다시 돌아가려 하냐며 나를 채찍질했다.
얇디얇은 나의 귀는 계속해서 팔랑 거렸다. 주어진 일은 손에 잡히질 않고,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계속 돌아갔다.
A. 내가 다시 취업을 한다면?
아마도 매일같이 다음 날과 다음 달을 걱정해야 하는 작금의 불안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매달 정해진 월급이 나올 것이고, 윤택한 사내 복지를 누릴 것이고, 다시 번듯한 명함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사대보험의 정당한 수혜자로서, 더 이상 지역가입자로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내지 않게 될 것이다. 매 달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매 달 날아오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통지서는 얼마나 압박적이던가. 게다가 전부를 내가 부담해야 하니, 버는 돈은 없는데 내야 하는 세금은 더 많아진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회사에서 차 떼고 포 떼고 다 떼서 나오는 월급만 받을 땐 몰랐는데, 회사가 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반이나 내준다는 건 꽤 소중한 일이 아니었던가.
어디 그뿐인가. 나는 다시 월급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매달 일정한 사치를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점심과 저녁도 회사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복지비로 운동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야무지게 연차를 모아 어디든 떠나자며 '플렉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돈 벌지!!!! 떵떵거리면서 국내든 해외든 여행도 더 많이 가고, 호캉스도 가고, 비싼 밥도 더 많이 먹고...
가끔 내가 게으름을 부리더라도, 또 무기력이 오더라도 내 통장에는 동일한 급여가 꽂힐 것이다. 때때로 월급 루팡이 되더라도, 아무도 나의 루팡짓을 모를지니. 남들에게 티가 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약간은 '밍기적' 거려도 내 삶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 속에서 나는 마음의 여유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과 번아웃에서 비롯된 지금의 우울증 마저, 금세 싹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지. 남들 대학 갈 때 대학 가고, 남들 취업할 때 취업했던 딸이 전업작가가 되겠다 했을 때. 부모님은 나를 말리지 않으셨다. 나는 이제 전업작가로 살겠노라 부모님 앞에 선언했을 때엔, 이미 '글먹'할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증명한 후인지라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고 계셨던 것 같다. 공부해라, 학원가라, 방 좀 치워라 잔소리를 하셨던 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신다. 동생의 전언에 의하면, 쟤는 잘하고 있나 하는 걱정조차, 내가 혹시 눈치를 보거나 거슬려할까 봐 뒤에서 몰래 하신단다. 엄마는 언제든 내가 실패해서 땡전 한 푼 없이 본가로 들어올 수 있다는 각오까지 이미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본가의 내 방을 내가 살던 때와 똑같이 내버려 두고 있으신 거라고...
그다지 효녀는 아니지만, 아들 없는 집안의 K-장녀라는 포지셔닝으로 평생을 살아온 나다. 나의 현실적인 능력치나 부모님의 노후 대비 여부나 정도와는 상관없이, 어쨌든 계속 무언가를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이 근원을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나의 기본 설정값인 것이다. 그러니 취업을 한다면, 나는 이 본투비 K-장녀라는 캐릭터값에 다시 충실할 수 있게 된다. 부모님 마음에 쏙 드는 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쟤가 뭘로 먹고살 것인지 걱정을 끼치지는 않을 터. 가끔 두둑이 용돈도 쥐어드리고 말이다. 여기에 우리 딸 어디 다닌다! 연봉이 얼마다! 는 자식 자랑 찬스까지 겸사겸사 따라오겠지.
여기까지가 내가 '취업'을 선택했을 때 돌려볼 수 있는 희망회로다. 그렇다면 내가 '프리랜서 작가'로 남았을 때에 가능한 희망회로도 돌려보도록 하자.
B. 내가 프리랜서 작가로 남는다면?
나는 지금처럼 시간의 주도권을 계속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물론 이런 마음이 드는 날은 거의 없지만),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나는 꽤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남들이 일하는 평일에 핫플에 가는 기쁨, 웨이팅 없이 핫플을 누릴 수 있는 그 기쁨은 누려본 자만이 알 것이다.
회사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평생 작가로 살 수 있을 날만을 기다리며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은, 그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치이다. 지금 예상치 못한 변수로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기분에서 빠져나와 냉정히 돌이켜보면, 나는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전업작가로서의 성취는 또 얼마나 달콤하고, 짜릿한가. 회사원으로 살 때 나는, 늘 성취에 목말라했었다. 회사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성취가 오롯이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 괴로워하기도 했다. 조직 안의 나는, 늘 내게 할당된 만큼만을 성취하고 만족해야 했다. 반면,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성취는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내 것으로 다가온다. 내가 늘 원해왔던 유형의 성취를 거머쥐었다는 벅참과, 평생을 동경해 온 '예술인'이라는 준거집단에 드디어 속하게 됐다는 뿌듯함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글 쓰는 작가'라고 나를 소개할 때 좀 뽀대(?) 나는 것 같다. 회사원으로 나를 소개할 때와 작가라고 나를 소개할 때의 온도차는 피부로 와닿을 정도다. 소심한 관종인 나는, 사람들이 내 일을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는 게 너무 좋다.
마지막으로(Last but not least).
작가로 대박 나면, 인생역전 쌉가능.
참 유감스럽게도 내가 프리랜서 작가로 남았을 때의 희망회로는, 아무리 쥐어짜도 이 정도인 것 같다. (쓰고 보니 A와 B의 분량차이가 너무 상당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다.)
보다시피 A를 선택했을 때의 시뮬레이션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구체적이며, 외부세계 친화적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부모님의 딸로서의 나를 살펴보게 된다. 반면 B를 선택했을 때 좋은 건, 오로지 '나'를 위한 것들 뿐이다. 누가 보면 철없고, 이기적이고, 뜬구름 잡는다고 비웃을 수도 있는 이유들 뿐이다.
제목에도 썼지만, 나는 이미 선택을 마쳤다. 취업 제안을 고사하는 것으로 말이다.
기어이 철없고, 이기적이고, 뜬구름 잡는다고 비웃음을 살 수도 있는 그 선택지를 골라버렸다. 프리랜서 작가로 조금 더 '존버'해보겠다는 무모한 모험을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지독히 나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타적인 것이 미덕인 K-장녀로서의 숙명을 타고났으면서도, 나는 결정적인 순간엔 늘 이기적인 인간이 되곤 한다. 머리가 시키는 일도 하긴 하지만, 늘 중요한 순간에는 심장이 시키는 것을 따르며 살아왔다. 이러한 가치 판단 습성은, 아마도 내 인생의 모토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관 뚜껑 닫을 때, "아 재밌는 소풍 같은 인생이었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어.
소풍 같은 인생을 추구함으로써 내가 귀납적으로 깨달은 건, 심장이 시키는 일을 했을 땐 그것이 잘못된 결과로 돌아오더라도 후회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실패의 아픔과 아쉬움 또한 오롯이 내 몫이라, 그에 대한 원망 또한 오로지 나에게로만 돌아온다. 다른 누구를 탓할 명분 같은 건 아예 씨가 말라버린다. 당연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실패했다고 누굴 탓하겠는가.
언젠가 지금의 내가 도전도 안 하고 놓아버린 월급, 복지, 안정감 등등이 분명 아쉬워질 순간이 올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면, 나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그걸 다 알면서도 또 이리 심장의 울리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고야 만다. 그러니까 나란 인간은... 정말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이렇게 태어난 이상, 이번 생은 일단 이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이번 취업 제의는 무력하고 암울한 최근을 살아내던 중에 찾아온 선물 같은 기회였다. 내가 그것을 취하느냐 마느냐와는 관계없이, 그런 이벤트 자체가 근래의 내겐 필요했던 것 같다.
홀로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정확히 같은 일을 하는 동료도 선배도 없이 일을 하면서 나는 너무나 많은 나를 대면했다. 스스로와의 대화는 때때로 스스로를 향한 비난과 힐난으로 변질됐고, 그것은 내 안에 켜켜이 독으로 쌓여갔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독은, 내게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치명상을 남겼다.
스스로 퍼먹은 독에 말라비틀어져 있던 내게 (실제로 네 달 동안 몸무게가 4kg 정도 빠졌다.) 이번에 받아 든 취업 제안은 꽤나 효과적인 디톡스로 작용하고 있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 끝에 낭떠러지가 있든, 구덩이가 파여있든,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든, 볼드모트 같은 빌런이 죽치고 앉아 디멘터를 뿌리든. 이제는 조금 더 용감하게 맞아들 용기가 생겼달까. 모험이 오래되면 길은 무뎌지고, 퇴로는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이 두렵고, 우울했다. 길어진 모험 탓에, 나는 돌아갈 퇴로마저 영영 잃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번의 기회로, 나는 한 가지를 다시 배웠다. 돌아갈 퇴로를 잃었다면, 새 퇴로를 찾으면 되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세상은 변하고, 미래는 불완전하다.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불확실로 변하고, 불확실했던 것들이 확실한 무언가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제는 길이 아니었을지언정, 오늘은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변모하는 인류의 문명은 오랜 옛날에는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하늘 길을 열었고, 죄악시 여겨졌던 우주를 증명하지 않았는가. 성경에서 비롯됐다는 그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무교지만.)
믿고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래. 믿고, 두드리면, 무어라도 열리겠지. 그러니 나는 일단 끌리는 대로 걸어가 보련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심장이 시키는 대로. 뚜벅뚜벅. 의연하게.
그러다 망하면, 다시 믿고 두드리면 될 일이다. 그러다보면 길이든 문이든 나타나겠지.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등용문이든, 지옥문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