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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음 Jul 04. 2024

8. 퇴사 2년, 취업 제안을 받다

<필요시 약>이 필요한 새벽

예상치도 못한 고민을 떠안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간단한 외주 알바를 소개 받아, 담당자분과 미팅을 진행하게 됐다.  

미팅 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는 회사명과 업무, 그리고 대략적인 근무 조건이 전부였다.


처음 만나는 분과, 처음 인사하는 자리.

나와 미팅을 진행하신 A님께서는, 유독 내 이력서에 관심을 보이셨다. 외주 업무에 대한 이야기보다, 내 이력에 대한 이야기로 미팅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런 얼마나 이야기가 오갔을까. A님은 내게 아주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 혹시 직원으로 들어오실 생각은 없으세요?


지금 채용을 진행 중인 정규직 포지션에, 입사 지원을 해볼 생각은 없냐는 질문. 이것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알바를 위한 미팅은 순식간에 면접 분위기가 되었다.


물어보시는 것에 나는 그저 성실하게 답했다. 오늘 한 말 중에 잘 보이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는 없었다.

대외적으로 꽤 알려진 회사가, 꽤 경쟁이 치열한 포지션의 적임자로 나를 고려해주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 나는 이미 회사를 그만둔지 2년이 넘은 경력단절자였다. 퇴사 후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을 때, 나는 쌓은 모든 경력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늘 내 커리어가 애매하다고 여겼었는데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될 수가 있구나 싶어 기분이 묘했다. 이 세상에 도움 안 되는 경험은 없다는 그 말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무척 매력적인 제안임이 분명했다. 지금의 내게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리였고 욕심을 낼 만한 조건이었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기업체의 경력직 자리. 내가 이전의 회사에서 근사치에도 가본 적 없는 급여 테이블과 쏠쏠한 복지제도. 무엇보다, 그들이 해당 포지션에 바라는 역할이 내가 잘 성취할 수 있을만한 영역이라는 점이 나를 흔들었다. 내가 쌓아온 커리어들을 이렇게도 발전시켜 볼 수 있을 거라는 새로운 전개도를 얻은 기분이랄까. 


불안에서 비롯된 번아웃, 우울증, 그 과정에서 발견된 ADHD까지.

자존감이 올라갈 리 없는 최근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발견된 나의 '새로운 쓸모'가, 눈물나게 반가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YES!! 라고 답하지 못했다.

내가 제안을 수락한다고 해서 백프로 채용이 확정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어디까지나 임원 면접 등 꽤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끝내 거머쥘 수 있는 자리였다. 결국 나는 여러 결정권자 중 한 분에게 지원에 대한 제안만을 받은 것이니, 끝까지 가보기 전까지 결과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원 자체부터 고민이 되는 건 왜 일까.


나의 객관적인 현실과 상황과 상태를 생각하면, 저 제안을 기쁘게 여기고 수락하여 열정을 다해 도전하는 것이 맞거늘. 왜인지 마음이 반갑고 기쁜것과는 별개로 심장의 반응이 시원찮다.


그러고 보니 나는 프리랜서 전향 이후, 단 한 번도 회사원 생활로 돌아간다는 가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회사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만족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통장을 스쳐가는 월급의 기쁨도, 4대 보험의 안정감도. 입사 과정의 열의도, 첫 출근의 설렘도, 첫 업무의 긴장도 이미 내가 모두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찾아오는 건 적응과 증명의 시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여기에 출퇴근 러시아워의 무시무시한 지옥철 또한 빼놓을 수 없겠지.


회사를 다닐 때를 돌이켜보면, 무척 지긋지긋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난다. 그 와중에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지만, 그때로 다시 되돌아갈 자신은 없다. 10년 간의 직장 생활 끝에, 나는 다신 회사생활은 못 하겠다 진절머리를 치며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어했으니.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전업작가(겨우 먹고 살 정도일 뿐이지만)가 되었으니.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갈 엄두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싫어서 뛰쳐나온 그 생활로 다시 복귀한다는 게, 마치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말이다.


그래서 냉철한 이성은 무조건 도전 해보라고 소리를 치는데, 뜨거워야 할 심장의 반응이 영 신통치가 않다.


이럴 때에 보통의 어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려나. 지금의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현명하려나. 양자택일의 선택지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덜 후회하려나.


보통의 나는 늘 심장을 따라가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심장의 선택을 신뢰할 수가 없다.


생각지 못한 기회에 고민이 깊어진다. 그렇잖아도 불안한 시기인데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봐 그것이 너무나 두렵다. 최선을 잡지 못할까봐 무섭다.


약들을 챙겨먹으며 나름 유지되었던 평정심이, 흔들리는 밤이다. 한동안 먹지 않고 있었던 <필요시약>이 필요한 새벽이다.


아 모르겠다.

일단 푹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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